일시: 2016년 4월 13일 수요일
장소: 홍대 한잔의 룰루랄라
질문, 정리: 정구원 [email protected]

단편선과 선원들의 두 번째 앨범 [뿔]은 유려한가 하면 뾰족하고, 거칠게 내달리다가도 어느 순간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어느 때와 같은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이면서도, 어느 순간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그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어떤 밴드와도 구분되는 음악을 선보이는 팀이지만 그들은 그 위치에 순순히 머무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2집 발매를 맞아 단편선과 선원들의 프론트맨 회기동 단편선(이하 단편선), 그리고 매니저 강진원(aka 피코테라)을 만났다. 앨범 발매 준비로 한창 바쁠 때 진행된 인터뷰라 집중력이 떨어질 법도 했지만, 그런 것에 상관없이 두 사람은 언제나처럼 진중하게, 하지만 유머러스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인터뷰가 [뿔]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었으면 한다.

* 본 인터뷰는 멜론 아티스트 갤러리에 실린 인터뷰를 수정, 보완한 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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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원: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단편선: 안녕하세요. 저는 단편선이고, 오늘 인터뷰에는 단편선과 선원들의 총괄적인 디렉터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단편선과 선원들은 4인조 록 밴드이고, 사실 ‘우리는 록 밴드다’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건 아닌데, 저희가 2015년 제12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 부문을 수상해 버린 바람에 록 밴드라고 일단 소개를 늘 하고 있습니다. (웃음)

 

정구원: 2년만에 내놓는 두 번째 앨범입니다. 첫 앨범 [동물]을 작업할 때와 차이를 겪었던 부분에 대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편선: 일단 음악적으로 달라진 부분은, 이 앨범은 한 곡을 제외하면 단편선과 선원들이란 밴드가 결성된 ‘다음’에 만든 곡으로 모두 채워져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앨범을 작업할 때는 혼자서 회기동 단편선으로 활동할 때의 음악들을 다시 정리해서 만든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멤버들의 경우에도, 2014년에 저희 밴드가 데뷔하긴 했지만 이번 [뿔]을 내는 게 진짜로 데뷔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왜냐하면 이번엔 멤버들을 고려하면서 작곡에 들어갔던 거니까요. 멤버들이 어떤 식으로 플레이할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작곡을 했었고, 그랬기 때문에 곡을 쓰는 것부터가 많이 달라졌어요.
그리고 주위 환경의 경우에는,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고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년 3월 KT&G 상상마당 써라운드(S.around) 뮤지션 공모 사업에 선발되었는데, 기한 내에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에 작년 12월 말까지 계속 곡을 썼었어요. 넣기를 원치 않는, 맘에 안 들어서 치워놨던 곡을 넣는 상황까지 생길 뻔 했는데, 이를테면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OST에 실린 벡(Beck)의 “Everybody’s Got to Learn Sometime” 풍의 “빛”이라는 발라드 곡이 있었는데, 앨범 전체의 컨셉과 너무 안 맞는 거에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다행히 12월 중순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불”을 번개같이 작업했어요. 결국 저 자신이 넣기 싫거나 퀄리티가 떨어지는 노래를 이번 앨범에 넣는 건 피할 수 있었죠.
한편으로는 제 주위의 친구 뮤지션들, 김사월이나 권나무 같은 뮤지션들이 나름대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이 되었어요. 김사월의 경우에는 이미 꽤 궤도에 올라가 있어서 친구로서는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고, 권나무도 이번 2집이 많은 호평을 받는 등 주위 친구들이 음악 작업을 잘 하고 있거든요. 옛날에 제가 자립음악생산조합(이하 자립)이라는 곳에 기반을 많이 두고 작업을 할 무렵에는 지금보다 좀 더 컬트적이고 펑크 애티튜드에 입각해 있는 작업 위주로 많은 것들을 만들었었는데, 그 시기가 이제 저에게 있어선 넘어갔다고 생각해요. 당시에 제가 할 수 있는 포지션을 취했고 거기서 얻은 것도 있었지만, 단편선과 선원들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한적한 소도시에서 조금 더 시끄럽고 큰 도시로 올라와 일을 하게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자립과 그 시절 만났던 친구들은 고향과 고향 친구 같은 거고, 이제 저는 또 새로운 도시에서 좋은 작업을 해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정구원: 다른 동료 뮤지션들이 궤도에 올랐다는 점이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했던 건가요?
단편선: 압박감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나는 그들과 다른 음악을 하기 때문에. 나하고 친하고 서로 리스펙트가 있긴 하지만 다른 음악이니까. 그렇지만 주위 친구들이 많이 바뀐 것은 분명 사실이에요. 처음에 단편선과 선원들을 시작할 때는 김사월이 이렇게 될 줄 아무도 몰랐었고, 권나무 씨도 그 땐 거의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이런 주변의 변화가 우리 밴드의 현재를 파악하고 기반을 다지는 데 훌륭한 거울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심적으로도 변화가 많았어요. 일단 서른이 되었구요. (웃음) 우리 밴드에 서른이 안 넘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졌어요. 음반 작업을 하면서.

 

단편선과 선원들 – “연애”

 

정구원: 싱글 “연애”를 앨범 발매 전 선공개했는데, 음원 형태로 싱글을 발매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뮤직비디오, 김사월의 피쳐링 등 화제가 될 만한 지점이 많았던 싱글이었죠.
단편선: ‘단편선과 선원들’이라고 하면, 다들 앨범을 생각해요. ‘이 밴드는 앨범 아티스트’ 같은 느낌이 너무 강하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연애” 싱글을 내면서 그것을 좀 깨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우리도 싱글컷을 낼 수 있는 밴드다, 하는 것. 그래서 앞으로도 싱글을 계속해서 낼 생각이에요. 흥행성이나 화제가 되는 부분을 떠나서, 밴드가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고 봤거든요. 제가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게, 지난 2년 동안 공연 등을 하면서 빡세게 활동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분이 블로그에 적은 걸 보니까 ‘아무 소식도 없이 잠잠히 있다가 2년 만에 앨범을 들고 나왔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우리 밴드가 활동하고 있는 세계가 굉장히 작고 좁은 세계라는 거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싱글에 대한 호응이 굉장히 좋았던 편이에요. 뮤직비디오 감독 ML 이나 우리 밴드나 저희가 냈던 컨텐츠 중 가장 빠르게 확산이 되었다고 보고 있어요. 확산이 될 만큼 자극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뮤직비디오나 음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사람들에게 감흥을 준 덕분이기도 하고요. 우선 댄스곡을 만들고 싶었고, 이 곡을 들으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춤췄으면 했는데 그런 의도와 잘 맞아 떨어졌어요.
신기했던 점은 그 뮤직비디오를 보고서 우리에게 윤리적 태도를 요구한 청자가 없었다는 점이었어요. 노래 자체도 그렇고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윤리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귀여운 포인트도 있고 폭력적인 포인트도 있고 정치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기대했던 반응들 중에 하나가 윤리적인 포인트에 대한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한 반응이 많지는 않더라고요.

