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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프렌지

옐로우 키친의 [Our Nation 1] 스플릿부터 할로우 잰의 [Rough Draft In Progress]까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동안 적지만 꾸준히 국내 포스트록의 기반을 닦아온 이른바 국내의 ‘1세대’ 포스트록 밴드들을 다뤄보았다. 해도 바뀌고, 이제는 2006년 이후 국내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포스트록 밴드들, 어쩌면 국내의 ‘2세대’라고 부를 수 있을 밴드들을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찾아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밴드들과 중요한 포스트록 음반들이 많이 나온 2000년대 후반, 그리고 그 이후 2017년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신인 포스트록 밴드들까지 말이다.

그 첫 주자가 바로 프렌지다. ‘연주 밴드는 파트별로 솔로가 들어가야 임팩트가 있다.’라는 말을 들었던 그 밴드다. 프렌지가 <TOP밴드 2>에 출연했을 당시 “소멸하는 밤 (Part.2)”을 들은 심사위원 유영석의 평이었다. 이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자면, 프렌지는 솔로 파트가 없더라도 강한 임팩트를 낼 수 있는 밴드고, 이 글에서는 프렌지의 임팩트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무려 2002년에 결성되어 ‘연주 밴드’, 뜻은 똑같지만 왜인지 조금 더 멋있는 영어를 쓰자면 ‘인스투르멘탈 밴드’로 활동했던 프렌지는 2010년에 그들의 커리어를 집약한 한 장의 앨범 [Nein Songs]를 내고 전설 속으로 (혹은 9와 숫자들이나 전자양 속으로) 사라진 밴드다.

어쩌면, 내가 프렌지를 처음 접했던 온스테이지에서 차우진 평론가가 쓴 다음 구절이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전부일 수도 있겠다. ‘탄탄하고 든든합니다. 이 복잡한 사운드로 세워진 구조의 안정감은 바로 거기서 옵니다. 비트와 멜로디와 노이즈의 뒤엉킨 불협화음이 순간 아름답게 들리는 건 그 모든 규칙성과 법칙에 단단히 얽매인 테크닉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유영석이 1년 뒤에 한 말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이 말은 프렌지의 핵심과 임팩트를 가장 잘 짚어낸 표현이다.

 

프렌지

 

2007년에 나온 [빵 컴필레이션 3]에 처음으로 수록된 “Apollo 11”의 초기 버전에서 이런 부분이 느껴진다. 차우진이 말하듯, 프렌지는 무규칙적인 노이즈와 불협화음, 규칙적인 구조와 테크닉을 넘나들며 곡을 쌓아올린다. 게다가 쌓아올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쌓아올린 소리들을 그대로 무너뜨린 다음 다시 한 번 쌓아올리기도 한다. 속옷밴드의 곡들 중에서도 덜 앰비언트한 “멕시코행 고속열차”나 “안녕” 등과 가장 비슷한 방식으로 곡을 풀어나가는 프렌지의 방법론은 이전까지의 국내 포스트록 밴드들보다 테크닉적인 면에 훨씬 더 집중하며 수많은 소리를 이용한 테트리스가 된다. 어떻게 보면, 90년대 중반 이후의 해외 포스트록 밴드들처럼 장르적인 실험들이 정형화되고 정제된 이후 기술적인 탐구를 시작하는 것과 연결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에 독보적인 테크닉을 들려줬던 속옷밴드와 프렌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애초에 이 글 자체가 포스트록이라는 장르를 이야기하지만, 이 두 밴드는 옐로우 키친의 전자음악이나 할로우 잰의 스크리모보다도 ‘기타 중심의 포스트록’ (혹은 우리가 ‘포스트록’ 하면 흔히 떠올리는 포스트록)에 가장 근접한 팀들이다. 구성 면에서 보아도, 여러 대의 기타를 중심으로 노이즈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곡을 전개하는 공통점이 보인다. 노래를 전체적으로 이끄는 기타와 그 밑에서 천천히 멜로디를 까는 두 번째 기타가 겹치며 노이즈를 만든다. 기타의 밑으로는 리듬을 잡아주는 베이스와 반대로 리듬을 변칙적으로 쪼개며 소리를 쌓는 것에 집중하는 드럼이 존재한다. 잘 짜인 잼 밴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프렌지의 음악은 각 파트들이 내는 소리들이 우수한 테크닉을 통해 정밀한 합치를 이룬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가 하나의 완전한 포스트록 사운드로 빛난다. 변칙적인 리듬과 날뛰는 기타 소리에도 불구하고 프렌지의 음악이 난잡하지도, 정신없지도 않게 안정적으로 들리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기에 굳이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그랬던 것처럼 창창하고 웅장한 기타 솔로가 없어도 특유의 분위기와 ‘임팩트’는 흔들림 없이 유지된다.

