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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로로스

가끔씩 해외 음악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장르 입문에 대한 내용들을 보곤 한다. 이 장르는 누구로 시작하면 좋을까요, 같은 질문들. 사실 음악을 듣다보면 누구나 한 번 쯤 겪어볼 일이다. 해외 포스트록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더 대중적이고 덜 실험적인 2~3세대 밴드들을 고를 것 같다. 그렇다면 국내 포스트록에서는 어떨까. 사실 나는 처음부터 뭔가 드센 밴드들을 추천하는 눈치 없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입문하기에 가장 좋은 국내 포스트록 밴드를 알려 달라 하면 당연히 로로스를 고를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여태까지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포스트록 밴드들 중에서 장르적 연주와 감정적 표현 사이의 끈이 가장 굵은 밴드고, 그렇기에 처음 듣더라도 그 감정선을 따라 금세 빠져들 수 있는 포스트록 밴드다. 물론, 로로스의 음악은 단순히 쉬운 포스트록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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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전에 소개한 잠의 3집에 참여했던 도재명과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 진실을 중심으로 지금도 연주자로써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제인, 최종민, 김석, 복남규가 함께 만든 로로스는 어쩌면 처음부터 작정하고 만든 포스트록 밴드였다. 하지만 로로스의 포스트록은 속옷밴드나 불싸조, 프렌지 등 굵직한 밴드들의 기타 중심 포스트록과는 조금 다르다. 2006년에 나온 첫 싱글 [Scent Of Orchid]는 익히 알려진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와 “Habracadabrah”의 조금 덜 정제된 버전이 실렸고, 왜인지 정규에서는 실리지 않은 “My Cute Gorilla”도 있다. 약간은 맥없다 할 수 있는 보컬이 웅성웅성 노랫말을 읊고, 건반과 기타를 중심으로 한 감성적인 연주에 첼로 선율까지 들어간다. 즉, 로로스의 포스트록은 최종민 / 진실의 기타뿐만 아니라 도재명의 건반과 재인의 첼로까지를 포함해 조금 더 넓은 범위의 악기들로 이뤄진 포스트록이다. 하지만 많은 밴드들이 그랬듯이 로로스도 처음부터 그들만의 음악을 완벽히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Scent Of Orchid]는 포스트록의 느낌보다는 이른바 ‘모던 록’의 느낌이 많이 나고 팝적인 성향도 강하다. 아직까지는 덜 여문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의 첫 버전이나 귀엽기 그지없는 분위기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My Cute Gorilla”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글거리는 기타로 멋진 합을 들려준 “Habracadabrah”는 그 이후의 로로스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에 기대감을 품게 하고, 이듬해 세 번째 빵 컴필레이션 음반에 실린 “성장통”에서는 훨씬 더 포스트록적인 연주 합을 보여주게 된다.

‘인디 록의 전성시대’ 운운하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던 2008년, 마침내 나온 로로스의 첫 정규 음반 [Pax]도 이 전성시대에 한 축을 담당한다. 더불어 음반은 국내 포스트록에 있어서 본격적인 전성시대를 열어젖히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정형화된 스타일이 생겨났지만, 국내에서는 포스트록의 흐름조차도 찾을 수 없던 때에 [Pax]는 국내에 본격적으로 포스트록이라는 흐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린 음반으로써 장르적인 가치가 높다. [Pax]의 초반부는 포스트록이라는 장르가 어떤 것인지를 로로스만의 방식으로 드러내는 곡들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국내 포스트록 입문에도 매우 좋은 음반일 것이다) 지글거리는 전자음의 인트로에서 이어지는 “I Say”는 절정으로 고조된 후 불꽃놀이 하듯 연주가 터지는 매우 전형적인 스타일의 곡이지만, 시작부터 끝까지를 긴장감 있게 이어주는 건반과 후반부부터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첼로로 로로스의 색깔을 더한다. 이전의 싱글에서 그렇게 드러나지 않았던 포스트록적인 감각이 한꺼번에 드러나며 이후에 이어지는 “방 안에서”와 “비행”도 마찬가지의 지글거리는 드론 사운드나 연주를 통해 확장되는 공간감, 감정의 진행처럼 이어지는 연주 등 정석적인 요소들과 로로스의 개성을 합쳐내며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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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x], 2008

 

