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인디 록의 덕후들

1996년, 한국에서 등장한 인디 록이 펑크/포스트 록/기타 팝과 인접한 다른 언더그라운드 장르들과 함게 그 당시까지 한국에서 전무했던 장르들을 가져오며 일종의 장르적인 대폭발과 진일보를 이뤘다면, 10년 후 2000년대 중후반의 인디 록은 다시금 ‘96년’보다 이전의 록에서 무수한 레퍼런스를 끌어와 합쳐낸다. 08년의 인디 록은 그러므로 선구자들이라기보다는 덕후들의 시대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데뷔와 거의 동시에 등장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데뷔 EP [앵콜요청 금지]에서 정규 2집 [졸업]까지의 길은 주로 ‘청춘’으로 대표되며, [졸업]에서 이는 ‘88만원 세대’ 담론 비스무리한 것과 맞물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자면 브로콜리 너마저가 추구한 음악도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노래’였을 뿐이다. 선대 기타 팝 밴드들인 언니네 이발관이 ‘꿈의 팝송’을 추구하고 마이 앤트 메리가 ‘저스트 팝’을 추구한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인디 록은 일렬의 8090산 ‘팝’ (특히 유재하와 포스트-유재하의 90년대 팝) 감수성을 기초로 하는 동시에 직전 시기의 기타 팝도 더해냈다. 지극히 아마추어적으로 보이는 스탠스는 멀리까지 가면 80년대 중후반의 동아기획/하나음악의 아마추어리즘적인 음악인들(이를테면 동물원이라던지)을 떠올리게 하고, 가까이는 기타 팝 직계 선배들의 ‘그냥 팝’적인 태도를 안고 있기도 했다. [졸업] 이후 현재진행중인 다음 정규 음반의 공백기동안 윤덕원이 지극히 90년대 복고에 기초한 [흐린 길]이나 [농담]을 내기도 했으니, 브로콜리 너마저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후반(재미있게도 ‘96년’의 인디 록이 출현하기 직전까지)의 팝-록적 감수성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8090의 가요/팝 록과 00년대 초반의 기타 팝을 2008년의 방식으로 합치는 순간 [보편적인 노래]가 탄생했고, 이는 ‘저스트 팝’의 2009년적인 동의어가 되었다.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한편 마찬가지의 가요 혹은 팝의 영역에는 뉴욕에서 온 말쑥한 청년 조휴일과 검정치마가 있었다. 초판과 재판이 각각 2008년과 2009년에 나왔을 때, [201]의 검정치마는 그야말로 이 땅에 전혀 없던, 완전히 다르고 새로운 루키로 받아들여졌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긴 하다. 00년대 초반의 스트록스(The Strokes)를 중심으로 하는 포스트-펑크 리바이벌이나 개러지 록-리바이벌은 그때까지도 국내에 상륙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좋아해줘”나 “Avant Garde Kim” 등의 발랄하게 묘사된 뉴욕 인디 펑크적인 감각은 “강아지” 등의 가사적 대범함(?)과 엮이며 [201]을 유일무이한 데뷔 음반으로 평가받게 했다.조휴일은 국내에서 뭔가를 창조해냈기보다는 그 때보다 몇 년 전, 아니 그 당시에도 뜨고 있던 인디 록을 ‘수입’하는 동시에 현지화를 적절하게 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이 여파는 점점 더 커져, 몇 년 뒤 조휴일 본인이 뉴욕보다 ‘서울’의 정체성을 더 받아들여 컨트리 팝과 ‘가요’를 섞은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과 거기서 더 나아가 팝-가요의 모든 간극을 검정치마식으로 뛰어넘는, 어떤 의미에서 가장 팝적인 동시에 가요적인 레트로-팝-가요 음반 [TEAM BABY]로까지 이어지기도 했으며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검정치마 “Antifreeze”

팝 혹은 가요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 장기하를 완벽한 덕후로 이끈 선배들 중 하나였던 송재경 또한 08년의 인디 록에서 충분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당연히 그 또한 중요한 덕후다. 2007년과 2009년, 2년의 간격으로 나온 그림자 궁전과 9와 숫자들의 셀프 타이틀 정규 음반에서 그는 재경이자 9로써 각기 다른 방식의 레트로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그림자 궁전]에 담긴 시뻘건 싸이키델릭부터 먼저 이야기하자면, 가장 원초적이고 정석적인 60년대 말의 싸이키델릭을 가져오는 것부터 과거 ‘록의 전성기’에 대한 일종의 경의 혹은 숭배가 느껴진다. 여기에서 재밌는 건 그림자 궁전의 연주는 그러한 성향과 딱 맞게 강렬한 부피와 질감의 노이즈를 뿜어내지만 송재경의 보컬은 동시기의 또 다른 싸이키-레트로-마니아들이었던 머스탱스처럼 쫄깃하거나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처럼 환각적이거나 심지어 국카스텐처럼 날카롭지도 않았다. 대신, 어떻게 보자면 20세기 한국 록의 포크 록이나 언더그라운드 록에서 들을 수 있는, 무척 담담하고 정갈한, 맑은 보컬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여기에서 이어 생각하자면, [그림자 궁전]은 60년대 싸이키델릭을 중심으로 신중현 등을 필두로 한 20세기 록의 싸이키델릭한 그룹 싸운드를 섞어내는 동시에  포스트 펑크나 그런지 등이 생각나는 로파이한 질감 역시 가져온다. 이는 선배들에 대한 오마주가 생각보다 넓고 깊다는 증거다. 새빨간 빛깔을 띤 싸이키델릭의 부분부분에 들어간 다른 빛깔의 장르들이 모여 그림자 궁전을 이루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싸이키델릭한 빛깔을 뿜어낸 그림자 궁전은 활동을 중지하고, 재경은 9가 되어 숫자들을 만난다.