 

정구원: 그래도 여러 가지 반응이 많이 나왔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편이셨나요?
단편선: 싱글을 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많이 궁금했어요. 사실 그게 싱글을 낸 이유기도 하고요. 어쨌든 저희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피드백이 필요하니까요. 우리가 우리의 음악을 잘 만들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 같은 밴드가 이런 스타일의 싱글을 이런 뮤직비디오로 냈을 때, 어떤 식의 반응들이 오갈까. 그런 반응들을 많이 획득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는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선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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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딩 뿐만 아니라 믹싱, 마스터링까지 전 과정에 밴드 멤버와 매니저까지 모두 참여했는데, 이것이 음반을 한 장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종의 워크샵이나 세미나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기분인 거에요.”

 

 

 

정구원: [뿔]의 작업은 악기 녹음을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그리고 보컬 녹음을 상상마당 춘천 라이브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집 때에 비해서 훨씬 스케일이 큰 작업 환경에서 앨범을 만드신 셈인데, 작업 과정과 스케줄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편선: 1집을 머쉬룸 레코딩의 천학주 씨와 작업했는데, 원래는 2집도 학주 씨와 같이 작업하려고 했었어요. 우리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엔지니어거든요. 그런데 오디오가이의 최정훈 대표님한테서 컨택이 들어왔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2집 앨범은 오디오가이와 함께 작업하게 되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가 다시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녹음이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와 상상마당 춘천 스튜디오에서 나눠져 진행되었던 건 사실 제 선택은 아니었어요. 최정훈 대표님께서 악기는 여기서 녹음하고, 보컬은 상상마당 춘천 스튜디오에서 하기로 제안하신 거였죠. 보컬을 녹음할 때는 소스를 받는 방식을 달리해서 드라이(Dry)하게 녹음해야 하는데, 상상마당 스튜디오에서는 그것이 가능했거든요.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는 드라이하게 받는 게 녹음 홀의 구조상 좀 어려웠고요. 굉장히 넓은 공간에서 녹음을 해야 했거든요. 드라이하지 않은 웻(Wet)한 소스의 경우에는 악기를 쳤을 때 앰비언스까지 같이 받는 식으로 녹음할 수 있는데,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선 그런 웻하고 고유한 소리가 잘 잡혔거든요. 그렇지만 보컬의 경우에는 후반작업이 많이 필요하고 디테일하게 만져야 할 부분이 많아요. 사실 최정훈 대표님의 경우엔 보컬까지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해 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고, 실제로 첫 곡 “발생”의 경우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했어요. 하지만 나머지 곡의 보컬의 경우에는 드라이한 녹음이 필요했고, (위에서 말한) 상상마당 공모 사업에서 펀딩을 받은 이유도 있어서 상상마당 춘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게 됐죠.
스케일이 커지면서 좋았던 점은 일단 시간적, 공간적 배려를 많이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죠. 그래서 여러 음악적, 음향적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강진원: 음악적/음향적 두 가지 종류의 시도가 존재하는데, 일단 음악적 시도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테이크를 간 다음 개중 가장 좋은 테이크를 꼽는 방식의 시도를 말하는 거에요. 그리고 음향적 시도는… 녹음하는 데 있어서 톤이나 태도, 애티튜드를 정하고 녹음하는데 이게 바로바로 전환하는 게 어렵거든요. 그래서 ‘여기서 잠깐 작업을 멈추고 몇 시간 쉬었다 합시다’ 식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부분이 필요한데, 그런 식의 음향적 시도가 가능했던 거죠.
단편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악기를 스튜디오 내의 어떤 위치에서 치느냐, 마이크를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 다르게 나오거든요. 그 전에는 이러한 테스트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테스트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거의 반나절 동안을 악기 위치, 마이크 위치 등의 세팅에만 투자하고 난 다음에 ‘이제 녹음 시작합시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각 악기마다 다 그렇게 세팅을 잡고 나서 녹음을 했어요. 나중에 어떤 식으로 합쳐질 것인가, 모습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대한 고려를 처음부터 하고 나서 작업을 시작한 거죠.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어요. 당연히 보컬도 그러한 고려 속에서 작업했고요.
그리고 믹싱의 경우에도 전 과정에 참여했고, 리듬을 편집하거나 오토튠을 만지는 등의 과정을 전부 우리 밴드 멤버의 손으로 했어요. 레코딩 뿐만 아니라 믹싱, 마스터링까지 전 과정에 밴드 멤버와 매니저까지 모두 참여했는데, 이것이 음반을 한 장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종의 워크샵이나 세미나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기분인 거에요 (웃음).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이렇게 음악과 음향에 대해서 공부하는 느낌으로 앨범을 만들다 보니까 나중에는 속도가 붙더라고요. 덕분에 막판에 스케줄 상 조금 급박해진 상황도 있었는데, 해야 할 일들을 큰 무리 없이 차근차근 진행하는 게 가능했어요.
강진원: 여담이지만 이렇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 편선 씨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였어요. 1월 정초가 끝나자마자 바로 녹음에 들어갔는데, A4 용지 30장 정도의 문서를 준비해서 멤버들에게 배부하고 계획을 세웠죠. 앞에서 ‘압박감’을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지원도 받았고 실수하면 어려워지는 거였으니까 준비를 꼼꼼하게 한 거죠. 근데 그렇게 준비를 철저하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벅차거나 힘든 상황이 안 발생하지는 않더라고요.

 

정구원: 아까 편선 씨가 말씀드리려 했던 오디오가이의 제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마저 물어볼게요. 오디오가이는 클래식/재즈/국악/크로스오버 전문 레코딩 스튜디오이자 레이블인데, 단편선과 선원들하고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나요?
단편선: 사실 저희한테 다른 레이블로부터의 컨택이 들어온 적도 있었어요. 저희가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함께 잘 할 자신도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일단 우리와 같이 일을 해 왔던 강진원 매니저가 있었고, 저 역시 DIY로 혼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오면서 단편선과 선원들에서도 디렉터/프로듀서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인디 레이블에 급하게 들어갈 이유는 특별히 없었던 거에요. 물론 레이블에 들어가면 페스티벌에 나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여러 가지 유무형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는 우리가 자율적으로 활동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데, 자칫 레이블에 들어갔다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죠.
그런데 저희가 굉장히 신뢰하는 공연장 벨로주(Veloso)의 박정용 사장님께서 저희랑 오디오가이를 연결해 주셨어요. 제가 오디오가이에서 나온 앨범을 많이 들어봤고 좋아하는 앨범도 많았으니까 당연히 어떤 작업을 하는 곳인지는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약간 의외였고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디오가이가 우리 같은 밴드한테 관심을 가질 만한 레이블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최정훈 대표님하고 만나게 됐는데, 최정훈 대표님이 자기는 록 음반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자신도 이런 록 음반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어요.