이 방 안에서 비행하는 것만 같은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느낌은 “It’s Raining”이 비를 내려주며 바뀐다. 평균적인 7~8분의 곡이지만 로로스는 이 곡을 두 파트로 나눴다. 곡을 들으며 왜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파트 1은 2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기타와 건반을 통해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깐 후 베이스와 드럼이 들어오면서 이를 발전시키고, 마지막의 몇 십 초 동안 순식간에 절정으로 끓어오르자마자 곡을 끝내며 도돌이표를 찍고 돌아가 파트 2를 시작한다. 5분여의 파트 2는 파트 1의 분위기에 비가 온다는 노랫말을 중얼거리는 보컬과 함께 편곡하며 비슷하게 시작한다. 하지만 폭발이 예상되는 부분에서 그 예상을 벗어나 조금 더 빨라진 합의 연주를 들려준다. 전형적인 전개의 파트 1에서 이를 벗어난 파트 2의 스타일로 넘어가며 [Pax]는 기존의 포스트록이 아닌 ‘로로스의’ 포스트록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초반부가 ‘이것이 포스트록이다! – 일반 편’이었다면 이 이후에는 ‘이것이 포스트록이다! – 로로스 편’ 정도 되는 셈이다.

“Doremi”가 그 증거 비슷한 트랙으로,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동양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다. 제인은 주술사처럼 노랫말을 읊고, (사실 이 곡은 제인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타는 찌그러진 채로 싸이키한 소리를 내고, 전자음과 건반이 추가되며 주술적인 합은 더욱 강해진다. 이렇게 도레미, 도레미 거리며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을 들려주는 로로스는 포스트록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면서도 건반-기타-첼로의 편곡을 통해 로로스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평온한 분위기의 “바람”이 이어지고, 전형적인 전개의 포스트록으로 다시 돌아가 반복하는 건반 멜로디와 지글거리는 기타 노이즈와 드론을 최대치로 살린 “Pax”의 웅장함과 함께 [Pax]는 클라이맥스로 흐른다. 그리고 싱글보다 훨씬 더 풍성해진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와 “Habracadabrah”가 시작된다. 후반부의 이 두 곡은 초반부의 곡들처럼 폭발적이고 웅장한 공간감의 절정을 만들기보다는 천천히 끓여 올려가며 곡을 진행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오히려 기승전결 스타일이 들려주지 못했던 로로스의 자유로운 합을 보여준다. 첫 버전처럼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어지지만 훨씬 더 밴드로써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너의 오른쪽 안구에선 난초향이 나”나 짙게 깔린 건반을 중심으로 자유롭고 희망차게 뛰어가듯 진행되는 “Habracadabrah”는 음반의 후반부를 로로스만의 자유로운 포스트록-잼으로 색칠한다. 그 이후 가장 포스트록스럽지 않게, 조용히 진행되지만 음반에 전반적으로 깔린 우울함이나 쓸쓸함과 가장 어울리는 “She Didn’t Go To The Party”는 하나의 에필로그처럼 이어지며 웅장함 없이 박자감 있는 드럼과 첼로, 몽글거리는 건반 소리만으로도 로로스의 색깔을 담아낼 수 있다는 걸 들려줬다.

[Pax] 안에는 다양한 결의 음악이 담겼다. 우주를 평화롭고 쓸쓸하게 떠도는 느낌을 바탕으로 “I Say”와 “Pax” 등 포스트록의 전형성을 깔끔하게 들려주는 곡이 있는가 하면 “Doremi”와 “She Didn’t Go To The Party”처럼 아예 그 전현성을 넘어 싸이키델릭 록과 모던 록 / 팝 록으로 확장되는 곡도 있고, 이 장르적인 다양성을 건반과 첼로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로로스만의 편곡으로 합쳐낸 “It’s Raining”,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향이 나”, “Habracadabrah” 등의 곡들도 있다. 더군다나 노랫말의 측면에서도 여타의 연주 중심 포스트록 밴드들보다 훨씬 더 의미를 많이 두고, 이를 통해 연주적인 서정성에 문학적인 서정성까지 더하기도 한다. 곧 [Pax]는 전형적인 포스트록을 들려주면서도 로로스만의 색깔들도 그만큼 짙게 벤 음반이다. 기존의 스타일들을 빽빽한 연주로 모방하되 단순히 모방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새로움을 창조해냈다. 그 때문에 [Pax]는 국내의 포스트록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단순히 몇몇 밴드들의 특이한 시도들로만 받아들여지던 포스트록을 2008~10년의 다른 밴드들과 함께 확실하게 존재하는 ‘흐름’이자 ‘움직임’으로 만들었고, 더불어 로로스만의 음악적인 색깔까지도 자유롭게 드러냈다. 그렇기에 [Pax]는 탄탄한 밑바탕에서 피어오른 2세대 포스트록을 대표하는 음반으로써 손색이 없다.