그림자 궁전 “Magic Tree”

그 이후 [9와 숫자들]이 찾아왔고, 송재경/9의 레트로 성향은 더욱 강해진다. 60년대 싸이키델릭 대신 80년대 영미권의 신스 팝이 새로운 배경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9와 숫자들에게 신스 팝만이 존재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팝 대신 한국식 가요의 멜로디나 구성이 들려오는 동시에 이전 세대(그러니까 저 멀리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스파이스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의 기타 팝도 9와 숫자들의 자장 안으로 들어온다. 이들의 신스 팝은 선유도와 삼청동에서 울려퍼지는 신스-가요가 된다. 곧 다양한 방식과 시대의 ‘팝’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하고, 적어도 내가 보기엔 장기하와 얼굴들이 같은 해 [별일 없이 산다]로 20세기 한국 록의 수렴과 발산을 이뤘듯 9와 숫자들은 80년대식 팝의 수렴과 발산을 이뤄냈다.

게다가 9와 숫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며 레트로의 범위를 훨씬 더 넓혀간다. 한국식 인디 록과 기타 팝에 대한 관심은 더욱 더 늘어나 [유예]로 이어지는 동시에, 마침내 [보물섬]에서 여전한 신스 팝과 기타 팝의 조합을 다양하게 변주해내며 슈게이징이나 (인디 록적인) 노이즈 록, 8090 한국 가요까지도 그러안는다. 8090 영미 인디 록의 서정, 90년대 말에서 00년대 초까지의 1세대 한국 기타 팝 밴드의 청승, 80년대 신스 팝과 가요는 빙글빙글 교차하고, 이는 [수렴과 발산]으로 이어지며 계속된다. 더불어 그림자 궁전과 9와 숫자들의 교차 지점에서 만들어진 프로젝트 밴드(?) ‘구울림’은 대놓고 산울림에 대한 오마주를 “내 마음에 융단 폭격” 같은 제목의 곡으로 펼쳐내며, 9가 지속적으로 관심 가져온 모든 장르들, 60년대 싸이키델리아와 20세기 한국 그룹 싸운드, 80년대 신스팝과 90년대 가요, 한국식 기타 팝을 한꺼번에 터뜨린다.

이렇게 수많은 과거의 조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낸 9와 숫자들은 동시대의 기타 팝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개성’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개성은 확실히 과거에 대한 송재경의 무한한 덕심과 애정에서 나온 게 틀림없어 보인다. 올해의 송재경은 9로써 저 옛날 [관악청년포크협의회](이 또한 붕가붕가의 수많은 레트로 성향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시절의 포크 송에 대한 레트로를 키워 정규 음반을 낸다. 음반의 이름은 [고고학자]. 그리고 그 고고학자, 싸이키델릭과 그룹 싸운드, 팝과 가요의 고고학자는 바로 송재경 자신을 의미한다.


9와 숫자들 “선유도의 아침”

그림자 궁전에서 알 수 있듯이, 08년의 인디 록에서 싸이키델릭 또한 나름의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밴드들을 조금 더 길게 언급하자면 머스탱스는 [Acid Trip]에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식의 싸이키델릭하고 애시드한 ‘익스피리언스’를 완벽하게 가져오며 60년대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했고, (08년보다는 좀 이르지만)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도 마찬가지로 타협 없는 소리로써 싸이키델릭을 바탕으로 그런지, 인디 록 등 온갖 장르들을 끌어왔으며, 국카스텐은 특히 “거울” 같은 대표곡에서 느껴지는 묘한 ‘뽕끼’로 20세기 그룹 싸운드와 모던한 싸이키델릭 사이의 연계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진정으로 ‘클래식’한 영미 싸이키델릭에 대한 경의와 ‘고전’적인 한국 그룹 싸운드에 대한 경의를 모두 고루고루 담아내 현재화시킨 건 그 누구보다도 신윤철과 서울전자음악단의 몫이었다. 이미 [볼륨을 높여라] 혹은 [서울전자음악단]에서부터 과거 록의 가장 열광적인 순간들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들은 결국 2009년 [Life Is Strange]로 일종의 집대성이자 정점에 이른다. “고양이의 고향 노래”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서울전자음악단은 영미/한국 양쪽의 서로 다른 싸이키델릭을 부단히 끌어오며 놀랍게도 당대와 어울리는 싸이키델릭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음반을 끝내는 “서로 다른”의 기나긴 연주는 그러한 과거의 클래식/고전에 대한 서전음식 답가이자 바통 터치일 것이다. 08년의 싸이키델릭 밴드들 모두의 이야기겠지만, 과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과거를 양분 삼아 현재 혹은 당대와 가장 알맞게 어울리는 싸이키델릭을 만들어냈고, 그 중심에는 서울전자음악단이 있었다.


