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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Luna) | Free Somebody | SM Entertainment, 2016

 

루나, 에프엑스식 ‘균열’의 또 다른 시도

에프엑스(f(x))라는 팀이 갖고 있는 아이덴티티라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이미지들의 결합이란 점에서 매우 난해하다. 혹자는 이들을 ‘독특하다’, ‘개성 있다’ 혹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해 ‘유니크(unique)함’으로 단순화시키지만, 이는 에프엑스란 팀이 야기한 문화적‧사회적 균열을 설명하기에 한참 모자라다. 여기서 문화적 균열은 기존 걸 그룹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에 속하지 않는 콘셉트로 아이돌에 대한 시각을 반전시키는 데 일조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회적 균열은 에프엑스 멤버 엠버가 보여준 무조건적인 시스젠더 정상화에 대한 일갈로 인해 벌어진 일련의 의식 변화를 일컫는다.

그런데 그 속에서 에프엑스 멤버인 루나가 취해온 노선은 컨벤셔널(Conventional)함에 가깝다. 그가 에프엑스란 팀에서 갖고 있던 중화(中和)의 기능이 하나의 (매우 중요한) 캐릭터로 기능하며, 이것이 리드보컬로서 팀의 기틀을 잡는 굳건한 기둥이 되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말로 루나가 에프엑스가 지닌 콘셉츄얼함과 오묘한 음악적 색채를 가장 백색 도화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번 변화하지만 철저하게 설계된 에프엑스의 각 콘셉트와 음악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구심점을 맡고 있는 루나의 역할은 짐작컨대 팀 구성 시기부터 의도된 것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루나는 에프엑스만의 장점을 갖췄으면서도 그룹에 대해 ‘난해하다’ 평가하는 이들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 주는 역할 또한 수행하는 인물이다.

첫 솔로 데뷔와 함께 내놓은 미니 앨범 [Free Somebody]는 팀을 융합시키는, 즉 팀의 기본적인 성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지점에 서 있는 그의 아이덴티티를 적시한다. 지난해 발표했던 에프엑스의 [4 Walls]가 아이돌 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신비한 일렉트로닉 뮤직의 향연이라고 평가한다면, 루나의 앨범은 이때부터 한층 고급스럽게 다듬어진 에프엑스의 ‘힙’함과 맞닿아 있다. 당시 루나를 제외한 에프엑스 멤버들은 미니멀한 일렉트로닉 사운드 위에 신비스러운 목소리를 입히는 역할을 했는데, 이때 루나는 히스테릭한 사운드와 가사를 더 히스테릭하게 뚫는 가창으로 장르적 매력을 극대화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솔로 데뷔 앨범에서는 완전히 루나가 갖는 정체성이 되었다.

타이틀곡 “Free Somebody”는 최근 SM이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일렉트로닉 팝이고, 최근 클럽 트렌드에서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장르인 퓨처 하우스가 덮였다. 앞서 루나의 보컬이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뚫는’ 역할을 한다고 언급했는데, 이것은 대체로 보컬 없이도 충분히 댄스 음악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SM이 음악을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퍼포머를 투입시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퍼포머의 기능이 중시되는 ‘아이돌 음악’에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특성보다 보컬리스트의 역량이 우선이며, 관객을 춤추는 플로어 밖으로 타자화 하는 한이 있더라도 퍼포머가 음악을 넘어서야 한다. 루나의 강력한 보컬은 그런 면에서 SM의 야심을 부각시킬 수 있는 완벽한 소스다.

앨범에 실린 일렉트로닉 넘버들은 당연하게도 루나의 목소리가 들어갈 공간을 철저하게 상정해두고 있다. 타이틀곡 “Free Somebody”의 브레이크다운 구간에서 제로에 가깝게 줄어드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비해 루나의 보컬이 지닌 에너지는 거의 하강하지 않는다. 이는 비트가 쉬어도 안무를 쉴 수 없는 아이돌 음악(내지는 퍼포먼스)에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요소일 것이다. 다만 이런 특성을 장점으로 간주한다면 [Free Somebody]는 분명 재미있고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반면에 보컬을 전자음악의 악기로 상정하는 것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이들에게는 크게 흥미를 끌 수 없는 앨범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물론 SM은 소속 가수들이 ‘역할’처럼 수행하는 R&B에 대한 욕심도 버리지 않았다. 과거 보아의 솔로 앨범을 떠올리게 하는 어반 넘버 “Keep On Doin’”이 그런 차원의 익숙함을 주면서도 한층 더 강렬해진 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SM엔터테인먼트가 ‘루나의 솔직한 감성을 만나기에 충분한 곡’이라고 소개한 PBR&B “My Medicine”은 ‘솔직하다’는 표현으로 설명하기에는 건조한 보컬이 유독 걸린다. 어머니와 나눈 편지에 담긴 내용을 가장 복잡다단하고 감각적인 장르로 표현했고, 전체 트랙과 이 곡의 감정적 교집합이 없다는 점 때문에 건조한 감정 처리가 불가피했을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앨범 전체의 톤에 맞추기 위해 선택된 장르가 본래 ‘편지’란 아이템이 지닌 심리적 양감을 약화시켰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앞서 엠버가 발표했던 “Beautiful” 및 “Borders”와 같은 곡이 에프엑스가 야기한 사회적 균열을 또 한 차례 터치했다면, 이번 루나의 앨범은 일렉트로닉의 맛을 본 그룹 에프엑스의 리드보컬이 만든 또 하나의 ‘장르적 균열’처럼 보인다. 아이돌씬에 선사한 장르적 균열을 완전히 에프엑스의 정체성으로 가져가려는 시도의 발로가 루나인 것일까. 에프엑스가 발표한 곡들과 다소 차이를 보이는 곡을 굳이 꼽는다면 시니컬함을 모두 제거한 “예쁜 소녀 (I Wish)” 같은 트랙이 있지만, 이 또한 자기중심적이고 여성중심적인 시각이 담긴 톤을 유지한 가사란 점에서는 결국 에프엑스의 도발적인 시각을 그대로 안고 가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어찌 됐든 이 앨범을 에프엑스란 팀에 기반을 둔 ‘리얼리즘’ 안에서 꽃핀 판타지로 만드는 것은 약 3분의 1의 분량으로 앨범을 장악한 차가운 일렉트로닉 트랙의 힘이다. 이 앨범의 진가는 파랗고 경쾌한 목소리를 지닌 루나가 역설적으로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내지르는 트랙들에 있고, 여기에서는 아이돌 팝스타의 세련된 목소리와 ‘디바’로 일컬어지는 보컬리스트들의 성질을 동시에 지닌 루나가 보여주는 2016년식 접합이 보인다. 타이틀 곡을 제외한 중에서도 “Galaxy”가 담고 있는 극한의 발산적 이미지는 유독 귀에 박힌다. 이는 일렉트로닉 팝이 기본적으로 보유한 재미를 완전히 체득한 아이돌 보컬리스트의 성과다. | 박희아 [email protected]

 

Rating: 7/10

 

수록곡
1. Free Somebody
2. Breathe
3. Keep On Doin’
4. 예쁜 소녀 (I Wish)
5. Galaxy
6. My Medicine

 

“Free Some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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