 

[Dream(s) EP], 2009

[Dream(s) EP], 2009

 

이렇게 [Pax]로 여러모로 중요한 성과를 거둔 로로스는 다음 해인 2009년, EP라고는 부르지만 사실은 기나긴 한 곡이 담긴 [Dream(s)]를 낸다. 사실 이 EP, 혹은 곡이 많이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길고 아름다운 연주곡들을 심각하게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 30분짜리 한 곡이 담긴 EP는 로로스 최고의 작품이자 국내 포스트록에서 가장 빛나는 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곡이 이어져 있으나 1, 2, 3부로 나뉘어졌으니 각 ‘부’의 변화에 따라서 진행해보고자 한다. “Dream(s) 1”은 12분 간 이어지는 파트로 절반 직전인 6분대까지 기타와 그 위로 올라오는 첼로, 건반, 드럼을 중심으로 천천히 소리를 만들어간다. 기타 노이즈가 커지는 걸 시작으로 모든 악기들은 천천히, 따뜻하게 달아오르고 6분대에서 분위기를 조금 떠 빠르게 바꾼 다음 달려가기 시작한다. 쿵쿵거리는 드럼이 속도를 올리지만 그 중간에 홀로 울리는 오르간 풍의 건반과 함께 곡은 다시금 원래의 따스한 분위기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박차고 나간다. 포스트록 연주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게 소리를 통해 만드는 질감과 공간감인데, “Dream(s) 1” 후반부에서 울려퍼지는 깊숙한 노이즈들은 개인적으로도 꽤 좋아하는 더티 쓰리(Dirty Three)나 두 메이크 세이 씽크(Do Make Say Think), 혹은 모과이(Mogwai)처럼 수많은 악기들의 구성으로 넓은 공간감을 만드는 밴드들을 떠오르게 한다. 로로스의 수많은 연주들 중에서도 가장 황홀한 연주이다.

이렇게 [Dream(s)]는 순간순간 분위기를 전환시키면서 서서히 긴장감을 키운다.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전반적으로는 따스한 분위기에서 짙게 깔린 기타 노이즈를 통해 넓은 공간감을 만든 1부는 “Dream(s) 2”에 들어오며 조금 다르게 변하는데, 분위기적으로 비슷하게 이어진다 생각하던 찰나에 격한 기타 소리가 들어오면서 여태까지 쌓아놓은 따스함을 뒤집고 광폭하게 진행된다. 곡은 첼로와 건반으로 펼쳐진 따스하고 몽환적인 꿈에서 조금 더 기타와 리듬 파트 중심의 차가운 꿈으로 넘어간다. 저 너머에서 노이즈가 들려오고, 속도는 천천히 드럼 비트에 맞춰서 빨라진다. 더욱 거세지는 속도와 함께 싸이렌 소리를 비롯한 각종 노이즈들이 곡의 중심을 뚫으며 곡은 1부에서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곳으로 간다. 2부의 마지막 부분도 1부의 마지막과 비슷하게 빠른 속도에서 전개되지만 연설 소리와 함성 소리(분위기상 히틀러의 그것을 샘플링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싸이렌, 허밍, 연주가 혼란스럽게 섞인 탓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감각을 이어간다. 갑작스럽게 끝이 나는 이 혼란은 기타의 차가운 드론 노이즈로 서서히 달궈지고, 이 여운을 길게 늘여 “Dream(s) 3”로 이어진다.

