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네

 

이 글은 한 장의 음반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은 한 장의 음반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이 글은 오로지 한 장의 음반에 대한 글이지만, 어쩌면 그 음반의 주위에 있는 모든 이야기들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한 장의 음반에 대한 이야기와, 한 장의 음반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쓰는 이야기. 당신이 어느 시점 혹은 지점, 그러니까 어느 시공에서 이 글을 읽고 있건 간에, 이 글의 시공간적인 배경은 2018년 8월 8일의 대한민국이고,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1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시작되고, 아마도 다시 현재로 돌아오면서 끝날 것이다.

 

명반, [가장 보통의 존재]

2008년 8월 8일,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음반이 나왔다. 1993년부터 2017년까지 존재한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다섯 번째 정규 음반이다. 이석원이 작사·작곡과 노래, 프로듀싱 등 전체적인 구성을, 이능룡이 기타 연주와 부분적인 작곡을, 전대정이 드럼을, 객원 멤버인 유정균이 베이스를, 몇 곡의 노래에서는 배선영이 트럼펫을, 임주연이 피아노를 맡았고, 그때까지의 최신작이었던 [순간을 믿어요] 이후 4년의 시간이 걸려 만들어졌으며, 총 10곡의 노래들이 43분 56초의 분량으로 차 있다. 이 음반은 그런 음반인데, 이 글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건 이 음반에 담긴 노래와 그 노래들의 구성, 전개, 노랫말 등 [가장 보통의 존재]에 걸친 긴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어떻게 PC통신-음악 비평가(?) 이석원의 거짓말로 만들어진 존재하지 않는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가 존재하기 시작해 여섯 장의 음반을 내며 한국 인디 록의 가장 중요한 밴드 중 하나가 되며 9년의 시간을 거쳐 마지막 음반을 만들고 23년의 시간을 뒤로 하고 다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어쨌든 이 글을 다루는 것은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텍스트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텍스트도, 혹은 90년대 인디 록이나 컨셉 음반 등의 또 다른 텍스트도 아니다. 이 글에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곧 말하겠지만 이미 지난 10년 동안 이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말해왔다. 내가 더 뭔가를 더할 필요는 없다.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글은 이미 과포화 상태다. 이 글에서 중요한 건 [가장 보통의 존재]의 위치다. 위치, 라면 어떤 위치인가. 어쩌면 간단한 인용으로 시작해도 괜찮을 거 같다. 가장 피상적이다 못해 깨질 것 같이 얄팍한 문구로…

구글에 앨범 제목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건 나무위키의 [가장 보통의 존재] 항목이다. 우선 나무위키답게 두껍게 볼드 처리한 글씨체로 “언니네 이발관 커리어의 빛나는 정점”이자 “대한민국 밴드음악의 마스터피스”, 아니면 “인디씬을 넘어서, 한국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나 그와 엇비슷하게 구성된 얄팍한 찬사와 강조가 뜬다. 수상 실적으로 가자면 “2009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을 석권한 앨범”이며 “100BEAT가 선정한 2000년대 100대 명반에서 2위”인데다가 판매량으로 따지면 “1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 중”인 동시에 “2018년까지도 인디 음반 판매 차트 상위권에 랭크”된다고 소개한다. 그러니까 비평 면에서나 대중의 반응 면에서나 모두가 열광하는 음반이자, 언니네 이발관의 자체의 역사는 물론 어쩌면 한국 록의 역사를 통튼 ‘명반’이자 ‘마스터피스’이고, 2008년이나 2000년대의 시대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명반’인 음반이 바로, [가장 보통의 존재]다. 이 설명들이 대체 다 무얼 말하는 건가…

사실 간단하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발매 이후 지난 10년 동안 한국 인디 록, 어쩌면 대중음악 전체에서의 명반으로 평가받아왔다. 당장 나부터 이전에 처음 음반을 접했을 때 ‘명반’이라는 소개와 함께 음반을 추천받았었고, 사실 거기에 매우 동의한다. (이 글은 절대로 [가장 보통의 존재]가 심히 고평가 받은 희대의 거품 음반이라는 등의 일차원적인 비난을 위한 글이 아니다.) 내가 좋은 음반, 훌륭한 음반에 있어서 일종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기준- 음악인의 의도와 지향이 “음반 단위”로써 전체적인 구성에 확실하게 구현되는 동시에 개별 곡들 또한 훌륭한 전개나 구성을 가지며, 이를 비롯해 음반의 수많은 요소들이 내용-형식에 있어서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기준… 에 [가장 보통의 존재]는 딱 맞아 들어간다. (사실 너무 당연한 기준이지만.) 어쨌든, [가장 보통의 존재] 만이 갖고 있는 특징 또한 그러한 ‘기준’을 꽤 완벽하게 만족시킨다. 이전까지의 기타 팝 또는 신스 팝 성향과는 전혀 다른, 다소 미니멀한 소리의 접근과 음반 전체를 ‘순서대로’ 관통하는 서사, 밴드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꿈의 팝송’으로서의 밴드 음악 등등…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너무 많다.

어찌되었든, 작품 자체만으로 봤을 때 [가장 보통의 존재]만큼 모든 요소에 열심히 공을 들인 음반은 접하기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장 보통의 존재]가 ‘명반’이라는 점에는 매우 동의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명반’은 그 단어 혹은 개념 혹은 기표에 걸쳐진 수많은 텍스트 외적인 의미들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전설의 레전드, 베스트 오브 베스트! 같은 느낌으로 말하는 ‘명작’으로써의 명반, 인터넷을 돌아다니면 찾을 수 있는 ‘OOO 선정 n대 명반!’ 같은 리스트에서 쓰이는 명반, 누군가가 대중음악 최고의 ‘단 한 장의 음반’을 물을 때와 같은 명반, 그런 명반. 앞서 말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가장 보통의 존재]는 이상하리만치, 지난 10년 간 매우 독보적으로 대중음악의 ‘명반’으로써 평가받아왔고, 더 나아가 10년이 막 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는 심지어 정전이나 고전의 위치까지 올라간 것 같다. ‘명반’의 위치에 있어선, 21세기에 나온 국내 음반 중에서 [가장 보통의 존재]만큼 높이 오른 음반도 없는 거 같다. 이 글은 곧 ‘명반’으로써 위치한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글이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 본다.

 

리스트의 위치 선정

여러 뉘앙스에서의 ‘명반’ 중 그러니까, ‘단 한 장의 음반’으로써의 ‘명반’이라고 하면 여러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심심하면 등장하는 n대 명반 리스트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예를 들자면, 1998에 시작되어 2007(공교롭게도 [가장 보통의 존재]가 나오기 1년 전이었다)에 ‘갱신’된 가슴-SOUND 네트워크의 100대 명반 리스트가 있다. (주체는 조금 달라졌지만 이후 2018에 한 번 더 ‘갱신’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리스트에서 1위에 오른 ‘명반’은 1998년과 2007년에는 [들국화]였고, 2018년에는 [사랑하기 때문에]였지만 사실 [들국화]의 순위는 단 한 단계 떨어졌으므로 결국에 평균적으로는 [들국화]가 단 한 장의 음반, ‘명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07년도의 가슴 네트워크 선정에 묻혔지만, 음악취향Y가 2007년에 선정한 리스트에 따르면 [어떤날 II]가 그들의 ‘명반’이었고 대신 [들국화]는 3위, [사랑하기 때문에]는 8위였다. 가슴-SOUND 네트워크에서의 2018년의 선정에서 [가장 보통의 존재]는 50위에 올랐고, 이는 2008년 이후에 나왔던 음반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였다. 이러한 명반 선정 아니면 연말 결산, 연대별 음반 등의 ‘리스트’로써 호명되는 ‘명반’에서 [가장 보통의 존재]는 여러 리스트들에 종종 등장했다. 이게 고작 리스트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사례들은 더욱 많다.

2008년, 한겨레에서는 당대의 비평가들을 모아 선정한 ‘올해의 음반’으로 백현진의 [반성의 시간]과 함께 공동 1위로 [가장 보통의 존재]를 올렸고, 한편 음악취향Y에서는 음반으로 5, 수록곡인 “아름다운 것”으로 2를 또 “가장 보통의 존재”로 3를 했다. 이전에 100beat에서 2000년대 명반을 뽑을 때에는 2위에 올랐고, 음악취향Y에서의 2000년대 명반 선정에서는 4였다. [weiv]의 경우에는 4명의 필진이 2000년대의 음반을 각각 20장을 선정하는 리스트를 올렸는데, [가장 보통의 존재]는 3명의 리스트에 올라있었다. 이후 2014년에 [weiv]에서 선정한 ‘00년대 인디 앨범 베스트100’은 무순이었지만, “외로움의 서사를 노래하는 밴드”라는 평과 함께 선정되었다. 이즘 같은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00년대 명반과 ‘인디 명반 20’에는 [꿈의 팝송]이 올라갔지만, 음반 리뷰에서 윤지훈은 5점 만점에 izm의 성향 상 상대적으로는 높은 4점을 줬다. 또 한편 이후 SOUND 네트워크에서 선정한 96년부터 13년까지의 ‘인디 명곡’에서 ‘6회 이상 지목된 명곡’으로 음반에 실린 가장 보통의 존재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가 선정되었으며, 비슷한 느낌으로 100beat가 2013년, (지금은 없어진) 다음 뮤직에서 선정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100곡의 노래에서는 “아름다운 것”이 16위를 했으며 함께 진행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100장의 음반에서는 [가장 보통의 존재]가 5위를 했다. 다시 2008년으로 돌아가면, 네이버 뮤직 [이 주의 발견]에서는 평균 8.1점을 받았고 연말 결산에서는 8위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9장의 음반들과 비교하면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았으며 그 해 1위로 오른 서태지의 [Atomos Part Moai]와는 거의 1점이나 위에 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Atomos Part Moai]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없는지를 생각해보면, 비교는 더욱 쉬울 것이다.) 적어도 당대였던 08년을 전후해서, 그리고 00년대로 그 범위를 넓힌 여러 선정과 리스트들에서부터 [가장 보통의 존재]는 여러 방식으로 ‘명반’으로 평가받아왔고, 아이러니하게도 제목과는 다르게 가장 특별한 음반의 위치로 점점 올라갔다.