서울전자음악단 “서로 다른”

팝과 싸이키델릭을 지나 조금 더 로큰롤적인 장면들로 가보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2007년 [Ramble Around]와 [To The Galaxy], 2008년 [Noise On Fire], 2009년 [Come On & Get Up]으로 시끌벅적하게 씬에 등장한 갤럭시 익스프레스부터 먼저 이야기해볼까. 이러한 3년간의 빽빽한 과정으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로큰롤의 중심에 섰다. 장기하/브로콜리 너마저/검정치마의 것보다 더욱 더 거대한 스케일의 레퍼런스와 레트로를 들려주는 갤익은 50년대부터 당대까지의 온갖 로큰롤-발 장르들을 모조리, 무작정 긁어온다. 그들은 한대수의 “물 좀 주소”와 산울림의 “무지개”를 리메이크하기도 했고, 심지어 MC5의 상징적인 “Kick Out The Jams” 또한 당당히 리메이크의 대상이자 레퍼런스로 삼는다.

로큰롤의 기다란 계보를 활주하며 달려가는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가장 처음의 로큰롤에서 함부르크의 비틀즈, 70년대의 뉴욕-런던을 오가는 펑크(굳이 생각하면 라몬즈(Ramones)나 뉴욕 돌스(New York Dolls)의 뉴욕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와 80년대의 하드코어/포스트 하드코어, 거기에 90년대의 그런지/얼터너티브 록에 이어지는 00년대의 개러지 록 리바이벌까지도 담아낸다. 여기다 10년 전의 조선-펑크식 로큰롤의 조카를 자처하며 크라잉 넛/노브레인/럭스 등 삼촌들의 활동 극초기의 “닥쳐!”를 재현하는 것만 같은 “다 꺼져버려!”와 “잘 가라 씹 새끼야!”를 외치기도 하며, 그렇게 한국과 영미 로큰롤/펑크 역사의 모든 순간이 불붙은 노이즈로써 한꺼번에 울려 펴지게 한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Jungle The Black + Bye Bye Planet”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모든 장르와 시대의 로큰롤과 펑크, 개러지 록과 하드 록이 울려 퍼지게 했다면, [怒] 시기의 노브레인에서 런던 펑크를 조선 펑크로써 계승하고 갱신한 차승우는 탈퇴 이후 방황 끝에 더 문샤이너스(반드시 앞에 ‘더’를 써야한다!)를 만들며 5060 로큰롤 자체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모험광백서]를 낸다. 2시간이 남짓 하는 분량에 30곡의 수많은 노래들을 담은 방대한 양부터 [모험광백서]에서 차승우와 더 문샤이너스가 지향하는 방향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중심이 펑크와 개러지였다면, 더 문샤이너스는 로큰롤 그 자체였다. 흥겨운 리듬과 깔끔한 연주를 바탕으로 차승우는 노브레인에서 채 실현하지 못한 펑크와 로큰롤의 완벽한 복고를 어느 정도 실현시켰다. 제목처럼 “엽전들의 행성으로” 향해 모험을 떠난 2009년의 더 문샤이너스는 그렇게 로큰롤을 중심으로 5060 당시의 모타운이나 로커빌리, 컨트리 등의 다양한 장르들을 담는 동시에 (한 번 더 언급하는 거지만) ‘엽전들’로 대표될 6070 그룹 싸운드에 대한 존경 또한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렇게 당대 로큰롤의 제왕이 된 밴드는 [푸른밤의 BEAT!]에서 로큰롤에 대한 장인 정신을 더욱 더 압축시켜 담아내지만, 슬프게도 거기까지였다. 그럼에도, 차승우는 계속해서 로큰롤을 향한 모험을 계속해 더 모노톤즈(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더’를 붙여야 한다!)로서 [into the night]를 낸다. 프로필 사진이나 마케팅 등 외적인 요소에서부터 60년대 록(특히 모드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모노톤즈는 60년대에서부터 출발한 모든 시대의 ‘로큰롤’을 동시대의 방식으로 새롭게 되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어떠한 경지에 도달했다고까지 느껴지는 이 복고 또한 멤버 두 명의 성폭력 가해 때문에 음반 한 장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차승우는 다시 비트족처럼 길 위에서 가장 완벽한 로큰롤-레트로를 향한 모험을 이어간다. 올해에는 챠챠라는 이름만으로 솔로 싱글을 냈지만, 그는 또 한 번 앞에 ‘더’가 붙는 밴드를 만들 것이다. 로큰롤을 그만의 방식으로 되살리기 위해.


