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GY!BE

 

포스트록이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가 애매하게 붙인 ‘비-록적 목적을 위한 록 연주(using rock instrumentation for non-rock purposes)’라는 정의에서 유령처럼 떠돌며 ‘록 이후의 록’이라는 애매한 이름의 애매한 흐름으로 존재하던 1990년대 말, 일련의 밴드와 음반들이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그 때부터 포스트록은 하나의 하위 장르로써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존재하게 되었다고 본다.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이 ‘2세대’ 포스트록 밴드들의 경향 – 록적 연주에 대한 집중과 그 연주를 웅장하게 늘리는 방법론, 그 방법에서 나오는 일련의 격한 감정들은 곧 포스트록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축복이 되었으며 이후의 포스트록을 옥죄는 저주가 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다. 그 ‘2세대’를 중심으로 꽃폈던 포스트록은 장르로써의 한계에 다다른 이후 예전만큼의 창조성이나 힘을 잃었다. 포스트 메탈과 매스 록, 노이즈 록, 슈게이징 등 록이라는 거대 장르 내부에서의 결합, 혹은 전자음악과 재즈, 클래식 등 타 장르와의 혼합이 일종의 ‘록적 목적을 위한 비-록적 연주’ 따위의 방안이 되기도 했지만 제자리걸음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떨쳐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포스트록은 이제 끝인가?

그 모든 포스트록의 축복과 저주의 중심에 있을 밴드는 단연코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speed You! Black Emperor, 이하 GY!BE)다. 캐나다의 좌파 무정부주의 집단으로 시작한 GY!BE는 포스트록이라는 장르의 대표적인 방법론을 만드는 동시에 그들 스스로가 하나의 음악적/정치적 메시지가 되었다. 그 메시지는 세기말과 세기 초의 가장 독보적인 소리가 되었으나, 기나긴 휴지기가 찾아온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장르의 대표이자 한계가 되었고, 포스트록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어쩌면) 미래가 되었다. 그 와중에 포스트록이라는 장르 자체는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2012년, 거의 10년 만에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들은 이번까지 포함하면 벌써 세 장의 음반을 더 냈다.