이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은 [가장 보통의 존재]를 끊임없이 지금의 ‘명반’ 위치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어쨌든, 내가 가장 궁금한 건 어째서 [가장 보통의 존재]가 그렇게 지속적으로 명반으로 평가받으며 현재까지 왔냐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국대중음악상(나 스스로 그 권력을 비판했지만 뭐 어쨌든, 그나마의 ‘권력’을 가진 건 사실이니까)에서 ‘올해의 음반’에 후보로 오른 다른 음반들, [Hardboiled], [Monologue], [Voyage], [Noise On Fire], 특히 [누명] 등이 마찬가지로 훌륭한 음반들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누명]의 경우에는 ‘명반’의 ‘기준’을 마찬가지로 훌륭히 만족함에도) 어째서 [가장 보통의 존재]만큼의 위치로 오르지 못했는가. 아니면 동시대의 다른 ‘올해의 음반’들(한국대중음악상의 경우 그 이전 해와 다음 해의 수상작들인 [나무로 만든 노래]나 [Life Is Strange] 등)과 다르게 [가장 보통의 존재]는 어떻게 계속해서 언급될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이야기되고, 명반이자 마스터피스로써 평가되었는가. [가장 보통의 존재]는 어떻게 지금의 위치로 올라갔고, 그 위치를 유지했는가. 위에서 열거한 선정과 리스트는 단순히 현상이자 겉 표면일 뿐이다. 대체 뭐가 이 많은 사람들을 [가장 보통의 존재]를 이 정도 위치로 올리게 했는가. 이러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음반이 나온 08년과 그 이후의 시간동안, 당대의 시점에서 [가장 보통의 존재]를 명반으로 호명하는 이야기들이 정확히 어떻게 [가장 보통의 존재]가 훌륭한 음반인지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6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선정위원단의 압도적인 지지로 [가장 보통의 존재]가 올해의 앨범에 올랐다. 이 앨범이 갖고 있는 미덕과 의미를 모두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90년대 중반 속속 등장한 밴드들 대부분이 초기의 걸작들을 가지고 생명을 이어나가는 현실에서 언니네 이발관은 세월로부터 나오는 관록과 되찾은 초심으로부터의 치열함을 다섯번째 정규 앨범을 통해 구현했다. 그리고 밴드의 생명은 리셋되었고 다시 한 번 그들을 주목하게 했다. 작품에 쏟아진 많은 찬사들 중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보통의 존재]가 ‘앨범의 가치란 무엇인지를 환기시켜주는 걸작’이라는 점이다. 모던 록의 일반적인 테마인 관계를, 언니네 이발관은 앨범 전반에 걸쳐 치열하게 물고 늘어진다. 그 치열함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적확한 편곡, 그리고 일상적이되 허를 찌르는 가사로 구현된다. 무엇보다 첫 곡 부터 끝 꼭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기적 관계를 통해 이 앨범의 미덕이 완성된다. 언니네 이발관은 앨범 발매 당시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들어달라고, 청자들에게 요구했다. 모든 뮤지션들의 공통적인 바램일 것이다. 그 바램이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는 일종의 당위로 격상되는 이유는 이 앨범만큼 뮤지션의 희망을 있는 그대로 구현한 작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앨범이 나오기 까지 밴드가 겪어야했던 극심한 산고들을 [가장 보통의 존재]는 보여주고, 또한 보답한다.” – 김작가,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의 변

 

다음의 제사야말로 [가장 보통의 존재]의 ‘명반-성’을 뒷받침하고 증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미 [가장 보통의 존재]는 2008년에 “선정위원단의 압도적인 지지”로 올해의 음반이 되었다. 심지어 이 음반은 “밴드의 생명을 리셋”시키고 “다시 한 번 그들을 주목하게” 한 예토전생 같은 음반이며, “모든 뮤지션들의 공통적인 바램”을 치열하게 구현해 “앨범의 가치란 무엇인지를 환기시켜주는 걸작”이기까지 하다. 이 선정의 변에서 시작해서 계속 이야기하자면, [가장 보통의 존재]가 나온 이래로 그 때 당시에 존재하던 (그러니까 90년대의 기반들이 여러 웹진이나 아카데미, 한국대중음악상 등의 나름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져 천천히 고착되던 즈음에 존재하던) 비평들이 음반을 이야기하며 평가하고 꽤 자주 ‘찬사’를 보낸 방식과 내용에서 나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추가하자면 08년 당시에 나온 수많은 리뷰와 감상… 각종 이야기들, 그러니까 일종의 ‘담론’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08년 당시의 담론들을 모아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의 발매 직후에 나온 비평들에서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텍스트적 측면에서의 ① 음반 단위 서사 구성과 ② 완벽주의적 사운드. 실제로 이 둘은 다양한 비평과 감상, 담론들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어 반복된다. 어떻게 보자면 텍스트로서 [가장 보통의 존재]의 핵심이 바로 이 두 요소들이기 때문에, 음반을 이야기할 때 당연하게도 이 둘을 강조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이후 무려 10년이 지나가면서도 [가장 보통의 존재]가 언제나 이 두 요소를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것을 조금 다르게 혹은 삐딱하게 보면, 이것은 곧 모두가 입을 모아서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며 또 다시 하는 셈이고, 그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하나의 작품에 대한 담론들은 축적되고 변화하며 갱신되기 마련이다. 당장 [후일담]도 발매 당시와는 다른 ‘재평가’를 받아오며 그 위상이 상당히 급격히 변했고, 그 사이의 [꿈의 팝송]과 [순간을 믿어요]가 지난 시간들 속에서 오르내리며 겪은 다양한 평가 과정들도 그렇다. 모든 작품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여러 의미를 얻기 마련이다. 다만 [가장 보통의 존재]의 경우 시간이 아무리 지나가도, 음반은 거의 언제나 ‘명반’의 위치에서 평가받고 공통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비약인가. 어쨌든, 생각은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담론들이 모두 비슷한 지점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런 류의 담론들은 어디서 많이 보았다는 기시감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그 기시감의 근본을 찾으러 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석원이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해 말한 공지사항 혹은 사용법이 생각났다.

 

공지사항 혹은 사용법

“안녕하세요…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여러분이 기다린 만큼의 보상을 받으실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띄웁니다. 음악을 듣는데 방법이 따로 있나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이 앨범은 몇 가지 분명한 의도를 갖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용법 비슷한 것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는 컨셉 앨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즉, 1번곡부터 10번곡까지 순차적인 흐름을 갖는 한권의 책처럼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이 앨범은 1번곡부터 차례대로 들어야만 그 진가를 맛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어느 한곡만을 듣게 될 경우 그것은 책을 중간부터 읽는 것과 같게 됩니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 반드시 1번부터 순서대로 들어주세요. 그리고 일단 1번곡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듣게 된다면 그다음부턴 저절로 순서대로 듣게 되실 겁니다. 두 번째, 음질 면에서 가능한 가장 좋은 환경에서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이 앨범은 마음이 건조해지고 공허한 기분이 들수 있도록, 사운드를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앨범의 의도를 가능한 변화 없이 그대로 접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간단하지요?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저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여러분이 기다림을 보상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음향적인 사운드와 시각적인 사운드가 있지요. 우리가 책을 읽을 때면 머릿속에 영상이 떠오르는 것처럼 누군가가 이 앨범을 들을 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것을 온전히 맛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쁘고 감사한 일은 없을 겁니다. 부디 누리세요. ‘가장 보통의 존재’를.” – 이석원,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듣는 법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담론에서 서사 구조와 사운드만큼 많이 볼 수 있는 구절들은 애초에 거의 다 이석원이 음반에 대해 언급했던 말들이다.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어 음반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실로 유명하고, 특히 여기에서 중요한 건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듣는 법”이라는 이름을 달아 게시판에 공지사항으로까지 올릴 정도로까지 이석원이 당부한 ‘사용법’이다. 그 사용법은 그러니까, ① 순서대로 ② 좋은 음질로다. 왜냐하면 [가장 보통의 존재]는 ① “컨셉 앨범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즉, 1번곡부터 10번곡까지 순차적인 흐름을 갖는 한권의 책”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차례대로 들어야만 그 진가를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어느 한 곡만을 듣게 될 경우 그것은 책을 중간부터 읽는 것과 같”기 때문에. 또한 [가장 보통의 존재]는 ② “마음이 건조해지고 공허한 기분이 들 수 있도록, 사운드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석원 본인이 “앨범의 의도를 가능한 변화 없이 그대로 접하실 수 있길” 바라기 때문에. 간단하다.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이석원의 이 공지사항 혹은 사용법이야말로 [가장 보통의 존재]의 담론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중요하다고 보는데, 결국 그가 이렇게 음반이 나오기 전부터 강조했던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가 그가 제안하는 사용법이자 공지사항을 넘어 일종의 당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히나 더 의미심장한 부분은 “일단 1번곡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듣게 된다면 그다음부턴 저절로 순서대로 듣게 되실 겁니다.”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를 첫 곡부터 듣기 시작하자면 “저절로”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듣게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어쨌든 확실한 건, 이석원의 이 공지사항 혹은 사용법이 정말로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음반 발매 이후 공식 홈페이지 쉐쿄바레 무뵤바레에는 음반을 소개하거나 리뷰 하는 몇 편의 기사들이 올라갔는데, 서정민은 “카세트테이프처럼 주욱 들으라”라는 제목과 함께 “1번곡부터 차례대로 듣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중간에 결코 끊을 수 없다.”라 더했고, 연합뉴스의 이은정은 “보통 음반 트랙을 건너뛰면서 듣는데 책도 중간 중간 보면 안 되듯이 첫 트랙부터 순서대로 들어야 한다”는 인터뷰를 언급했고, 한겨레의 정유경 기자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1번 곡부터 순서대로 들으라”는 메시지와 (왜 굳이 이렇게 썼는지는 모르지만) “수 억 원짜리 장비로 녹음한 음악” 같은 구절을 쓴다.