 

정구원: 그런데 단편선과 선원들이 ‘전형적인’ 록 밴드는 아니잖아요?
단편선: 그런 부분 때문에 더 흥미를 느끼셨던 것 같아요. 오디오가이의 지향은 굉장히 분명한데, ‘어쿠스틱 음악을 전문으로 한다’거든요. 일렉트릭 사운드가 들어간 음악보다 어쿠스틱은 조금 더 사운드적으로 까다로운 게 있어요. 그런 까다로운 사운드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것에 대한 철학이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 밴드는 록 음악적 부분이 있는데 오디오가이가 전문으로 하는 재즈, 월드뮤직, 크로스오버 등의 색채도 가지고 있고, 게다가 풀 어쿠스틱 밴드인 거에요. 또한 최정훈 대표님이 판단하시기엔 팝적인 요소도 있어서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고 하셨고요. 그래서 평소에 록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우리 레이블과 어울리는 부분이 많아서 제안을 줬다고 말씀하셨어요.
한편, 저희 입장에서는 오디오가이가 인디 레이블이 아니었다는 게 중요했어요. 우리가 평소에 잘 알던 영역과 겹치지 않는 레이블이었던 거죠. 그리고 국내 활동에 있어서는 강진원 매니저가 담당했는데 해외 활동에 있어서는 오디오가이가 매니지먼트를 맡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우리가 오디오가이를 통해서 이전까지 진입하기 어려웠던 영역에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래서 오디오가이와 계약을 하게 됐죠.
사실 퀄리티가 좋은 음반을 발매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디오가이가 저희 같은 류의 음악과는 다른 음악을 전문으로 했기 때문에 걱정했던 부분이 없진 않았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걱정을 상쇄할 만큼 좋은 프로덕션 과정을 거쳤어요. 그래서 정말로 마음에 들게 나왔고요.

 

정구원: 단편선 씨와 매니저 강진원 씨 두 분이서 상상마당 춘천 스튜디오로 가서 보컬 녹음을 진행하셨는데, 이 과정이 어떠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단편선: 너무 좋기도 하고, 또 너무 지옥 같기도 한 경험이었어요. 지옥 같았던 부분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아무리 친하더라도 일단 남자 두 명이 같은 방에서 15일 동안 같이 지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웃음). 거기다 개인사적인 문제도 있어서 멘탈이 무너져 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제가 멘탈이 기본적으로는 센 편인데, 그 때는 악기를 녹음할 때부터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어요. (악기 녹음이 끝나고) 보컬을 녹음할 때까지도 그 상황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 때 매니저 형한테 감정적으로 너무 의지를 많이 했던 거죠. 하루이틀도 아니고 작업하는 내내 맛탱이가 가 있었으니까, 힘들었어요.
보컬 녹음 때 강진원 매니저와 같이 가기로 했던 게, 이 형은 굉장히 오랫동안, 제가 솔로로 활동을 하던 시절부터 제 음악을 들어 왔었어요. 음악적인 대화도 많이 나눴었고. 그래서 제가 노래를 부를 때 어떤 감정을 따르고 매력이 드러나는지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어요. 그래서 보컬 디렉터 역할로 동행했던 건데 15일 동안 계속 고생을 했으니 (웃음). 상상마당 춘천 스튜디오가 풍경도 그렇고 굉장히 좋은 곳이었지만, 하필 겨울에 가게 되어서 계속 안개 속에서 보이는 것 없이 작업을 해야 했거든요. 먹을 곳은 시간 때문에 한정되어 있고 밤에 술 마실 곳도 없고 할 일도 녹음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죠.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수밖에 없었어요. 또 보컬 녹음이란 게 감정을 많이 쏟아야 하는 작업이니까 그런 부분 때문에 더 힘들었죠.
그렇지만 좋았던 점도 있었는데, 우선 스튜디오를 전세내고 쓸 수 있는 부분이 좋았어요. 스튜디오의 이승환 엔지니어하고 협의를 하면서 제 컨디션에 따라서 유연하게 스튜디오를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죠. 1집 작업을 할 때는 좀 더 빡빡한 일정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요. 컨디션이 안 좋으면 아예 하루 오프를 내기도 하고, 테스트를 여러 번 하면서 가장 좋은 부분을 고를 수도 있었고.
이번 앨범이 저번과 다른 부분 중 하나가 멜로디가 더 많고, 보컬 파트가 강조되어 있는 지점이에요. 전에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곡들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감정을 살려야 하는 곡들이 더 많이 있었고요. 그런 걸 부르기가 굉장히 까다로운데, 게다가 라이브를 많이 해 보지 않거나 아예 한 적이 없는 곡들도 상당수인 상황이었죠. 어떻게 불러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야 했는데, 스튜디오에서 테스트를 해 가면서 녹음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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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해 보니까, 회기동 단편선 활동 때와 [동물]을 작업할 때 어떤 측면에서는 ‘팝스럽게’ 안 갈려고 했던 부분이 있었던 거에요. 근데 팝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정구원: 처음 [뿔]을 들었을 때 느꼈던 건, 진부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동물]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분명하게 다른 앨범’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동물]이 에너지가 이끌어가는 앨범이라면 [뿔]은 멜로디가 이끌어가는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2집의 곡을 만드실 때 특별히 멜로디에 대해서 더 신경 쓰신 부분이 있나요?
단편선: 2014년 [동물]을 만든 뒤 2015년 한 해 내내 새로운 곡을 작곡했고 그 결과물이 “이상한 목”을 제외한 [뿔]에 실린 아홉 곡들인데, 어떤 곡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베이시스트 우영 씨가 ‘마음대로 곡을 써 보라’라는 이야기를 해 줬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마음대로 곡을 만들었어요. 에너지 넘치게 간다? 멜로디를 강조하겠다? 그런 생각도 전혀 하지 않은 채로.
2015년 1월, 그리고 8~9월 중에 전북 익산에 내려가서 곡을 썼던 적이 있는데, 아마 익산에서 작업을 했던 기간을 다 합치면 두 달이 넘을 거에요. 기타 하나 들고 곡의 초안을 짜거나 다듬는 등 집중적으로 작업을 했죠. 거기가 큰아버지가 원래 사시던, 하지만 지금은 잠깐 비우신 농가인데, 완전 외딴 곳이에요.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까지 걸어서 50분이 걸리고 버스는 하루에 4대밖에 안 오는 그런 곳. 그래서 거기 갈 때마다 음반하고 책을 잔뜩 싸갔어요. 혼자서 할 게 없으니까. 계속 기타만 칠 것도 아니고.
음반의 경우에는 그냥 눈에 보이는 걸 집어 갔는데, (고른 음반을 보니) 우연찮게 제가 엄청 오래 전부터 많이 듣던 음반들 위주로 뽑아 갔더라구요. ‘오, 정경화 좋지. 윤상도 좋지. 키린지(キリンジ),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김현식 좋지’ 이런 식으로. 되게 대중없이 가져가서 니나 하겐(Nina Hagen), 캔(Can), YMO 이런 것도 끼어 있었고. 그런데 거기 가서 듣다 보니까, 노래들이 되게 좋더라고요. 1집을 만들 때는 저희한테 가장 중요했던 부분이 완성도였어요. 약간 ‘고고한’ 음반을 만들고 싶었던 거였고, 그렇게 만들다 보니까 거칠긴 하지만 품위가 있는, 딱 부러지는 음반이 나왔어요. 그렇지만 오래 듣기에는 좀 별로였어요. 평소에 듣고 즐기기에는 뭔가 동떨어져 있는 앨범이었죠.
제가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음반을 들어 보니까, 대부분 좋은 ‘팝’ 음악들이더라고요. 제가 고고하게 들리는 음악, 노이즈나 프리 재즈, 아방가르드 같은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만 듣는 게 아니라 팝 음악도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근데 생각을 해 보니까, 회기동 단편선 활동 때와 [동물]을 작업할 때 어떤 측면에서는 ‘팝스럽게’ 안 갈려고 했던 부분이 있었던 거에요. 이게 뭔가 일종의 콤플렉스의 발현 같기도 하고. 근데 팝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러면 이번에는 좀 더 그런 점에 대해서 솔직해져 볼까? 내가 부르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멜로디를 좀 더 과감하게 해 보는 거죠. 평소에 이건 너무 천박해, 이건 너무 심플하고 단순해, 이건 듣기에만 좋고 어디서 가져온 멜로디 같아, 그런 식의 굳어진 생각들을 리셋하고 작업을 해 보려는 마음이 생겼어요. 인간이 이렇다 보니까 결국 그런 식으로만 되지는 못했지만 (웃음) 그런 마음을 가지고 만들다 보니까 변화가 생긴 게, 이를테면 “뿔”에서는 웅장하게 시작하다가 뜬금없이 기타팝이 튀어나오잖아요. 카디건즈(Cardigans) 같은. 그게 사실 완전 말이 안 되는 건데 (웃음) 만들다 보니까 너무 좋은 거에요. 옛날 같았으면 ‘에이 이 따위로 가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을 텐데, 요번에는 ‘이 따위로 가면 뭐 어때?’ 하는 생각인 거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가 케이팝을 참 좋아하는데, 케이팝 완전 근본 없이 만들잖아요 (웃음) 소녀시대 “I Got A Boy” 같은 걸 들어 보면, 굉장히 혁명적인 부분이, 완전히 맛이 가 있어요. 근본이 없어. 근데 그걸 계속 듣다 보니까 그게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거죠. 오히려 멋있는 거고요. 제가 생각하기엔 음악적 전통을 완전히 생까는 느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포인트가 분명 있었어요. 그리고 이젠 근본이 없다는 걸 받아들여도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정구원: 이런 설명이 이해가 되는 게, 전작에 비해서 ‘떼창하기 쉬운’ 파트도 더 늘어난 것 같고, 일종의 음악적인 ‘귀요미 포인트’ (“연애” 도입부에서 ‘헤이’라고 외치는 것이나 김사월, 곽푸른하늘의 피처링 같은)도 좀 더 확실하게 챙기신 느낌이 들었어요.
단편선: ’헤이’는, 당연히 AOA를 좋아하기 때문에 넣은 거고요 (웃음)