더 문샤이너스 “모험광백서”

물론 앞에서 열거한 브로콜리 너마저, 검정치마, 9와 숫자들, 그림자 궁전, 서울전자음악단, 갤럭시 익스프레스, 더 문샤이너스 말고도 08년의 인디 록에서 찾을 수 있는 덕후들은 무지하게 많다. 서울전자음악단과 비슷한 네이밍의 서교그룹사운드는 말 그대로 서교동의 ‘그룹 사운드’로써 셀프 타이틀 음반에서 그룹 사운드와 로큰롤-개러지 록을 합쳐냈고, 파블로프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외치며 다른 밴드들과 함께 로큰롤의 부활(?)을 이끌었다.

한편 눈뜨고 코베인은 [Pop To The People] 당시의 그룹 싸운드 복고에 신스 가득한 싸이키델릭을 더하며 [Tales]의 기묘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고, 붕가붕가 레코드에 속했던 수많은 다른 밴드들도 마찬가지로 각자 ‘복고’를 실현했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은 [고질적 신파]에서 제목 그대로의 ‘신파’ 감성에 ‘뽕짝’의 느낌을 더했고, 아침의 경우 [거짓말꽃]에서 그룹 싸운드와 개러지 성향 인디 록 사이의 연결점을 만들고, 생각의 여름은 데뷔 음반 [생각의 여름]에서 한국식 포크 송을 미니멀한 방식으로 되살려낸다.

또한 비둘기 우유는 90년대식 슈게이징에 가장 충실한 [Aero]를 만들고, 데이드림은 [A Land of April]에서 노이즈 록이나 포스트록 등 다른 장르들의 선배들을 불러낸다. 또 다른 쪽에서는 아톰북이나 드린지 오가 각각 [Warm Hello From The Sun]과 [Individually Wrapped]에서 해외의 포크 음악을 다양한 결로써 08~09년 당시의 한국으로 불러왔고, 이장혁은 [Vol.2]에서 국내의 선배 포크 음악인들의 계보를 그만의 방식으로 잇는다. 사례는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자면, 이 수많은 08년의 덕후들 중에서도 가장 덕후 중의 덕후였던 건, 장기하였다.

결론적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이, 정확히는 장기하 본인이 눈뜨고 코베인의 드러머였을 때부터 데이비드 번을 만나는 지금까지의 음악적 여정은 어떠한 진화나 진보, 진전의 틀로 보기보다는 ‘덕질’의 영역 추가와 확대로 보는 게 조금 더 알맞거나 적절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별일 없이 산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로 진행되는 경로는 진화하거나 발전하는 게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참고 목록을 다르게 조합한 것뿐이며, 여기에 몇몇 중요 인물들과 작업을 추가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과정은 리믹스의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을 테다. 20세기 한국 록, 7080 뉴웨이브, 60년대 싸이키델릭과 팝 록, 각 영역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져와 합쳐내고 조합하는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 각기 다른 장르나 시대들이 중심으로 왔다. 중요한 건 언제-어디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지다. 장기하는 록의 지난 시대를 사랑하는 덕후로써 그의 깊고 넓은 레퍼런스의 바다 속에서 산울림+토킹 헤즈+도어스, 아니면 송창식+비틀즈+텔레비젼 같은 방식으로 이들을 합쳐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원동력은 음악적 진보나 낭만주의적인 새로움 같은 무언가이기보다는, 덕질 그 자체다. 아카이브의 탐구, 과거 유산의 재조합, 어떠한 충성에 가까운 경의의 표시… 과거를 동력 삼아, 아니 정확히는 과거에 대한 애정을 동력 삼아, 장기하는 덕후로써 당대-현재에 그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음악은 미래, ‘오래된 미래’를 예고하는 음악이 되었다. 그러니까, 장기하는 덕후이면서도, 오로지 그뿐만은 아닌, 그 자신의 덕력을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변주한… ‘레트로 마니아’다.