비단 이들 뿐만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석원이 마련하고 권하는, 심지어는 저절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장담하는 방식을 따라 [가장 보통의 존재]를 들었고, 거기서 더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그 방식을 그대로 끌고 와 음반에 대한 담론을 만들었다. [가장 보통의 존재]는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들어야 한다는 음반이다. 그러므로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순서대로 들어야 하는 음반의 구성과, 좋은 음질로 들어야 하는 사운드 퀄리티다. 그리고 이 두 요소들은 정말 훌륭하기 때문에, [가장 보통의 존재]는 명반이다. 이 또한 비약인가. 하지만 이석원이 말한 사용법을 그대로 음반의 담론과 ‘명반’임의 증거로써 이야기하는 건,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보인다.

사실 이러한 담론들에 대해서 찾는 과정에서 나보다 이 어색함을 더 제대로 또 훨씬 일찍 감지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영기획(Young, Gifted & Wack)의 운영자 하박국과 [weiv]의 최민우였다. 하박국은 [홀로 있는 사람들]이 나오던 당시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다. 90년대 당시(특히 [후일담])의 언니네 이발관이 하박국의 취향에 가장 맞았던 언니네 이발관이었는데, 어쩌면 그가 이 90년대 시절의 언니네 이발관을 좋아했기에 이후의 언니네 이발관, 여기서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좋아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 담긴 글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평단은 그들의 말을 그대로 옮기며 극찬하고 ”명반“이라는 라벨을 붙였다”는 구절만큼은 이 모든 담론의 과정을 날카롭게 꼬집는 것처럼 느껴진다. 08년 당시의 음반을 명반의 자리로 올린, 이들 “평단”은 결국 어떻게 보자면 이석원의 사용법에 따라서만 음반을 들은 후 그 사용법에서 강조한 요소들을 그대로 들고 와 극찬하고 명반으로 추대한 셈이다. 하지만 하박국의 페이스북 글만으로는 논점이 많이 약할 것이다.

하박국 이전, 그러니까 [가장 보통의 존재]가 나온 2008년 당시에 비평가로써 무지하게 왕성히 활동하던 최민우는 weiv에 올린 리뷰에서 내가 생각하는 ① 음반 단위 서사 구성 ② 완벽주의적 사운드, 이석원의 사용법으로는 ① 순서대로 ② 좋은 음질로를 최민우식 표현으로는 비슷하게도 ① 음반 ② 팝의 장인정신이라는 단어로 분류한다. 물론 10점 만점에 8점과 함께 음반이 “현재 한국 대중음악이 들려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순간 중 하나이며, 밴드로서도 그 동안의 애매모호했던 행보를 청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을 하지만, 덧붙이는 말에서는 하박국과 매우 비슷한 지점을 지적한다.“‘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들어 달라는 밴드 측의 주문에는 응할 수 없다. 그건 음반을 만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바겠지만 창작자가 감상자에게 어떤 형태로건(권유건 명령이건 부탁이건)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제시하고 선을 긋는 것은 곤란하다. ‘이렇게 듣지 않았으니 제대로 들은 게 아니에요’라는 말이 나오는 걸 꼭 보고 싶다는 건가?”

이미 음반이 나왔던 당시에 최민우가 글로써 지적했고, 하박국이 당시에 글로 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생각으로써 품고 있던 이 부분에 대한 호기심 혹은 의문은 점점 깊어졌다. 그러니까, [가장 보통의 존재]를 현재의 명반의 위치로 올린 모든 담론들이 사실 이미 창작자가 감상자에게 제시한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그대로 따라가고 옮기고 재생산했을 뿐이었다면, 결국 [가장 보통의 존재]는 이미 나오기 전부터 (공지사항은 음반이 나오기 6일 전에 올라갔고, 글을 쓰는 시점에서의 조회 수는 7만 여건 정도지만 음반의 발매를 전후로 해서 여기저기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음반 단위 서사 구성과 완벽주의적 사운드가 중요한 음반으로써 선-평가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해 매우 빠른 속도로 담론이 형성되고, 기어이 ‘명반’의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닐까. 이미 모든 이야기들과 특징들은 이석원의 공지사항에서 주어졌고, 당시의 담론과 이후의 담론은 모두 이를 똑같은 반복한 셈이다. 나 또한 [가장 보통의 존재]를 생각하거나 이야기하고 쓸 때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고 말이다. 이 또한, 너무 큰 비약인가?

 

즉시명반화와 우세종

사실 이렇게 하나의 음반이 발매되자마자 “인스턴트 클래식”이 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음반이 나오기 전까지는 (꽤 이름 있는 음악인, 사실 그런 음악인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청자가 존재하는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여러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흔히 말하는 ‘하이프(hype)’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만약에 음반이 하이프를 충족하고, 청자들이 하이프를 통해 만든 기대감 또한 만족한다면, 그리고 그 만족도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면, 그 음반은 충분히 ‘인스턴트 클래식’이 될 수 있다. 피치포크(Pitchfork)는 최근 아예 ‘인스턴트 클래식(Instant Classic)’이라는 비정기 영상 시리즈를 만들어 동시대의 즉시-명반들인 [Blonde]와 [DAMN.], 또 [Culture]와 [Daytona]에 대해서 다뤘다. 동시대의 사례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자면 (이제는 사실상 과거지만) 이센스의 [The Anecdote]가 받았던 한국 힙합 음반 사상 최고의 하이프는 음반이 즉시-명반화 과정으로 이어지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도 보며, 개인적으로 김태균의 [녹색이념]이나 (현재진행형인) XXX의 [LANGUAGE]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게 아닐까 싶긴 하다. 다만 인터넷, 특히 SNS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발전한 2010년대 중반에 하이프가 형성되고 그 하이프를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은 훨씬 더 빈번하다. (피치포크의 ‘인스턴트 클래식’ 혹은 즉시-명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그만큼 그 하이프-거품이 꺼지는 경우도 잦지만 말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 같은 경우 2008년 당시의 인터넷은 아직 그 정도로 거대하지는 않았으며 그러므로 어떠한 하이프가 거대하게 만들어지기에도 비교적 힘들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음반은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인스턴트 클래식’이 되었고, 이후에는 ‘명반’으로써 추대되었고, 이후 가장 중요한 요소들인 ‘음반 단위 서사 구성’과 ‘완벽주의적 사운드’는 이후에도 이 음반을 듣고 이야기하는 수많은 방식 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이자 대표적인, 주된 방식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담론들은 곧 우세종이 된 셈이다. 2008년 이후, 모두가 [가장 보통의 존재]를 오로지 이 우세종의 방식으로만 이야기했고, 나 또한 그러기도 했다. 이석원의 당부를 그대로 옮기고 생각하면서 나온, 사실 청자로써 생각해보자면 좀 많이 게으른 이 우세종의 방식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이석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며 [가장 보통의 존재]를 명반으로 만든, 듣는 방식의 우세종을 형성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게 한 건 과연 무엇일까?

이전에 대중음악 비평 전시회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에 실었던 글 [폐허의 장소에, 새로운 비평을]에서 나는 정지돈=금정연의 “그리고 이런 오해가 형성됩니다. 우세종이 궁극적인 형태다. 우세종이 살아남은 이유는 단지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더 대중적이기 때문임에도 다른 종류의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결국 우세종은 진리의 담지자가 되고 다른 건 모두 샛길이나 실험, 외도에 불과한 취급을 받습니다.”1라는 구절을 인용했는데, 이와 비슷하게 [가장 보통의 존재]를 둘러싼 담론에서의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는 이석원이 사용법으로써 권한 이후 비평가부터 일반 청자까지 모두가 따르며 ‘우세종’이 되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단순히 그러한 경로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가장 주된 방식일 뿐, 절대로 절대적인 방식도 아니며 그러므로 어떠한 당위, 진리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세종의 방식은 [가장 보통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단 한 가지의 방법’이 되었고, 이 방법은 음반을 명반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명력을 유지시킨다. 나는 이러한 듣는 방식의 우세종이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궁금해졌다. 결국 예상 가능하겠지만, 08년 당시 [가장 보통의 존재]를 오로지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만 들은 후 음반을 ‘명반’으로, 인스턴트 클래식으로 추대한 건 당대였던 08년의 비평가들이었다. 이 글은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2008년의 우세종/비평가들