 

정구원: (웃음) 편선 씨 입장에서는 그런 ‘근본없는 팝’이 더 좋게 느껴지셨던 건가요?
단편선: 좋고 나쁨의 문제하고는 다른 것 같아요. 이렇게 (근본없이) 해도 좋을(good) 수도, 나쁠 수도 있는 거죠. 그것보다는 내가 좋아할(like) 수 있는가, 동료들과 듣는 사람들이 좋아해줄 수 있는가, 이런 여러 가지 측면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근본없는 팝이) 그 자체로 ‘좋은’ 건 아니지만, 만들다 보면 또 충분히 괜찮은 걸 만들어 낼 수 있겠죠. 제가 앵클어택(Ankle Attack)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록 음악의 하이라이트만 모아 놓은 것 같은 부분이에요. 60-70년대에서 시작해서 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의 록 음악의 하이라이트를 모아 놓은 음악이거든요. 그런 게 사실 되게 이상하게 섞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좋잖아요. 일단 좋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딱히 상관없는 거죠.
곡의 각 파트들을 만들 때, 그 노래의 각 부분들을 좋게 들리게 만들려고 했어요. 설령 합쳐 놓았을 때 뜬금없어 보여도 좋게 느껴질 수 있는 거니까요. 김사월이나 곽푸른하늘 같은 여성 뮤지션의 피쳐링을 받은 것도, 사실 옛날 같았으면 그런 선택을 안 했을 것 같은데 이번엔 그냥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해 봤더니 좋았고요 (웃음).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정구원: 바이올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1집의 바이올린이 굉장히 격렬하게 울부짖는 느낌이었다면 2집에서는 확연하게 귀에 꽂히는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장수현 씨로 바뀐 영향도 있겠지만, 그런 부분 이외에도 단편선 씨가 작곡에 있어서 이런 변화를 의도하신 부분이 있는 건가요?
단편선: 제가 의도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장수현 씨가 제가 의도했던 부분을 훨씬 증폭해서 만들어 줬어요.

 

정구원: 곡을 만들 때, 편선 씨가 뼈대를 만들면 다른 멤버들이 살을 붙이면서 만들어 가는 과정인 거죠?
단편선: 그렇죠. 저는 보통 끝까지 곡을 안 만들어요. 뼈대가 70~80% 정도 완성되었다는 판단이 들 때, 그 때부터 멤버들과 같이 작업을 시작하는 거죠. 서로 곡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를 하는 식으로. 그리고 이번 2집에서는 멤버들의 참여도가 훨씬 높아졌어요. 퍼커셔니스트 장도혁 씨의 경우 라이브 때와는 또 별도로 퍼커션 세팅을 다시 짜 왔고, 최우영 씨의 경우 베이스가 어떤 부분에서 탁 하고 튀어나와야 할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를 했죠. 장수현 씨의 경우 아예 바이올린 편곡을 다 준비해 왔고, 심지어 바이올린 솔로의 경우에는, ‘낮’의 클래시컬한 솔로라인 같이 명확하게 디렉션을 준 부분들을 제외하면, 모두 다 제가 관여한 부분 없이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한 솔로 중에서 제가 선택만 했어요. 오케스트레이션 역시 장수현씨가 다 만들었고요.
리듬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다 같이 공동으로 구성했는데, 저는 리듬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퍼커션이 특정 리듬을 연주하고 있을 때 바이올린은 약간씩 변주를 주면서 연주하고 기타 역시 또 다른 흐름으로 연주하는 식으로. 그러면 훨씬 재밌고 더 살아나요. 제가 가장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록 음악이 기타/베이스/드럼이 다 똑같은 리듬을 연주하는 음악이에요. 그러면 재미없고 찰지지가 않아요. 다이노소어 주니어(Dinosaur Jr.) 정도로 할 게 아니면 재미가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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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히려 앨범에서 중점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게 분열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동물]과 [뿔] 중에 어떤 앨범이 더 이상한 앨범이냐고 물었을 때, 저는 [뿔]이 더 이상하다고 봐요.”