1997년의 데뷔 음반 [F# A# ∞]에서 시작해 가장 최근에 나온 여섯 번째 음반 [Luciferian Towers] 사이에는 20년의 간극이 있다. 디스코그래피로만 따지면, 1997년부터 2002년까지 3장의 정규 음반과 1장의 EP가 있고, 그 이후의 긴 휴지기를 사이에 두고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또 3장의 음반이 있다. 올해는 GY!BE가 본격적인 음반 활동을 시작한지 20년 되는 해이자 컴백 음반을 낸 지 5년이 되는 해다. 2017년에 GY!BE와 포스트록의 과거/현재/미래를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포스트록은 이미 지나간 음악이 아닐까. 여기에 어떤 음악적인 의미가 있을까. 이미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다 나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Luciferian Towers](이하 [Luciferian])를 들었고, 다시 한 번 GY!BE를 생각해보았다. 루시퍼의 탑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탑을 올라가면 답 비스무리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Luciferian]은 당연히, GY!BE의 컴백 이후 근작들인 [‘Allelujah! Don’t Bend, Ascend!](이하 [Allelujah])와 [Asunder, Sweet and Other Distress] (이하 [ASAOD])와 함께 연계해서 생각하게 되는 음반이다. 어떻게 들어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변한 것이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두 음반들은 컴백 이전과는 차별화되는 꽤나 많은 특징들을 갖고 있다. GY!BE의 시간적인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휴식/컴백 전후의 변화들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가장 처음인 세기말의 음반들과 가장 최근인 2010년대의 음반들에서는 당연하게도 그 차이와 변화들이 들린다. 이것이 진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퇴보로 들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GY!BE의 포스트록은 천천히 변해왔다는 점이고 그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변화의 가장 앞인 [Luciferian]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도 그 변화의 시간들을 이야기해야만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는 GY!BE 커리어의 시작인 2000년대 이전, 포스트록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고도 혹은 정립했다고도 할 수 있는 시점이다. 세기말의 두 음반 [F# A# ∞]와 [Slow Riot for New Zero Kanada EP](이하 [Slow Riot])이 이 때에 있는데, 무정부주의/좌파 집단에서 출발한 만큼 GY!BE는 대놓고 그들의 성향을 담아냈다. “The Dead Flag Blues”와 “BBF3” 등의 대표곡들은 직설적인 스포큰 워드(Spoken Word) 형식의 정치적인 메시지들을 샘플링으로 따오며 포스트록적 연주가 오히려 일종의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의 음반들이 큰 칭송을 받는 건 그것이 ‘포스트록’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의 사회적인 절망과 종말의 시선을 음악적으로 가장 잘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미 “The Dead Flag Blues”의 노랫말이자 시구들인 “차는 불타고 있고, 아무도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The car is on fire, and there’s no driver at the wheel)”나 “나는 지갑을 열었고, 거기엔 피만이 가득 차 있었다(I open up my wallet, and it’s full of blood)”가 일종의 밈 같은 위치에 올라버린 것을 생각하면 (유튜브 댓글들을 죽 내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F# A# ∞]와 [Slow Riot]은 종말론적이거나 절망적인 세기말적 메시지에 있어서 하나의 전범을 이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때의 음악들은 그들이 이후의 확실한 포스트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으며, 샘플링의 도입은 하나의 시도로써 사용했다고 느껴진다. (물론 샘플링 또한 이후의 포스트록에 종종 등장해 나름의 방법론이 되기도 했지만.) 그리고 그 방식들을 주제적인 요소들과 훌륭하게 결합시켰기에 세기말의 GY!BE가 그렇게 많은 고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 종말론적인 세기말의 시선이 끝난 후에 나온 [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s to Heaven](이하 [LYSFLATH])과 [Yanqui U.X.O]에서야말로 GY!BE식의 포스트록의 정수가 있다고 보며, 결국 이 시기를 중심으로 포스트록에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내려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들의 음반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으며 가장 유명하기도 한 [LYSFLATH]는 이 전후의 음반들의 중간 지점에 놓여있는 과도기적인 음반으로써 어떻게 보면 이전의 세기말적 특징과 이후의 세기초적 특징을 한꺼번에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세기초’적 특징은 무엇일까?

 

 

단서는 당연하게도 [Yanqui U.X.O]에 있는데, 세기말의 음반들과 먼저 비교하자면 [Yanqui U.X.O]에는 기나긴 읊조림 대신 기나긴 연주에 초점을 둔다. 무엇보다도 GY!BE는 [Yanqui U.X.O]에서 관현악을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명민하게 이용하며, 이 클래식적인 편곡과 록적인 웅장함의 만남은 2002년 당시 미국의 부시 정권이 불러온 정치적 상황들에 대한 GY!BE적인 분노와 맞아떨어져 “Rockets Fall on Rocket Falls” 같은 명곡들을 만들어낸다. 방법론적으로만 보자면 [Yanqui U.X.O]의 GY!BE는 그 직전까지 쓰이던 샘플링의 방법론에서 졸업해 연주 자체에 몰두하는 방안을 택했으며, 클래식적인 편곡이 이 시기에 새롭게 도입된다. 그렇기에 이 즈음부터 GY!BE가 포스트록이라는 장르의 주된 방법론을 어느 정도 확립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1

세기말과 세기초의 중앙에 있는 음반, [LYSFLATH]는 샘플링 도입과 클래식 편곡이라는 방법론 모두가 녹아있는 음반이다. 더불어 포스트록의 또 다른 운용법이라 할 수 있는, <우포찾>식으로 말하자면 ‘기승전결’의 방식이 담겨있기도 하다. 클래식과 록을 환상적으로 결합한 “Storm”의 완벽한 기승전결, “Static”의 고요하고 지글거리는 노이즈, “Sleep”의 샘플링 활용과 이어지는 포스트록적 전개, 소리-조각-모음들과 포스트록+관현악적 편곡이 잔뜩 섞인 “Antennas To Heaven”, 그리고 이를 모두 끝맺는 노이즈의 긴 잔상까지 – 음반에는 수많은 소리가 담겨있다. 이 다양한 시도들을 한 번에 그러모으는 동시에 GY!BE는 이전까지의 종말적 시각을 걷어내고, 음반을 여닫는 “Storm”과 “Antennas To Heaven”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희망적인 멜로디와 음색들을 통해 하나의 시대가 끝나는 동시에 시작되는, 그렇기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희망을 노래한다. 역설적으로, 가장 어두운 것들을 노래한 그들인 만큼 GY!BE가 노래한 절망에서 출발한 희망은 그 어떤 희망보다도 더욱 값졌다. [LYSFLATH]가 위대한 포스트록 음반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많고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장르 자체에 담긴 가능성들, 방법들, 이야기들을 한 번에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이 시기의 GY!BE는 장르적인 시도와 한계를 모두 담아낸 후 환하게 폭발했으며, 아쉽게도 이 폭발은 이후 급속도로 사그라든다.