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곧 08년 당시의 대중음악 비평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 시기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문화 연구 기반의 비평가들과 현장 중심의 비평가들이 (그나마) 연구자-비평가 혹은 음악 칼럼니스트로써 마련한 지형이 9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75년생 중심의 X세대 비평가들로 이어진 후 발전하는 시기였다. 직전에 존재했던 현장-칼럼 중심 비평가와 연구-담론 중심의 비평가들이 선취해놓은 단단한 토대를 바탕으로 이 두 갈래로 크게 나뉘는 성향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며, 거기에 ‘취향’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장착하며 시작된 X세대 비평가들은 izm, 가슴 네트워크, [weiv] 등의 웹진 플랫폼들을 바탕으로 발전했고, 곧이어 음악취향Y, 보다, 100beat 등의 웹진들이 00년대 초중반에 생겨나는 동시에 한국대중음악상이나 한국대중음악학회 등의 기관들도 생겨났다. X세대 비평가들은 이렇게 그나마의 시스템적 혹은 플랫폼적 기반들을 바탕으로 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며 씬의 주요한 층으로 공고화된다. (그리고 X세대 비평가들은 이러한 00년대 초중반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종의 비평적이고 담론적인 기득권이 되며 점차 늙어 가는데… 아직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좀 멀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08년 당시의 대중음악 비평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5년 정도 비평 활동을 해온 X세대 중심의 비평가들이 일종의 대표주자나 현역, 혹은 기득권이나 우세종으로써 자리 잡은 때였다. 이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30대 초중반으로, 나름 젊은 나이대였다. 동시에 00년대 후반은 그들이 20대였던 1990년대 중반에 겪은 여러 대중음악적 변화(인디 록의 탄생은 물론, 흑인 음악과 전자 음악 씬의 시작이나 아이돌 팝의 출발 등)가 세대를 변화해가며 이어지고 무엇보다 훨씬 더 새로워지던 때였고, 그만큼 그나마의 이야깃거리나 담론들도 있었다. 당장에 보다를 비롯해 100beat나 가슴(=SOUND 네트워크) 등이 그때까지도 기능하는 웹진으로써 존재하고 있었으며 물론 izm도 있었고, [weiv]마저도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 때에는 30대였던 X세대 비평가들이 씬의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때, 그 때에 [가장 보통의 존재]가 나오고 담론들이 만들어진 때였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나왔을 당시 가장 빠르고 적극적으로,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의 우세종 방식을 담론 삼아 찬사를 보낸 건 여러 신문이나 잡지의 기자들, 그리고 그와 함께 연계된 당대의 X세대 비평가들이었다. 기자들의 경우 밴드와의 인터뷰나 창작 과정, 역시나 이석원의 ‘공지사항’을 언급하며 자연스럽게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의 방식을 담론 삼았다. 물론 기자들은 비평을 한다기보다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그렇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중요한 건 X세대 비평가들의 찬사 또한 이 기자들의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이다. “언니네 이발관은 이 음반을 하나의 서사가 관통하는 앨범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들어 줄 것을 권장한 바 있다.” (조원희) “이들의 조언대로 앨범 전곡을 차례대로 듣다보면-” (이동연), “멤버들은 이 노래들을 순서대로, 되도록 좋은 음향기기로 들어달라고 당부한다. mp3로 듣지 말라는 얘기다.” (차우진), “’반드시 1번곡부터 순서대로 차례차례 듣기를 권한다’는 멤버들의 말처럼” (윤지훈) 등등… 그리고 이 모든 찬사들은 김작가가 썼던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의 변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언니네 이발관은 앨범 발매 당시 반드시 처음부터 끝가지 순서대로 들어달라고, 청자들에게 요구했다.”는 문장이 그 중심에 있다. 이 문장 직전에는 “무엇보다 첫 곡부터 끝 꼭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유기적 관계를 통해 이 앨범의 미덕이 완성된다.”는 문장이 나왔지만, 이는 곧 김작가 개인의 시선이나 관점이기보다는 뒷 문장에서 나온 이석원의 ‘요구’에 의해 그 또한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음반을 그대로 따라들었을 뿐이라는 걸 넌지시 드러낼 뿐이다.

한편 이 문장 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모든 뮤지션들의 공통적인 바램(늦게나마 이야기하지만 바램이 아니라 바람이다)일 것이다.”인데, 사실 음반 전체를 순서대로 듣는 것이 정말로 “모든 뮤지션들의 공통적인 바람”은 당연히 아니겠지만(물론 좋은 방법들 중 하나고 나 또한 많이 따르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방법은 아니다.) 김작가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석원의 ‘요구’를 비평적인 근거로 삼는 동시에 ‘모든 뮤지션’의 바람이라고 보편화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그 바람이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는 일종의 당위로 격상되는 이유는 이 앨범만큼 뮤지션의 희망을 있는 그대로 구현한 작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이 온다. 여기에서 김작가는 ‘모든 뮤지션의 희망’이라는 ‘순서대로’를 다시 한 번 ‘(모든) 뮤지션의 희망’으로 반복해서 부풀리고 강조하며 이석원의 방법을 말 그대로, “일종의 당위로 격상”시킨다. [가장 보통의 존재] 담론의 우세종은 이런 방식으로 생겨났다. 08년의 X세대 비평가들이 음반을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들은 후 보냈던 ‘찬사’는 이렇게 한국대중음악상에서의 올해의 음반 수상이라고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수렴되어, 음반을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들어야만 하는 명반으로 ‘라벨’을 붙이며,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인 ‘포획된 찬사’를 만들어냈다.

 

포획된 찬사

여기서 잠시, “포획된 찬사”는 음악 비평 동인 헤테로포니에서 성혜인의 비평인 “포획된 찬사: ‘씽씽’을 둘러싼 승인의 제스처들”에서 따왔다. 씽씽의 음악에 대한 비평가나 각종 매체에서의 ‘찬사’가 거의 다 매우 비슷한 지점(‘새로운 국악’에 대한 집착, APAP나 글로벌 페스트, NPR 타이니 데스크 등 씽씽의 ‘세계화’를 증명하는 사례 등)을 공유하며 재생산한다는 것에서 출발해, 성혜인은 마찬가지로 일종의 우세종이 되어버린 씽씽에 대한 담론들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수많은 담론에서의 우세종들이 절대화되고 ‘일종의 당위로 격상’하며 결국 진리가 되어버리는 것이 비평적으로 얼마나 위험한지, 그러니까 비평에 있어서 ‘포획된 찬사’들이 갖는 문제점이 어떤 지에 대해서는 차라리 성혜인의 글을 빌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의해 “승인”된 국악과 서양 음악의 조합을 주된 비판점으로 삼은 성혜인의 글과 한국의 인디 록, 여기서는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우세종적 담론과 방식에 대한 이 글 사이에는 그 소재에 있어서의 필연적인 간극이 있지만, 성혜인이 ‘포획된 찬사’로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의견은 나의 것과 나름 일치한다고 판단해, 우선은 변형 없이 끌어왔다.)

 

“나아가 국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며, 이를 승은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 씽씽은 어떻게 ‘성공’의 입지를 획득하게 되는가? 이에 대한 논의가 소거되어 있는 씽씽에 대한 찬사는 어쩐지 수상하기만 하다. (…) 비판적인 성찰 없이 (…) 관습적인 언어들을 소환해 찬사를 이어가는 비평의 태도는 과연 온당한가? (…) 사후적으로 획득한 ‘새로움’이 아니라 기획된 구호로서 스스로 소환한 ‘새로움’은 지배적인 힘의 논리에 역행하거나 이 힘에 의해 낡고 조야하다고 규정되는 것을 손쉽게 배격해버렸다. 그럼에도 이 비틀린 구호는 국악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처럼 인식되고 여러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며 여전히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 찬사의 언사들을 쏟아내는 반면 이 문제에 개입하는 ‘힘’에 관한 논의는 너무나도 쉽게 탈락되거나 은폐되어 버렸고, 이러한 현상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행위는 늘 고루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진 않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 끊임없이 고민하고 점검하는 태도야말로 숱한 오해에도 불구하고 비평이 끝끝내 지켜내야 할 윤리일 것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나왔던 08년 당시, 음반의 ‘명반화’ 과정과 그로 인한 담론의 탄생은 이미 창작자에 의해 주어진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며 이를 반복하고 재생산한 당대 X세대 비평가들이 중심이 되어 이뤄졌다. 이 ‘포획된 찬사’ 혹은 ‘기획된 구호’에는 음반 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비평적 접근이나 분석, 탐구가 충분치 않았지만, [가장 보통의 존재]는 순식간에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들어야만 하는 당위가 널리 적용되는 명반이 되었으며, 이 때 생겨난 우세종의 방식과 담론은 향후 10년 동안 음반을 듣는 방식과 이야기하는 담론의 주류로써 꿋꿋하게 유지되었다. 여전히 10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가장 보통의 존재]는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들어야 하는, 21세기 대중음악의 명반이다. 그 발단은 X세대 비평가들 그 자체였다. 2008년과, 언니네 이발관과, [가장 보통의 존재]와, X세대 비평가들… 이들은 왜 그렇게 재빠르게 기획된 구호 혹은 포획된 찬사로 음반과 더 나아가 밴드 자체를 전설로 만들었을까? 그 이야기를 위해서는 2008년에서 다시 한 번 10년을 돌아가야 하고, 이 글은 이제 또 한 번, 시간여행을 한다.