 

 

 

정구원: [뿔]에서는 사운드스케이프가 좀 더 넓고 웅장해졌고, 곡의 구조도 ‘에픽’한 느낌을 훨씬 강조한 듯한 인상이에요. 어떻게 보면 [동물] 때보다도 훨씬 야심을 펼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단편선: ‘야심’이라고 하면 대답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부렸다면 부렸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만들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몰라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굳어진 생각, 필터링을 스스로 없애고 만들어 본 건데, 그 결과 전개가 뒤죽박죽이 됐거든요. 저희 아버지가 단편선과 선원들의 1집 곡들을 참 좋아하시는데, 아버지가 “연애”를 듣고 나서 보였던 첫 반응이 ‘도대체 전개가 왜 이러냐’ 였어요. 왜 이런 식으로 전개가 되는지 모르겠고 전혀 다른 곡을 합쳐놓은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구성이 확실히 편하고 익숙하게 들리진 않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야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강진원: 일반적으로 야심이 있다고 하면 단단하게 기획된 구성 아래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 앨범이 단일한 기획 하에서 쭉쭉 밀고 나가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곡의 구성이나 어법적 측면에서는 그렇지는 않다고 봐요. 예를 들어 [뿔]을 들을 때 “발생”을 처음 들은 사람과 “연애”를 처음 들은 사람은 이 앨범에 대해 가지는 상이 완전히 다를 거라고 보거든요.
단편선: 저는 오히려 앨범에서 중점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게 분열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동물]과 [뿔] 중에 어떤 앨범이 더 이상한 앨범이냐고 물었을 때, 저는 [뿔]이 더 이상하다고 봐요. 1집은 전통적으로 이상한 앨범이거든요. ‘이상한 느낌’을 어떻게 내야 되는지에 대해 정공법적으로 접근한 앨범. 근데 2집은 정공법이 아닌 방식으로 이상한 앨범이에요. 1집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통일되고 총체적인 상을 가지고 작업을 했어요. 일단 한 번씩 작업을 해 봤던 노래가 대부분이었고, 그 노래들을 이런 식으로 배치했을 때 감정적인 통일감과 전체적인 상이 나오겠다 하는 비전이 있었거든요. 의도를 가지고 선택된 곡으로 채워진 앨범. 그런데 이번 앨범 같은 경우에는 총체적인 상을 처음부터 구성하지 않았어요. 만들려고 하면 못 만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걸 그냥 포기하고 들어가 본 거죠. 그러다 보니 분열적인 성격이 강해진 거에요. 어떻게 보면 아무렇게나 재생되는 유튜브 같은 느낌이랄까? 모조품 같은 음악적 요소를 맥락 없이 배치한 다음 기운 거죠.

 

정구원: 그런데 그게 오히려 ‘팝적’으로 들리는 건 신기한 느낌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멜로디의 힘이 그런 인상을 만들었다고 봐요.
단편선: [동물]을 만들었을 때 제 스스로는 멜로디를 잘 썼다고 생각했거든요. “공” 같은 경우에는 특히. 근데 아무도 멜로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멜로디를 일부러 잘 만들려고 하진 않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멜로디가 나온 것 같아요. ‘좋음’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를 활용했기 때문일지도? 윤이상 같은 음악을 들으면, 굉장히 숭고하고 멋있어서 큰 감동을 받게 돼요. 그렇지만 그런 음악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총체를 파악하기는 어렵거든요. 듣다 보면 점차 그런 게 다가오는 거지. 이번 [뿔] 작업 때는 그런 류의 음악보다는 좀 더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레퍼런스를 많이 당겨왔어요. 설사 나 자신이 느끼기에 좀 저질이거나 퀄리티가 낮다고 생각하는 요소라도.

 

정구원: 그런 식으로 분열적으로, 이것저것 다 시도해 봤다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것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렵지 않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감각이 [뿔]을 들으면서 든 느낌이었어요.
강진원: 그 부분은 2015년 4월 즈음부터, 그 컨셉에 대해서 논의가 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저희가 처음 만들었던 곡들이 “모든 곳에”랑 “그리고 언제쯤”, “뿔”의 세 곡이었는데, 이 세 곡은 앨범 내에서 가장 멜로딕하면서도 1집의 곡들과는 완전히 색깔이 다른 곡이었어요. 오히려 작업 후반에 만든 곡들이 구성 등의 면에서 1집의 냄새가 나는 편이고요. 그 세 곡을 만들면서, 분열 내지는 혼돈이라는 컨셉에 대한 이야기를 편선과 제가 같이 계속해서 의논해 왔었어요.
단편선: 그리고 구원 씨가 ‘받아들이기 쉽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까 전에도 리듬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저는 [뿔]에 들어간 곡들이 기본적으로 춤곡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댄서블해야 하는 거죠. [동물]의 경우에도 저는 댄서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사후적으로 평가를 해 보니 내 머릿속에서는 댄서블했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고 봐요. IDM 같이, 지적으로는 댄서블한데 몸이 댄서블하지 못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이번에는 훨씬 더 리듬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리듬 자체가 복잡하건 말건 들었을 때는 직관적으로 느껴지게끔. 리듬이 아무리 복잡해도, 어렵게 만들어졌다고 해도 포인트나 악센트가 정확히 잡혀 있다면 심플하게 느껴지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아쉬울 수도 있는 게, 이렇게 직관성을 강조해서 만들지 않으면 좀 더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것을 좋아하는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이 팝 음악처럼 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연할 때도 그렇고 곡을 쓸 때도 그렇고, 이지리스닝하게 들릴 수 있는 포인트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듣는 사람이 따라갈 수 있게끔 하고 있어요. 실제로는 전혀 이지리스닝한 곡들이 아니지만, 그런 포인트(도드라진 리듬이나 도드라진 멜로디, 혹은 바이올린 솔로처럼)를 만들어서 음악을 전문적으로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따라오면서 재미를 느끼게끔 하는 거죠. 저에게 있어선 이것이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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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에서는 ‘다 같이 힘을 합쳐 일어나서 가자’라는, 제가 항상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연대’에 대한 심상이 많이 들어갔다면, 2집 같은 경우에는 매우 황량한 상황에서 아주 작게 일어난 불꽃을 찾아내자는 그런 서사를 그리고 있으니까요.”

