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이미지는 2018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최우수 포크 음반, 최우수 포크 노래 3개 부문을 수상한 뮤지션 강태구에 대해 한국대중음악상 측에서 내놓은 입장문이다. 2월 28일 시상식이 열린 이틀 후, 과거의 연애 기간 동안 강태구로부터 상습적인 데이트폭력 및 가스라이팅 피해를 입었다는 공론화가 이루어졌고, 강태구는 3월 6일 음악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그 이후로 페이스북 및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해 인디 씬에서 활동하고 있는 밴드 멤버가 저지른 데이트폭력 및 성추행 등의 여성혐오 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추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3주가 지난 3월 22일, ‘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 및 폭력 문제에 대해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며 ‘피해자들에게 깊은 연대와 지지를 표명’한다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입장문이 공개됐다. 하지만 그 입장문에 강태구의 수상을 취소한다는 말은 없었다.

 

인디씬 내에 만연한 여성혐오 폭력

한국대중음악상 측은 대중음악계 내부에 존재하는 여성혐오 및 성소수자 혐오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여겼다면 입장문을 내는 일조차 없었을 테니까. 2016년 말부터 트위터를 통해 시작된 #OOO_내_성폭력 운동, 그리고 2018년 현재도 진행중인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 내의 강간문화와 성추행, 성폭력을 비롯한 여성혐오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고발하고 있으며, 이는 대중음악, 그리고 그 아래 인디 음악계도 예외가 아니다.

2016년 10월 처음 생겨난 ‘한국 인디밴드의 공연을 안 가는 이유들’이란 아카이브 문서에는 직접적인 성범죄부터 공연 중 저지른 성추행과 성희롱, SNS나 술자리 등지에서의 여성혐오 및 성소수자 혐오 발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 등 수없이 많은 폭력의 사례가 기록되어 있으며, 가해자도 밴드 멤버부터 엔지니어, 팬까지 씬 전방위에 걸쳐 있다. 2차가해 및 성폭력 피해자에게 극도로 불리한 한국 법실정 등의 문제로 이 아카이브에 기록되지 못한 사례가 수없이 많을 것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우리는 인디 씬에 여성혐오와 그로 인한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이 중에는 물론 데이트폭력 및 가스라이팅 가해도 포함된다. 하지만 인디 씬 내부의 데이트폭력 및 가스라이팅 피해자를 겨누는 몇몇 시선은 이 사회가 해당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인과 연인이라는 개인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갈등으로 치부하거나, 피해자의 대응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왜 진작 안 헤어졌어?” 처럼) 식의 2차가해적 시선. 이는 성범죄에 있어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적 시선에 더해 데이트폭력을 처벌하는 실정법적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화영은 데이트폭력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서 이러한 시선에 대해 “데이트 관계 형성 과정이 제도와 연관되지 않기 때문에 시작과 끝에 대해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되는 경향이 주요한 이유”라고 분석하며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사회가 정하는 제한된 범주에 포함되는 사람인지 기준을 재”고, “데이트폭력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법∙제도가 정하는 보호의 범주를 극도로 협소하게 제한한다”고 문제적 상황을 밝힌다.1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강태구에 대한 수상 취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데이트폭력 및 가스라이팅 가해를 처벌할 수 없다면, 최소한 해당 가해자가 받은 명예라도 없었던 것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 수상 취소가 ‘법을 대리한 단죄’가 아니냐고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명백하게 관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인 데이트폭력을 법적 기준으로 처벌할 방도가 없다면,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폭력이 단순히 이번 사안뿐만이 아닌 인디씬 전체에 만연해 있는 상황이라면,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유일하게 인디 씬의 음악을 조명하는 시상식인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그것을 감수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한국대중음악상은 수상을 취소하지 않았다.

 

구조적 성장

시상식 선정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 규정 제1조 2항에 명시하고 있는 목적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대중음악상은 한국 대중음악의 예술적 성취와 대중음악산업의 구조적 성장에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중 ‘구조적 성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좁은 범위에서 해석하자면, ‘메인스트림 음악과 비주류 음악을 가리지 않고 음악적 성취에 주목해 훌륭한 작품 및 아티스트를 조명하고 이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이 이제껏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한 음악과 음악가에 대해 쏟은 관심을 생각해 보면, 비록 ‘시상식’이라는 포맷이 지닌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일정 부분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넓은 관점에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대중음악계의 구조가 사실은 성적 불평등을 내포하고 있는 기울어진 구조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 성범죄 등의 여성혐오 폭력에 의해 고통받는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대중음악의 ‘구조’를 음악에 한정된 틀로만 바라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구조적 성장’은 전혀 다른 의미, 대중음악계 내의 성불평등을 해소하고 여성혐오/성소수자 혐오 폭력에 대한 단호한 거부를 추구하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확장하게 된다.

