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도둑 | 무너지기 | Self-released, 2018

 

희미한 소리들의 힘

 

압도적인 순간

그런 표현들이 있다. 그러니까, 그냥 ‘배경음악’으로써 틀어놓았던 음악을 어느 순간 모든 걸 멈추고 그저 듣게 되었다는… 그게 왜 그렇게 되었냐 하면 그냥 그저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는… 그런 표현들. 다른 것에 관심을 쏟고 있다가, 어느 순간 음악이 그 모든 관심을 가로채는 순간. 이를 ‘압도적인 순간’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음악은 그 압도적인 힘이 있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순간들은 종종 찾아온다. 내 경우를 따져보면 근작 중에서는 히피는집시였다의 “침대”에서 지바노프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순간이나, 전자양의 “쎄쎄쎄”에서 싸이키델릭 노이즈가 폭발하는 순간이나, 태민의 “MOVE”에서 베이스음이 내려앉으며 후렴이 시작되는 순간이나, 키라라의 “Wish”의 첫 음(첫 음이라는 게 좀 반칙인 거 같지만)이 예쁘고 강하게 시작되는 순간들이 그런 ‘압도적인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런 압도적인 순간들은 오로지 소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순전히 내 취향의 음악이기에 좋아하는 것이고 또한 내 방식의 듣기이기도 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나는 노랫말로 압도된 적보다는 그 소리로 압도된 적이 월등히 많았다. 그러한 압도적인 음악들이 압도적인 이유, 하던 모든 일과 생각을 멈추고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얼까, 압도적인 순간은 음악을 듣는 우리를 어떻게 매혹할까, 아니 정확히는, 나는 압도적인 순간들에 어떻게 매혹될까, 하는 질문들이 내 안에서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공중도둑(구-그림자 공동체, 공중도덕, 휴HYOO)의 [무너지기]는 올해의 여러 음반들은 물론 최근의 여러 음반들 중에서도 월등히 압도적인 경험이었다. 그것도 조금 다른 방식, 공중도둑만의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오직 공중도둑만이 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내가 [무너지기]에서 경험한 압도적인 순간들은: “수호자”가 조용하던 초반부에서 이윽고 추가되는 신시사이저 노이즈와 함께 시끄러워지는 순간, “쇠사슬”에서 공중도둑의 첫 소절 뒤로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가 조용하게 등장하는 순간, “감은 듯”의 속도감 있는 마지막 부분에 전자음이 들어오는 순간, 무엇보다도 “함께 무너지기”에서 서서히 쌓이는 소리들이 트레몰로와 함께 쏟아져 내리는 가장 마지막 순간 그리고 기타 등등.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무너지기]에는 이런 압도적인 순간들이 가득가득 차 있다.

서두가 조금 길었고, 단순한 칭찬만을 늘어놓은 것 같지만, 이 글은 [무너지기]에 산재한 이런 순간들이 단순히 ‘진짜배기로 실험적인 로우파이 노이즈 포크 음악’이기 때문에 훌륭하다는 이야기만을 하려는 글은 아니다. 나는 [무너지기]의 소리들이 내게 압도적으로 다가온 이유를 찾고 싶었고, 더 나아가 공중도둑의 음악의 (공중도덕 시절을 포함해서) 힘이 대중음악의 다른 여러 압도적인 순간이나 힘들에 비해 왜 그렇게 중요하거나 훌륭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조금 더 차근차근, 이리저리 [무너지기]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갑자기 내가 이전에 썼던 두 글을 인용/참고해야할 것 같다.

 

서정적인 소음과 소리의 사이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에서 나는 조월을 이야기할 때 ‘서정적인 소음’이라는 표현을 쓰며 글을 진행했고, 노 리스펙트 포 뷰티를 이야기할 때에는 마지막에 시간으로 이뤄진 음악과 그 ‘소리의 사이’에 대해서 짧게 언급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두 곡은 강한 이펙트를 통해 짙은 노이즈를 만들며 이를 통해 소리 자체에 널찍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기타 이펙트로 소리의 공간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에다가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이용한 다양한 노이즈를 집어넣으며 그 공간은 더욱 밀도를 더한다. 모든 과정을 겪으며 소리는 좋은 의미에서 모호한 노이즈로 바뀌고, 특이한 소음이 완성된다. 여기에 특유의 멜로디와 노랫말들이 들어가며 서정도 더해진다. 그리고 이 과정이 전체적인 서정적인 소음의 상을 그려낸다.”

