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포스트록’ 하면 생각나는 경험이 하나 있다. 2011년경 프렌지의 공연이 끝난 공연장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외국인 관객이 ‘한국에 이런 밴드가 또 있느냐’라고 물어봤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몇몇 이름을 알려줬다. 속옷밴드. 로로스. 불싸조. 비둘기우유. 아폴로 18, 할로우 잰, 데이드림. 의외로, 내가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이름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고, 그 외국인 관객은 조금 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꽤 많군!’이라고 말했다. 그가 느끼는 만족감이 그의 왼손에 들려 있던 맥주병 덕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어쨌든 나 스스로도 이렇게나 많은 포스트록 밴드가 한국에 존재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조금 충격이었다.

아마 지금 이 순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훨씬 더 많은 이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이름들에 대해서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작업을, [weiv]의 나원영 필자가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라는 제목 하에 시작한다. 이 기획이 노이즈와 피드백, 이펙터, 트레몰로, 전자음, 혼란 속 구조 등 포스트록이라는 음악이 지닌 수많은 매력을 찾아낸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아니면,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잘 모르더라도, 최소한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좋은 밴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 정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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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프롤로그

우주에는 수많은 장르의 음악들이 있다. 나뭇가지나 뿌리처럼 뻗어나가며 장르들은 생기고 사라진다. 그 많은 장르들 중에서, 특히나 길고 두꺼운 록 음악의 역사 중에서 필자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장르가 포스트록이다. 너무 좋은지라 여기저기에 추천하고 싶은 장르여서, 이렇게 국내 포스트록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웃기게도 대체 포스트록이 뭔가, 하면 딱히 대답할 수가 없다. 애초에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자본주의’같은 단어들처럼 ‘포스트’자가 앞에 떡하고 붙은 것들의 범위를 정확히 특정 짓기는 참 힘든 일이다. 그래도 분석을 해보자면, ‘포스트’ 자체에 ‘이후’라는 뜻이 있으니 포스트록은 일단 ‘록 이후의 록’ 같은 의미인 것이다.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면, 1994년에 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비(非)-록 적 목적을 위한 록 연주 (using rock instrumentation for non-rock purposes)’라는 표현과 함께 포스트록이라는 단어를 정의 내렸다. 하지만 이때의 포스트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타-연주-장황-록’ 같은 느낌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그러한 초기 포스트록과 비슷한 음악만을 포스트록이라 하기에는 장르 자체에서 이미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결정적으로 장르에 딱 떨어지는 설명 같은 건 없기도 하고 말이다. 이럴 때에는 여기저기에 널리고 널린 다양한 설명들을 읽으면서 자기 취향과 정리들을 만들면 될 테다. 그런 의미에서 본격적으로 국내 포스트록의 역사를 짚기 전에 포스트록이란 장르에 대해 신빙성 적은 정리를 해 보기로 했다.

본격적인 포스트록 담론이 나오기 조금 전인 80년대에 들어가면, 영미권 인디 록을 뒤덮은 포스트 펑크의 느슨한 범위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장르들에서 포스트록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 기타로 감성적인 노이즈를 뿜는 슈게이징, 박자를 잘게 쪼개는 매스 록, 어두운 고딕 록에 몽환을 더한 드림 팝, 뭐 이런 장르들이 80년대 말 ~ 90년대 초에 그 원형을 만든 셈이다. 펑크 록에서도 가장 전위적인 위치에 있는 노웨이브 움직임을 이끈 소닉 유스(Sonic Youth)나 스완스(Swans)가 실험적인 노이즈 록을 들려줬고, 본격적인 포스트록보다 조금 앞선 마이 블러드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이나 라이드(Ride), 슬로우다이브(Slowdive) 등이 이즈음에 [Loveless]나 [Nowhere], [Souvlaki] 같이 멋진 슈게이징 음반을 내기 시작했다. 스페이스맨 3 (Spaceman 3)이나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같이 네오 싸이키델릭이나 드림 팝 성향의 밴드들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 이 모든 음악들의 다양한 색깔이 곧 포스트록의 예고편처럼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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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록의 시조격 밴드 둘, 토크 토크(위)와 슬린트(아래)

 