 

1990년대 언저리의 젊은이들

사실 98년 8월 8일에 언니네 이발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창 열의에 찼던 이석원이 정대욱을 포함한 당시의 멤버들과 함께 [후일담]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며, 우리는 이미 그 이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말했듯, 이 글은 텍스트로써의 언니네 이발관이나 그 음반들이 중심이 아니다. [후일담]이 언니네 이발관의 최고작 중 하나이자 90년대 인디 록이나 대중음악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유추해 낼 수도 있듯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건 ‘1990년대’ 그 자체다. 벌써부터 누군가는 ‘구십년대’라는 단어만 읽어도 <응답하라> 시리즈의 OST와 함께, 아니면 <슈가맨>이나 <토토가>나 그런 레트로한 TV 쇼들이 낭만적으로 재소환하고 재생산하고 재구성한 ‘그 때 그 시절’을 노스탤지어와 함께 떠올리겠지만, 이 글에서는 그런 너저분한 장면과 감상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98년 8월 8일에 만 두 살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의 인디 록에 관심이 있다면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키워드들이 떠오를 것이다. 너바나(Nirvana), 드럭, 펑크, 홍대와 신촌, 그런 단어들. 물론 향수에 차서 그 때 그 시절의 복고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시간 여행을 통한 역사 체험을 하고 싶을 뿐이다. 94년에서 95년,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추모 공연이나 펑크와 홍대를 중심으로 한, 그 때까지만 해도 반-문화나 하위-문화 즘으로 분류되던 ‘인디’는 당시까지만 해도 실체 없는 유령으로써 홍대를 떠다니고 있었다. <스트리트 펑크 쇼>와 코베인 1주기 추모 공연이 95년에 열렸고, 그 해에 클럽 드럭도 문을 열었다. 그 이후 발 빠른 몇몇 밴드들이 직접 음반을 내기 시작하고, 여기에 더 많은 이들이 모이고 모여 레이블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94년 즈음부터 97년까지(그 중에서도 95-96년에 특히)의 기간 동안 애매모호한 비-실체들이 모이고 모여 확실한 실체로써 존재하게 되고 그 존재를 인디 씬 혹은 인디 록으로써 인정받는 과정이 펼쳐졌다.

그런 의미에서, 배드 테이스트나 노이즈가든, 그리고 언니네 이발관(!) 등 인디 음반 제작의 선구자들과 나란히 1996년의 ‘첫 인디 음반’에 놓일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의 [Our Nation]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단지 유령으로 떠돌던, 작은 시도들이 모이면서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국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국가는 96년 이후 1990년대의 남은 기간인 97~99년에 수많은 음반과 밴드와 공연과 레이블과 라이브 클럽과 사건이 펼쳐지게 되는 확실한 씬이 된다. 2018년으로부터 20년이나 전이었던 1998년은 ‘인디’가 유령으로써 등장한 93~4년 즈음 이후 약 4~5년, 이전과는 다르게 그 존재와 실체가 근거를 완전히 갖춰진 해며, 국가의 비유를 이어가자면 마침내, 확실히, ‘독립’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들의 국가’의 실체화 과정, 그러니까 존재 인정 과정이자 근거 확립 과정, 그 탄생의 과정에서 중심에 있었던 것이, 90년대의 ‘신인류’, 당시에 막 20대 초반 젊은이들이었던, 예상 가능하겠지만, 이른바 X세대들이다. 그리고 그 즈음의 밴드들 중 가장 발 빠른 동시에 대표적이었고, 개성적이었으며, 유명했던 밴드가, 예상 가능하겠지만, 바로 언니네 이발관이다.

 

“김학선: 아무튼 되게 애매한데 이 판에 75년생이 은근히 많더라고요. 차우진씨, 최민우씨, 그 다음에 음악취향Y의 조일동, 최지호, 윤호준, 이런 분들 다 아마 75년생일 거예요. 김작가도 75이고.”

“전대한: 여튼 좀 더 넓혀서 74년생부터 76년생 정도까지 해서, 소위 X세대들이라 말하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이 판에 제일 많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 유독 그 세대 사람들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게 좀 특이한 상황인 거 같아요.”

“차우진: 제 시대는 다른 게 아니에요. 소비자 그룹이에요. (…) 그런 것에 대해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기준으로 하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 다음 세대에게 영향을 준 것도 아니에요. 그냥 섬 같이 있는 세대죠. 그래서 75년생들은, 아니 74년생부터 78년 정도까지, 이 사람들이 두각을 보이는 건 이미 그런 포지셔닝이 된 거에요. (…) 그러니까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엄청나게 터지는 순간들을 직접 경험했던 세대잖아요. (…) 홍대에서 무언가 벌어지는 상황을 스물 몇 살 때 경험을 한 거잖아요. (…) 다 그 또래가 인디 씬에서 꽤 중요한 거죠,”

“전대한: 그 사람들은 홍대라는 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두 지켜봐왔고, 더 나아가서 홍대라는 씬을 본인들이 만들어냈다는 일종의 자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일부 혹은 일상적인 경험의 일환이라서 비교적 익숙하니까요. 그러나 저희 세대는 완전히 다르죠.”

-『크리틱스 레코드』중

 

물론 『크리틱스 레코드』에서 75년생 “중견” 비평가들을 인터뷰했을 때 세대론을 중심으로 한 문답에서 차우진과 김학선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X세대”가 완전히 고정되고 절대적인 집단을 의미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실제로 제가 X세대라고 말을 하는 순간 어떤 괴리감을 느껴요”라고 하는 차우진의 말이 고정된 세대 집단으로써의 X세대, 아니 모든 세대론들의 당사자에 있어서는 훨씬 더 적절한 반응일 것이다. (나 또한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 따위의 담론을 보면 마찬가지로 느껴지고 말이다.) “세대가 인위적인 구분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거기 속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 세대에 속한다는 자각이나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지 않아요. 그냥 자신이 중요한 거죠.” 그럼에도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정도는 아니더라도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지금도 대중음악 관련 비평이나 담론에 여전히 이상하리만치 많은 “74년에서 78년” 혹은 “75년 언저리”에 태어난 비평가 집단은 98년, 그러니까 “98년 언저리”에 일어난 인디 록 씬의 탄생과 발전, 부흥을 가장 직접적인 거리에서, 가장 원초적인 나이대에 경험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그들의 바꿀 수 없는, 그보다는 바꾸기 힘들고 바꾸지 못하는 기반이 되었다.

물론 이들이 언제나 자신들의 “X세대!”라는 정체성을 각각 되새기지는 않으며 물론 그러한 “X세대!!”로써 똘똘 뭉쳐서 무언가 어마어마하게 세대적인 걸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기반의 경험을 한 비평가들이 모이고 모여, “75년 언저리에 있는” 애매하지만 어쨌든 하나의 느슨한 집단이 되었을 때, 이들은 고정적이거나 절대적이진 않아도 그 내부에서 모인 나름대로 공통적인 경험과 취향의 기반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아워 네이션”으로써의 90년대 인디 록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공통된 기반을 공유하는, 75년 언저리에 태어났고 90년대 중후반 언저리의 인디 씬을 직접 경험한 비평가들은 00년대로 들어오며, 그 기반을 유지하는 것을 나아가 이를 갱신하며 비평장의 중심이 되어갔다.

그러므로 매우 당연하게도, 인디 록과 씬의 탄생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그러한 인디 록과 ‘씬’에 대한 담론을 가장 많고 또 깊게, 그것도 가장 빠르고 적극적으로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직접, 온몸으로 통과한 일이니까. 직접 경험의 힘이다. 내가 보기에 90년대 중후반 당시의 음악인들이 직접적인 음반, 노래, 공연, 사건 등의 텍스트들을 만들어냈다면 그들과 동갑내기인 비평가들은 시간적으로 조금 이후에 이 텍스트들을 바탕으로 담론을 만들었다. 물론, 개개인에게 “나는 X세대다!”하는 확연한 정체성이 없더라도, 이들의 공통된 집단적 경험은 곧 텍스트와 담론의 기반이 되었다. 이들은 경험자이자 그 중에서도 경험의 중심에 있던 자들이고, 75년 언저리의 비평가들만큼 “90년대의 홍대 인디 씬”을 제대로 ‘경험’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게 98년 당시의 ‘새로운’ 세대였던 비평가들은 그들이 인디 록의 탄생을 겪은 94-98년 즈음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비평가로써 활동을 시작하며 (그 플랫폼적 기반은 웹진이나 인터넷 신문으로, 역시 당시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매체였다) 그들이 직접 겪었던 경험들을 담론으로써, 이야기로써 형성한 게 아닐까 싶다. 이미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인디’는 홍대 인근에서 애매하게 떠돌던 시절에서 10년 정도가 지나가던 때다. 그들의 직접 경험이 점점 과거로 물러남에 따라 차츰차츰 모든 시간과 경험이 노스탤지어나 추억 속에 잠길수록 X세대 비평가들은 그 모든 90년대를 인디 록에 대한 담론으로써 만들어냈고, 이어나갔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아주 새로운, 창조적이고 저항적인, 90년대 중반에 20대를 막 통과한, “성난 젊음”이자 “청춘98”이었던 이들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의 시작, 그 이름은 홍대 앞 인디 록!

