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프로젝트 팀 아카이뷰(Archiview)와 음악웹진 [weiv]의 콜라보레이션, [Critics Record X weiv]. 『크리틱스 레코드 2』가 출간되기 전, 전체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미리 선보인다. 여덟 번째 순서는 [weiv] 에디터이자 소설가, 번역가인 최민우 평론가다.  | 정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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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s Record X weiv 008. 최민우
2016년 8월 17일 수요일
연남동 백년커피

Interviewed by 전대한
Photographed by 신수민
Designed by 송진경
Edited by 우주언

 

미학적인 기준보다는 ‘이런 것들은 곤란하지 않겠느냐.’ 하는.

전대한 (이하 전) : 우진 님과 인터뷰를 할 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민우 님은 본인과 되게 다른 타입의 사람이라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니까 학선 님도 그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거든요. 자신은 좋아하는 음악에 관해서 쓰는 것이고 들었을 때 소개하고 싶은 것을 쓰는 건데, 최민우 평론가는 그런 것과는 별개로 미학적인 기준이나 태도를 가지고 비평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하셨어요. 그래서 민우 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있을 것 같았고 들을 수 있는 좋은 말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튼 민우 님께서는 어떤 미학적인 기준을 가지고 비평을 하시나요?

최민우 (이하 최) : 아니요. 저한테 어떤 미학적인 기준 같은 건 없어요. (웃음) 대중음악 평론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저널’의 성격을 띤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의 요구에 그때그때 부응해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미학적인 기준이나 일관된 비평적 관점 같은 걸 가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이래야만 한다.’는 기준은 없는 거죠.

하지만 인터뷰 전에 돌이켜 보니 ‘무엇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런 것들은 받아들이기 곤란하지 않나.’ 하는 건 있어요. 예를 들면 ‘가수라면 노래를 잘해야지.’ 같은 생각도 있겠고, 또 아니면 도그마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록은 저항의 음악이다.’ 같은 통념도 있을 테고요. 그런 주장이나 태도는 곤란하지 않겠나 생각했고, 그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해 왔던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해 글을 쓸 때도 그런 생각이 은연중에 영향을 미쳤겠죠. 만약 제게 어떤 일관된 자세 같은 게 보인다면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딱히 어떤 미학적인 태도를 전제하지는 않아요.

 

비평에 방점을 찍는 비평

전: 어쨌든 비평가라는 것 자체가 취향에 기반을 둔 일이고 좋아서 시작하는 일이겠지만, 계속 언급했듯이 학선 님 같은 경우는 ‘자신은 그저 좋아서 쓴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민우 님 글을 읽으면서 민우 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비평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좀 더 방점을 찍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최: 저뿐만 아니라 다른 평론가들도 다들 그 점을 고민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렇게 보인다면, 제 글에 그 고민이 좀 더 많이 나타나는 것뿐이겠지요. 다만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는 선택의 문제 같아요. 김학선 씨처럼 ‘좋은 음악을 발굴하고 소개한다.’는 것을 제일로 치는 분들도 계실 테고, 또 어떤 사람들은 대중예술에 대해 평할 때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의미를 많이 부여하기도 하죠. 작품 외적인 의미나 맥락이요. ‘한국에서는 그게 좀 유달리 많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제는 아이돌로지처럼 사운드 자체나 아이돌이 처해 있는 산업적 상황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경우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안티’라기보다는 ‘얼터너티브’한 거겠죠.

전: 대안적이라는 말씀이신 거죠?

최: 네. 운영자인 미묘 씨가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분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죠. 제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사회적 의미나 맥락, 태도를 중요시했던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독립성이라든가 진정성에 큰 가치를 두는. 저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그런 점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는데 ‘차츰 결과물 자체를 더 살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텀블벅 같은 곳에서 후원을 받고 작업의 의도가 좋다고 해도 정작 결과물 자체가 미진하면… 어찌 보면 제가 좀 불구경하듯 보는 것 같기도 한데, 모르겠네요.