덕후이면서도 레트로 마니아만도 아닌

‘레트로 마니아’라는 명명은 당연히 사이먼 레이놀즈(Simon Reynolds)의 책 『레트로 마니아』에서 따왔다. 『레트로 마니아』는 영국 출신의 대중음악 비평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21세기 대중음악에서의 노스탤지어/레트로를 주제로 삼아 “대중음악은 과거 속에서 침몰할 것인가”라는 매우 우수에 찬(?) 고민들을 유튜브부터 재결합, 아카이브와 샘플링, 복고와 미래주의 등을 경유해서 만들어낸 거대한 결과물 같은 책이다. 책을 여러 번 읽으며 국내 대중음악에서 레이놀즈가 설명하는 ‘레트로 마니아’의 모습에 가장 부합하는 건 그 누구보다도 장기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내가 이 글을 쓰는데 여러모로 일조했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가, 장기하와 2008년 인디 록의 덕후들을 빌어 내가 레이놀즈와 생각이 전혀 다르다고 느낀 부분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와 레이놀즈 사이에, 어떠한 현상으로써 레트로 마니아가 대중음악 씬에 등장/출현하는 것에 대한 태도, 시선, 혹은 ‘성향’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레이놀즈 본인이 스스로 그의 ‘모더니스트’적 특성을 밝혔듯, 그는 7080 포스트 펑크와 8090 레이브를 현장에서 경험하며 지극히 모더니즘적인 ‘새로움’이 대중음악에서 분출하고 폭발하는 과정을 지켜봐왔고, (여기서 중요하진 않지만) 그 유명한 ‘포스트록’이라는 단어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몇 십 년의 시간을 ‘진보와 새로움’으로 상정할 수 있는 순간과 사건 속에서 보낸 레이놀즈에게 2000년대 이후의 대중음악이 ‘후퇴와 익숙함’, 즉 과거로 향하는 꼴은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20세기의 중요한 때를 어느 정도는 통과한 이라면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레트로 마니아』는 세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오늘”은 당대(2010~11년)의 시점에 드러나는 온갖 사례들로 그 레트로 마니아적 성향을 담고, “어제”에서는 오히려 20세기로 돌아가 이 레트로 마니아적 현상이나 태도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탐구하고, “미래”에서는 ‘미래’의, 도래할 대중음악에 대해, 레트로 마니아적 태도가 가득한 시점에서의 조금 많이 암울한 (하지만 레이놀즈 자신만의) 전망을 제시한다. 내가 느낀 레이놀즈의 전망 혹은 태도는 긍정이기보다는 부정, 기대보다는 걱정이었는데, 거기에서 어떠한 위화감과 더불어 묘한 어긋남, 가장 근본적인 지점이 나와 다르다고 느껴졌다. 그 지점이 어디일까, 대중음악 혹은 대중문화 혹은 예술 그 자체에서의 ‘새로움’에 대한 입장 차이, 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와 (그 당시) 현재를 부단히 오가며 대중음악사 전면에 걸친 “레트로 마니아”의 행보를 따라가는 경로에서 레이놀즈는 2011년을 전후로 한 당대의 포스트-프로덕션, 혹은 디지모더니즘, 또 슈퍼-하이브리드나 레이놀즈 스스로가 개발한 단어 하이퍼-스태시스를 대표하는 음악인들로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 니코 뮬리(Nico Muhly),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Oneohtrix Point Never),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아리엘 핑크(Ariel Pink), 케어테이커(The Caretaker), 플릿 폭시즈(Fleet Foxes), 호러스(The Horrors), 고! 팀(The Go! Team) 등을 언급한다. 이들에게 있어 대중음악사의 과거는 인터넷을 통해 임의 접속과 다운로드가 매우 간편한 아카이브이자 데이터베이스가 되었다. 시공이 한 줄로 이어진 계보가 사라진 대신 모조리 조각나고 뒤섞인 아카이브로써 과거를 인지하는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왕성하게 그 데이터베이스를 파고들어, 조각조각들을 끌어와 재편집한다.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나 케어테이커 등이 과거의 소리와 분위기까지 샘플링한다면, 아리엘 핑크나 플릿 폭시즈 등은 특정 과거의 경향을 당대에 맞춰 불러오며, 플라잉 로터스나 뱀파이어 위켄드 같은 경우는 둘 모두를 해내는 동시에 수많은 시공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합쳐낸다.


The Caretaker “All You’re Going To Want To Do Is Get Back There”

레이놀즈는 당대의 첨단으로 받아들여진 이들이 사실 과거를 오타쿠적으로 파고들며 다시 편집하고 배치했을 뿐, 거기에 그가 8090에 동경했던 포스트 펑크나 레이브만큼의 급진적인 새로움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2011년 전후로 첨단을 보여준 이 음악인들이 결코 새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레이놀즈가 『레트로 마니아』 내내 지적한 바로 그 방식,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의 수법으로 새로움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이 방식은 과거의 인용과 패스티시, 재배치를 통한 총체적인 재편집 작업인데,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과거를 당대(즉 현재)에 맞춰 불러오는 점 자체가 새로울 수 있다고 본다. 그 새로움은 낯선 새로움보다는 익숙한 새로움이지만, 이들이 과거의 아카이브를 파고 재편집하는 과정은 기존까지 있었던 매우 낭만적인 방식의 창작론 – 개성 있는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에서 진정성 있고 여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다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 를 모조리 부정한다(게다가 [과거] 파트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레트로 마니아적 태도나 방법은 오로지 21세기만의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꽤나 역사가 깊었고 20세기 대중음악의 ‘발전’에도 기여한 바가 많다). 하지만 과거를 인터넷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편집하는 과정과 결과는, 분명 새롭다. 이들의 음악은 새롭다. 새롭기 그지없다. 다만 익숙한 새로움일 뿐.