그렇기에, 데뷔에 비하면 많이 늦어진 [Nein Songs]는 프렌지가 집요할 정도로 깊게 탐구한 기술적인 완성도와 더불어 그 기술적인 완성도를 바탕으로 한 정교하고 임팩트 가득한 포스트록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황홀한 음반이다. (독일어 Nein과 똑같은 발음의 Nine을 이용한 것도 맘에 든다.) 음반 전체에 가득 찬 포스트록은 물론, 음반 자체도 기승전결을 갖춘 하나의 거대한 곡처럼 “소멸하는 밤 (Part.1)”의 묵직한 드럼과 노이즈 잔뜩 낀 기타로 시작해서 “Sundance”의 밝은 노이즈로 끝을 맺는 안정적인 구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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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n Songs]

 

우선 비장하고 웅장한 드러밍과 기타 노이즈로 시작을 외친 후, 프렌지는 그 후 이름 그대로의 광란을 들려준다. “Apollo 11”과 함께 이어서 연주하는 라이브로 특히 유명한 두 번째 곡 “Icarus”부터가 그런데, 잔잔한 지점에서 천천히 절정까지 올라가 모든 것을 뒤집으며 특유의 긴장감을 형성한 뒤 이 모든 걸 열심히 휘돌고 뒤집는 구성은 포스트록의 가장 정석적인(?) 구성을 훌륭하게 따른다. 제목을 엮어보자면, 하늘까지 천천히 다가간 이카루스가 한 순간에 추락하는 모습이 훤히 그려질 정도다. 그 ‘추락’의 순간은 물론 추락까지 고조되는 시간과 추락 이후의 시간까지, 모두가 완벽하다.

