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 | 신의 놀이 | 소모임 음반, 2016

이랑 | 신의 놀이 | 소모임 음반, 2016

 

이랑이라는 무언가

이랑의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기분 좋은 이질감을 느낀다. 분명 내가 듣고 있는 것은 음악인데 어느 순간 나는 문학을 향유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태초에 시는 노래와 음악에서 비롯되었다는 뻔하고 당연한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로 한 편의 시나 소설 같은 무언가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든다. 서사나 묘사 등의 문학 요소가 강하게 담긴 음악이라거나 문학적인 음악 정도가 아니라, ‘문학 그 자체’에 속하는 무언가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건 분명히 머릿속을 맴도는 매력적인 멜로디가 있고 귀에 감기는 리듬이 있는 음악이다. 그래서 계속 듣고 있다 보면 대체 이건 뭘까 싶다. 음악인데 문학 같고, 문학인데 음악 같은 당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랑이라는 카테고리가 따로 있어야만 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니까.

‘높은 수준의 음악은 문학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음악과 문학은 우위를 따질 수 없는 독립적인 영역이며, 설령 우위를 가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랑의 음악을 절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음악이라고 하기엔(높은 수준의 음악이라는 말 또한 정말 웃기지만) 사운드 측면에서는 조금 민망한 감이 없지 않다. 전작 [욘욘슨]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로-파이(Lo-Fi) 앨범이다. 물론 발전한 부분들이 많다. [욘욘슨]에서는 정말로 보컬과 기타 하나만으로 대부분의 곡이 구성되었으나, [신의 놀이]에서는 다양한 악기들이 사용되었다. 현악기가 멜로디를 이끌어가기도 하고, 드럼이 리듬을 채워넣으며, 때때론 신디사이저가 사용되기까지 했다. 코러스도 더 정교해진 듯하다. 보컬은 독특한 훅(“좋은 소식, 나쁜 소식”)이나 웃음소리(“웃어, 유머에”)를 이용해 곡을 이끌어가는 재미있는 시도들도 보여주지만, 여전히 중심이 되는 방식으로는 큰 변화 없이 말하듯 노래하는 방식을 유지한다. 요약하자면, 전작에 비해서는 좀 더 많은 음악적 시도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변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매번 이랑의 노래들을 들으면서 그녀에게 있어서만큼은 사운드적인 요소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랑 음악이 주는 이질감은 사운드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질감의 정체에 대한 힌트를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에서 찾은 듯하다. ‘요컨대 문학의 근원적 물음은 이것이다.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고 / 없고, 무엇을 행할 수 있는가 / 없는가?” 말하자면 나의 진실에 부합하게 행동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날그날의 효율을 위해 이 질문을 건너뛸 때 우리의 정치, 행정, 사법은 개살구가 되고 만다. 문학이 불가피한 것은 저 질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학이라는 제도와 거기서 생산되는 문학 상품들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저 질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가지 모험들이 불가피한 것이다. 시적인 발화의 실험과 소설적인 행동의 감행이 불가피한 것이다.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개시하는 그 모든 발화들에서 시적인 것이 발생하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개시하는 그 모든 행위들에서 소설적인 것이 발생한다.’

이랑은 그녀의 노래들을 통해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고 / 없고, 무엇을 행할 수 있는가 / 없는가.’ 라는 문학의 근원적 물음에 대해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충실히 대답한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그래서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와 무엇을 행할 수 있는지(+그래서 지금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가감 없이 노래한다. 도쿄에서 좋아하게 된 남자에 대한 “도쿄의 친구”, 화가 친구의 전시 제목에서 시작된 생각을 써내려 간 “슬프게 화가 난다”, 자신이 영화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한 “신의 놀이”등 각각의 노래에는 그녀 자신의 서사가 무덤덤하지만 솔직하게 담겨져 있다. 이랑은 자신의 노래에서 그녀가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아주 충실히 노래하고 있다. 요컨대, 이는 아주 시적인 태도이다. 물론 이런 개인적 서사를 노래만 듣고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노래의 가사는 다소 함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원과 함께 구성된 책이 중요하다. 책의 텍스트는 [신의 놀이]에 담긴 노래들의 서사를 꽤 소상히 담고 있다. 결국 책은 왜 이랑이 이런 노래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다시 말해서 이랑이 무엇을 행할 수 있는지(물론 결론은 그녀가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으로 수렴하지만)에 대한 것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즉, 이랑의 텍스트는 시적인 것을 풀어내고 시적인 발화를 행하게 된 것에 대한 설명하는 소설적인 것이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노래와 책은 시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에 가까울 뿐이지 결코 시와 소설은 아니다. 그래서 이랑의 [신의 놀이]는 이질적이다. 음악이지만 단지 음악만은 아니며, 시적인 것이고 소설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와 소설 그 자체는 아니다.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이지만, 이것은 좋은 음악이며 흥미로운 문학이다. 그렇기에 나는 감히 이랑의 작업을 새로운 무언가라고 말하고 싶다. 이랑이라는 무언가. | 전대한 [email protected]

 

Rating: 9/10

 

수록곡
1. 신의 놀이
2. 가족을 찾아서
3. 이야기속으로
4. 슬프게 화가 난다
5. 웃어, 유머에
6. 도쿄의 친구
7. 평범한 사람
8.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9. 나는 왜 알아요
10.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신의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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