 

 

 

정구원: 이번 [뿔]의 가사는 전작에 비해 좀 더 추상과 모호함의 영역으로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동행”, “소독차”, “황무지”처럼 구체의 영역에 닿아 있는 가사가 있었던 [동물]과는 다르게 [뿔]에는 “연애” 정도밖에 그런 가사가 없는 것 같은데요, 어떤 변화를 의도하신 건가요?
단편선: 이것도 의도라기보단 아까 이야기한 ‘솔직함’과 맥락이 닿아 있어요. 이번에 가사를 쓸 때는 생각을 많이 하고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일단 빨리 써야 했고 (웃음) 직설적으로 썼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추상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는 직설적이라고 느끼거든요. 근데 여기서 ‘직설적’이라고 하는 건 표현주의적 화법하고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직관적으로 제 안에서 나오는 걸 그냥 가사에 넣어 버리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러티브 구성이 안 되는 거죠. 제 자신이 생각한 내러티브나 상황, 설정 등은 존재하는데, 그것을 일부러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요. 곡 자체에 서사가 존재하고, 그 시퀀스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저한테는 그것이 가사를 통해 직관적으로 잘 표현되는가가 중요했지 통합적인 내러티브를 구성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던 거죠.
1집 곡들 중 “동행”, “소독차”, “황무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이 곡들은 모두 회기동 단편선 솔로 1집 때까지의 곡이에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저한테는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정체성이 되게 중요했었어요. 포크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내러티브잖아요. 솔로 1집 때까지는 그것을 잘 해내고 싶었던 욕망이 강했었죠. 그런데 [처녀]를 준비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1집에서 그런 걸 다 해 봤으니,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더 재미를 느끼게 되었죠. “노란방”이라는 곡이 저에겐 개인적인 전환점이 된 곡이었죠. 그리고 그 사이에 동료 뮤지션인 404나 쾅프로그램 등이 앨범을 발표했는데, 그 작품을 들으면서 느꼈던 부분이 있었고요. 그래서 이런 가사가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정구원: [뿔]의 주제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편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올해 초 레코딩을 시작할 당시에 멘탈이 붕괴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이 음반이 지금 결과물보다 좀 더 외롭고 슬프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요. 고립되어 있고. 그런데 녹음 과정에서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해 보니까 다르더라고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외롭지 않고, 많은 사람과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곡의 경우에도, 나중에 보니 곡의 배치 같은 부분이 결과적으로는 점점 밝아지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어요. 이 음반에서 가장 부정적인 곡이 “모든 곳에”인데, 진짜 긍정적인 포인트가 하나도 없는 곡이거든요. “발생”도 그렇고. 그런데 앨범이 진행되면서 그 서사가 명확하진 않지만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어 나가거든요.
근데 그것이 1집의 방식하고는 또 달라요. 1집에서는 ‘다 같이 힘을 합쳐 일어나서 가자’라는, 약간 유치할 수도 있지만 제가 항상 궁극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연대’에 대한 심상이 많이 들어갔다면, 2집 같은 경우에는 매우 황량한 상황에서 아주 작게 일어난 불꽃을 찾아내자는 그런 서사를 그리고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는 좀 더 부정적이긴 하죠.

 

정구원: 개인적으로 [뿔]의 가사를 읽으면서 죽음, 혹은 소멸의 심상이 앨범 전체를 휩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죽음과 소멸을 받아들이기보단 치열하게,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거기에 저항하고 있다는 감각 또한 같이 느껴졌어요. 이것이 편선 씨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단편선: 제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죠. 우선, 2014년 [동물]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이라는 커뮤니티 내에서 주로 활동을 하던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밴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제 자신의, 혹은 우리 자신들의 고유한 독립적인 영토를 가지기 위해서 좀 더 노력을 하게 되었죠. 어떻게 보면 커뮤니티로부터도 살짝 거리를 둔 거에요.
그리고 2015년은 어떤 측면에서 굉장히 외롭기도 한 해였어요. 멤버도 한 번 바뀌게 됐고. 되게 힘들었어요. 감정적으로. 단편선과 선원들이라는 밴드도 일종의 브랜드인 것인데, 그것을 런칭하면서 세웠던 계획들이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못했어요. 그것 때문에 힘들었던 부분이 되게 많았었고, 사실은 새 앨범을 준비할 때까지도 그게 전혀 정리가 안 됐어요.
여러 가지로 힘들었었는데, 나라는 인간 자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오라기라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믹싱이 끝나고 마스터링이 끝나면서 확신이 들었는데, 이 앨범을 듣고서 누군가가 어떤 종류든 간에 용기를 느낄 수 있겠구나, 용기를 받고 뭔가 해 나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용기의 느낌 역시 1집하고는 조금 다른데, 1집의 용기가 함께 함으로써 나아가는 용기라면, 2집은 좀 더 개인의 주체적인 결단 같은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용기인 거죠. 그건 제 경험하고도 연관이 있을 텐데, 원래 제가 사회활동을 많이 했었잖아요. 그런데 2015년에는 그런 활동을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약간의 거리를 뒀어요. 우선 현실적으로는 작업을 할 시간이 필요했고, 두 번째로는 내가 20대를 보냈던 커뮤니티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서 거리를 두고 살펴보는 시기가 필요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몇 년 전부터 그런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결과적으로만 말씀드리자면 그건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그래서 사실 다음 앨범을 작업하게 되면 또 어떤 정서의 뭐가 나올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웃음). 지금은 어쨌든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았나, 라고 막연하게 희망하고 있어요. 주체로 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죠.