음악은 시간으로 이뤄졌다. 시간의 진행에 따른 변화들이 음악을 만든다. 소리들은 순간순간마다 쌓이고 쌓여서 하나의 곡을 만들고, 들려오는 바로 그 순간순간마다 사라진다. 우리는 나타나고 사라지는 소리들의 순간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변화들을 즐기는 셈이고, 어떻게 보자면 한 곡 안에 쌓인 수많은 순간들이 사라지는 것을 즐기는 셈이다. 수많은 순간과 사이 속에서 음악이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음악을 만들 때도 소리와 그 사이를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보자면 이 ‘서정적인 소음’과 ‘소리의 사이’ 같은 표현을 쓰면서 내가 그 당시에 이야기하려던 것이 곧 음악에서의 공간과 시간이 아니었을까, 늦게나마 짐작해본다. 사실 정말 정말 정말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주가 시간과 공간으로 이뤄져있으니, 당연히 음악 또한 그 두 요소들로 이뤄진 것일 테다(너무 우주적으로 간 게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이러한 관점에서 [무너지기]의 압도적인 순간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에 대해서 생각하면 결국에는 이 시공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밖에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우선 시간부터다.

 

시간: 예감의 배신

다시 이야기하자면, 음악은 시간, 정확히는 시간의 흐름으로 이뤄졌다. 시간의 진행과 흐름에 따른 변화들이 음악을 만든다. 곧 음악에 있어서 시간은 전개, 흐름, 진행, 어떻게 부르던 간에 그 ‘변화’의 과정을 의미하거나 포함한다. 아주 오랫동안, 이 변화 과정의 주된 방법으로는 반복이 쓰였다. 똑같거나 비슷한 멜로디나 박자 등을 갖춘 하나의 부분을 계속해서 되풀이하기. 대중음악에서는 절이나 벌스(verse), 후렴, ‘싸비’ 등의 용어(?)들로 이야기되는 이 반복은 어떻게 보자면 음악의 시간적 변화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규칙이나 방법, 틀 중 하나다. 한 곡 안에서의 반복은 곧 그 음악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의 형태를 드러낸다. 물론 이 틀마저 해체하는 음악 또한 존재하지만, 적어도 그게 모두가 사랑하는 팝 넘버든 아니면 헤비 리스너들만 좋아하는 기묘한 장르이든, 음악에 있어서 반복은 중요한 방법으로 쓰인다. 심지어 반복을 해체하는 방법마저도.

그러므로 반복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또한 중요할 것이다. 완전히 똑같은 부분만 계속해서 반복하는 건 재미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반복은 변주된다. 선율이 달라진다, 조가 바뀐다, 박자가 변화한다. 1절이 있으면 2절은 조금 달라질 수도 있고, 후렴도 달라질 수도 있으며, 아예 변주와 변주를 계속하며 반복될 수도 있고, 이러한 반복의 변주 또한 시간의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우리들의 두뇌(!)는 이 반복하고 변주하며 달라지는 소리들을 순간순간 지각(!)하며 머릿속에서 이를 잇는다. 도 다음에 레가 나오면 이를 도-레의 흐름으로써 지각하고, 레 다음에 미가 나오면 이제 도-레-미의 흐름으로. 우리의 두뇌(!)와 지각(!)은 시간의 흐름에 맞춰 이 순간순간들을 계속해서 이을 수 있다. 또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소리들은 순간순간마다 쌓이고 쌓여서 하나의 곡을 만들고, 들려오는 바로 그 순간순간마다 사라진다. 우리는 나타나고 사라지는 소리들의 순간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변화들을 즐기는 셈이고, 어떻게 보자면 한 곡 안에 쌓인 수많은 순간들이 나타나는 것만큼 사라지는 것도 즐기는 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너지기]에서는 어떨까. 공중도둑은 어떻게 시간의 흐름, 그 반복과 변주를 이용할까. 여기에서 잠시 장르적인 이야기를 조금 하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다. 우선적으로 [공중도덕] 시절부터 공중도둑은 전자음과 포크를 합친 포크트로니카 성향의 음악을 들려줘왔다(개인적으로 로파이는 공중도둑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결국 공중도둑은 장르적으로 바탕 혹은 기반으로 두고 있는 포크와 일렉트로니카라는 두 개의 영역에서 주로 사용해온 진행 방식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익히 알고 있는 포크트로니카 혹은 전자음이 가미된 포크에 내재된 하나의 전형 혹은 정형은 어쨌든 공중도둑과 [무너지기]의 바탕이 된다. 그러니까, 여러 사람들이 어디에도 없던 완벽하게 새로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공중도둑은 오히려 이미 존재하던, 그것도 꽤 오랫동안 탄탄히 존재하던 음악들을 그저 조금 다른 방식,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했을 뿐이다.

이 ‘변주’는 포크보다는 전자음에서 두드러진다. 공중도둑은 끊임없이 포크의 전형과 정형을 넘어 전형적이지 않은, 무정형의 소리를 들려준다. 이는 특히나 여러 곡들의 진행 과정, 그러니까 시간의 흐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본다. 절과 후렴을 확실하게 구분하기 힘들며, 박자는 일정하게 변화하기보다는 변칙적이고 자유자재로 튀며, 각각의 멜로디들은 수많은 전자음이 만들어내는 노이즈들로 연결되어있고, 특히나 오히려 포크보다 전자음악에서의 ‘소음’이 난데없이 여기저기에서 습격하듯 등장할 때도 있으며 심지어 이 두 소리들이 분열증적으로 싸움하듯 오고가기도 한다.

