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퀘어 1층 야외 난간에 설치된 《행복한 사람》의 플래카드

 

故 조동진 1주기 추모 콘서트 《행복한 사람》이 열린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은 맞닿은 인터파크홀의 관객 대기줄이 장대하게 늘어섰던 것에 비해 한산했다. 중년과 노년의 관객들은 공연장 앞 곳곳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대화와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그저 살짝 들뜬 마음으로 공연장에 들어섰다.

나는 이 때 한 서사를 맞닥뜨렸음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한영애, 장필순, 전인권 등의 무대를 통해 대중음악사의 어느 한 시기의 감수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겠다는 기대감은 오히려 단순했다. 어떤 음악은 음정, 박자, 음색, 곡의 구성 등이 다채롭거나 수려하지 않아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나는 그것이 음악에 담긴 서사를 마주했을 때라고 여긴다. 아무래도 나는 이 날 정말 단순했거나, 무방비했다. 관람을 마치고 난 뒤의 심정은 그다지 가뿐하지 않았다.

공연은 숙연하지만 소박했다. 고인이 부재하다는 사실 때문에 이 공연이 열리게 되었지만, 고인이 있지 않았다면 애초에 없었을 자리였다는 사실은 이 자리에서 서사가 현재진행중임을 의미했다. 무대 위 음악가들의 언사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표정에서도 현재 공연장에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타임라인이 켜켜이 쌓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캄캄한 천장을 보고 있으면,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 어느 한 장면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았다.

무대는 조동진과 연이 깊었던 후배 음악가들에 의해 꾸려졌다. 김광진, 강승원, 김현철, 박용준, 임인건, 장필순, 조동희, 한영애가 무대에 올라 고인의 곡을 두 곡씩 노래했고, 키보디스트 박용준, 드러머 신석철, 기타리스트 이성열 등 생전에 고인과 함께 무대에 올랐던 연주자들이 이번에도 함께했다. 무대 뒤 스크린에서 재생된 과거 인터뷰 영상을 통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순서였던 전인권 밴드의 무대는 자연스럽게 앙코르 피날레로 이어졌다. 전인권 밴드가 조동진의 1집 타이틀곡이자 본 공연의 제목에도 인용된 “행복한 사람”을 시작하자 앞서 무대에 올랐던 음악가들이 다시 올라와 함께 노래했다. 그때까지 숙연했던 객석도 그 순간만큼은 분주하게 스마트폰을 들고 그 장면을 담는 것으로 무대와 동화되었음을 드러냈다.

 

공연에 출연한 음악가들이 앙코르 곡으로 “행복한 사람”을 부르고 있다.

 

조동진은 미 8군 무대, 종로 우미회관 등에서 5인조 그룹사운드(록밴드) ‘더 쉐그린(The Shagreen)’의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며, 오리엔트 프로덕션 전속 밴드 ‘동방의 빛’ 기타리스트 및 전속 작곡가를 거쳐, 이후 1979년 “행복한 사람”이 수록된 1집을 발매하며 포크 성향의 싱어송라이터로 전격 변화를 감행했다. 이때 가수 이장희가 건넨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음반이 큰 계기가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인의 1집 음반은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2016년 발매한 유작 6집 [나무가 되어]에는 앰비언트와 전자음을 도입함으로써 끊임없이 스스로를 쇄신하는 음악가의 면모를 남겼다. 오늘 날에 생각해보면 록, 포크, 앰비언트는 서로 다른 음악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음악들은 그것을 모두 섞기도 한다. 한 사람의 생애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음악의 경향들이다. 그의 모든 시도와 변화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부담스럽지만 반대로 방송과 같은 여타 활동에는 무심했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변화였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출구로 향하는데 객석에서 한 사람이 일행에게 말을 건네는 게 들렸다. “이제 뒷풀이에 가서 울자.” 나는 문득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음악가가 생을 달리 했을 때, 내가 저와 같은 추모를 할 수 있을까가 궁금해졌고, 허심탄회하게 울자고 얘기할 수 있는 게 부러웠다. 내 생각에는 그 상황은 뚝심 있게 언더그라운드를 추구했던 음악가에게 적합한 추모였다. 오랜 지지자가 사석에서 그리워해주는 것. 잔잔한 감동을 남긴 음악가에게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추모란 그가 남긴 감수성을 흘기는 것 보다는 그 공동체적인 분위기를 되새겨보는 것이라고 느꼈다.

