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록, 인스트루멘탈 록을 평소 자주 접하거나 조예가 깊냐고 물으면 그렇지 못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노(MONO)의 음악은 내한 소식을 들은 이후로 이상하게 꾸준히 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공연을 보게 되었고, 모노 음악을 접하라는 운명인가보다 싶을 정도로 어찌저찌 그들의 연주를 눈앞에서 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모노의 음악을 만나는 과정조차 모노의 음악을 감상한 후기와 닮아있다. 공연 후기를 쓰는 주제에 운명론적인 이야기나 감상문과 같은 이야기를 쓰는 건 우습지만, 모노의 음악은 표현을 표현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해본다.

 

 

모노는 그 등장부터 에픽(Epic)했다. 모노를 담기엔 작은 공연장인가 싶었지만 좋은 음향 시스템 덕분에 사운드스케이프를 충분히 커버하고 또 멋진 연주를 담아내는 데 성공적이었다. 특히 극단으로 치닫는 구간에서도 공연장은 모노를 커버해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멋진 연주에 괜히 더 눈길이 갔다. 에너지는 공연장 끝까지 퍼졌고, 말 그대로 뿜어져 나왔다.  멤버의 배치 자체도 음악으로 구현되는 것 같았다. 베이스의 존재감이 컸지만 좌우 두 기타가 만들어내는 모습이 아무래도 훨씬 크게 다가왔다. 이펙터를 다루는 모습부터 클라이막스를 이어나가는 모습까지 그 동작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조명도 한 몫 했고, 그야말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음악이었다.

다만 현장에서 보는 모노의 연주는 듣는 것과는 또 달랐다. 디테일이 얼마나 들리느냐와 같은 문제가 아니라, 약간의 다른 느낌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특히 글로켄슈필이 유독 공연 전체를 아우르는 데 있어 은근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았고, 트레몰로 연주나 이펙트는 순간 순간 크게 다가올 때가 있었다. 무엇보다 앨범이 전달하는 바가 서사라면 라이브가 전달하는 바는 감정이었다. 인간이 가지는 하나의 심상을 거대한 무언가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물론 앨범과 라이브 양 쪽에 그러한 것들이 모두 담겨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부분에 강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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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의 공연을 다 보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길에 모노의 음악을 다시 듣지는 않았다. 그리고 후기를 망설이던 찰나에 다시 들어봤는데, 그 라이브가 언뜻 음악과 겹쳐 떠오르는 김에 짧게 이렇게 글을 남겨본다. | 박준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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