분위기가 180도 바뀐 2부에서 온갖 노이즈에 뒤흔들렸는지 사라진 건반은 3부로 들어오면서 살며시 나타나 분위기를 다시 뒤집고, 다시 한 번 차분하게 따뜻한 꿈을 이어간다. 기타와 온갖 노이즈가 지배했던 2부와 다르게 다시 베이스가 들어오고, 드럼이 들어오고, 첼로가 들어온다. 건반 연주와 드럼의 조합이 “She Didn’t Go To The Party”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곡은 이윽고 도재명의 가녀린 보컬과 함께 기타 노이즈를 조금 더 따스하게 끌어올린다. 기존의 악기들과 분위기가 돌아오는 3부도 후반부로 가면 노이즈에 뒤덮이지만, 이는 2부에서의 차가운 노이즈가 아닌, 1부에서의 따스함을 더한 노이즈이면서도 2부의 차가움도 어느 정도 가져간다. 1부와 2부를 적절하게 섞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의 이야기처럼 따스한 세계(1부)에서 출발해 노이즈로 가득 찬 차가운 세계(2부)의 여정을 겪으며 조금은 달라진 모습(3부)으로 원래 세계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음악으로 통해 드러내는 일종의 서사성은 [Dream(s)]에서 가장 중요하며 국내 포스트록에 있어서도 빛나는 성취가 된다. 물론 구성적으로 훌륭한 포스트록 노래들은 “멕시코행 고속열차”처럼 이전에도 많은 곡들이 있어왔고 그 이후에도 많지만, 3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정교하게 음악적인 서사를 짜는 시도는 없었다.

로로스가 [Dream(s)]에서 이룬 것은 긴 호흡의 구성과 서사를 그들만의 색깔을 확실히 담아내며 들려줬다는 점이다. 3부의 구성은 서-전-결의 서사적인 구성과도 같고, 이 속에 각 부에 따라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며 그 변화를 통해 음악적인 서사가 생겨난다. 여기서 로로스는 따스함-차가움-따스함을 오가는 구성을 택했고 이 변화는 기타 노이즈와 첼로-건반이라는 두 개의 요소들을 각 부마다 다르게 배치해 질감과 공간감을 변주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곧 [Dream(s)]는 [Pax]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노랫말까지도 배제하며 철저하게 구성적이고 서사적인 측면에서 오로지 포스트록 연주에만 접근한다. 이 서사적 연주는 30분 간 매우 훌륭하게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음악적 서사를 통해 나타나는 감정적인 측면과도 결합한다. [Dream(s)]는 연주, 감정, 구성, 서사, 질감, 공간, 모든 것들이 완벽한 구성 속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기계 같은 곡이자 EP다. 로로스의 정점이라 말하고 싶고, 국내 포스트록에 있어서도 그리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순간이다.

 

[W.A.N.D.Y.]. 2014

[W.A.N.D.Y.]. 2014

 

[Dream(s)] 이후의 로로스는 멤버들의 군 입대로 공백기를 갖는다. ‘님들 왼쪽 안구에선 무슨 향이 나나요?’라고 외치던 팬들의 성원 속에서 성공적으로 컴백하고도 2~3년이 지난 2014년, 햇수로는 6년 만에 로로스는 정규 2집 [W.A.N.D.Y]로 돌아온다. We Are Not Dead Yet,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선언으로 들리는 첫 곡 “W.A.N.D.Y”는 건반 소리를 천천히 끌어올린 후 기타와 첼로 소리로 넘어가는 환상적인 인트로를 선보인 후 페이드아웃하며 자연스레 “U”로 넘어간다. 지글거리는 기타 노이즈와 넓은 코러스를 통해 여전한 멋지게 웅장한 공간감을 들려주는 곡은 노랫말을 통해 ‘U’, 즉 당신이라는 주제를 제시한다. [W.A.N.D.Y]는 [Pax]보다도 노랫말의 위치가 더욱 중요해졌는데, [Pax]의 노랫말이 내면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면 [W.A.N.D.Y]는 나뿐만이 아니라 너와 우리까지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U”는 음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곡으로써 로로스의 사뭇 달라진 세계관을 드러낸다. 느슨한 한 곡처럼 이어지는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과 “춤을 추자”도 마찬가지로 건반과 첼로, 그리고 코러스를 통해 웅장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에서 곡은 보컬 뒤로 나지막이 울리는 첼로로 긴장감을 천천히 달구고, 마침내 절정과 폭발이 찾아올 거 같은 순간 일순간에 풀리며 “춤을 추자”로 이를 넘긴다. [W.A.N.D.Y]의 첫 클라이맥스인 곡은 로로스의 곡 중에서도 가장 따스하면서도 가장 빽빽한 연주를 담는다. 건반을 중심으로 모든 악기들은 ‘아름다운 밤 우린 꿈을 꾸고 / 외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라는 음반의 전체적인 메시지와 함께 훌륭한 서사적 구성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이전에 해소되지 못했던 긴장감을 건반 연주와 기타 노이즈를 통해 서서히 고조시킨 후 세찬 연주와 함께 이 모든 것들을 광활한 공간감 속에서 해소하고, 감동적인 순간을 선사한다.