 

1990년대의 경험담 = 2000년대의 후일담

빠르게는 1990년대와 20세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작되어 00년대 초중반 즈음부터 전개된 인디 록에 대한 담론의 생성과 발전은 그러므로 X세대 비평가들에게는 경험담이었지만, 시기적으로는 일종의 후일담이기도 했다. 당장 00년대 초반만 가도 ‘홍대 앞’의 펑크나 너바나 등과는 거리가 먼, 이를테면 홈레코딩(전자앙, 이아립, 달빛요정, 폐허, 더더… 물론 스위트피의 경우에는 ‘1세대’였지만)이 등장했고, 또 90년대를 관통한 ‘1세대’의 담론만 가지고는 벌써부터 포착하기 힘든 음악들(또 이를테면, 마침내 시작되던 포스트록과 슈게이징 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X세대 비평가들은 90년대의 ‘1세대’에 집중했고, 2000년대 초반 즈음의 음악인들도 이 1990년대의-1세대의 자장 안으로 끌어오려고 했다. 박준흠은 2006년 『대한 인디 만세』라는 책을 내며 ‘인디 록’(정확히는 음반으로서의 인디 록)의 10주년을 기념하며 언니네 이발관과 노이즈가든부터 소규모아카시아밴드까지의 주요 밴드들을 인터뷰했다. 어떻게 보자면 이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의 10년을 어떠한 첫 세대로써 기념하는 인터뷰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역시나 인터뷰의 중심은 허클베리 핀, 연영석, 코코어, 볼빨간, 레이니 썬 등 5팀이나 인터뷰를 한 1998년 전후일 것이다.

한편 그보다도 몇 년 전, 세기말이 막 끝난 2000년에 나온 『날아라 밴드 뛰어라 인디』는 김종휘, 문석, 신현준, 안이영노, 성기완까지, 이전부터 대중음악 비평의 진영에서 활동하던 신현준의 기록에서 시작해 특히 ‘인디 문화’의 중심이었던 성기완의 회고(!)를 실으며 일찌감치 인디 록에 대한 담론들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이보다도 1년 전이었던 1999년에는 나온 『오프 더 레코드, 인디 록 파일』은 장호연, 이용우, 최지선의 공저로, 당대에 막 출현한 세대의 필자와 그 이전 세대의 필자가 연계되며 펑크와 라이브 클럽, 모던 록의 세 요소를 통해 더욱 일찌감치 인디 록을 돌아보고 역시나 재빠르게 담론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 두 작업을 통해 1990년대 인디 록에 대한 담론을 선취한 건, 기존의 신현준이나 장호연 같은 비평가들보다는 당시의 신진 비평가들이었던 X세대였을 것이다.

어쩌면 07년에 진행된 가슴 네트워크의 100대 명반 리스트에 실린 90년대 인디 록들의 약진([비둘기는 하늘의 쥐]나 [후일담]은 물론, [怒]와 [Drifting]과 [Noizegarden]과 [18일의 수요일], 특히 9위로 오른 [deli spice]) 또한, 1세대-90년대 인디 록 담론 형성에 있어서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성취와 어깨를 나란히 둘 수 있는 90년대 인디 록의 형상을 어느 정도는 만들어내며 일조했을 것이다. 웹진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발생한다. [weiv]는 꽤 이른 시간인 99년도에 시작되었지만, 음악취향Y는 2000년대가 시작한 지 한참 지난 06년에, 보다는 08년에, 백비트는 09년에 만들어졌고 그러한 웹진들의 중심에는 당연히 X세대 비평가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과정들은 ‘1세대’와 1990년대, 20세기가 끝나가던 시기부터 각기 다른 곳에서 조금씩 등장하며 진행되었다. 이렇게 X세대 비평가들은 점차 씬의 중심이 되었지만 그들의 공통적인 기반이었던 ‘아워 네이션’은 점차 과거로 흘러갔고, 그 당시의 ‘동료’ 음악인들이 쇠퇴하는 동시에 더욱 새롭고 다른 ‘후대’ 음악인들이 등장했다.

98년, 어쩌면 94년에서부터 08년까지 약 10~15년의 긴 시간, ‘세대’ 하나가 늙어갈 시간이 지난 후의 ‘아워 네이션’은 당연하게도 처음과는 전혀 달랐다. 1세대의 주요 밴드들은 사라지거나 부진해졌다. 노브레인은 차차의 탈퇴 이후 怒를 잃었고, 델리 스파이스는 “챠우챠우”만큼의 거대한 히트곡(물론 “고백”이 있었지만)이나 [deli spice]만큼의 상징적인 음반(어쩌면 [Espresso]가 그렇다고도 할 수도 있겠지만)을 내지 못했다. 당시의 3호선 버터플라이는 차후의 폭발을 위한 긴 침묵 기간을 지나고 있었고, 미선이에서 나온 루시드 폴은 이전만큼의 날카로움이 사라진 대신 조금 더 서정적으로 바뀌어 20세기의 선대 포크 음악인들의 계보를 따랐다. 줄리아 하트나 마이 앤트 메리는 00년대 극초반의 훌륭했던 두 음반 이후 계속해서 난항을 겪고 있었고, 허클베리 핀이나 코코어는 90년대적인 그런지를 벗어던지고 조금씩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거기에 허벅지나 푸펑충, 지직스 같은 ‘엽기’ 밴드나 한때 시끌벅적했던 수많은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에 더해 너바나와 펑크를 중심으로 모인 ‘인디 파워’들 또한 사라졌으며, 아방가르드와 전위 영역에 속했던 어어부 프로젝트나 삐삐밴드, 옐로우 키친이나 퓨어디지털사일런스 또한 사라지거나 록 바깥으로 나갔다. 1990년대의 인디 록을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것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었으며, 그 때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던 이들은 그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가고 있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1세대(에서 어쩌면 1.5세대, 사실 그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밴드들의 몰락의 뒤에는 당연하게도 이른바 ‘2세대’ 밴드들의 출발, 그리고 상승이 따라왔다. 신촌의 홍대가 아닌 관악의 서울대에서 붕가붕가 레코드가 출범해 눈뜨고 코베인, 브로콜리 너마저, 장기하와 얼굴들 등을 내뿜었고, 못이나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전자양이나 오소영 등 훨씬 더 내밀한 성향의 음악인들이 등장했다. 1세대 밴드들의 프런트 피플들 또한 기존의 성향과는 다른 포크 록이나 모던 록으로 (위에 언급한 루시드 폴이나 스위트 피는 물론, 토마스 쿡, 이지형, 이아립…) 바뀌었다. 잠시 반짝했던 90년대 중후반의 익스페리멘털 록은 잠이나 속옷밴드, 불싸조를 거쳐 슈게이징과 포스트록 등을 장르적으로 발전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모임 별의 [월간 뱀파이어] 프로젝트 같이 지극히 00년대 초중반의 멜랑콜리한 감수성과 실험 정신에 기초한 또 다른 ‘인디’ 음악이 출현하기까지 이르렀다. 한국대중음악상으로 잠시 돌아가자면, 6회 당시 [가장 보통의 존재]와 겨룬 음반들이 거의 모두 다 당대에 등장했던 신인(갤럭시 익스프레스, 로로스, 비둘기 우유, W&Whale, 눈뜨고 코베인, 짙은)들의 첫 음반들이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렇게 찬란했던 90년대가 그 힘과 빛을 더 새롭고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더 ‘젊은’ 밴드들에게 자연스럽게 넘겨줄 때, ‘아워 네이션’은 더 이상 국가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음반으로써의 [아워 네이션] 시리즈 또한 2003년에 끝났다.)

 

명반의 탄생

음악인들이 그렇게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하던 08년 당시, 비평가들의 세대는 여전히 90년대를 기반으로 한 X세대에서 머물러 있었고, 이 세대의 간극 혹은 부조화가 곧 인디 록 담론의, 정확히는 90년대-1세대 음악인 중심의 인디 록 담론 형성에 큰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싶다. 결국에 새롭고 다르다는 인디 록을 들려주는 음악인들도 10년에서 15년 전의 ‘선구자’들이 닦아놓은 홍대 씬에서 펼쳐진 것이고, 이렇게까지 인디 록 혹은 홍대 씬이 발전할 수 있던 것은 90년대에 장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니까. ‘홍대’라는 지명이 가진 상징성과 거기서 나오는 힘은 08년 당시에도 의외로 그 유효성을 상대적으로 잃지 않았으며, 08년의 X세대 비평가들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그들의 국가를 계속해서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인디 록의 담론은 여전히 90년대-1세대를 바탕으로 이뤄졌지만, 중요한 건 담론만 여전할 뿐이었지, 텍스트로써 1세대의 여전함이나 유효성, 결국에는 그 힘을 증명하는 사례는 나오지 않았거나, 미미할 뿐이었다. 비평가들이 1세대가 중요하고 아직까지도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새로운 세대의 밴드들이 더 다르고 새롭고 인기를 얻고 있었다. 물론 많은 비평가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호명하며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긍정했지만 (역시나 아마 무의식적으로) 1세대-90년대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그들의 아름다웠던 옛날이 여전히 아름답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텍스트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그 존재 근거에 대한 문제까지로 닿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시점에서, 언니네 이발관이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들어야만 하는 (또 그렇게 될 것인) [가장 보통의 존재]를 냈다. 그 후 알다시피, 즉각적인 명반화의 과정이 차근차근 진행된다. 다시 98년에서 08년으로 돌아와, 나는 08년 당시에 [가장 보통의 존재]가 그렇게 재빠르게, 특히 90년대-1세대 인디 록 중심 비평가들의 담론을 통해 명반이 된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이 중심이었고 주인공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젊었고, 그렇기에 새롭고 달랐던 ‘과거’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는 말했듯 일종의 집단으로써 스스로들을 의식하는 세대론적 투쟁의 몸부림이기보다는, 그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으며 그 과정으로 존재를 지속하기 위한 지극히 본능적인(?) 움직임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도 언니네 이발관과 [가장 보통의 존재]를 둘러싼 담론들에서 내가 정말로 깊숙이 느꼈던 공통점은 텍스트적으로는 ① 순서대로 ② 좋은 음질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너머에 존재하던, 1세대 인디 록 밴드의 화려한 복귀에 대한 희망과 열광이었다. 다시 한 번 한국대중음악상에서의 김작가를 빌리자면, “90년대 중반 속속 등장한 밴드들의 대부분이 초기의 걸작을 가지고 생명을 이어가는 현실에서 언니네 이발관은 세월로부터 나오는 관록과 되찾은 초심으로부터의 치열함을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을 통해 구현했다.” 과거, 정확히는 90년대-1세대, 혹은 X세대의 동시대였을 밴드가 지난날의 부진을 딛고 멋지게 돌아와 매우 훌륭한 음반을 냈고, 바로 그 점이야말로 어쩌면 당대의 X세대 비평가들이 컨셉 음반의 구성이나 치밀한 완벽주의적 사운드보다도 [가장 보통의 존재]에 더 열광한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동료’의 성공적인 복귀 그 자체. 그리고 그 복귀의 성공에는 묘하게 그들과 ‘동료’인 자신들에 대한 투영이 얼마정도는 들어가 있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이 다시 지나고, 이 글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8년으로 돌아온다. 세 번째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선정에서 2007년 이후에 나온 음반들 중 가장 높은 50위에 오른 [가장 보통의 존재]는 그 한줄 평 혹은 제목이 말했던 것처럼 “X세대를 연대시킨 “외로운” 노래 모음집”이었다. 그 스스로도 1990년대의 젊은이였던 최지호는 이렇게 말했다.