이미 [공중도덕]에서 “늪지대”의 ‘포크 노이즈’ 가득한 후반부나 “우”의 중간 브릿지(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 참 애매한) 부분 및 혼란스러운 마지막, 특히 “달들”의 마지막은 포크나 포크트로니카이기보다도 오히려 조금은 부드럽고 친절한 노이즈 혹은 글리치 음악이라 해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다. 이러한 성향은 조금 더 확실한 전형과 정형이 존재하는 “파라솔” 같은 노래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름 일정한 절이 두어 번 반복되지만, 마지막에는 전혀 상관없는 멜로디가 모든 걸 마무리하는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공중도둑 음악의 시간에 있어서 반복과 변주는 그 ‘포크트로니카’적인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틀을 부수는 방식으로 밀어붙여진다. 이러한 반복과 변주로 만들어진 하나의 정형(그것이 곧 장르적 문법일 것이다)을 계속해서 접하고 접하며 만들어진 일종의 익숙함 혹은 기대감, 그러니까 ‘여기서 1절이 나왔으니 이제 브릿지나 후렴이 나오겠지’하거나 아니면 ‘이런 박자나 멜로디로 시작했으니 나중에도 이렇게 반복되겠지’하는 류의 예상들은 계속되는 진행과 흐름, 전개와 과정에 있어서 철저히 뒤엎어진다.

시간에 의한 배신과 배반. 변칙이나 실험, 해체나 파괴 같은 뉘앙스의 단어들이 공중도둑의 주로 쓰이는(그리고 내가 그런 의미의 단어들을 쓰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중도둑이 변칙적으로 실험하거나 해체적으로 파괴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장르이거나 영역이기보다는 우선적으로 우리의 예감이다. 그리고 이 반복과 변주의 배신과 배반은 익숙해지려고 하는 순간 또 다시 또 다른 형태의 또 새로운 배신과 배반으로 엎어진다.

하지만 말했듯이, 공중도둑은 그가 이용하는 장르나 전형의 범주 안에서 이 배반을 최대한으로 실현한다. 그러니까 그의 음악은 정말로 소리와 반복과 구성 등의 모든 걸 배반하는 하쉬 노이즈(Harsh noise)나 글리치, 사운드 콜라주, 테이프 뮤직, 뮈지크 콩크레트(Musique concrète) 따위의 아방가르드 실험 음악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고, 또 그 때문에 이러한 실험 음악에는 익숙치 않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공중도둑의 음악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심지어 해외에도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는 중이다). 공중도둑의 소리는 매우 명민하고 치밀하게 그 진행에 있어서, 시간에 있어서 배신과 배반을 이어간다. 한 순간은 그 다음에 등장하는 다른 순간에 의해 부정되고 엎어지며 배신당한다. 하지만 경계를 뚫고 아무도 모르는 낯선 세계로 나아가기 보다는, 지극히 설계되고 짜인 배신과 배반 안에서 그렇다.

소리와 소리가 그 사이로 연결될 때, 그리고 그 사이의 차이에서 어떠한 변화를 느낄 때, 공중도둑은 그 때마다 각 소리들이 서로를 배반할 수 있도록 한다. 반복과 변주, 사이의 차이를 이용하며 예상 불가능한 순간들을 만들고, 그러한 순간들이 계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고 이전의 순간들을 전복할 때, 공중도둑의 음악은 압도적이다. 익숙함을 부수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 당연히 우리의 관심은 그 낯섦에 집중되니까 말이다. 기대와 예상을 깨는 동시에 그 기대와 예상을 계속해서 갱신하며, 공중도둑은 시간에 대한 정형과 클리셰를 압도하는 시간의 전개를 들려준다. 그 점에 있어서 공중도둑의 진행 방식은 자유롭거나 통제 불가능이기보다는 오히려 그 ‘통제 불가능함’을 의도적인 통제 불가능의 방식으로 통제한다. (그러니까 “[공중도덕]의 목표가 오히려 팝이었으리란 상상마저 하”게 되었다는 김세철의 말은 오히려 엉뚱한 상상이 아닌 날카로운 분석이 아닐까.)

 

[무너지기]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그렇다면 [무너지기]에서 소리의 사이에 배반과 배신을 집어넣는 공중도둑의 방식은 어떻게 ‘압도적인 순간’으로서 드러날까. 음반을 여는 “왜?”로 시작을 해보자면, 곡은 크게 반절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어쿠스틱 기타가 그나마 등장하는 앞의 절반과 쿵쿵대는 전자음 비트가 가득 찬 뒤의 절반. 여기서 첫 번째 절반은 매 순간순간마다 그 모습을 바꾸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소리들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그 이전의 소리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배신한다.