 

정구원: 어떻게 보면 ‘뿔’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그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단편선: [동물]의 이야기부터 하자면, 동물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냈던 건 강진원 매니저에요. 저는 그 ‘동물’이라는 말이 너무 좋았어요. 사실 원래 1집의 제목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라는 현대음악 작곡가가 있는데, 이 분은 [Music For 18 Musicians] 같은 제목의 앨범을 냈거든요. 저 역시 그런 제목을 붙이고 싶었어요. 완전 멋있고 세보이니까. ‘10대를 위한 표제음악’ 같은 가제를 정하고 그랬죠.
결과적으로는 ‘동물’이 되긴 했는데, 보통 많은 경우에는 동물이라는 단어를 해석할 때 우리가 액티브한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동물이란 단어를 선택했다고 예상하거든요. 근데 우리는 그런 의도가, 물론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도 단어가 단단해서 선택한 거였어요. ‘동물’이라는 단어가 폰트로 쓰인 모습이라든지 어감 같은 부분이, 틈이 없어요. 자기완결적인 느낌이죠. 우리한테는 그런 게 필요했어요. 첫 앨범부터 굉장히 단단한 그룹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란 말을 썼어요.
이번 2집에 뿔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일단 뿔이 이등변삼각형이에요. 이런 형태는 기본적으로 자기완결적으로 보이지 않아요. 정삼각형이 아닌, 한 변이 짧은 삼각형이니까요. 그리고 한 쪽이 다른 쪽에 비해 뾰족하죠. 그런 점에서 공격적인 느낌도 있었고요. 그리고 영어 제목 ‘Shofar’는 뿔피리를 뜻하는데, 이건 이등변삼각형이 꼬여 있는 모습이에요. 그리스도교나 유대교 전통 등을 보면 안식일이나 희년 등의 절기에 뭔가를 리셋시키고 새로이 선포하는 행위를 뿔피리를 불어서 했어요. 그런 행위에는 뭔가 선언하거나 선포하는 의미가 들어 있는 거잖아요. 저희 역시 그런 의미를 가져가고 싶었고요.
어떤 관점에서 보면 1집은 참고서, 혹은 진리값을 도출하는 바이블이나 기념비 같은 작품이고, 변하지 않음을 의미해요. 근데 두 번째 앨범 [뿔]을 만들 때의 정서는… 뭔가를 ‘선언’한다는 건 그것이 바뀐다는 의미거든요. 선언을 통해서 사건 이전과 이후가 바뀌는 거죠. 그런 ‘전환’의 정서가 강했기 때문에 뿔이라는, 도형적 의미 혹은 뿔피리라는 은유적 의미 모두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정구원: 그렇지만 역시 단단한 느낌도 있다고 생각해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물’의 연장선상에서 ‘뿔’이라는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강진원: ”뿔”이라는 곡이 나오고, 두 번째 공연을 가졌을 때 이미 앨범 제목은 정해져 있었어요. 이 앨범은 ‘뿔’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죠. ‘뿔’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동물’과의 연결성에 대한 느낌이 확 생겨났어요. 2집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한 구상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고요.
단편선: 그리고 이건 음악적인 포인트하고도 연결이 되는 부분인데, 저는 “뿔”이 시작하는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발생”은 인트로 격의 트랙이고. 이 음반을 굉장히 영화적으로 구성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는데, <헤이트풀 8> 같은 영화를 보면 오프닝 시퀀스부터 눈보라가 엄청 치잖아요. 그래서 “발생”도 완전 시끄럽게 때려 줘야 해요. 시작은 그 다음인 거죠. 그리고 음반의 끝에 대해서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불”은 아웃트로에요. 사건이 종료된 뒤의 후일담 격의 곡인 거죠. 이 모든 걸 정리하는 의미가 있는 거고, 음반의 주요한 ‘사건’은 “뿔”에서부터 “그리고 언제쯤”까지 전개된다는 게 정확해요.
사건의 시작인 “뿔”이란 곡에는 이 음반에서 일어난 모든 곡이 다 예고되어 있어요. “뿔”이란 곡을 천천히 들어 보시고 다른 곡들을 들어 보시면 “뿔”에서 존재했던 요소가 하나씩 퍼져 있거든요. “모든 곳에”의 코러스라인, “거인”에서는 라이트한 멜로디, “낮”은 “뿔”의 인트로를 따온 식으로. 의도를 엄청나게 했던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점에 대해 분명하게 자각을 하면서 앨범을 만들었어요.

 

정구원: 그렇다면 “이상한 목”은 왜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간 건가요?
단편선: “이상한 목”은 이 음반의 존재하는 서사와 아무 관계가 없어요. 일단은 넣고 싶어서 넣은 보너스 트랙이에요. 원래는 1집에 넣으려던 곡이었는데, 편곡에 늘 실패했고 우리가 원하는 사이즈의 뭔가를 만들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이상한 목”을 편곡하는 데 성공한 거에요. 제가 가장 처음 이 곡을 만들었을 때 생각했던 바가 그대로 나왔어요. 회기동 단편선 솔로 1집 때는 홀(Hole)의 “Violet”을 많이 참고해서 녹음을 했는데, 사운드적으로 많이 실패했었어요. 그런데 이번 [뿔]에 들어간 “이상한 목”은 원래 의도했던 바에 굉장히 부합하는 결과물이 나왔죠. 그래서 굳이 영화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영화 스탭롤이 전부 다 올라가고 난 다음에 나오는 쿠키 영상?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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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도 나름의 생명체란 말이에요. 그래서 생명체로서 항상 ‘성장하는 서사’가 필요해요. 저는 그 서사가 전달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구원: 음악 자체에 못지않게 음악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많은 신경을 쓰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특히 이번 앨범에 처음 등장한 ‘뿔’의 로고가 인상적입니다. 지난 앨범에 이어 이번 디자인도 김가든 디자이너님이 맡아 주셨는데, 어떤 테마를 중심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단편선: 이 음악을 만들었을 때 비주얼이 어떤 식으로 되어야 재미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어요. 물론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만드는 게 가능해요. 근데 1집처럼 만들 수는 없어요. 1집은 일단 인상이 굉장히 세고 명암 대비도 강한데, 저희는 2집의 테마를 정할 때 초기에 ‘아이폰처럼’ 만들자고 했어요. 아이폰 인터페이스처럼. 결과적으로 그런 부분만 반영된 건 아니고 여러 가지가 반영되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평면적인, 플랫한 이미지를 계속해서 생각했어요. 사진의 경우에도 기존 작업보다 훨씬 더 플랫하고, 의상과 컬러의 경우에도 1집 때는 진청색, 흰색, 금색이 주요 톤이었다면 2집에서는 아주 연한 팬톤의, 2016년 트렌드 컬러, 푸른색과 흰색 톤을 주로 썼어요. (웃음)

 

정구원: 그런 이미지가 음악적인 부분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고요.
단편선:
충분히 연관이 있죠. 작곡 단계에서만 이야기하면 저는 이번 음악이, 작곡을 하는 과정에서는, 일단은 깊이감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게 많다고 봐요. 평면 위에 굉장히 많은 소스를 맥락 없이 늘어놓은 거에요. 그런 다음 마음 가는 대로 그 소스를 취사선택한 뒤 이어 붙여서 이상한 형태의 그림을 만들어냈는데, 보기는 좋아. 이런 방법론에 가까운 거거든요. 깊이감을 만드는 건 이후에 선원들과 함께 작업할 때 할 것이고. 이런 식으로 평면에 무언가를 늘어놓는다는 감각이 방금 설명한 테마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1집 때보다 좀 더 도회적으로 보이길 원했던 것도 있고요.