그렇게 실험성이 꽃피던 80년대 록의 기운을 받아 90년대 초중반 즘에 본격적으로 포스트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80년대 말, 두 밴드가 본격적인 시작을 잡았다. 한 쪽에는 포스트 하드코어 씬에서 출발해 우울하고 긴 기타 연주를 들려준 슬린트(Slint)와 [Spiderland]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뉴웨이브 신스 팝 밴드로 시작해 앰비언트, 재즈와 클래식의 요소를 전면적으로 활용한 토크 토크(Talk Talk)의 [Spirit Of Eden]이 있었다. 지금의 포스트록과는 많이 다른 음악일 뿐만 아니라 두 밴드 자체의 느낌도 많이 달랐지만, 지금의 시점에 두 음반과 밴드 모두 포스트록의 선구자나 조상님 같은 느낌으로 평가 받는다. 그 뒤 90년대 중반 레이놀즈가 내린 정의의 주인공이었던 바크 사이코시스(Bark Psychosis)뿐만 아니라 디스코 인페르노(Disco Inferno), 스테레오랩(Stereolab), 토터스(Tortoise), 쿨 데 삭(Cul de Sac) 같은 밴드들이 저마다의 방법과 느낌으로 포스트록을 추구했다. [Soundtracks For The Blind], [Millions Now Living Will Never Die], [D.I. Go Pop], [Hex] 등의 초기 포스트록의 명작들이 이 때에 등장하고 많은 영미권 밴드 덕후들이 이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걸친 밴드들을 초기 포스트록으로 놓는다. 사실 이 밴드들 사이에서 어떠한 공통점을 찾기는 매우 힘들지만, 결국 록 이후의 록, 혹은 록이 아닌 것을 위한 록 연주라는 미묘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이 다양한 밴드들이 포스트록을 만든 밴드들로 평가 받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2세대는 언제쯤이냐, 물으면 90년대 말에서 00년대 초까지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세대’의 구분도 워낙 애매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만,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 포스트록 밴드들이 나타난 후인 90년대 말부터 ‘포스트록’ 하면 딱 떠오르는 느낌들을 가진 밴드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는 분기점으로 ‘세대’란 표현을 생각해줬으면 한다. 이때부터 웅장하고 멜로디컬한 기타, 꿈꾸는 듯 중얼거리거나 이야기하는 보컬, 길고 아름다운 곡 길이, 일종의 소설처럼도 느껴지는 서사적인 구조… 같이 심히 애매한 단어들로 포스트록의 전체적인 느낌이 그나마 좀 정리된다. 밴드마다 각자의 포스트록을 추구하고 만들던 1세대와는 다르게 2세대 밴드들부터는 위에 나열한 요소들이 모두 합쳐 기나긴 인스트루멘탈 기타 연주를 중심으로 점점 쌓아 올라가는 구조와 감정적인 고조와 폭발이 담긴,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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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스피드 유! 블랙 엠페러의 라이브 장면

 

그 스타일을 가지고 냉정과 열정의 순간을 교차시키는 모과이(Mogwai), 온갖 클래식한 요소와 전자음악, 펑크의 느낌까지 끌어온 갓스피드 유! 블랙 앰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 따스하고 차분한 순간들을 만들어 낸 시규어 로스(Sigur Rós), 인스트루멘탈 기타의 극치를 들려준 익스플로션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의, 농담 삼아 ’세계 4대 포스트록 밴드’로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밴드들과 기타 수많은 밴드들이 이 세대에 속한다. 그렇게 포스트록은 상대적으로 애매하고 느슨하며 넓지만 확실한 스타일을 씬 안에서 하나의 조류이자 움직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외에도 모노(Mono), 인디 할다(Yndi Halda), 더티 쓰리(Dirty Three), 두 메이크 세이 싱크(Do Make Say Think), 어 실버 마운트 자이온(A Silver Mt. Zion) 등 다양한 밴드들이 나오게 되었고, [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s To Heaven], [Young Team], [()],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같은 명반들도 이 때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며 ‘3세대 포스트록’이 시작되는데… 모든 마지막 세대가 그렇듯이, 이쯤 되면 밴드들이 너무 많아지는데다가 2세대에 확립된 스타일을 중심으로 다시 1세대 같은 실험과 시도들이 다채로워져 확실한 경향이나 밴드를 짚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일본 쪽에서 다양한 색깔을 가진 월즈 엔드 걸프렌드(World’s End Girlfriend), 토(Toe), 도쿄 슈게이져(Tokyo Shoegazer), 콜테어 오브 더 디퍼스(Coaltar of the Deepers), 엔비(Envy) 등의 굵직한 밴드들이 나왔고, 65데이즈오브스태틱(65daysofstatic)이나 메이비쉬윌(Maybeshewill)처럼 일렉트로닉을 보다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밴드가 등장했으며, 이시스(Isis), 펠리칸(Pelican), 러시안 서클(Russian Circle)처럼 포스트-메탈이라 불리는 헤비한 밴드들이 생겨났다는 점 정도. 어떻게 보자면 그런 만큼 포스트록 밴드들은 다양해졌고, 그 범위 또한 넓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스/블랙메탈 같이 헤비니스 사운드를 기초에 두는 밴드들도 생기고, IDM이나 드론, 앰비언트 등 전자음악과 합치는 밴드도 있고, 자국의 전통 악기를 사용하는 밴드, 싸이키델릭이나 프로그레시브 등 묵직한 타 장르들과 합치는 밴드 등 3세대 포스트록 밴드들은 2세대의 형식에 1세대의 정신을 합친 거 마냥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다.