시작하자마자 들려오는 노이즈는 곧 어쿠스틱 기타가 주된 역할을 차지하는 ‘첫 번째 절’로 이어진다. 이 ‘첫 번째 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음 섞인 변주가 들어오는 ‘(어쩌면) 두 번째 절’이 되고, 전자음이 점점 주도권을 쥐는가 싶더니, 또 속도가 갑작스럽게 느려지며 전자음과 기타 스트로크가 함께 들어온다. 그리고 곡은 이윽고 후반부에 진입하며 신스 노이즈의 쿵쿵대는 소리가 죽 이어지는데, “왜?”에서 이 짧고 짧은 소리의 부분들은 등장하자마자 기존의 순간들을 부정하고, 이 과정은 상대적으로 꽤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형태의 소리가 들어오는, 그러니까 압도적인 순간들의 집합이 된다(곡에서 1분 40초부터 시작되어 30초가량의 시간동안 상이한 소리들이 시시각각 순간순간 찾아오는 부분이 매우 좋은 예시일 것이다). 여기에 바로 단순히 경험으로써 압도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지극히 그 의미 그대로, 하나의 소리가 그 다음 소리에 의해 압도되는, 그런 의미에 있어서 압도적인 순간들이 존재한다.

영화에서의 점프 컷(그것도 특히나 가장 혼란스러운 경우들)을 떠올릴 정도로 매 순간순간마다 달라지며 그를 통해 이전의 순간들을 완전히 뒤집는 전개 과정은 [무너지기]에 가득하다. 말하자면 노래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가 완전히, 전혀 다른 그런 식인데 생각해보면 그러한 노래나 음악이 얼마나 될까. “곡선과 투과광”도 이러한 “왜?”와 비슷한 노래로, 빠른 속도의 전자음이 주도되어 썸머 소울(Summer Soul)의 보컬과 함께 울려 퍼지는 첫 부분과 느린 속도에서 신스음을 중심에 둔 중간 부분, 그리고 여기에 공중도둑의 목소리가 묵직한 전자음 비트와 함께 이전의 소리들을 묻어버리는 마지막 부분이 이어지며 각 부분들은 이후에 찾아오는 다음 부분들에 의해 부정되고, 오히려 주도권을 뺏긴다. 공중도둑은 끊임없이 그 작업을 계속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소리가 다른 소리를 집어삼키고 잡아먹는 과정을.

“흙”이 일종의 수미상관처럼 매우 잔잔한 포크 연주로 시작하고 끝나지만 그 사이에 싸이키델릭한 전자음들이 만들어내는 장관부터 로파이하고 차분한 스트로크까지 얼마나 다른 빛깔의 소리들이 등장하고 퇴장하는지, “감은 듯”이 어떻게 비슷한 멜로디를 반복하면서도 박자와 속도를 이리저리 조절하고 그 위로 수많은 다른 소리들을 집어넣어 환상적이고 예상 가능하겠지만 ‘압도적인’ 전개를 만들어 가는지, 그리고 다른 노래에도 이렇게 소리의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전복과 배신을 터뜨리는 순간들이 얼마나 가득한지. 그 과정의 예시는 너무나도 많다.

[무너지기]라는 제목이 우선적으로 지시하거나 넌지시 드러내는 것이 있다면, 이는 어떠한 붕괴의 현장일 것이다. 여기서 붕괴되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러한 배신과 배반으로 철저하게 전복되는 시간이다. 예감할 수 있거나 어떠한 예상과 짐작을 할 수 있는, 기대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붕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부정되는 순간 우리는 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큰 호기심을 느낀다. 만약 이것이 코스믹 호러풍 공포 영화처럼 전적으로 통제 불가능하다면 이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은 곧장 공포로 바뀌겠지만, 만약에 통제가 가능하다면 이 알 수 없는 것은 곧바로 매혹적인 것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공중도둑은 음악에서의 시간과 그 진행, 흐름, 전개 등을 미지의 영역, 통제 가능한 미지의 영역으로 바꾼다. 다음에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어떤 소리들이 이전의 소리들을 부정하며 뒤엎을지 상상도 못한다. 물론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상상은 철저히 배신당한다. 하지만, 매력적인 방식으로.

그 지점에서 [무너지기]는 우선적으로 시간을 무너트리며, 오로지 음악이 펼쳐지는 이 순간, 현재에서 존재한다. [무너지기]의 시간적 측면에서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그것은 소리의 사이에서 막연한 짐작이 어떻게 전복되고 배신될지, 오히려 그에 대해 상상하게 하는 힘일 것이다. 그러므로 [무너지기]는 시간의 측면, 흐름과 전개와 진행의 측면에서, 그에 대한 모든 막연한 기대와 전망을 쥐고 무너져 내린다.

 

공간: 희미한 소음

하지만 공중도둑의 음악은 단순히 예상 밖 전복의 과정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시간적 의미에서 공중도둑의 ‘압도적인 순간’이 소리의 사이와 그 순간들의 연결을 통해 어떠한 배신과 반복을 만들어내며 예상 가능한 변화에 대한 기대를 만들고 무너뜨렸다면, 공간적 의미에서 ‘압도적인 순간’은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그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그 때문에 공중도둑의 압도적인 힘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적인 요소는, [우포찾] 조월 편에서 끌어온 것처럼 ‘서정적인 소음’이다. 다만 공중도둑의 방식으로.