그 이후 여러 해들이 지나가고, 포스트록의 시대는 빠르게 저문다. (당연히 GY!BE의 활동 중지만이 이유는 아닐 테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장르 자체에 대한 비관이 짙어지고 있을 무렵 다시금 등장한 GY!BE는 아직 포스트록이라는 장르에 남은 다른 가능성들, 그리고 그들에게도 남은 또 다른 가능성들을 들려준다. 2012년, [Yanqui U.X.O]가 나온 지 10년 만에 그들의 그 다음 정규 음반 [Allelujah]가 나온다. (여담이지만 흥미롭게도 90년대에 [Soundtracks for the Blind]로 대단원을 마친 후 10년이 넘는 부재 끝에 다시 돌아온 스완스(Swans)도 같은 해에 [The Seer]을 내며 마찬가지로 남아있는 가능성들을 탐구한다. 스완스의 이야기는 또 언젠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간 만큼 GY!BE는 다시 그들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을 이전의 포스트록에 도입하는데, 바로 드론이다.

보리스(Boris)나 어스(Earth), 스타즈 오브 더 리드(Stars of the Lid)의 사례를 보면 포스트록과 드론 노이즈의 조합 또한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게 느껴지는데, GY!BE는 [Yanqui U.X.O]에서의 관현악 편곡을 이와 연결 지으며 관현악과 록으로 이뤄진 노이즈를 만들어낸다. GY!BE의 가장 위대한 연주곡인 “Mladic”과 이에 비해 다소 가려진 마찬가지의 대곡 “We Drifted Like Worried Fire”의 혼란스럽고 웅장하고 분노 어린 긴 ‘소음’은 그들이 포스트록에서 다시 찾은 가능성을 진정으로 들려준다. 여기서 ‘다시 찾은 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 두 곡이 컴백을 전후로 생겨난 곡이 아닌, 활동 중지 이전의 시기(그러니까 2000년대 초반)부터 연주하던 곡들이기 때문이다. 컴백 이후의 GY!BE는 그 이전의 시간동안 라이브로 연주했던 곡들을 다시금 스튜디오 녹음의 형태로 담았는데, “Mladic”과 “We Drifted Like Worried Fire”은 곧 [Yanqui U.X.O]의 클래식과 정치적인 분노를 2010년대적으로 연장하는 동시에 최신화시켜 다시 가져온 셈이다. 곧 [Allelujah]는 새롭게 도입한 드론과 [Yanqui U.X.O]에서부터 이어진 클래식적 편곡의 포스트록적 결합을 탐구하며, 동시에 활동 중지 이전에 끌어올린 정치적인 분노([Allelujah]는 당시의 경제적 위기와 오큐파이 운동의 기운을 담았다는 평이 많은데, 실제로 “Mladic”의 마지막은 시위 현장에서 녹음한 것 같은 소리를 입혔다. 세기말식 샘플링 또한 최신화된 셈이다)를 드론에 더해낸다. 이렇게 시간을 가로지르며 만들어진 분노-드론은 종말-샘플링과 희망-관현악 이후 GY!BE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러한 시도들이 가장 새롭게 피어났어야 할 2015년작 [ASAOD]에서는 분노-드론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으며, 어쩌면 GY!BE의 첫번째로 실패한 음반일 수도 있겠다. 호기롭게 시작한 “Peasantry or ‘Light! Inside of Light!'”는 “Mladic”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웅장하고 이국적인 효과를 주지만 이는 이어지는 드론 트랙들이 너무 길게 늘어지는 동안 사라진다. “We Drifted Like Worried Fire”처럼 이를 다시 끌어올리는 힘도 없으며, [ASAOD]는 찝찝한 뒤끝을 남기고 끝난다. 개인적으로는 이 실패로 GY!BE가 그들의 새로운 분노-드론의 기술을 다시 한 번 고민했기에, [Luciferian]이라는 지금-여기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어찌되었던, 1997년의 [F# A# ∞]에서 출발해 시간은 다시 지금-여기, 2017년의 GY!BE로 왔다.