 

 

매우 믿지 못할 정리지만, 해외 포스트록의 조류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볼 수 있다. 애매하더라도 역사가 있는 애매함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다면 한국의 포스트록은 대체 어떨까. 한국에서의 록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포스트록 역시 어느 순간 씬에 갑툭튀하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 역사는 놀랍게도 해외 포스트록의 그것과도 나름 비슷하다. 국내에 인디 음악이 탄생한 순간부터 포스트록도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끊길 듯 말 듯 한국 인디 씬에서 포스트록은 미약하게나마 존재해 왔고, 그 스타일도 나름 다양하다. 마이너 중에 마이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장르인 포스트록을 멋지게 다루는 밴드가 국내에도 이토록 많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여러 밴드를 중심으로 20년이라는 기나긴 국내 포스트록의 역사를 짚어본다.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자. 국내산을 애용하자. 우리가 만든 포스트록 우리가 듣자. 그런 의도로 쓰는 글이기도 하고, 그냥 장르에 대한 애정 때문에 쓰는 거기도 하다 (사실 후자가 거의 99%의 이유지만) 포스트록과 슈게이징, 드림 팝 등 그 넓은 범위에서 나름 한 자리씩 하는 밴드들을 1996년의 옐로우 키친에서 시작해 지난 달 쯤에 나온 포스트록 음반까지 시간 순에 따라, 주관적이고 편향적으로 짚어본다. 오직 덕심으로!

 

 

1. 옐로우키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인디 음악이 시작된 1996년. 그 해를 빛낸 3장의 음반을 꼽는다면 언니네 이발관의 [비둘기는 하늘의 쥐], 노이즈가든의 [nOiZeGaRdEn], 그리고 크라잉넛과 옐로우키친의 [Our Nation 1]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음반 중에 무엇이 가장 좋거나 음악적으로 뛰어난지에 대해 물어보면 의견이 갈리겠지만, 가장 ‘역사적인 음반’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아마 [Our Nation 1]으로 많이 쏠릴 것이다. ‘인디’라는 시스템 안에서 최초로 나온 음반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고, 이후 인디 음악을 대표하는 밴드가 되는 크라잉넛의 조선펑크가 처음으로 담겨있는 음반이라는 점도 있다. 하지만 이 음반이 두 명이서 한 방 쓰는 격인 스플릿 음반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Our Nation 1]의 다른 반쪽을 채우며 음반의 엄연한 주인공인 이들은 옐로우키친이라는 밴드다.

그 옐로우키친이 바로 한국 포스트록의 시초다. [Our Nation 1]의 반쪽을 실험적인 노이즈가 잔뜩 섞인 기타로 채운 옐로우키친은 슬프게도 오랫동안 크라잉넛의 멋진 행보에 미필적 고의처럼 가려졌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말달리자”의 첫 버전만큼이나 젊은 열정이 담긴 곡들로 가득하다. “Fuzzy Sorrows”라는 제목처럼 잔뜩 퍼지하게 뭉개진 소리들, 창창한 연주의 “Orthodox Method To Enter Mass View”, 노이즈와 함께 빠르게 달리는 “Betty Sticked The Fork In Her Eyes” 등의 곡들은 조금 더 정제된 소리로만 바꾼다면 지난 달 쯤에 나온 포스트록 연주곡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무려 20년 전의 노이즈이고 포스트록이다. 그 때는 심지어 외국에서도 1세대 격의 포스트록 밴드들이 막 음반들을 내고 있을 즘이었다. 그 동시대에 옐로우키친이란 밴드가 국내에서는 거의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음악을 떡하니 내놓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Our Nation 1]의 평가는 더 올라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펑크와 최초의 포스트록이 둘 다 담긴, 아주 신박하고 엄청난 음반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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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Nation 1] / [99 and Yellow Kitchen]