이 이야기가 너무 나갔거나 지나친 확대해석인가? 어쩌면 이것이 시상식이 수행해야 할 책임은 아닐 수도 있고, 설사 이 해석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애매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3개 부문을 수상한 아티스트가 사실은 데이트폭력 및 가스라이팅 가해자였다는 게 밝혀졌다’는 상황은, 시상식이 어떤 선택을 해야 여성혐오 폭력에 대한 분명한 거부를 밝힐 수 있을지에 대한 아주 명확한 갈림길을 제공하는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한국대중음악상이 선택한 길은, 최소한 내가 이해하고 있는 ‘구조적 성장’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형평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태구의 수상이 취소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누군가는 ‘형평성’의 문제로 접근하며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혐오 발언을 날린 과거의 수상자 및 후보자를 소환할 것이다. 대마초를 피운 이센스,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클래지콰이의 호란 등 직접적인 법적 처벌을 받은 경우부터, 호모포비아 및 여성혐오를 숨김 없이 드러냈던 이장혁이나 쏜애플의 심재현, 윤성현처럼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인식을 드러낸 경우까지. 만약 강태구의 수상을 취소한다면 이들의 수상이나 후보 자격도 모두 취소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는 논리이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이 논리는 타당해 보인다. 그것은 아마 어떤 뮤지션이 현재 시점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시상식이나 음악 매체가 어디까지 소급해 해당 뮤지션에 대한 찬사를 철회할 것인가에 대해 정해진 기준이 없기 때문일 것이고, 모든 시상식과 매체가 이 딜레마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5년 연말 결산에서 국내 앨범 1위로 딥플로우의 [양화]를 꼽은 [weiv]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는 2017년 말 힙합 씬 내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이 ‘검열’이라는 얼토당토 없는 주장을 펼치며 그러한 비판을 하는 이들을 가짜 팬으로 간주했으며, 이는 [weiv]가 지향하는 가치에 명백하게 반하는 행동이었음에도 우리는 그 당시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를 댄다 한들, 그 당시 [weiv]가 취하지 않았던 선택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 나는 [weiv]가 지닌 딜레마를 감수하고서라도 형평성보다 더 우선에 둬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관건은 결국 다시 한 번 불평등한 구조다. 지금 이 순간 형평성을 주장하며 강태구의 수상을 취소하지 않는 것은, 일견 공정해 보일지 모르나 현 시대 대중음악계에서 타오르고 있는 성불평등과 여성혐오 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한국대중음악상이 멀어지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닐까?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이라는, 비단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라 인디씬에 만연해 왔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폭력에 대해 보다 단호한 거부의 메시지를 보낼 기회가, 형식적인 형평성을 중시하느라 희생된 것이 아닐까? 불평등과 폭력이 존재하는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와 아주 단순한 형태의 형평성 중 우리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 한국대중음악상의 형평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더불어, 데이트폭력과 가스라이팅이라는 지속적이고 파괴적인 가해가 형평성이란 논리 앞에서 어떻게 다른 사안과 똑같은 ‘사회적 물의’로 평평해지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으면 한다.

 

한국대중음악상의 미래

오해는 말자. 강태구의 수상을 취소하지 않았다는 선택이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개개인이 성차별 및 혐오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위의 입장문조차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입장문은 한국대중음악상이 지닌 한계도 내포하고 있다. 어째서 ‘대중음악계 내에 존재하는 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 및 폭력 문제에 대해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수상 취소라는 적극적인 액션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일까? 이러한 모순점에 대해 입장문이 설명하고 있는 바는 보이지 않으며, 그것은 지금 현재의 한국대중음악상이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는 한계점이다.

입장문을 발표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상 취소’라는 명확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이상, 강태구가 추후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음악 활동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어떤 형태의 성폭력도 발붙일 수 없도록’ 노력한다는 입장문의 주장은, 이미 그 힘을 어느 정도 잃은 셈이 된다. 더불어, 데이트폭력 가해가 폭로되었음에도 해당 뮤지션의 수상이 유지된다는 점이 젠더 불평등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어떠한 종류의 폭력도 자행하지 않은 다른 후보 음악가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대중음악계와 인디씬 내에 존재하는 성불평등과 혐오, 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앞으로 격화되었으면 격화되었지 절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던 도중에도, 더 모노톤즈의 두 멤버가 저지른 성폭력 가해가 폭로되었으며 밴드는 해체를 선언했다(이들은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앨범 수상자이기도 했다). 아무리 여기에 대해 외면하려 해도, 이러한 흐름에 저항하는 백래시(Backlash)가 펼쳐진다고 해도, 성평등에 대한 페미니즘적 요구는 더 이상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이번 선택이 앞으로 펼쳐질 변화에 대한 소극적 대응의 시초가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15회라는 긴 역사를 견뎌 온 한국대중음악상이란 행사가, 그 자신의 역사에 매몰되어 변화를 거부하거나 변화에 역행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국에 존재하는 대중음악 시상식 중, 유일하게 상업적인 성과 이상의 가치를 고려하는 시상식에 이러한 기대와 우려를 표하는 것이 과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정구원 [email protected]

 

  1. 이화영.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성의 관계 중단과정에 대한 연구”.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 2014

One Response

  1. 소년의 노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작년 여성신문에서 여성아티스트의 성취가 상대적으로 외면 받고 있다는 지적에 한대음이 충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이번 강태구씨 건도 마찬가지라고 보네요. 제발 발전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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