 

Godspeed You! Black Emperor | Luciferian Towers | Constellation, 2017

 

GY!BE, ∞

GY!BE는 흐르는 시간에 맞춰 변화했고, 그 과정들로 끊임없이 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종말을 읊조리는 샘플링에서 절망(과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을 연주하는 클래식적 편곡으로, 그리고 거대한 분노가 가득 찬 드론으로. 그 과정들은 이제 현재의 [Luciferian]에 다다랐다. 세기말과 세기초, 그리고 컴백 이후의 시간들은 이 지점에서 하나로 소급된다. 바로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Luciferian]은 메시지적으로는 [F# A# ∞]의 종말적인 세계 인식과 [Allelujah]의 강렬한 분노를 섞어놓아 GY!BE의 등장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해 보이는 세계(개인적으론 ‘세기말’이란 게 시간대보다는 어떠한 비유가 되어가는 바로 지금이 세기말보다 더욱 세기말 같은 시기라고 본다)를 담아냈다. 포스트록의, 혹은 GY!BE의 방법론의 측면으로는 [Yanqui U.X.O]의 숨 막힐 정도로 정교한 클래식적인 편곡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내 [ASAOD]의 영 좋지 않은 드론 활용을 상쇄해내며, 관현악 사운드로 만들어진 드론 노이즈가 탄생한다. 그리고 결국에 이야기하려는 것들은, [Slow Riot]과 [LYSFLATH]에 담긴 공통적인 절망의 신호와, [LYSFLATH]에서 가장 벅차게 느낄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다. 적어도 나는 [Luciferian]에서 그 순간들을 느꼈다. 드론과 클래식과 펑크로 만들어진, 그리고 절망과 희망, 끝과 시작을 이야기하는 포스트록이 있었다.

음반을 여는 “Undoing A Lucifeian Towers”에서 7분 간 관현악 및 록의 소음과 함께 길게 (그러나 적당하게) 이어지는 드론 노이즈는 여기에 클래식적인 편곡과 펑크적인 분노의 에너지, 장엄한 포스트록적 공간감을 만나며 인상적인 후반부의 멜로디로 귀결된다. 이 과정에서 드론은 천천히 모든 분위기를 휘어 감으며 진행해, 피할 수 없는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이 멜로디는 일종의 주선율이자 상징적인 멜로디가 되어 음반의 이후 부분들에 등장하며 음악적으로 주제를 드러낸다. 사실 이 지점부터 음반은 [ASAOD]의 환상적인 초반부를 (슬프게도) 덮어버리는 후반부의 늘어지는 드론을 뛰어넘는다. 이어지는 “Bosses Hang”은 그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잠시 소강시킨 다음 다시금 천천히 끌고 온다. 찌그러진 기타 노이즈와 이 주위를 부산히 오가는 클래식한 소음들의 만남이 훌륭하게 오르내리는 구성과 멜로디를 만나고, “Mladic”과 “Storm”, “BBF3”에 견줄만한 GY!BE적인 치밀한 대곡이 다시 한 번 구현된다. 이렇게 음반은 이제 [Allelujah]의 지점에도 닿는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Fam/Famine”에서는 [Yanqui U.X.O]의 요소들, 특히 “Rockets Fall on Rocket Falls”에서의 클래시컬한 편곡들을 다시 한 번 가져오고 짧은 순간에도 빽빽한 구성을 놓치지 않으며 [Allelujah]에 간간히 있었던 텅 빈 드론의 순간들마저도 가볍게 넘는다. 그리고 “Anthem for No State”로 다시 한 번 대곡 지향의 성향을 유감없이 들려주며 훌륭하게 음반을 마무리한다. 이 마무리는 개인적으로 [LYSFLATH]의 벅차오르는 마무리와도 동급으로 느껴진다.