애정이라는 변수

『레트로 마니아』에서 사이먼 레이놀즈는 당대의 음악인들이 DJ 같은 태도를 가졌다고 말하는데, 이는 곧 이들이 과거를 경의나 헌정, 반대로는 부정과 전복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단지 하나의 아카이브이자 데이터베이스로 보며, 그 시간들에 대해 아무런 노스탤지어나 경의, 헌정 같은 애정 어린 감정 없이 자유롭게 그 조각들을 끌어와 조합한다는 걸 의미한다. 레이놀즈는 샘플링을 주되게 다룬 부분에서 KLF나 존 오스왈드(John Oswald), 걸 토크(Girl Talk) 등을 언급하며 이러한 성향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08년의 덕후-레트로 마니아들과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어느 지점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덕후들은, 조금 더 멋지게 말하자면, 덕후적인 방법들은 애정에 기초한다. 여기서 이들이 단순한 팬과 달라지는 건 그 애정을 덕력, 아카이브나 데이터베이스를 파고들어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기꺼이 또 기어이 알아내고 좋아할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 덕력을 창조적으로 이용할 때, 그들의 덕력은 과거의 여러 순간과 장면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조각들을 일종의 ‘비약’을 감수하고서라도 뛰어넘어 조합하는 능력으로 발전한다는 점이다.

아즈마 히로키가 오타쿠를 ‘데이터베이스적 동물이자 속물’이라고 정의할 때 개인적으론 ‘동물’보다는 ‘데이터베이스’에 집중하는 입장으로써,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레이놀즈가 10-11년의 음악인들을 소재로 말하는 레트로 마니아는 일종의 DJ적 레트로 마니아고, 내가 장기하와 08년의 인디 록을 소재로 말하는 레트로 마니아는 반면 덕후적 레트로 마니아다. DJ적 레트로 마니아들이 과거를 샘플링하고 조합할 수단이자 재료로 보며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고 이 조각들을 합쳐낸다면, 덕후적 레트로 마니아들은 과거를 우선 애정의 대상으로 보며 데이터베이스를 파고드는 덕질에 착수한다. 그 덕질 과정 속에서 과거의 조각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끌어와 그들 자신의 세계에 새롭게 재편집되어 편입된다.

그리고 이것은 DJ의 그것과는 방식적으로는 비슷할 지도 모르지만, 태도적으로는 많이 다르다. 장기하가 산울림, 들국화, 토킹 헤즈, 비틀즈 등에게 음악으로써 바치는 경의, 또 차승우나 갤익이 로큰롤/펑크와 관련된 모든 순간들을 자유자재로 끌어오며 선배들처럼 되려고 하는 깊은 애정의 태도, 송재경이 그림자궁전과 9와 숫자들로 싸이키델릭/신스 팝 양측 장르에 각기 다른 방법으로 끌어온 덕심, 신윤철이 클래식 록 혹은 고전 그룹 싸운드의 모든 순간에 대해 바친 사랑… 어떻게 보자면 이들의 레트로 마니아적 작업들은 우선 덕후이기에, DJ처럼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애정과 덕심을 바탕으로, 과거를 조합하고 편집하기, 그것이 덕후적 레트로 마니아들의 DJ적 방식이다. 『레트로 마니아』에 등장한 KLF나 존 오스왈드 등의 냉소적인 해체나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나 플라잉 로터스 등의 발광적인 합체보다는 에어리얼 핑크나 플릿 폭시즈 등의 태도가 여기와 더 맞닿을 것이다(사실 덕후와 DJ의 경계를 완벽히 그을 수도 없고 말이다). 이들은 단지 그들만의 방식: 과거의 찬란한 요소 중 가장 훌륭하고 또 가장 맘에 드는 순간들을 가져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조합하기-로 과거를 계속해서 파고 팔 뿐이다.


서울전자음악단 + 갤럭시 익스프레스 “빗속의 여인” (신중현 커버)