[W.A.N.D.Y]의 초반부는 이렇게 전형적인 방식의 포스트록 전개를 이어가고, 비슷하게 시작한 [Pax]와 비교해서 들어도 훨씬 더 깊어지고 넓어진 공간감을 자랑한다. 그리고 초반부에 이어 등장하는 곡들은 음반의 중앙에서 포스트록의 일반적인 어법을 거부하는 방식으로써 다시금 로로스의 포스트록을 드러낸다. “Undercurrent”는 소리 밑의 숨겨진 기류에서 달음박질하는 드럼의 정교한 박자 위로 연주를 얹는다. 곡은 긴장감을 꽉 쥔 채로 이야기를 펼치고, 기승전결이나 폭발 없이 정교한 연주에 집중하며 중간 중간 복잡하게 짜인 연주까지도 들려준다. 자글거리는 기타는 첼로의 선율과 만나 한층 더 복합적으로 울리고 꿈결 같았던 분위기는 한층 더 진지해지며 그 저류를 들려준다. 이 저류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Homo Separtus”는 처음부터 빠른 비트의 드럼과 기타로 시작하다가 건반과 함께 한껏 조용해진 후 다시 연주를 시작한다. 이후 “Dream(s) 2”처럼 제법 차가운 분위기와 노이즈로 이 분위기를 이어가며 후반부의 복잡한 연주가 이를 심화시킨다. 이처럼 더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음반의 중앙을 꽉 채우며 로로스의 세계관은 조금 더 넓어진다. “Monster”에서는 앞 곡들의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차분함을 유지하지만 잘 들어보면 그 뒤편으론 연주들이 꽤나 정교한 혼란과 노이즈 속에서 진행되고, 마찬가지로 속도감 있게 마무리된다. 이후 정석적인 ‘폭발’ 연주에 지극히 충실한 “Babel”이 이어지고, 이전 곡들의 분위기를 그대로 받으며 실험적이었던 음반의 중반부를 다시금 익숙한 느낌을 담아 후반부로 이끈다. 음반 중심부의 이 네 곡은 시종일관 혼란스럽고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곡들이라 본다. 꿈에서 평화롭게 홀로 부유하는 감각과 감수성이 현실에 발을 디뎌 나, 너, 우리를 바라보기 때문일까. 계속 긴장감을 쌓아가는 “Babel”은 마침내 ‘오래된 꿈들이 모이는 그 곳’으로 향해가자는 이야기와 함께 격정적으로 터져 나온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희망과 꿈이 있는 그 곳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음반의 후반부를 여는 “Homevideo”는 다시금 리드미컬한 분위기로 진행되며 희망의 ‘그 곳’으로 향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리듬과 멜로디를 자유롭게 펼쳐가며 로로스는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Senna”는 레이싱 선수의 이름이 제목인 만큼 속도감이 은근하게 베여있고, 그 덕에 음반에서 가장 벅차오르는 감정이 조밀한 사운드 속에서 강하게 느껴진다. 기타와 첼로의 노이즈를 점차 키운 다음 여태까지 만들어놓은 공간감에 은은하게 퍼뜨린 후 곡은 두근거리며 천천히 음반의 마지막을 향한다. 마침내 “We Are Not Dead Yet”가 나온다. “송가”가 제목답게 일종의 아웃트로라고 생각하면, 음반을 닫는 마지막 이야기는 이 곡에 있을 것이다. 잔뜩 웅장한 분위기로 시작하며 곡은 제목처럼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걸 온몸으로 외친다. 이 때문에 나는 [W.A.N.D.Y]가 로로스가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담은 음반이라 생각했다. 오랜 길을 헤맨 끝에 청자들 앞에 다시 당당하게 선 그들이 긴 여정동안 이룬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처럼 당당하게 느껴지는 첫 부분이 끝나고, 기타 소리가 들려오면서 본격적으로 곡이 진행된다. 달밤에 춤을 추는 것만 같이 분위기는 천천히 고조된다. 온 악기들이 여태까지 만들어놓은 넓디넓은 공간의 지붕을 아예 열어젖혀버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는 것 같은 곡은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서 돌아온 로로스가 들려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그 찬란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마지막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난 합창은 웅장하게 부푼 연주와 함께 울려퍼지며 천천히 페이드아웃 한다. 그렇게 음반은 마지막에 닿고 “송가”가 시작된다. 건반을 시작으로 천천히 이어지는 연주와 후반부를 아름다운 여운으로 적시는 제인의 목소리가 깔린다. 시종일관 리듬과 연주, 실험과 시도를 들려줬고 무엇보다도 광활한 공간감과 로로스 특유의 서정성으로 부글거리며 그들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한 [W.A.N.D.Y]는 후일담을 말하듯 차분한 분위기에서 조곤조곤 이어져 마지막 여운과 함께 끝을 맺는다.

