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M 엔터테인먼트

 

그들을 TV에서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3학년 무렵, 아마 어떤 예능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나오던 뮤직비디오에서였을 것이다. ‘누난 너무 예뻐서 / 남자들이 가만 안 둬’라고 노래하는, 자신이 ‘어리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던 다섯 명의 남성 아이돌. 곡의 제목은 “누난 너무 예뻐”고 그룹의 이름이’샤이니 (SHINee)’라고 했다. “남자 중, 고등학생 다섯 명으로 구성된 컨템퍼러리 밴드” “’Shine’에 명사형 어미 ‘ee’를 조합해 만든 신조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사실 우습다고 생각했다. SM이 또 무슨 장사를 시작하는 거냐는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덮는 단 한 가지 인상, ‘노래가 좋다’는 느낌이 앞섰다. 가사가 오글거리긴 해도 멜로디는 잘 뽑았고, 이전의 아이돌 그룹과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생각. 어두운 고3 시절의 자율학습 시간의 플레이리스트에, “누난 너무 예뻐” 역시 들어가 있었다. 내가 이런 걸 들어도 되나, 하는 약간의 부끄러움과 함께.

원더걸스가 “Tell Me”로, 빅뱅(BIGBANG)이 “거짓말”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을 무렵이었다. 비록 그 때는 지금 과거를 돌아볼 때와 같이 모든 것을 깨달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직감은 분명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아이돌로 데뷔하고 있다는, 그리고 그들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경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감각. 그리고 그 중심에 종현이 있었다. 90년생. 나와 동갑이었다.

 

“누난 너무 예뻐”

 

돌이켜보면 샤이니라는 팀의 정체성은 항상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떤 아이돌 그룹이든 활동 중 여러 가지 콘셉트를 시도하지만 샤이니는 유독 그 선택의 진폭이 거대했다. “누난 너무 예뻐”의 어린 소년에서 “Ring Ding Dong”이나 “Lucifer” 같은 SMP, “Sherlock”이나 “Everybody”의 프로그레시브함이나 “Dream Girl”의 청량함, “View”의 청춘 드라마와 “1 of 1″의 레트로까지. 이들이 보여 줬던 퍼포먼스와 사운드는 누구도 아닌 샤이니만이 시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지만, 정작 그것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애매했다. ‘컨템포러리’라는, SM이 자체적으로 내세운 단어 정도밖에는.

자칫 애매해질 수 있는 팀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하게 붙들어 줬던 건 역시 멤버들의 역량이었다. 샤이니의 다섯 멤버 한 명 한 명은 각자의 위치에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팀의 콘셉트를 어쩌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샤이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룹이라는, 아이돌 씬 내에서의 어떤 ‘완벽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댄스면 댄스, 퍼포먼스면 퍼포먼스, 라이브면 라이브, 단 한 구석에서도 샤이니는 다른 팀보다 쳐지는 부분이 없었다.

그것은 노래와 보컬의 영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종현이었다. 단순히 그가 메인 보컬로서 뛰어난 라이브 실력을 보여줘서만은 아니다. 종현의 목소리에는 다른 어떤 아이돌, 아니 어떤 가수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강렬하고 힘있으면서도 ‘이것은 종현의 목소리’라고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특색있는 음색, 그리고 R&B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에 특화되어 있는 세련된 스타일은 샤이니라는 팀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의 폭을 한층 넓혔다. 그것이 “Dream Girl” 이전에 나온 샤이니의 모든 타이틀 트랙에서 종현이 첫 마디를 끊은 이유일 것이다.

 

“데자-부 (Déjà-Boo) [Feat. Zion.T]”

 

그래서 종현의 첫 솔로 작업 [BASE]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커다란 기대를 가졌다. 그가 지닌 음악적 역량과 야심이 샤이니라는 팀 안에서만 구현될 수 있을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종현의 솔로 레코딩은 단순히 아이돌 멤버의 음악적 성장을 증명하는 수단을 넘어서, 아이돌 멤버가 어떤 식으로 메인스트림 팝 씬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범 사례로 남았다. 기존 팀, 혹은 소속사의 음악적 방향과는 조금 다른 현대적인 R&B 사운드를 기조로 삼아 자신의 색깔을 명확히 드러내는 동시에 SM이라는 커다란 ‘자산’을 명민하게 활용하는 것. 아이돌 멤버라는 기존의 영역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함몰되지도 않는 모습. [좋아]까지 이어진 종현의 모습을 보면서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가 이룬 성취를 연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팀버레이크보다 종현의 모습이 한층 각별하게 다가왔던 건 단순히 그가 한국 아티스트여서만은 아니다. 소품집 연작 [이야기]에서 그가 보여 줬던 모습은 훌륭한 팝 아티스트로서의 야심만만한 모습만이 아닌, 종현이라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일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단면이었으니까. “하루의 끝”과 “U & I”에서의 소소한 즐거움, “산하엽”과 “Happy Birthday”에서의 고통, “Lonely”와 “엘리베이터”에서의 고독은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연기’할 수 있는 것에서 더 먼 곳에 있는 날것의 감정이었다. 종현 정도의 위치에 있는 뮤지션이 보여주리라곤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푸른 밤 종현입니다>에서 진행했던 청취자들과의 소통, ‘안녕들 하십니까’와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각종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던 솔직함, ‘뮤즈’라는 개념이 여성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에 대해 한 명의 트위터 유저와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잘못된 점을 인정했던 용기는 그가 [이야기]를 통해 보여줬던 자신의 모습과 먼 곳에 있지 않다. 한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은 타인과의 교류와 소통을 통해서 가능하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자신을 겹겹이 둘러싼 사회적 위치의 벽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 벽을 두려워하지 않고 넘어섰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Lonely [Feat. 태연]”

 

지난 주, 종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다. 이 문장과 글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사실이 제대로 실감나지 않는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그의 또 다른 작업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할 때, 그가 남긴 노래들이 서서히 더 먼 과거의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할 때, 그가 없다는 현실이 비로소 다가오기 시작할 것이다. 죽음은 때로 느린 걸음을 지닌 채로 우리를 맞는다.

한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의 매체를 뒤덮은 뉴스와 각국의 팬들이 SNS 및 유튜브에 남긴 슬픔 어린 메시지, 한국 대사관에 쌓인 조화를 지켜보며 내가 처음으로 샤이니, 그리고 종현을 마주했던 그 예능 프로그램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를 돌이켜본다. K-Pop은 성장했고, 넓어졌으며, 보다 눈부셔졌다. 하지만 그 변화가 과연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인지, 나는 쉬이 답을 내릴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앞에 둔 채로는 더더욱.

다만 지금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의 시대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었던 한 아티스트의 죽음을 추모할 뿐이다. 동시대가 한 기점을 맞이하는 방식은 때로 너무나도 폭력적이어서 숨을 죽이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종현이 남긴 노래, 말, 그리고 뮤지션과 수용자의 관계를 뛰어넘어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싶었던 태도까지 가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선명한 색깔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은.

혼자 참는 게 익숙했던 당신을 슬퍼한다. 남은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한다.  | 정구원 [email protected]

 

 

ⓒ SM 엔터테인먼트

1990. 4. 8 – 2017.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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