[Luciferian]은 컴백 이후 GY!BE의 가장 훌륭한 음반이라고 생각하며 초기만큼은 아니더라도 포스트록적의 창의성을 GY!BE 안에서만큼은 어느 정도 살려낸 음반이다. 여러 측면에서 밴드는 이전의 모든 시간들을 집대성해 [F# A# ∞] 이후로 쌓아 온 20년 간의 행보를 깔끔하게 한 점으로 수렴한 다음, 다시금 발산을 준비하는 듯싶다. [ASAOD]로 기대치가 확 낮아졌던 만큼 그들의 가능성은 다시 높은 탑처럼 솟아오른다. 물론 세기말~세기초에 포스트록의 방법론을 정립하며 모두의 극찬을 받은 [LYSFLATH]나 [F# A# ∞]만큼 [Luciferian]도 음악 외적으로도 중요한 음반이 될 지는 미지수다. 2017년의 GY!BE는 이미 포스트록의 시간이 지나간 시대의 GY!BE다. 누구도 이 문제들에 대해 확답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포스트록에서 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은 이미 오래 전에 남김없이 등장했을 수도 있을 것이며, GY!BE도 결국에는 이미 이전에 보여줬던 것들을 다시 깔끔하게 다듬어서 [Luciferian]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로만 보자면 어떤 면에서 [Luciferian]은 더욱 진보된/완성된 형태의 [Allelujah]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GY!BE 자체가 진보했는가, 하면 그건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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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GY!BE에게는 또 다시 영광의 시간들이 찾아오고, 포스트록에는 또 다시 (존재했는지도 일단 미지수지만) ‘전성기’가 찾아올 것인가?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일종의 자조와 조롱 섞인 말투로 말하듯, ‘답은 포스트록이다’고 말할 수 있을까? [The Seer]이나 [Allelujah] 같은 음반들이 등장하며 2010년대의 포스트록은 90년대 초중반처럼 한 번 더 록에 있어서는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이 시점에 과연 다시 한 번 어떠한 새로움과 가능성이 찾아올지는, 당연하게도, 모르겠다. 포스트-메탈의 광폭한 웅장함이 답일까? 아니면 전자음과의 치밀한 합체? 한국의 잠비나이(Jambinai)나 중국의 왕 웬(Wang Wen) 같은 로컬한 소리와의 결합? 토터스(Tortoise)와 익스플로션즈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 등 2세대 포스트록 밴드들의 잇단 컴백과 변화와 실패는 결국 장르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의 증거가 되는 걸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은 계속된다. 올해만 해도 벌써 모과이(Mogwai)와 두 메이크 세이 씽크(Do Make Say Think)가 돌아왔다. 질문들이 계속되는 만큼 음악들도 계속된다.