그 다음은 “Lily”가 장식한다. 이전의 상당히 화려한 연주와 다르게 조용한 분위기로 진행되는데, 사운드를 쌓는 능력은 여전해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으며 기어이 그 사운드를 터뜨린다. 이렇게 터지는 부근에서 싸이키델릭한 질감을 추가한 뒤 백마스킹 노이즈로 마무리하며 “Lily”는 음반 설명에 나온 ‘空 음악’과도 비슷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이후 이어지는 “안녕”은 속옷밴드가 동명의 곡에서 처음부터 강하게 시작한 것과는 다르게, 제법 단출한 구성의 기타 리프와 매스 록처럼 변칙적으로 박자를 맞추는 드럼 리듬을 중심으로 음반의 중반부를 채우고, 오프닝 곡의 두 번째 부분인 “소멸하는 밤 (Part.2)”가 뒤를 잇는다. 첫 부분의 인상적이고 무거운 드럼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사운드가 쌓여나간다. 하지만 첫 번째 파트와는 달라지는 구성 속에서 중간에 들어가는 노이즈 섞인 목소리가 분위기를 키우며, 곡은 점차 프렌지의 진정한 광란 혹은 광기 속으로 파고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기타 노이즈가 더욱 강하게 추가되고, 말소리들도 격해진다. 그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Nein Songs]는 프렌지의 세계의 정중앙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소멸하는 밤 (Part.2)“에 바로 이어지는 ”Apollo 11”의 첫머리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소름이 돋는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지만, “Apollo 11”은 테크니컬한 연주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적인 분위기와 임팩트를 만들기 때문이다. 우주의 허공을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이 반복되는 리프와 함께 천천히 고조되고, 나사(NASA)의 어딘가에서 샘플링을 따온 것만 같은 말소리가 추가되며 “Apollo 11”은 미니멀한 반복에서 출발해 더욱 웅장하게 몸뚱이를 부풀리며, 엔진처럼 부글거리던 두 대의 기타는 마침내 우주로 높이 솟아가는 것만 같은 강렬한 연주로 이어진다. 탁 트인 우주처럼 공간감은 넓어지고, 그 공간감을 바탕으로 연주는 다시금 미니멀한 처음으로 돌아가지만 넓은 공간감을 바탕으로 사뭇 다른 분위기를 가져다주며 마무리된다. 이렇게 “Icarus”의 추락과 정반대되는 지점에서 “Apollo 11”은 발사의 장면을 그린다. 잘 만든 단편 영화처럼 음악의 처음, 중간, 끝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배치한다. 연주를 통해 기술, 구성, 감정, 모든 측면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것, 프렌지의 매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 기세를 그대로 이은 “런던 대공황”은 지글거리는 기타를 통해 빠르고 정교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순식간에 터트리고, 조금 더 천천히 끌어가며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사운드 쌓고 부수고 다시 쌓기’를 잘 보여준다. 강렬하게 몰아가듯이 치고 나가는 첫 기타의 리프와 그 밑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두 번째 기타의 노이즈, 온갖 박자를 최대한 잘게 쪼개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드럼과 탄탄하게 받쳐주는 베이스를 통해 “런던 대공황“은 8분 동안 프렌지가 들려줄 수 있는 가장 황홀한 포스트록 사운드를 들려주며 [Nein Songs]의 광란을 최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음반의 중반부를 뚫고 지나간 광란을 “별주부전”이 넘겨받으며 음반 후반부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여기서부터 프렌지는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Nein Songs]의 거대한 청사진을 벗어나지 않는 정교한 연주로 탄탄하게 이 광란을 조성한다. 여기서는 광속으로 달려가지만 아무 것도 치지 않는 자동차나 수많은 난잡한 장치들로 되어있지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골드버그 머신처럼 질서 있는 혼란의 모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질서 있는 혼란이 지글거리는 폭발과 함께 터지는 마지막 순간은 “Sundance”로 이어진다. 연주의 분위기를 살짝 줄이고 슈게이징과 비슷한 노이즈를 조금 더 수면으로 올린 분위기에서 시작된 곡은 이전까지의 수많은 광란들이 천천히 누그러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지금까지 연주 속에서 느껴졌던 격정적인 감정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가장 정교하게 쌓아올려진다. 어느덧 길게 끌어올려진 분위기는, 신시사이저가 추가되며 다 함께 차근차근, 끝을 향해 닿는다. 그렇게 “Sundance”와 [Nein Songs], 그리고 프렌지는 모든 것이 마무리되며 조용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온스테이지의 표현을 빌자면) 허공을 찢고 날아오른다. “Icarus”나 “Apollo 11”처럼 무언가 쾅, 하고 터지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 감성을 천천히 달아오르게 한 다음 어느 순간 그 열기를 타고 열기구처럼 오르기 때문에, 멋진 마지막 곡들이 항상 그렇듯 숨 막히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며 음반을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프렌지의 음악은 기술적인 정교함을 바탕으로 자유분방한 동시에 안정적인 느낌을 가져오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통해 확실한 임팩트도 안겨준다. 그 때문에 언젠가는 멋지게 터지는 순간이 올 것을 알면서 항상 그 순간들에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정석적인 방식으로 최대한을 들려주는 구성을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프렌지의 음악이 단지 그러한 절정과 폭발의 순간만으로 벅찬 아름다움을 들려주진 않는다. 오히려 터지기 전에 세심하고 사려 깊은 사운드를 정교하게 쌓아올려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 터지는 그 순간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이들이 [Nein Songs] 한 장만을 내고 다른 밴드 활동으로 사라지는 게 무척이나 아쉬운 게 그 때문이고, 푸른 하늘의 음악 또한 좋아하지만 유영석의 발언이 무척이나 거대한 오독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프렌지는 연주를 통해 온갖 이야기와 감성들을 쏟아내며, 짜임새 있는 곡들을 통해 음반 전체를 유기적으로 묶는다. 이 모든 것들은 광란의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펼쳐지지만 다른 쪽에서는 철저히 준비되고 구성된 실력으로 소리를 쌓아올리며 이 광기와 혼란을 정밀하게 조율해낸다. [Nein Songs]의 아홉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구성 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 음반에 꽉 채워진 임팩트에 감동하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임팩트들은 2000년대 후반에 프렌지 만이 가져다 준 것은 절대로 아니다. 솔로 파트가 없는 또 다른 연주 밴드들이 기다리고 있다. | 나원영 onezero96@naver.com

 

One Response

  1. 사차원

    프렌지 제일 좋아하는 밴드중 하나인데 너무 아쉽습니다…
    나중에 재결합 했으면 좋겠어요.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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