 

“90년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 나이로 따지면 소위 X세대인 이석원과 언니네 이발관의 등장은 분명하게 그 전 세대와의 분리로부터 시작했다. 나는 언니네 이발관을 이야기할 때마다 세대론을 꺼내놓는다. 이석원이 들려준 가사들에 녹아 있는 정서 때문이다. 거기에는 동세대인들을 강하게 연결하는 어떤 연대감이 존재했다. 이 정서는 전 세대와는 분리된 것이고 이후 세대와는 맞닿아있는 것으로 23년간 꾸준히 연대를 넓혀왔다. (…) 언니네 이발관은 그들의 세대와 그들 이후 세대의 외로운 개인들이 혼자서 들으며 간신히 위안 받는 도구였다. 그리고 이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외로움의 연대는 아버지 세대들이 겪었던 전쟁의 공포, 생존의 고단함, 이념에의 맹목 뒤에 왔다. 마치 우상을 섬긴 아버지의 죄를 대를 이어 치러야 하는 출애굽기처럼 말이다. 이 자조적인 연대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취향과 냉정한 자본으로 둘러싸인 한국 음악계에서 인디가 인디로서 버티게 한 거대한 뿌리였다. 그리고 이 앨범은 그 뿌리가 뒤늦게 피워낸 꽃이다.”

 

동세대의 연대나 정서 등도 모자라 아버지 세대에 이후 세대, 출애굽기까지 언급하며 최지호는 매우 철저하게, 언니네 이발관을 그들의 ‘동세대’로써 함께 연대하고 같은 정서를 공유한 밴드로 이야기한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그 어떤 음반과도 다른, 가장 특별한 음반이라 하며 “한국대중음악에서 여기까지 도달한 자는 없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사운드의 공들임이나 가사의 의미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라는 구절은 당연히, 겉 표면에서의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가 아닌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그 세대론적인 감각을 본의 아니게 직격으로 겨냥한다. 바로 그 곳에서 [가장 보통의 존재]는 X세대 비평가들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 명반이 되었고, 될 수밖에 없었다.

 

비평적 역치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보자면, X세대의 비평가들이 2008년 당시에 겪었던 것은 정구원이 “음악의 역치, 동시대의 음악”에서 말했던 ‘역치’였을 것이다.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각각 “일반적으로 반응이나 기타의 현상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계(系)에 가하는 물리량의 최소치”와 “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극의 세기를 나타내는 수치”로 정의되는 이 단어를 가져오며 정구원은 ‘최초’였던 음악이 점점 과거로 밀려남에 따라 필요한 ‘역치’에 대해, 그리고 그 ‘역치’가 얼마나 힘겨운 무게를 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내 과거를 장식했던 음악이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동시대성이 어느 순간 더는 동시대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 그리하여 그것들이 ‘진짜로’ 과거의 음악이 되어버렸을 때, ‘지금 현재’의 감각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사람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흡수하던 젊은 시기의 동시대를 함께 했던 음악이 전달하는 쾌감, 취향이라는 것을 처음 형성하게 만든 창작물이 개인의 내면에서 행사하는 권위, 개인적 경험과 서사가 결합한 과거 음악의 후일담적 강렬함. 어떤 식으로 설명하든, 그것은 굴복하기 어려운 종류의 무게를 지닌다. (…) 새로운 음악적 경험의 역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높아져버렸다.”

 

결국 2008년의 비평가들은 그들을 점점 짓누르던 역치를 어떻게든 빠져나가려는 방법으로 결국에는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닐까. 말했듯이, 이는 의식적이거나 특정 세대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지극히 본능적인 것이다. 우리는 결국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시간은 일직선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은, 당연히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뒤에 두고 올 수밖에는 없다는 걸 의미하니까.

 

“전대한: 홍대와 인디 씬을 굴리고 있는 인구의 절반, 못해도 3~40%인가 제 또래인 20대 초중반인데 그들이 담론을 주도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홍대와 인디 씬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내는 건 여전히 X세대이거나 그 위의 세대이고요.”

“블럭: 어떻게 보면 향수일 수 있어요. 그들이 그냥 ‘옛날에는 이랬는데’하고 생각해서, 그걸 추적하는 과정에서 세대를 느끼는 걸 수도 있겠죠. 그들 눈에는 지금의 홍대가 굉장히 마음에 안 들겠죠.”

-『크리틱스 레코드』중

 

…18년에서 08년으로, 또 08년에서 98년으로, 다시 98년에서 08년으로, 10년 간격의 시간들을 도약하고 비약했다. 이 글은 이제 다시 처음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왔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순식간에 명반이 되고, 그 방식과 담론이 우세종이 되어 10년이나 이어지는 역사와 더불어 그 안에 내재된 90년대-1세대 비평가들의 ‘역치’가 즉각적인 명반화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그나마 닿은 결론이 있다면… [가장 보통의 존재]는 물론 텍스트적으로는 아주 훌륭하고 아름다운 음반이지만, 그 주위의 컨텍스트들, 이것을 이야기하는 담론들은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라는 우세종과 90년대-1세대 중심의 우세종이 교묘한 형태로, 아주 절묘하게 얽혀 들어가며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이 명반이 탄생하는 과정에 있어서 기획된 방식과 그로 인해 복사된 찬사가 담론의 주된 형태였다는 점이 우선 의심스러우며, 더 나아가 그러한 방식으로 인한 ‘인스턴트 클래식’의 과정은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러므로 본능적으로) 이미 과거가 된 ‘동시대’에 대한 역치를 견딜 수 없어하는 동시에, 그 시간의 부조화 속에서 어떻게든 영광을 되찾으려는, 애매하지만 확실한 X세대 비평가라는 집단에 의해 일어났다는 점 또한 추측된다.

그리고 이렇게 텍스트의 외부에서 수많은 담론과 컨텍스트와 이야기가 섞이며 정말로 중요한 것은, 결국 X세대 식의 ‘1세대 홍대 인디 록’의 방식이나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의 방식이 언니네 이발관과 [가장 보통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담론들의 우세종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이는 곧 우세종을 제외한, 다른 종류의 담론이나 이야기들이 그리 쉽게 탄생하거나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 또한 의미하며, 여기에 더해 어떠한 담론의 획일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의미한다. 아니, 나비효과도 아니고, 그게 어떻게 거기까지 이어져? 하지만, 아주 작은 원인이 거대한 결과가 될 수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많다. 물론 이게 인디 록의 멸망이니 씬의 붕괴나 비평의 몰락 (이 중 어느 하나는 가능성이 있다고들 한다) 따위로 이어진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지만, 어쨌든 더 많고 새로운 담론과 이야기의 탄생이나 출현을 미필적 고의로 (그러니까, 무의식적이자 본능적으로?) 막았다는 점이다. 이제, 다시 현재, 2018년 8월 8일로 돌아가야 한다. 1998년, 1세대의 인디 록 담론이 탄생했고, 2008년, 명반이 탄생했다, 2018년, 나는 또 다른 새로운 것이 탄생하길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또 다른 명반의 탄생

글이 거의 다 끝나가는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글은 [홀로 있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시작되었던 거 같다. 9년 만에 나온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음반이었던 [홀로 있는 사람들]이 겉보기로는 2008년의 [가장 보통의 존재]와 거의 흡사할 정도로 크게 다를 바 없는 반응, 포획된 찬사 혹은 기획된 구호로써의, 우세종적 방식과 담론으로써의, 그 모든 이야기들, 이 모든 비슷한 이야기들로 채워지며 마찬가지의 ‘명반’이 되는 광경을 보며 나는 그런 우세종적인 담론들이 생겨나고 순식간에 가장 압도적인 위치가 되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어찌 보면 이 모든 광경은 언니네 이발관의 그 모든 시간들을 이야기하며 기억하고 떠나보내려고 하는, 그렇게 자신의 그 모든 시간들도 함께 이야기하며 기억하는 팬들의 과정일 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엄청난 비평적 계략(?)이나 조작(?) 따위는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있는 사람들]이 [가장 보통의 존재]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포획된 찬사’를 받으며 우세종적인 담론이 형성되고, 그 담론이 곧 음반 자체를 나름의 ‘명반’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시 한 번 보는 건 비평적으로도, 심지어 팬적으로도 그렇게 만족스러운 광경은 아니었다. 잠깐만 돌아가 보자.