[F# A# ∞] LP 판의 B사이드 제목은 “Bleak, Uncertain, Beautiful…”이다. 황량하고, 불확실하고, 아름다운… 내게는 GY!BE가 들려주는 포스트록의 순간들이 그랬다. 황량한 세계의 조각조각들을 그들의 방식들로 부르고 노래한다. 절망을 말하는 수많은 목소리들과 그 압도적으로 절망적인 세계를 황량한 동시에 장황하게 풀어낸 관현악 연주. 하지만 GY!BE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 압도적인 세계에 대한 태도였다. 펑크의 태도, 무정부주의의 태도, 좌파의 태도, 그러한 정치적인 태도도 물론 있겠지만, 가장 언급하고 싶은 건 어떠한 영원의 태도였다. 애초에 [F# A# ∞]이라는 음반 제목의 마지막에는 왜 무한대의 기호가 있었을까. [LYSFLATH]의 마지막은 왜 “천국을 향한 안테나(Antennas to Heaven)”이었을까. 그리고 왜 이 곡은 계속될 것만 같은 짙은 노이즈로 끝나는가. 포스트록에 가능성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들은 왜 다시 돌아왔고, 왜 다시 꾸역꾸역(?) 그 황량하고 불확실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가? 결국에 이 모든 것들, 그 압도적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음악을 하는 게 이 ‘영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GY!BE는 가장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절망에 대해 말했다. 세기말의 절망, 세기초의 절망, 2010년대의 절망. 이들이 절망한 건 압도적인 세계 자체를 맨몸으로 맞서는 것에 대한 절망이었다. 그것이 사회/정치적이던, 그렇지 않던 간에 말이다. 그 절망의 순간들은 언제나 찾아오고, 당연하게도 언제나 모든 이들을 절망스럽게 만든다. 매우 본질적인 절망인 셈이다. GY!BE는 그 절망을 확실히 마주보고 또 확실히 이야기했다. 세기말의 대놓고 읊조리는 절망, 세기초의 희망적인 시선이 섞인 절망, 2010년대의 분노의 노이즈로 펼쳐내는 절망. 그들은 거대한 검은 황제(Black Emperor) 같은, 혹은 루시퍼의 탑(Luciferian Towers) 같은 절망 앞에서 “그대에게 행운이 있기를!(Godspeed You!)”하고 말한다. 모두가 그 절망 앞에서 발버둥칠 때, 피하려고 할 때, GY!BE는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노래하고,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웃음 짓고, 때로는 가장 솔직하게 절망적인 상태로 들어간다. 끝없이 이어질 절망 앞에서 그들 자신도 마찬가지로 끝없이 노래할 것이라는 태도, 그것이 영원의 태도라고 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원의 태도를 드러내왔다고 보고, 그 태도가 드러난 것들은 예술로써 문학으로써 그리고 그 이상으로써 위대한 성취가 되었다고 보며, GY!BE의 음악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avid Foster Wallace)는 “관계와 외로움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은 양쪽 모두 우리가 자신의 내부에(육체적 자신뿐 아니라 정신적 자아에도) 갇혀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며, 죽음에 대한 불안과 연관되어 있다. (…) 어쨌든 나는 사람들이 느끼는 덫에 걸린 듯한 기분, 외로움, 죽음의 감각을 격화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인정하게끔 만드는 것이 작가의 일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2고 말했다. 이러한 ‘덫에 걸린 듯한 기분’, 압도적인 세계나 압도적인 절망, 결론적으로는 압도적인 죽음 앞에서 풍겨나는 두려움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피할 수 없다. 월리스는 이러한 두려움과 또 결론적으로는 압도적인 죽음을 인정하고 맨 몸과 맨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걸 창작하고 표현하는 그 모든 일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예술이든 음악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그 수많은 예시들 중에서, ‘검은 황제여, 그대에게 행운이 있기를’ 같은 심히 진중한 메시지를 그들의 이름으로 삼은 음악가들의 예시가 있는 셈이다. 거대한 검은 황제의 덫 앞에서 GY!BE는 그 검은 황제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해왔다. 다양한 태도와 감정과 방식으로. 황량하고 불확실하지만, 그렇기에 또 아름답게. 결국에, 이들의 무한과 영원은 그러한 무한과 영원이라고 생각한다. 갓스피드 유! 블랙 앰퍼러의 선율과 언어(F# A#)는 무한과 영원(∞)으로 이어진다. 루시퍼의 탑 앞에서도. 그들은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여러 사람들이 다 끝났다, 답은 없다고 보는 곳에서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이 한없이 많다 생각하며, 비단 GY!BE 뿐만이 아니라 압도적인 절망, 검은 황제에게 맨몸으로 맞서는 그 모든 시도들도 다양한 방식과 이야기로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이야기한다. 결국, 창작과 표현과 예술과 문학과 기타등등이 근본적으로 할 수 있는 건 그 영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 나원영 [email protected]

 

  1. 물론 포스트록에서의 광범위한 관현악 편곡 사용은 더티 쓰리(Dirty Three)나 시규어 로스(Sigur Ros)도 여러모로 이바지했지만 말이다. 이후에 나온 인디 할다(Yndi Halda)의 [Enjoy Eternal Bliss]와 모노(MONO)/월즈 엔드 걸프렌드(World’s End Girlfriend)의 [Palmless Prayer / Mass Murder Refrain] 같은 음반들에도 그 클래식적 활용들이 녹아 있다.
  2.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책세상

2 Responses

  1. ll

    GYBE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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