사실, 2015년 당시에 [공중도덕]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난 게 초창기의 전자양과 조월이었다. 전자양은 단지 [Day Is Far Too Long] 시절의 로파이함 때문이었지만, 조월의 경우에는 조금 더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조월이 그만의 ‘서정적인 소음’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위에서 스스로 인용했듯이 거대한 소리의 공간을 형성하고 그 사이에 각기 다른 소리들을 집어넣는 동시에, 이를 소음과 노이즈로 만드는 식이었다. 그렇게 조월이 만든 소음의 공간은 서정적이었다. 공중도둑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조월이 시간적 측면에 있어서 공중도둑보다는 조금 덜 혼란스럽거나 자유롭게 배신하는 대신 조금 더 예상 가능한 순간에서 일정한 전형으로 구축된 음악을 들려준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물론 훌륭하게 구축된 음악도 당연히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진다). 하지만 소리의 공간, 혹은 어떠한 질감이나 구성, 구조, 층위에 대해서라면 공중도둑은, 서정적이기보다는 ‘희미한 소음’을, 정확히 말하자면 ‘희미한 소리들의 소음’을 들려준다.

시간적 의미에서 하나의 ‘순간’은 다른 ‘순간’과의 관계, 그 소리의 사이에서 어떠한 의미를 얻었다. 말했듯이 도 다음에 레가 오고 그 다음에 미가 오면 우리는 도-레-미의 흐름으로써 이를 인식한다. 하지만 공간의 경우, 순간과 순간 사이의 관계보다는 그 순간 자체가 어떻게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물론 그 구성이나 구조를 느끼기 위해서는 얼마간 시간에 맡겨 음악을 듣는 것이 필요할 테지만). “악연”이나 “어느새”, “산불” 등에서 조월의 소음이 주로 기타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톤에 의해, 그리고 그 톤을 다양한 방식으로 뭉개며 노이즈로 바꾸는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비해, 공중도둑이 만들어내는 소리 혹은 소음은 다르다.

[공중도덕]에서는 조금 더 날것의, ‘로파이’에 가까운 믹싱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기에, 이 특징은 오히려 [무너지기]만의 특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중도둑의 소리들은 희미하다. 그러니까, 그 순간을 구성하는 소리들을 구성하는 조각들 말이다. 주로 전자음과 어쿠스틱 기타가 주된 소리들을 차지하긴 하지만, 공중도둑이 이 음들로 만들어내는 소리들은 조월이 “부드러운 인생”이나 “멕시코행 고속열차” 같은 곡에서 제법 시끄럽게 들려주는 슈게이징한 소음과는 다르게 전적으로 희미한 편이다. 쿵쿵 묵직하게 박히는 전자음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공중도덕]에서 몇몇 순간들을 가져와서 이야기해보자. 앞서 언급한 포크트로니카의 영역이 완연한 노이즈의 영역과 교차하는 순간들, “늪지대”나 “달들”의 마지막 같은 순간을 가만히 들으면, 이 노이즈는 단지 한 악기(이를테면 어쿠스틱 기타)의 소리에 디스토션을 넣으며 시끄럽게 하며 만들어지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신에 이 소리는 멀리서 알 수 없이 웅웅대는 목소리, 조용히 오고가는 기타 스트로크, 가끔씩 등장하는 피아노나 금관 등 다른 악가들의 소리, 기묘하게 뒤틀린 신스음, 이따금 모든 소리 위에서 이를 묻기도 하는 노이즈, 그 이외에 그 원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샘플링들이 겹겹이, 층층이 쌓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슈게이징이나 노이즈 록의 ‘소음’이 짙은 소리로 한 방에 두툼한 소음을 만든다면, 공중도둑의 경우에는 이 희미하거나 얇은 소리들을 덧칠하고 덧칠해 하나의 거대한 소음으로 합쳐내는 식이다.

그러므로 공간에 있어서 공중도둑의 소리는 그 작고 작은, 어쩌면 (비교적) 약하기까지 한 희미한 소리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졌다. 이 지점에서 공중도둑이 [공중도덕]과 [무너지기]의 소개글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직접 언급한 “목소리가 약하”다거나 “이번 앨범은 소리가 많이 작”다는 문장들은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그의 말이 맞다. 공중도둑이 만들어내는 소리들의 조각조각, 부분부분, 순간순간은 약하거나 작다. 희미하다. 그러나 그 약하고 작고 희미한 순간들을 합쳐낼 때 그 소리들은 하나의 소음, 힘이 있는 소음, 희미한 힘이 있는 소음이 된다. 공중도둑은 그 희미한 소리들을 매우 섬세하게, 세세한 측면에서 쌓아올린다. 그렇다. 쌓고, 쌓이고, ‘쌓여진’다. 희미한 소리들이 쌓여 희미한 소음이 된다. 무너지는 시간과 쌓이는 공간. [무너지기]에서는 그것이 더 확실히 이뤄진다.