 

 

[Pax]로 자신의 내면을, [Dream(s)]로 꿈을 탐구했던 로로스는 [W.A.N.D.Y]에서 나와 너와 우리, 세상과 그 속의 이야기들을 탐구한다. 기나긴 여정의 결과물과 우리들은 죽지 않았다는 선언이 아름답게 합쳐진다. 음반을 죽 들으며 결국에 [W.A.N.D.Y]는 희망에 대한 음반이라고 생각했다. 2014년이 개인적으로 조금 힘들었던 탓도 있겠지만 나와 너, 우리의 이야기를 하며 더욱 넓어지고 깊어진 동시에 더욱 따스하게 전해지는 이야기의 핏줄에서 그 감각을 느낀 거 같다. 포스트록은 장르적으로 이 주제와 가장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전에 이미 들려줬던 연주 면에서의 탁월함은 더욱 프로그레시브해진 시도들과 만나며 모든 방향으로 확장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세계 속에 사는 존재들을 바라보는 희망의 시선으로 이어졌다. 그런 측면에서 [W.A.N.D.Y]는 포스트록이, 음악이 어떻게 이야기와 그 정서에 면밀하게 맞닿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가장 좋은 예시다. [W.A.N.D.Y]의 포스트록을 통해 로로스는 다시금 희망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나온 싱글 “Time”으로 상실의 시간들과 그럼에도 계속 가져가야 할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승열의 목소리 또한 이들의 이야기와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로로스는 조금 더 활동적으로 행보를 이어가는 듯 했지만, 슬프게도 몇 달 뒤 해체하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활동 정비’를 선언했다. 돌아올 여지는 남겨두고 있다지만, 로로스의 세 번째 이야기는 그들이 훨씬 더 먼 길을 돌아온 후에 만날 수 있거나 아예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포스트록을 생각할 때 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한다. 첫 번째 방향은 감히 ‘포스트’를 자청하는 만큼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거나 재창조하는 음악적인 실험과 시도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로 향하고, 두 번째 방향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 정형화된 장르의 틀 안에서 이 애매한 장르를 어떻게 활용하는 지로 향한다. 그런 입장에서 로로스는 두 방향 모두 큰 발자취를 남긴 밴드다. 사실 이들의 사운드가 해외에도 전혀 없었던 사운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포스트록이라는 장르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도 않던 상황에서 로로스는 2008~10년의 다른 밴드들과 함께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포스트록 흐름이 시작되는 물꼬를 텄다. 어쩌면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보자는 이 글의 가장 근본적인 취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밴드가 아닐까. 그리고 이는 다음 의의로도 이어진다. 자신을 들여다보거나 타인과 함께 춤을 추거나 상실의 시간들을 돌아보거나, 그럴 여유가 전혀 없는 세계에서 로로스는 가만히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며 희망을 노래했다. 이러한 의미는 포스트록이라는 새로운 시도와 함께 결합하며 최대의 효과를 냈다. 수많은 훌륭한 포스트록 밴드들처럼, 로로스도 감정과 정서를 그에 맞는 형식에 탁월하게 담아냈다. 좋은 이야기는 그 이야기와 가장 맞는 방식에서 최고로 빛난다. 로로스는 그것을 해낸 밴드다. 그 때문에 ‘우리의’ 포스트록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로로스는 결코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이 빛나는 성과들은 물론 다음에 등장할 밴드들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 나원영 [email protected]

One Response

  1. rockkids

    로로스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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