 

어찌되었던 적지 않은,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사람들이 옐로우키친의 음악을 듣고 신세계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듬해 옐로우키친은 3호선 버터플라이를 결성하기 전에 성기완이 몸담았던 밴드 99와 함께 스플릿 음반 [99 and Yellow Kitchen]을 낸다. 여기서 옐로우키친은 기타 노이즈가 가득한 포스트록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데, IDM이나 앰비언트 등으로 불리는 실험적인 전자음악을 도입한 것이다. IDM 계열의 전자음악 또한 90년대 중반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국내에서는 관련 음악인이 거의 없다시피했으니, 어떻게 보면 첨단 유행의 선구자가 아닐까 싶다. 90년대의 인디 음악인들 중에서도 진국들만 모인 컴필레이션 음반 [One Day Tours]에서도 전자음과 슈게이징을 섞은 “뜬구름을 생각한다”를 낸 것을 보면, 사실 노이즈 록 성향에서 전자음악 성향으로 나가나는 그들의 변화는 당연한 것일 테다. [99 and Yellow Kitchen]의 첫 곡 “Dryads Of Otamoth”에서부터 펼쳐지는 꿈결 같은 전자음은 이어 “Sure To Rise”의 슈게이징풍 음악으로 그대로 이어지는데 그 두 곡 사이의 연계가 정말 탁월하다. 특히나 IDM 색깔과 슈게이징 색깔이 절묘하게 합쳐진 “Sweet” 역시 여러모로 명곡이자 옐로우키친만의 대표곡이라 생각한다. 지금 들어도 여러모로 실험적으로 느껴지는 곡들을 20년 전 쯤에 아무렇지도 않게 제대로 만들어내며, 옐로우키친은 한 번 더 발전한다. (여담으로 99의 음악들도 매우 좋다. 이때의 성기완은 지금과 무척 달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98년, 드디어 스플릿 음반이 아닌 옐로우키친만의 이름이 걸린 첫 번째 정규 음반인 [Mushroom, Echoway, Kleidose]가 나온다. 여태까지 옐로우키친이 스플릿 음반들에서 보여준 전자음, 슈게이징, 노이즈 록 등의 다양한 스타일들이 집약된 음반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익숙한 효과음으로 시작되어 슈게이징스러운 분위기에 간간히 기타 노이즈를 담은 “Toves”, 상당히 새로운 느낌의 전자음 비트를 지닌 “Sub-Alien, As I Dive Like”, 세기말스러운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Ooze Your Ways (For Brownies)”같은 곡들이 그 때까지의 옐로우키친 음악을 총정리하며 노이즈와 전자음의 아름다운 조합을 만들어낸다. 여태까지 옐로우키친의 음악을 돌아보면, [Our Nation 1]의 기타 노이즈는 [99 and Yellow Kitchen]에서 전자음을 입었고, [Mushroom, Echoway, Kleidose]에서 오히려 기타보다도 비중이 더욱 높아졌다. 물론 가장 실험적인 “Queasy”는 기타 노이즈와 전자 노이즈가 적절하게 짬뽕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옐로우키친은 첫 번째 정규작을 통해 기타 노이즈와 전자음으로 일종의 정반합 같은 무언가를 이뤘다. 마지막을 몽환적이고 놀랍게, 그리고 역시나 실험적으로 장식하는 “Spacekat B (Off Piano Edition)”가 이러한 옐로우키친 음악적 완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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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hiroom, Exhoway, Kleidose] / [Random Elements ’60]

 

시간은 계속 흘러 2002년, 그들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이자 마지막 정규 음반이기도 한 [Random Elements ‘60]이 나온다. 21곡을 꽉 채운 이 음반은 [Mushroom, Echoway, Kleidose]의 전자음과 기타 노이즈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은 듯싶다. 다만 전작의 곡들에선 어둡고 몽환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그 색채가 조금 밝아진 듯하다. 여러 전자음과 신스음 곡에 이어 본격적으로 밴드 사운드가 들어오는 초반부까지만 들으면 어떠한 포스트록보다는 전자음과 밴드 연주 사이의 음악으로 생각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영미권의 선대 포스트록 밴드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정말 말 그대로 ‘랜덤한 요소들’로 음반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즉 [Random Elements ‘60]에는 옐로우키친이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욱 많은 시도들이 들어가 있다.