 

[무너지기]는 어떻게 쌓이는가

[무너지기]가 [공중도덕]보다 훨씬 더 담대한 게 있다면 (그래서 훨씬 더 맘에 드는 게 있다면) 단순한 ‘로파이’ 성향에서 벗어나 (다시 말하지만 ‘로파이’는 이 경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훨씬 더 풍성하고 다양한 소리들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또한 공중도둑이 시간적인 측면에서 들려준 반전과 배신의 순간들은 이런 공간적인 측면에 있어서의 희미한 소음들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 둘이 명민하게 결합될 때, 그러니까 그 시공을 가장 훌륭하게 사용했을 때야말로 공중도둑과 [무너지기]를 들을 때의 압도적인 순간들이 찾아온다.

앞서 내가 ‘압도적’이었다고 언급했던 노래들로, 공중도둑이 펼쳐지는 시간과 공간을 섞어 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감은 듯”의 경우 계속해서 곡 중간 중간마다 들려오는 조용한 어쿠스틱 기타 솔로는 그 소리 주위로 끊임없이 다른 희미한 소음들이 들어오며, 이 순간에 존재하는 소음의 밀도는 훨씬 짙어진다. 이 경우 이 소음들은 뭉개진 목소리와 어디에선가 녹음해 샘플링한 것 같은 앰비언트 노이즈, 가장 희미하고 조용하게 울려 퍼지는 신스음 등이다. 음반을 조용하게 마무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무소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느린 분위기에서 썸머 소울의 보컬과 신스음이 이어지지만 그 뒤로 조용한 앰비언트 노이즈가 펼쳐지고, 뒤이어 기타는 물론 다양한 전자음이 쌓아올려지며 공간을 만들어내고, 목소리 또한 그 공간의 일부가 된다. 마지막 몇 초 동안에도 이 희미한 소리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대신 저 멀리서 조용히 울리는 아이들의 놀이 소리만을 들려준다.

잠깐 여담으로 빠져서, [공중도덕]이 나왔을 당시 여러 팬들은 공개되지 않은 노랫말들을 추측했다. 당연히 이 노랫말들은 공중도둑 특유의 소음들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많은 팬들이 이 소음을 뚫고 노랫말들을 제대로 ‘들으려’ 노력했다. 이어 [무너지기]에서 노랫말이 공개되자 여러 사람들이 반가워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공중도둑이 노랫말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도 이 공간적인, 소음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러 대중음악에 있어서 노랫말은 유일하게 언어적이자 의미적인 값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 덕에 그 어느 ‘소리’보다도 중요했다. 하지만 공중도둑의 경우 이 노랫말을 전달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목소리는 단지 또 다른 여러 소리들과 똑같은, 다른 희미한 소리로서 기능할 뿐이고 그 덕에 ‘노랫말’은 (내 생각에는) 공중도둑의 음악에서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단지 뭉개지거나 왜곡된 또 다른 희미한 소리가 될 뿐이다. 그렇게 공중도둑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오로지 소리만의 공간이다.

“감은 듯”의 이러한 경우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순간에, [무너지기]에서 단 하나의 소리만이 홀로 남아있는 경우는 없다. 언제나 다른 희미한 소리가 소음으로써 여기에 함께 한다. 이는 비단 악기 소리나 목소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말 그대로 채집되어 삽입된 파도 소리, 새 소리, 물소리, 목소리를 비롯한 수많은 생활 소음들이 가득하다. 어쿠스틱 기타가 나오면 옅은 신스음이나 전자음 노이즈가 더해지고, 목소리가 나온다고 해도 언제나 희미한 화음들이 함께 한다. 어떻게 보자면 이 희미한 소리들은 함께 쌓아올려지며 외롭지 않은 소리들이 된다. “수호자”의 경우 앞에서 언급한 ‘시끄러워지는 순간’은 시간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이전에 만든 조용한 순간들이 시끄러운 순간으로 전복되는 과정에서 잡아낼 수 있는 어느 한 순간이며, 공간적으로 보자면 그 ‘시끄러워지는 순간’ 자체에는 주로 튀어나오는 신스음의 뒤편으로 들려오는 수많은 희미한 소리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소음의 순간이 된다.

재미있게도 이러한 ‘희미한 소음’은 그 표현 자체에 있을 수많은 모순이나 양가를 뛰어넘고 정말로 성립하게 된다. 희미한 소리들로만 이뤄진 소음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순간. “쇠사슬”은 “수호자”와 꽤 비슷하게 공중도둑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스트로크로 시작되지만, 그 뒤로 깔리는 희미한 소리들은 천천히 쌓이고 쌓여 노이즈들이 가득한 다음 부분으로 옮겨진다. 이윽고 희미한 소리들이 쌓이고 쌓여 찰칵거리거나 딸랑거리거나 하는 수많은 소리들이 공중도둑/썸머 소울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함께 한다. “왜?” 같은 경우와는 다르게 “쇠사슬”은 훨씬 더 정형적인 틀 안에서 진행되며 초반부의 멜로디를 비슷한 속도에서 계속 변주하며 반복한다. 그럼에도, 공간의 측면에서 보자면 순간순간마다 새로운 희미한 소리들이 추가되며, 각기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 과정으로 소리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넓이 혹은 깊이는 점점 더 새로운 지점으로 펼쳐진다. 자그마한 점에서 시작해 하나의 면을, 또 형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괜찮을까.