내가 2017년에 겪은 풍경 또한 어쩌면 [홀로 있는 사람들]의 명반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만큼은 [홀로 있는 사람들]이 “명반”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언니네 이발관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빈약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 추는 춤” 같은 두 세 곡의 노래가 그나마 빛나는, 그런 평범한 음반이라고 생각하며 마무리로써는 많이 아쉽지 않은가, 싶다. 그럼에도, [홀로 있는 사람들]이 나왔을 때 적어도 내가 여러 대중음악 비평이나 글쓰기에서 본 건 또 다른 형태의 우세종이 형성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보자면, 두 음반 사이의 9년이라는 긴 시간이 여기에 큰 몫을 한 게 아닐까, 싶다. [가장 보통의 존재]의 명반화 과정에서는 근본적인 세대적인 공통감각뿐만 아니라 ‘4년의 기다림’이 명반이라는 결실을 만들었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로 나름 크게 작용했는데, 이는 그대로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의 우세종을 뒷받침하는 많은 근거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이석원이 이토록 오랫동안 작업을 하는 건 치밀한 컨셉 음반을 완벽한 사운드로 만들기 위해서였고, 그렇게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명반이 나왔다.

이는 묘하게도 “기다린 만큼, 더” (검정치마의 경우와도 꽤 비슷하지만, [TEAM BABY]는 실제로 ‘좋은’ 음반이다.) 음반이 훌륭해진다는 일종의 오류 혹은 믿음을 만든 게 아니었을까. 9년이라는 시간은 그러므로 두 가지 일을 해냈는데,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음반’이 유보되면 유보될수록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우세종적인 담론과 명반의 위치가 훨씬 더 고착되게 했고, 동시에 그 기간 동안 ‘도래할 음반’에 대한 온갖 기대치와 하이프를 끌어올리다 못해 어떠한 절박한 믿음(?)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하지만 오래 기다린 음반이 그 시간과 비례해서 훌륭한 건 절대로 아니라는 걸, 다들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잠시 여담이었지만, 이 “기다린 만큼, 더”의 담론(?)은 일종의 예비 단계로써 [홀로 있는 사람들]의 유사 명반화 과정을 튼튼하게 뒷받침해줬다. 그것은 일종의 보상 심리이자 애증의 관계, 어쩌면 팬-음악인 사이의 스톡홀름 신드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9년의 기다림을 바탕으로, [홀로 있는 사람들]은 그 텍스트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너무 많은 배경 지식과 맥락과 여담과 컨텍스트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혼자 추는 춤”은 아마도 싱글이었기에 이러한 범람에서 나름 벗어날 수 있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가장 보통의 존재]에서의 우세종적 담론은 여기에서도 일종의 낙수효과이자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전설적인 1세대 모던 록 밴드, 완벽주의와 과작의 대표 주자,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하나 뿐인 명반을 만든 밴드, ‘우리 모두’의 90년대 향수를 자극할,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음악! 여기에서도 1990년대나 X세대에 기반을 둔 공통감각은 여전히 가장 근본에 깔려있었고, ‘마지막’에 대한 지나친 감상주의는 당연히 이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마케팅부터 이석원의 개인 일기, 작업 영상, 음반 소개문, 추천사 등에서 드러났고, 역시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그대로 [홀로 있는 사람들]의 우세종적인 담론이 되었다. (물론 그 과정을 주도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이끈 건, 여전히 대중음악 비평의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그리고 [홀로 있는 사람들]과 함께 1990년대는 물론 [가장 보통의 존재]의 ‘옛 시절’까지 떠올리는 X세대 비평가들이었다.)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이자 9년을 기다린 작별인사. 그만큼 [홀로 있는 사람들]은 명반이, 명반이 아니더라도 ‘뜨거운 안녕’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 일어났다. [홀로 있는 사람들]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와 글들은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이나 23년이라는 시간, 9년이라는 기다림 등의 ‘시간’들을 언급했다. 물론 그것들은 중요하다. 어쩌면 필수적인 수준까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로 더 중요한 건, 이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재생산되었다는 점이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고, 비슷한 방식으로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그 당시의 나 또한 마찬가지긴 했으며 결국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기시감을 느끼며 모든 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2017년 6월 1일 정오 직후부터 터져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 담론들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것들. 우세종의 방식과 담론으로, 이미 수없이 반복된 이야기를 되풀이하기. 그리고 [홀로 있는 사람들]은 [가장 보통의 존재]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언니네 이발관의 (훌륭한) 마지막 작별인사”가 되었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언니네 이발관이 만든 가장 훌륭하고 역사상 전무후무한 음반”이 된 것처럼 말이다.

 

산들산들

정말로, 글을 끝낼 때가 왔다. 적어도 내가 이 모든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언니네 이발관이나 [가장 보통의 존재], 좀 더 크게 부풀리자면 한국의 인디 록에 대한 이 모든 이야기와 담론들은 그 당시의 90년대에 대한 직접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일종의 애매한 집단(X세대라는 더욱 애매한 표현으로 곧장 불리는 집단)의 입장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왔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절대로 누구의 ‘탓’을 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게 지극히 일반적인 일, 시간이 흐르면서 일어나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상징적이었던 ‘1996년’ 이후로, 그 해에 태어난 신생아가 법적 성인이 될 수 있을 만한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 때 당시의 홍대나 인디 씬, 인디 록 등은 시간의 흐름에 맞춰 당연히, 변하고 달라지며 새로워졌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담론만큼은 변치 않아 부조화와 함께 점점 괴리되었고, 결국 어떠한 우세종이 되어버렸다고 본다.

어쩌면 [가장 보통의 존재]에 대한 훨씬 더 많은, 다르고 새로운 담론과 이야기, 비평과 감상들이 가능했었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가능했던 미래’는 이런 이상하고 복잡한 미래 완료형 시제로써 표현할 수밖에는 없다.) 우세종의 방식에 대해 내가 계속해서 품은 작은 불만이 있다면, 이것이 당위나 진리로 비약되고 착각되고 과장될 때 그와는 다른 담론이나 이야기들은 그 위치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를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듣지 않기. 마지막이나 공백기를 언급하지 않고 [홀로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기. 그러한 다른 방식이나 담론들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왜인지 지금까지 우세종의 방식만이 언니네 이발관을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무엇보다도 쓰는 유일무이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를 의식하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던 때에도, 물론 내가 이를 의식하고 글도 쓰는 때에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고, 그런 입장에서 적어도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그리고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바랐던 것, 그나마의 꿈으로 두었던, 꾸었던 것은, 새로운 듣기와 새로운 쓰기를 발명해보는 것뿐이었다. 우세종적 담론에 의한 명반의 탄생 앞에서, 다른 담론의 탄생을 상상해보기.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모든 시간도, 희미해져 갈 테다.

사실 이 글도 내 바람과는 다르게 언니네 이발관을 듣고 쓰는 것에 있어서 전혀 다르고 새로운, 그런 방식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새로운 듣기와 새로운 쓰기는 내가 언제나 지향하는 일종의 이상적인 목표지만, 언제나 그 가까이에도 가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1990년대에 대한 향수나 X세대적인 감각은 부재하며 오히려 열심히 지양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나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순서대로, 좋은 음질로” 듣고 쓰는 것을 선호하며, 어쨌든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명반”으로 생각할 것이고, [홀로 있는 사람들] 또한 결국 9년 만의 마지막이라는 관념에 의해 낭만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쓰며 바라온 새로운 듣기나 쓰기는 다 무엇인가. 결국 이 글 또한 이전의 글처럼 실패가 아닌가, 원점으로 돌아간 게 아닐까. 또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언니네 이발관이나 [가장 보통의 존재]를, 더 나아가 수많은 또 다른 음악과 작품을 듣고 쓰는 것의 시작. 어쩌면 언젠가, 언니네 이발관을 지금보다 더욱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듣고 쓰는 글들이 나타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미 여태까지 우세종의 방식으로 듣고 썼던 걸 그 다르고 새로운 방식들로, 다시 듣고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시점에서의 나는 우선 여기까지 왔다. 실패했지만.

언젠가, 언니네 이발관이나 [가장 보통의 존재]는 어쩌면 다르고 새로운 방식이나 담론으로 들리고 쓰일 수 있을지도 모르며, 전혀 다르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되며 기억되고, 그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명반’이자 ‘전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다가, 언젠가 현재의 우리도 미래의 누군가의 고전이 될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 겸 애니메이션에서 따왔다.2) 그런 미래를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여기, 2018년의 실패에 가까운 기록을 쓰는 것뿐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를 향한 여행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모든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기 시작하고, 생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글은 한 장의 음반에 대한 글이었고, 그 음반을 다시 한 번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다른 방법들을 상상하며. 어쩌면 음반은 내가 끝났던, 끝냈던 곳에서 다시 이야기를,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나는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쓴다. 실패한다. 다시 한 번, 듣고, 쓰고, 실패한다. 또 다시 한 번, 듣고, 쓴다. 그 글은 한 장의 음반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나는 산들산들 시작한다. | 나원영 [email protected]

 

 “산들산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시간도 희미해져 갔어

  1. 정지돈X금정연,『문학의 기쁨』, 루페, 2017
  2. 요네자와 호노부, 권영주 옮김, 『빙과』, 엘릭시르, 2013

One Response

  1. 아네진

    아아~ 흥미로운 주제인데, 글이 너무 길어 읽기까지의 결심이 오래 걸렸습니다. 오늘에서야 겨우 글을 다 읽었고요. 흥미로운 주제 만큼 흥미로운 글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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