조동진은 음악가로서 혁신가였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음악가로서 동료들과 함께 살아낼 수 있는지를 선보인 인물이었다. 예를 들면, 1980년대에 동아기획을 통해 나온 들국화, 어떤날, 시인과 촌장 등의 음반은 이른바 ‘조동진 사단’의 결과물이다. 동아기획과 조동진 사단은 이후 경제적으로 부침을 겪으면서도 1990년대에 하나음악, 푸른곰팡이로 이어지며 유대감을 지속시켰다. 그 과정에서 조동진은 신인 음악가들을 자신의 무대에서 데뷔시키고, 고유의 음악관을 정립해 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음악가들이 경력을 시작한 이후에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등 실천을 통해 그 관계를 주도했다. 이 관계는 조동진이 자신의 음악을 새롭게 갱신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음악산업의 판도에서 중심적 지위를 잃고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지긴 했으나, 이러한 일련의 실천을 두루 아울러 조동진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부’로 불리어졌을 테다.

 

“행복한 사람”

 

점차 서사에 담긴 인간미를 마주하고 동경을 품게 되면서도, 한편 단전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낯선 감정을 지울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마치 아이마켓홀과 인터파크홀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공동체’라는 말보다는 ‘폐허’라는 말이 더욱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시도’라는 말과 같이 조동진으로 대표되는 포크에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세부 장르로 분화해왔음을 본다면, 언더그라운드가 음악적으로 발전을 이뤄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공동체는 왜 폐허가 되어야 했을까. 공동체와 폐허가 각각 의미하는 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조동진 사단’과 하나음악이 활발히 활동했던 1980~90년대로부터 2010년대 후반 오늘날의 언더그라운드를 나란히 두고 얘기하기에는 그 사이에 많은 과정이 있다. 그 중 1990년대 중후반부터 홍대 앞에서 부흥한 하위문화는 한동안 언더그라운드의 온상이었다. 하위문화에 참여했던 음악가와 청년들은 홍대 앞이라는 장소에 머물렀음에도 유사한 기호와 상징을 공유하는 소수의 뭉침을 중요시했다. 이러한 정체성 정치와 문화적 구별짓기가 적극적으로 수행되는 하나의 전략이라면, 폐허라는 말에는 보다 자조, 무력감이 느껴진다. 폐허라는 말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1980~9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부터 계속된 관점으로 보자면 음악산업의 판도가 점점 비대칭이 되어간 상황이 있을 것이고, 하위문화의 관점에는 홍대 앞 생태계가 더 이상 뭉치지 못하고 살 곳을 찾아 떠나는 비관적 상황을 보게 된다. 이것도 어느덧 10년이 넘어간 이야기다.

앞의 두 가지 진단에서 미루어 보건대, ‘함께 뭉쳐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가 폐허의 하나의 특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지점을 제외한다면 여전히 음악을 중심으로 창작자, 연주자들이 서로 조력하는 관계는 서울의 이곳저곳에서 왕왕 발견된다. 공동체 안에서 ‘계보’를 이룬다고 보는 것은 어렵지만, 소수의 인물들이 상호부조를 통해 언더그라운드에서 여전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음악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실천이 경제적 소득으로 이어지거나, 한 분야의 명망가가 되는 것과 같은 전망을 낙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자조와 무력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동일한 미래에 대한 상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공동체에 대한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주목하고 싶은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은 다르지만 그것을 추진해온 실천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인이 활발히 활동하던 과거에도 수행했고, 유작으로 남긴 작품에도 그 흔적이 묻어있으며, 오늘 날 도시의 이곳저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것 말이다. 고인이 생전에 “나는 솔직히 말해서 세상이 나아지리라는 전망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개인의 감상을 넘어 긴 세월을 관통한다. 폐허는 다시 공동체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더그라운드는 자조와 무력감을 넘어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그 전망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이는 또 다른 서사와 음악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 김태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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