층층이 쌓인, 희미한 소리들이 소음으로써 만들어내는 순간과 그 소음들이 새롭게 찾아올 때마다 소리의 사이에서 예감을 배신하는 순간. 이 두 순간이 모이고 모여 공중도둑의 소리, 공중도둑의 힘이 된다. [무너지기]의 압도적인 순간은 단순히 뭔가 다르거나 새롭기에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계획적이고 지극히 통제된 범위 안에서, 그 자유로운 전개와 치밀한 구성을 정말로 해냈으니까, 압도적인 순간들을 음악의 시공을 이용해 기어이 점점이 박아놓았고 쌓아올렸으니까, 공중도둑의 음악은 압도적이다.

 

빈틈들이여, 빈 공간이여

그 압도적인 순간의 중앙에 (또한 [무너지기] 자체의 중앙에도) “함께 무너지기”가 있다. 10분이 다 되어가는 긴 시간은 시간적 측면에서의 예감을 배신하는 전개를 더욱 길고 변화무쌍하게 들려주며, 그만큼 길기에 그 시간동안 공간을 희미한 소리들로 채울 수 있는 방법 또한 무한으로 늘어난다. 어떻게 보자면, “함께 무너지기”는 시간적인 배신의 예시로 언급한 “왜?”나 “곡선과 투과광”, “흙” 등보다는 조금 더 반복과 변주의 규칙에 바탕을 뒀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기타 스트로크는 곡이 진행되는 내내 반복된다. 공간적으로 보자면, 이 기타 스트로크가 초반부에 조용하게 진행될 때에는 여러 희미한 소음들이 그 곁으로, 뒤로, 밑으로 들어온다. 공중도둑과 썸머 소울 둘의 목소리도 그렇고 신스음과 전자음, 말소리나 파도 소리처럼 샘플링 된 소리 등이 추가되며 희미한 소리들은 천천히 쌓인다.

이 부분에서 추가되는 희미한 소리들은 어느 순간, 소음이 된다. 그것이 잠시 사라지는 순간 곡은 훨씬 더 거대한 소음을 샘플링된 파도가 계속해서 오가는 것처럼 들려준다. 이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소음의 파도는 곡의 밀도를 더욱 더 높인다. 시끄러운 순간은 조용한 순간에 의해 부정되고, 조용한 순간은 다시금 찾아오는 시끄러운 순간으로 부정된다. 멜로디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수많은 소음들과 함께 변주되며 반복되고, 공중도둑의 목소리는 가장 큰 소리를 내는 동시에 소음의 영역으로 합쳐진다. 이 지점이 지나간 다음, 다시 한 번, 조용한 어쿠스틱 기타의 순간이 찾아오며 끝나나 싶더니, 곡은 다시 한 번 예상과 빗나가며 모든 희미한 소리들이 소음으로써 모여 파도처럼 휩쓰는 순간을 들려준다.

사실 “함께 무너지기”에서 반복의 변주를 희미한 소음으로써 웅장하게 빚어내는 8분의 과정도 무척 빛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절정’ 이후 찾아오는, 모든 것이 끝난 (듯한) 이후의 마지막 2분이 노래에서도, 어쩌면 [무너지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 번, “함께 무너지기”를 꿰뚫는 어쿠스틱 기타 리프가 찾아오지만, 이 뒤로는 수많은 희미한 소리들이 다시금 등장한다. 파도 소리는 조금 더 커졌고, 중얼거리고 속삭이는 목소리는 의미나 언어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닌 정말 다른 모든 소리들과 똑같은 소리로써 찾아온다. 신스음도 조용히 그 자리를 장식하고, 이렇게 희미한 소리들이 모이고 모여, 한 번 더, 마지막 소음으로 이어진다. 그 소음이 찾아오는 순간, 희미한 소리로 거대한 소음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 순간이 내가 [무너지기]에서 겪은 가장 압도적인 순간이었다. 빈틈과 빈 공간으로 파고들어가, 계속해서 변화하고 그 과정으로 기대를 배신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작고 약한 소리로 높은 파도 같은 소음을 만들어내는 순간. 나는 그 순간에 압도되었다. 작은 물결들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낸 파도에 휩쓸리는 것처럼.

 

희미한 소리들의 힘

공중도둑이 [무너지기]에서 들려준 압도적인 순간과 그 압도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힘은, 희미한 소리들로 이뤄졌다. 희미한 소리들의 배치와 희미한 소리들의 전개. 순간과 순간 사이에서 무너지는 소리들과 또 층과 겹 사이에서 쌓이는 소리들. 내가 [무너지기]에 계속해서 압도되는 건 한 번 언급했듯 이렇게 드러나는 공중도둑은 어떠한 무규칙이나 무정형, 무한한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희미한 소리들이 무너지고 쌓이고 다시 한 번 쌓이고 무너지는, 그 해체와 조합의 과정을 부단히 반복하고 변주하는 과정이 아주 자세하고 꼼꼼하게 배치되고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꼼꼼한 배치와 전개가 오로지 작고 약한, 얕고 조용한, 희미한 소리들로 이뤄졌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압도적이다.