 

정구원: 원래 단편선과 선원들 하면 떠오르던 이미지, 에너제틱하고 에스닉(Ethnic)한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느낌으로 비주얼 디렉팅이 이루어졌는데, 처음 봤을 때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보다 보니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걸 의도하신 부분도 있는 거죠?
단편선:
물론이죠. 저뿐만이 아니라 저희 멤버와 강진원 매니저도 그렇겠지만, 우리가 단일한 걸 하고 싶은 건 아니라고 봐요. 사실 우리의 ‘주제’ 자체는 굉장히 단일한데, 삶과 죽음이에요. 뭔가가 태어나고 뭔가가 죽고, 거기에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역사적 관계들이 스쳐 지나가는 거죠. 그렇게 주제는 단일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지? 그리고 내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지?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동물]의 방식을 다시 할 것이냐 하면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고.
사람들이 “연애”를 들었을 때 음악적으로 느끼길 바랐던 것 중 하나는 이 곡이 전혀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 같지 않은데 단편선과 선원들의 음악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하고, 이번 앨범의 음악들도 그렇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해요. [뿔]을 먼저 듣고 [동물]을 듣는 것, [동물]을 먼저 듣고 [뿔]을 듣는 것, [동물]만, 혹은 [뿔]만 듣는 것, 모두 굉장히 다른 경험일 거에요.
그러니까, 동일한 걸 반복할 필요는 없죠. 어차피 똑같은 주제밖에 이야기 못 하는 사람인데, 태어나서 죽는 것에 대한 얘기밖에 못 하는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두 번 표현할 필요가 없잖아요. 1집 때도 그렇고 이번 앨범도 그렇고 똑같은 곡을 안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정구원: 사실 이런 ‘앨범마다 변화하는’ 컨셉 디렉팅이 아이돌의 그것과 비슷하단 인상도 받았는데, 실제로 레퍼런스를 따오신 건가요?
단편선: SM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나오는 아이돌팝들을 좋아하니까, 알게 모르게 참고하게 되는 부분이 있겠죠.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이돌도 굉장히 잘 나오잖아요. 레드벨벳 같은 팀을 보면 매우 현대적인 ‘세련미’가 있죠. 저희도 당연히 그런 것들을 보고 있고,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현대적인 세련미가 표현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방향은 많이 다르겠지만.
사실 이번 앨범은 그 전 앨범에 비해서 음악적으로 그러한 현대적인 부분이 추구되었다고 봐요. 물론 음악뿐만이 아니라 디자인이나 컨셉적 측면에서도. 왜냐? 현대적인 세련미를 추구하지 않으면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걸 추구하지 않으면 일단 제가 재미를 못 느껴요. 옛날 음악, 1970년대 음악이라 치면 그 때의 ‘멋있음’이 있죠. 그걸 똑같이 할 필요 없어요. 반복할 필요도 없고요. ‘옛 선조의 지혜’ 정도로 보고 잘 활용하면 되는 거죠.
여기까지는 아이돌과 현대성의 측면에서 말씀드렸던 것이고,  컨셉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어요. 저는 이게 고민이 되는 부분 중 하나인데, 일단 저희는 밴드잖아요. 밴드도 나름의 생명체란 말이에요. 그래서 생명체로서 항상 ‘성장하는 서사’가 필요해요. 저는 그 서사가 전달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아, 이 밴드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나’하고 느낄 텐데, 그렇게 사람들과 성장을 같이 느낀다는 게 저한텐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거든요. 그런 느낌이 음악은 물론이고 디자인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컨셉이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을 거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카하시 루미코의 <란마 1/2> 같은 거라는 생각도 드는 게, 제가 이 만화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이 만화가 좋은 이유가 캐릭터가 굉장히 살아 있어요. 한명한명 성격이 있고 아이덴티티가 있고. 그 캐릭터들은 어떤 사건이라는 변수가 주어지면 자기들끼리 서사를 만들어 나가요. 저는 그게 너무 좋다고 생각하는 게, 만화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독자들이 ‘따라가기가’ 쉬워요. 얘네들이 어느 정도 이런 식으로 행동할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의외의 상황에서는 또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심플함을 추구하고 싶은 게 있어요. 복잡한 것도 해 보고 싶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이 ‘전체’가 사람들에게 들렸을 때 일단 심플하게 다가가는 상황에서 복잡성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게 제 전제거든요. 퍼즐을 예로 들면 딱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데 막상 풀려고 해 보면 풀어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은 상황. 이게 제가 생각하기에 단편선과 선원들이란 밴드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이에요.

 

 

단편선과 선원들 – “모든 곳에”

 

 

정구원: 개인적으로 지난 앨범에 참여하신 분들이 작성하신 ‘작업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많은 도움이 됐는데, 혹시 이번에도 진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단편선: 해야죠. 이게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긴 한데, 저희한테는 작업기를 썼을 때의 감동이 또 있어요. 우리가 좋자고 하는 일이긴 한데, 이 작업기를 한번 쓰면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작업을 한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그게 되게 중요해요. 자신에 작업에 대해서 글을 쓰거나 정리를 하면 그 다음의 자신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서사를 만들어 나갈 수 있거든요. 그리고 나 개인의 서사도 있지만, 우리라는 서사도 있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뮤직비디오 감독 ML이라든지, 사진가 박정근 씨와 수환 씨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만드는 서사가 있고 그 서사가 또 각자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거죠. 전 그게 명확했으면 좋겠어요.

 

정구원: 그 서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거군요.
단편선: 예. 저한테, 그리고 각자한테 중요하죠.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는 아니지만 각자 흩어져서 따로 또 같이 일하는 단일하지 않은 네트워크한테도 중요하다고 봐요.

 

정구원: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편선: 일단 4월 23일 홍대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앨범 발매 쇼케이스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올해 외국에 좀 나가게 될 일이 생길 것 같아요.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이런저런 제안이나 요청이 더 많은 상황이에요. 음반을 내자마자 5월에 바로 영국을 다녀올 예정이고요. 물론 전국 투어와 여러 가지 기획공연도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콜라보레이션과 싱글 작업 역시 계획하고 있어요. 힙합 쪽과 뭔가를 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이고, 가을에서 겨울 즈음에 싱글이 한 장 정도 나와야 하지 않나. 2~3곡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에요. 이제는 너무 고고한 척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웃음) 우리 같은 밴드라서 더 그런 것도 있는데, 너무 앨범 단위로만 활동할 것 같고 되게 과묵할 것 같은 밴드라는 이미지란 말이에요. 근데 난 꼭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단 말이야 (웃음).

 

정구원: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단편선:이것이 무엇이다’ 라고 콕 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저도 그렇고, 우리 밴드도 그렇고, ‘무언가’가 되고 싶긴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무언가’가 될 수 있도록 잘 바라봐 주시고, 도와주시고, 그리고 저희의 팬분들께서도 모두 그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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