 

비평 자체에 관해 있는 이야기가 있다.

전: 지드래곤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GD의 1집 [Heartbreaker] 에 대해서 2009년에 [weiv] 에 글을 쓰셨잖아요. 제가 다른 평론가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왜 다들 최민우 평론가가 어떤 미학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건지를 곰곰이 생각을 해봤거든요. 그러다가 이 글을 읽으면서 ‘이래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느꼈거든요.

‘이 앨범은 비평적으로 파산한 음반이다.’라는 문장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이건 이 음반이 좋건 나쁘건 많이 팔렸건 팔리지 않았건, 비평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혹은 한 가지 이야기밖에 하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비평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없고 그렇기에 이에 대해서는 ‘나는 쓰지 않겠다.’는 태도를 내포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지점이 되게 미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비평하시는 데 있어서, 비평이라는 것 자체가 되게 중요하신 것 같거든요.

최: ‘평론하지 않겠다’고 평론을 했죠. (웃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글을 쓸 때 자기가 뭘 쓰는지에 대해 메타적으로 생각 않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대한 씨의 질문을, 제가 비평이라는 형식 자체에 고민한다는 뜻으로 봐도 될까요?

전: ‘비평’이라는 바운더리 혹은 영역에 대해서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우진 님 같은 경우는 본인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되게 많이 하는 것 같고, 학선 님 같은 경우는 자신은 평론가라는 직함보다는 그저 음악을 소개해주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음악이 좋아서 그것을 소개해주기 위해 비평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비평을 하지만 자신을 평론가나 글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산업의 종사자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플레이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최: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어쩐지 “평론가입니다, 에헴!”, 이런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 (웃음) 막 심각하게, ‘평론가란 무엇인가.’ 이러면서.

전: (웃음) 그런 고민을 좀 더 많이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까 민우 님께서 평론에 대해서 깐깐하다거나 ‘음악’ 자체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일종의 미학적인 기준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최: 그건 제가 오히려 여전히 비평이 뭔지 잘 몰라서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대중음악평론에 대해서는 차우진 씨나 김학선 씨의 의견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산업의 플레이어이기도 하면서 메신저-소개자라는 역할이요. 다만 좀 더 다른 건 없을까, 비평 자체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가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평론 자체에 대한 자의식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어쩐지 ‘아카데미’의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인상이 드는데, 그러면 대중음악평론 자체가 가진 활력이 줄거든요. 여기는 무척 빨리 돌아가는 세계니까요. 주 단위, 하루 단위, 시간 단위로요.