내가 레이놀즈와 다르게 레트로 마니아적 방식, 그 중에서도 덕후적인 쪽에 어떠한 ‘새로움’이 있다고 여기는 건 결국 과거를 덕질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의 결과물이 익숙하거나 ‘새롭지 않은’ 게 되어도 어쨌든,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너무 애매한가. 레이놀즈는 레트로의 정의를 다루는 초반부에서 이것이 ‘과거를 이상화하지도, 감상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는 점, 오히려 과거에서 재미와 매혹을 찾는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재활용과 재조합을 통해 (…) 자료실로서 과거를 이용한다.’ 여기서 레이놀즈는 이상화를 꿈꾸는 감상적 태도의 노스탤지어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자료실을 찾는 재미와 매혹으로 과거를 대하는 레트로를 구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는 그리 쉽게 가를 수 있는 성질의 것들도 아니거나와, 그 ‘대중문화와 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곳’은 수많은 방식으로 출현할 것이다. 거기에서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무언가’는 과거의 모든 시공이 함께 울려 퍼지는, 레이놀즈를 다시 한 번 빌리자면 ‘초시간적 뷔페’ 같은 대중음악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형태나 방식의 대중음악은 20세기에는 국소적인 장르들의 ‘리바이벌’이나 리메이크/헌정 등의 시도로 좁고 작게 이어졌지만, 21세기가 들어오며 훨씬 더 넓고 깊은 방식으로 ‘탄생’했고, 더 나아가 새로이 출현한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창작의 방식과 태도는 낭만주의도, 모더니즘도, 노스탤지어도, 냉소주의도 아니다. 대신 애정이다. 그 애정에서 만들어진 새로움이 익숙한 새로움이라고 해도, 어쨌든 이 새로움은 새로움, 새로운 유형의 창작법과 태도다. (레이놀즈도 몇 번 인용하기도 한)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식의 ‘영향에 대한 불안’은 오히려 이 덕후-레트로 마니아들에게는 ‘영향에 대한 자랑’으로 변주된다. 게다가 중요한 건 영향에 대한 불안의 단계를 거친 젊은 예술가가 결국 선대 작가들의 영향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듯이, 영향에 대한 자랑을 드러내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로, 선배들의 영향을 있는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뛰어넘기보다는 변주해 내가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물론 낯선 새로움과 익숙한 새로움이 있을 때에 더욱 더 매혹적이며 전복적인 것은 전자지만, 그렇다고 후자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는 건 너무하다. 나는 덕후적 레트로 마니아들이 만들어낸 이 익숙한 새로움이 익숙함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새로움으로 이해되기를 바라는 바다. 2008년의 인디 록의 이 익숙한 새로움을 통해 국내의 인디 씬이나 록 씬이 조금 더 달라졌듯, 나는 21세기의 대중음악이 그러한 레트로 마니아적인 태도와 방법, 그 성과를 통해 더 풍성해졌다고 본다. 낯선 새로움과 익숙한 새로움. 어느 한 쪽이 더 좋거나 나은 게 아니다. 『레트로 마니아』에서 나와 의견이 다른 쪽이 있다면 전자만이 일종의 절대적인 기준으로써 작용한다는 것이고, 나는 DJ와 오타쿠의 방식, 시공이 분절된 데이터베이스와 아카이브를 파내는 방식, 인용-배치-편집의 방식 등이 시도하는 레트로 마니아적인 새로움을 지지한다. 그것이 DJ적이던, 덕후적이던, 과거를 현재의 시점에서 재조합해내는 방식을 ‘레트로 마니아’적이라고 한다면 내가 보기에 이는 대중음악의 미래를 위협하는 과거도, 아니면 동시대 대중음악이 불임이라는 증거도 아니다. 그러므로 팝의 종언을 고하는 사자로써 레트로 마니아와 그러한 태도를 경계하거나 지양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모든 시대/장소의 음악을 만드는 레트로 마니아적 태도는 단지 수많은 창작법들 중에서 다르게, 어쩌면 새롭게 등장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이는 새로운 방법이고, 얼마든지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불임의 과거는 여전히 대중음악을 위협하고 있지만, 내 생각에 그 위협의 주체는 레트로 마니아가 아닌 반동적 노스탤지어에 해당한다. 과거에 대한 애정이 오로지 낭만화된 추억으로 존재할 뿐, 그 덕심이 현재와의 창조적 연결 고리로써 작용하지 않고 단순히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려고만 하는, 반동이자 복고 그 자체로서의 노스탤지어. 지극히 노스탤지어에 입각한 방식으로, 과거를 재조합이나 재편집도 아닌 단지 재소환하고 재생산할 뿐인 행위가 익숙한 낡음과 진부함을 가져오는 경우가 수두룩하게 범람한다. 이것이 오히려 더욱 경계할만한 무언가가 아닐까.

한국의 경우 한 쪽에 08년의 레트로 마니아들이 있다면 다른 쪽에는 <나는 가수다>의 짧은 방영기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과거를 재생산할 뿐인 리메이크를 내뱉는 <불후의 명곡>과, <불후의 명곡>이 타겟으로 잡은 ‘과거’보다는 조금 더 이후지만, 하지만 여전히 낭만화된 추억으로써 90년대와 00년대 초반을 ‘재소환’하는 <슈가맨>, 과거의 아이돌을 현재로 (마치 <슈가맨>처럼) 소환해내 다시-만드는 (일종의) ‘리메이크’ 등등… 이러한 리메이크들로 대표되는 노스탤지어, 낭만화된 과거의 추억이야말로 과거를 단순하게 이용해먹으며 대중음악의 현재-미래를 불임 상태로 집어삼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익숙한 낡음, 진부한 낡음이다. 내가 생각하는 레트로 마니아는 낯선 익숙함이자 익숙한 새로움으로써 과거를 단순히 재소환, 재생산, 즉 리메이크하지 않고 재조합, 재편집, 리믹스한다. 그리고 애정 혹은 덕심이라는 감정 혹은 태도 혹은 방법은 잘만 쓰인다면 그러한 과정의 무한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지나온 시간과 또 다른 공간을 재료로 삼은 조합법은 무한에 무한을 무한 번 제곱한 것과 비슷한 가능성을 가졌다. 각기 다른 익숙함이 충돌해 어쩌면 새로움과 낯섦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상상을 한다.