짧은 전자음 트랙들을 지나 “flickER lettER”에 들어가면 옐로우키친은 다시 전자음과 밴드 연주가 기이하고 멋지게 합친 곡을 선보이고, 이어 음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From The Ruins”가 시작된다. [Mushroom, Echoway, Kleidose]의 기나긴 트랙들과 많이 닮아 있는 이 곡은 8분 동안 밴드의 연주를 중심으로 뒤를 오가는 다양한 전자음들을 섞은 곡이다. 일관적으로 노이즈를 들려주지만 조금씩, 더 조금씩 노이즈는 점점 커지고 줄어들며 다시금 전자음으로 상큼하게 돌아온다. IDM 느낌 팍팍 나는 “Swimming Apples In The Vinu River”, 느긋한 연주로 가득 채운 “Where’s Your Hat, Mr?” 등의 곡이 이어지면서 음반은 후반부로 넘어간다. 재밌게도 전작의 마지막을 실험적이고 멋지게 장식한 “SpaceKat B”의 프로토타입 버젼이 이어지는데, 이것을 나름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분 30초였던 이전 버전과는 다르게 2분 남짓한 이 트랙은 옐로우키친의 실험적인 노이즈가 어디서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들을 수 있어 비밀을 발견한 느낌이 드는 멋진 트랙이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몽환과 경쾌함을 갑자기 조금 우울한 구석에 집어넣는 마지막 곡인 “Sleepytime”으로 음반은 정말 랜덤한 곡들로 꽉 찬 음반을 마친다. [Mushroom, Echoway, Kleidose]가 일관된 분위기에서 노이즈와 전자음을 오갔다면, [Random Elements ’60]에는 실로 다양하게 장르와 분위기를 오가며 옐로우키친만이 들려줄 수 있는 포스트록이 담겼다. 특히 [Our Nation 1] 시절의 노이즈가 6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서서히 전자음으로 그 중심을 바꾼 것을 보면 옐로우키친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옐로우키친이 [Random Elements ’60] 이후 음반을 낸 일은 없었다. ‘록 이후의 록’이란 의미를 담은 장르의 시초로써 옐로우키친은 그 장르에 너무도 딱 맞는 성과를 이뤘다. 국내 최초로 전자음, 슈게이징, 노이즈를 도입한 음악을 선보였고, 그것도 인디 씬이라는 새로운 터전이 열릴 때와 함께 이 모든 걸 선보였다. 길을 내도 두 개의 길을 한꺼번에 낸 샘이다. 조금은 난데없고 도통 의미를 알기 힘든 실험적인 느낌이 많이 들지만, 옐로우키친의 음악은 뭔가 우울해지는 기타 노이즈에서부터 경쾌하고 몽환적인 전자음까지 다양한 색과 함께 정말로 ‘록 이후의 록’을 탐구했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왕성하게 창작하며 몇 장의 음반을 냈고, 그렇게 사라졌다. 이후 2000년대 중후반에 아주 가끔 모임별의 음악에 참여하긴 했지만 그것뿐이었고, 그리고 그들은 조용조용히 사라진다.

 

 

그래서 옐로우키친과 그들의 음악이 아쉽다고 느껴진다. 정규 음반들의 음원은 막혀 있고, 당연히 음반 자체는 오래 전에 절판되었다. 99와 함께한 스플릿 음반도 똑같은 신세며 그나마 음원이 풀린 [Our Nation 1]은 크라잉넛의 아성에 가려졌다. 한국 최초의 포스트록 밴드였던 옐로우키친이 이렇게 푸대접 비슷한 신세에 처하게 된 건 슬픈 일이다. 옐로우키친이 멋지게 깔아놓은 포스트록의 길은 2000년대의 포스트록 밴드들로 곧장 이어진다. 여기에 해외 포스트록 밴드들의 영향까지 이어져 2000년대 중후반부터 다양한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가리온이 홍대에서 신촌까지 깔아놓은 힙합 비트와 비슷하게 옐로우키친에서 시작된 포스트록은 지금까지 펄떡펄떡 살아있다. 뭐든지 최초가 있고, 그 최초는 항상 중요하다. 그래서 더더욱 까먹고 다니면 안 된다. | 나원영 [email protected]

 

One Response

  1. 사차원

    이런 밴드도 있었군요. 꼭 구해서 들어봐야 겠습니다.
    프스트록 좋아하는데 다음 특집도 기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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