어쨌든 이 글을 쓸 당시에는 그 점에 대해 고민을 했어요.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플레이어와 메신저 이외의 다른 길, 이 질문의 맥락에서는 자의식을 강조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하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대중음악 시스템 자체가 빨리 돌아가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글이나 글의 소재나 신선함을 잃기 쉽죠. 영화도 그렇긴 하지만 영화와는 또 다른 것 같아요. 결국, 못 한다는 이야기를 빙빙 돌려 말하는 것 같기는 한데… (웃음) 이 글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은데, GD의 경우는 표절 논란이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죠.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전: 바로 이어서 다음 질문을 드릴게요. 비평가의 자의식을 강조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건 어떻게 보면 시대가 변하고 소비자들의 태도도 변해서 더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만 해도 비평이라는 행위 자체가 희소했고 어느 정도 진지한 글들 혹은 긴 글에 대한 수요가 있었잖아요. 또 그걸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 자체도 줄었고 너무 많은 작품과 너무 많은 취향이 존재하다 보니까 나한테 좋게 들릴 수 있는 것 혹은 내 취향에 맞는 것을 찾아주는 정도의 행위로서 비평을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거든요. 이건 대중들이 비평가의 자의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상황인 거잖아요.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민우 님께서는 비평의 가치를 믿고 계시는가요? 조금 전에 과거형으로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최: 그 가치를 믿는 것과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일 거예요. 저는 여전히 그런 태도가 있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자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시기가 무척 예외적인 때였다고도 생각해요.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지한’ 대중음악평론은 LP와 같이 발전을 했다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어요. LP라는 매체가 있고, 그 안에 들어가는 앨범이라는 완결된 형식적 단위가 있고, 거기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예술적인 완성도 역시 평가하겠다는 음악평론이 나왔죠. 이른바 ‘록 이데올로기’도 대중음악에서 사회성과 예술성이 양립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생겨났고요. 하지만 지금은 앨범이라는 형식의 중요성이 예전 같지 않은데, 그리고 사회를 반영하는 음악이라는 관념 자체가 퇴색된 게 사실인데, 그렇다면 평론 자체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질문으로 돌아가서, ‘비평에 대한 자의식 혹은 굳건한 태도가 가능한가.’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사람들이 당연히 비평에 대한 자의식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믿어요. 다들 그 점에 대해 날카로운 인식이 있겠지요. 다만 집단적 차원에서 연결될 수 있는 공통된 분위기나 멘탈리티 같은 게 지금은 없거나 희미하지 않나 싶은 거예요. 각각의 태도가 다 다른 거죠. [weiv]라던가, 얼트 바이러스라든가, 신현준, 강헌, 임진모처럼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어떤 ‘구심점’ 내지는 ‘기준점’이 될 수 있는 비평가나 활동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자의식이 있다 해도 그게 공유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는 거죠. 너무 두루뭉술한 대답인가요?

전: 아닙니다. (웃음) 괜찮습니다. 비평에 대한 자의식의 존재를 믿고 계시고 그걸 내포한 비평이 가능하다고 믿으시지만, 어쨌든 상황이 변하고 산업이 변했잖아요.

최: 그럼 그 변화에 반응하는 태도가 있겠죠. 그러니까 저는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당위에 대해 늘 의문이 있는 거예요. ‘비평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말들. 비평적 태도도 마찬가지예요. ‘이래야 하는’ 비평적 태도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독백은 불가능한 대화

전: 제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민우 님께서는 음악의 내용 자체에 집중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민우 님 글들을 읽으면서 민우 님께서 다른 사람들보다 음악 자체의 내용, 앨범 내에서 트랙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만들어내는 세계나 서사 같은 것에 대해서 많이 집중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가의 서사도 그렇고요. 그리고 더불어서 언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최: 언어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해당 뮤지션이 언어에 대해 관심을 두기 때문이에요. 순서는 그쪽이 먼저인 거죠. 예를 들면 브로콜리 너마저 같은 밴드의 음반에서는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게 중요하게 취급되거든요. 제목이라거나 컨셉이라거나 가사에서. 그러면 저도 그 점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겠지요. 비평은 기본적으로는 2차 매체고, 창작물이 먼저 있어야 존재하는 영역이니까요. 상호 간의 대화와 마찬가지예요. 다만 독백은 불가능한 대화겠지요.

 

비평이 해야 할 일

전: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게요. 앞에서 ‘이래야 한다.’는 비평적 태도는 없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비평의 의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비평을 한다면 ‘이것만큼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이 있나요?

최: 비평의 의무라면 좋은 작품을 소개하고 그렇지 않은 작품에 대해 할 말이 있으면 하는 거죠. 취향이 당연히 개입되겠지만, 그 취향을 객관으로 포장하지 않고 분명히 드러내기만 하면 되고요. 실은 그게 객관이죠. 주관을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거 말고 비평이 뭘 하겠어요? 다른 의무가 있다면 뭘까요? 제가 묻고 싶네요. (웃음)

전: 저는 딱히 그런 게 없는데, 비평에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요. 작품이 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이상으로, 담론을 만든다든가 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아카데믹한 부분과 섞일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작품이 하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고 그것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써내려가는 게 아니라, 자기 생각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거나 작품을 토대로 더 큰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들도 보여요. 그리고 글 자체로써, 그러니까 미적인 관점에서 산문처럼 글 자체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최: 글 자체가 좋아야 한다는 건 딱히 할 말이 없네요. 글솜씨를 다듬는 문제일 테니까. 담론을 만든다는 건 보다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겠죠?