어떤 오래된 미래

다시, 8090 모더니스트 레이놀즈가 바라본 2011년의 영미 대중음악에서 2008년의 한국 인디 록으로 돌아온다. 장기하와 그와 같은 레트로 마니아들, 한국 대중음악의 덕후들이 터져 나오던 시기. 이들은 명민하게 한국과 영미를, 멀리로는 신중현식 싸이키델릭부터 가깝게는 스트록스식 개러지 록까지를 부단히 오간다. 아카이브와 데이터베이스를 파고들어가며, 적절한 자료들을 찾아내며, DJ처럼 리믹스한다. [별일 없이 산다], [201], [보편적인 노래], [Noise On Fire], [그림자 궁전], [9와 숫자들], [모험광백서], [Aero]… 실로 2000년대 중후반의 인디 록은 레트로 마니아들의 인디 록이었다. 대중음악의 덕후로써 이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모든 시공이 자신들의 세계에서 한꺼번에, 또한 아름답게 울려펴지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덕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 레트로 마니아들은 스스로가 록의 DJ가 되어 리믹스를 감행했고, 그를 통해 인디 록의 ‘오래된 미래’가 되었다. 누구는 ‘오래된’에 방점을 찍겠지만, 이는 단지 수식어에 불과한다. 중요한 건 수식을 받는 ‘미래’다. 이는 ‘익숙한 새로움’과도 동의어일 것이다. 이 방법은 레고조각들을 결합하는 방식, 유희와 재미 또 애정과 덕질의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대중음악에서 ‘새로움’에 대해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어쩌면 이 구절을 샘플링할 수밖에도 없을 거 같다.

“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음반들을 한 장씩 넘겼다. 이건 정말 세상에서 하나뿐인 음악들일까. 이 사람들의 음악은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가 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 누군가의 그림은 또 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된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DJ인 것이다.”
김중혁, 비닐광 시대(Vinyl狂 時代)」『악기들의 도서관, 2008.

어쩌면, 하필 08년의 인디 록을 굳이 이러한 이야기의 주체로 끌어오는 것에 대한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그 점에 있어선 나 또한 레이놀즈와 비슷한 처지일지도 모른다. 1963년생인 레이놀즈가 그의 ‘첫 새로움’이 10대 때 접한 7080 포스트 펑크, 그리고 그 이후 8090 레이브를 통해 갱신되었다면, 그의 아들 뻘 되는 나이인 1996년생의 나는 ‘첫 새로움’이 마찬가지로 10대 때 접한 08년의 한국 인디 록과 그 이후였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자면 레이놀즈가 드러낸 ‘골수 모더니스트’로써의 주관성은 나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지극한 주관성과 그 주관성에서 탄생한 덕심으로 08년의 인디 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싶어 변명해본다.

이 ‘2차 인디 록 전성기’ 이후 10년이 지났고, 96년의 인디 록이 08년으로 오며 그랬듯 08년의 인디 록 또한 18년으로 넘어오며 사라졌거나 달라졌다. 그 사이 또 다른 새로운 밴드들이 나타나는 중에, 96년적인 진보를 계속 이어나가며 록을 안쪽에서부터 전복하는 시도들이 현재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하면, 또 다른 형태의 레트로 마니아 또한 08년과는 다른 방식으로 탄생했다. 08년 직후인 2010년대 초반에 등장한 게이트플라워즈에서 ABTB로 이어지는, 또 빌리 카터나 전범선과 양반들, 로다운30 등에 의한 하드 록, 제8극장의 50년대 로큰롤과 60년대 팝 록, 얄개들(과 포스트-얄개들 밴드)과 더불어 넌아만다, 마치킹스, 검은잎들로 계속되는 기타 팝과 아시안 체어샷, 써드스톤=싸이키문, 줄리아 드림, 적적해서 그런지 등의 고전 싸이키델릭에 이어 더 포니, 시크릿 아시안 맨, 빅베이비드라이버 트리오, 세이수미와 등이 불러오는 8090 인디 록… 심지어 가장 최근의 새소년이나 혁오가 ‘클래식 록 스타’적인 태도를 현재적으로 끌어오는 것 또한 새로운 방식의 덕심에서 출발한 또 다른 레트로 마니아적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이미 오래 전에 정해진 결론으로 가는 것 같지만, 과거를 계속해서 다른 방식들로 현재로 끌어온 이들은 언제나 새로웠고, 새로우며, 새로울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새로움(들) 속에서 덕후이자 레트로 마니아의 태도를 가진 이들은 너절한 추억의 노스탤지어가 만들어내는 무한한 과거의 재소환+재생산을 뚫고 나아간다. 레트로 마니아들이 오해 받아온 건, 그 새로움의 재료가 단지 과거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지 과거를 발판 삼아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이들일 뿐이다. 2000년대 중후반의 루키들이 지극히 새롭고 미래적인,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새롭고 미래적인 록을 상상해 ‘오래된 미래’와 ‘낡은 새로움’을 현실화했을 때, 그들은 덕후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애정으로 리믹스하는 DJ였고, 데이터베이스/아카이브의 창조적인 탐구자였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유형의 창작자들이었다.

나 또한, 아직도 저 너머에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어떤 미래를 믿고 상상하느냐다. | 나원영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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