이는 어떠한 절대적인 예술성, 뭔가 확실하고 거대하게 아름다운 무언가가 어마어마한, ‘압도적인’ 숭고를 뽑아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공중도둑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풍경은 ‘예술성’이나 숭고 같은 것이 아니다. 작고 작은 조각과 순간들, 위태위태하게 존재하며 무너지고 쌓이는 과정을 반복하다 ‘희미한 소음’이라는 모순을 성취하는 희미하거나 미약한 과정. 그 희미한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힘은, 어쩌면 아무리 짧은 순간이나 작은 조각이라도, 그것이 사려 깊게 배치되고 전개된다면 가장 미세한 부분에서도 아름다워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외적으로 보자면, 공중도둑은 전혀 야심차지 않다. 자신이 대체 누구인지 제대로 드러내지도 않고,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인 게 평균인 홍보나 마케팅도 최소한이며, 공연 활동도 하지 않으며 가끔씩만 음반 만을 낼 뿐이고, 그 음반마저도 소리가 작고 약하다고 한다. 그는 그저 조용히,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작고 약한 소리들을 합치고 합쳐낸다. 하지만 치밀하고 자세하게, 그리고 그를 통해 최대한 자유롭게 그리고 어쩌면, 재미있게. 공중도둑은 단지 희미한 소리들을 차분하고 조용히 무너뜨리고 쌓아올리고, 쌓아올리고 무너뜨리며 합쳐냈을 뿐이다.

그 희미한 소리들에서 어디에도 없던 압도적인 힘이 나온다. 이 힘은 어디선가 엄청난 인기를 얻거나 엄청 대단하다는 상을 타거나 ‘예술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듣다거나 하는 힘이 아니다. (그런 요소들은 매우 부차적일 뿐이다.) 이 힘은 우리가 생각해온 ‘압도’나 ‘힘’의 이미지를 배신하고 전복하는, 그러한 압도적인 힘이다. 단지 무너지고 쌓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희미한 소리들을 이어가며, 그저 계속될 힘일 뿐이다. 오고가는 파도처럼, 아니면 음반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희미한 아이들의 소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희미한 소리의 힘이야말로 거대하거나 강력하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힘’과는 다르게, 아주 작고 약한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내고 표현해낼 것이다. 어마어마하고 거대하게 아름다운 ‘예술’이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압도적인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저 작은 소리나 소음, 순간이나 찰나, 조각이나 먼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런 희미한 것들 안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그러므로 우리의 상상을 부숴버리고 갱신하는 아름다움과 힘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아름다운 순간은 강력한 숭고미의 거대한 형상이기보다는, 아주 짧은 순간에 찾아오는, 모든 것들을 멈추고 그저 음악의 한 순간에 집중하게 하는, 무척이나 애매하고 불분명하며, 찾아왔는지 지나갔는지도 모를, 애초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하지만 분명히 몸과 마음 어딘가에 잔재가 남아있는, 아주 조용하고 희미한 순간이다. [무너지기]에서만큼은 그 아주 조용하고 희미한 그 순간이 어쩌면, 그 모든 다른 순간들보다도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순간은,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쓰기에도 불가능한 순간이기도 할 테다(물론 나는 이를 글로 썼고, 보다시피 여러 측면에서 실패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지극히 희미한 순간의 힘을 좋아한다. 좋아하기보다는, 믿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무너지기]에 대해 이야기했던 ‘예술적 가치’나 ‘아름다움 그 자체’나 ‘진짜배기 음악’ 같은 표현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다. 공중도둑은 그냥 희미한 소리들을 계속해서 들려줄 뿐이다. 함께 무너지고, 함께 쌓이며, 조용하고 희미하게, 계속해서. 그리고 나는 그 희미한 소리들의 힘을 좋아한다. 사실 그뿐이다. 그 순간의 작은 힘으로 나 또한 어느 순간 어느 정도 무너지고, 또 어느 정도 다시 쌓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조금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 희미한 순간들이 내 속 어딘가에 한 순간 남기고 간 흔적들을 찾아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공중도둑의 [무너지기]는 그렇게 희미한 소리들의 힘으로 내게 작은 흔적들을 여기저기에 남겼다. 그 흔적들을 찾으며 나는 희미하게 압도적인, 다른 아름다움을 상상하고, 그 희미한 아름다움을 가까스로 써본다. | 나원영 [email protected]

 

Rating: 9/10

 

수록곡
1. 왜?
2. 쇠사슬
3. 감은 듯
4. 곡선과 투과광
5. 함께 무너지기
6. 수호자
7. 흙
8. 무소식

 

“함께 무너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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