전: 네.

최: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꼭 그래야 할 건 아니죠. 그런 태도가 앞서면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음악을 들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요. 욕심이 과해지는 거죠. 물론 다들 비평은 작품에서 시작하는 거라고 말은 하겠지만, 가끔은 필자의 관점이 우선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글도 있어요. 제 말은 그것 역시 쉽게 당위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오토튠은 음악을 망쳐.’라는 굳은 신념으로 음악을 듣고 나면 ‘뭐, 음악 괜찮네. 하지만 오토튠을 썼으니 나쁜 음악.’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 건 사양이에요.

전: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하나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는 거네요.

최: 네. 예전에는 그런 태도를 가진 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록은 저항의 음악’이라고 전제하고 나서 어떤 음악의 가사나 뮤지션의 태도에서 사회 비판적인 태도가 보이면 ‘이건 좋은 음악’이라고 말하는 식인 거죠. 실은 그것 말고는 장점이랄 게 없는 음악에도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종류의 칭찬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동시대의 음악

최: 저는 다른 고민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른바 현장비평이 가능하냐 하는 고민이 피부로 다가와요. 예전에 한 평론가 선배가 마흔 살이 넘으면 이 일은 못 한다고 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 말을 ‘이것이 나와 동시대의 음악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지나면 현장비평이 어렵다는 말로 알아들었거든요. 예를 들면 너바나(Nirvana)가 [Nevermind]를 냈을 때 조금 윗세대의 사람들은 그 음반이 옛날 거라지 록이나 하드코어 펑크를 그럴싸하게 베낀 데 불과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게는 그게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들렸거든요. 즉 너바나는 제 동시대의 음악이었던 거죠. 마찬가지로, 저는 린킨 파크(Linkin Park)를 들었을 때 ‘이게 뭐하는 짓이냐’라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에 귀를 활짝 열었던 사람들에게는 린킨 파크가 동시대의 음악인 거예요. 그 경험을 출발점 삼아 음악평론을 쓰고 음악 얘기를 하겠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일정한 물리적인 나이를 먹게 되면 지금의 음악을 동시대의 음악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는 거예요. 꼭 마흔 살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새로 나온 음악을 들었는데 ‘좋은데? 데이빗 보위를 잘 써먹네’가 아니라 ‘이거 데이빗 보위잖아? 그래도 좋네’가 되면 불길한 징조라는 거죠. 동시대의 음악에 대한 반응은 늘 전자여야 해요. 뭘 들을 때마다 ‘이거 신중현이네, 이건 산울림이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현장비평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한번, 비평은 독백이 불가능한 대화

전: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비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왜 본인이 대중음악 비평을 하고 계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최: 이 질문 다들 싫어할 텐데…… 아까 했던 얘기가 다예요. 준비는 과거에서 해도 시선은 앞에 두는 거고, 지금 눈앞의 것들에 집중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늘 충돌이 있는 것도 솔직히 사실이에요. 한편으로는 비평 대상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종종 글에서 충돌해요. 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전자입니다. 점점 그렇게 되어 왔고, 그 점을 늘 유념하려고 해요. 아무튼 되풀이하자면, 비평은 독백을 할 수 없는 대화에요. 독백이 불가능한 대화.

 

* Archiview 소개
저희는 출판 프로젝트팀 ‘아카이뷰(Archivew)’입니다.
아카이뷰는 Archive와 View의 합성입니다. 저희만의 시선을 담은 기록을 출판합니다. 저희는 가치 있지만 그 가치를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 사이트
『크리틱스 레코드 2』텀블벅 후원 페이지 https://www.tumblbug.com/criticsrecor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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