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세계

순도가 아주 높다. 이달의 소녀가 2019년 2월 19일 내놓은 리패키지 음반 [X X](멀티플 멀티플)의 타이틀곡 “Butterfly”와 그 뮤직비디오를 접하고 난 소감이다. 차분하지만 팽팽한 벌스(Verse)와 만개하는 코러스는 한계를 넘으려는 열망과 비행에 뒤따르는 해방감을 번갈아 전달하고, 케이팝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수준보다 더 강한 리버브 효과는 날아오르는 나비 앞에 펼쳐진 풍경의 광활함을 느끼게 한다. 안무는 격렬한 동시에 빠르게 변화하며, 시퀀스마다 시작과 끝이 뚜렷해서 일종의 제의에 가까워 보인다.

안무를 더 들여다보면, 팔과 다리가 크고 빠르게 뻗어 나가는 모습, 몸 전체가 움직이며 만드는 선, 멤버들이 정확한 위치로 이동하며 만들어내는 대형이 눈을 사로잡는다. 또한 의상은 손과 얼굴만을 드러내는 단색의 블라우스와 바지로, 안무를 부각하는 동시에 멤버들이 안무를 정확히 수행하도록 돕고, 손목의 프릴은 안무에서 ‘나비의 군무’라는 인상이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재미있게도, 안무가 공개된 이후 ‘남돌춤 같다’는 반응이 많다. 위에 열거된 “Butterfly” 안무의 속성들이 지금까지 걸그룹의 안무에 흔히 적용되지 않았거나, 적어도 소비자들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위 속성들은 공통적으로 무대 위 신체의 기능적 움직임에 집중하게 한다. 그러한 속성을 지닌 안무의 대척점에는 ‘중요 부위’로 나뉜 육체의 전시를 돕는 안무들이 놓여있을 것이다. 어쩌면, 소비자들은 많은 걸그룹의 안무에서 전자보다 후자를 보아왔다.

“Butterfly”의 안무에는 이른바 ‘남자춤’의 본질이라 할 과시적이고 위협적인 면모(속칭 ‘후까시’)가 없다. 오히려 끊임없이 우아하고 유려한 선을 그려내기 위해 매우 절제된 움직임을 허락할 뿐이다. 그럼에도 ‘남돌춤 같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이 안무가 신체의 탁월한 기동을 효과적이고 극명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 곡의 무대에서 멤버들은 남성을 흉내내지 않고도 육체 이상의 무엇, 즉 인간으로 제시된다.

 

 

뮤직비디오의 과감한 구성도 이런 전략을 돕는다. 흔히 케이팝 뮤직비디오는 어떤 모호한 서사 속에 놓인 멤버들의 연기 장면과, 뮤직비디오 공개 후 무대를 예상할 수 있도록 안무와 의상 등 시각적 요소를 제시하는 퍼포먼스 컷을 이어 붙인다. 하지만 공개 후 ‘자, 이제 멤버 버전1을 보여주세요.’라는 볼멘소리가 한구석에서 나올 만큼, “Butterfly”의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의 모습은 오로지 퍼포먼스 컷으로 한정되어 있다. 나머지 자리를 채우는 것은 중국 홍콩/선전, 프랑스 파리, 미국 LA 등 세계 곳곳에서 촬영한 여성들의 모습이다.

사실 멤버들의 연기 장면은 이미 올 1월 1일부터 50일간에 걸쳐 공개된 티저에 담겨 있다. 이렇게 멤버들만이 놓인 폐쇄적인 ‘세계관’을 과감하게 뮤직비디오 앞으로 빼버린 결과, 뮤직비디오에서는 멤버들의 퍼포먼스가 집중적으로 부각되며, 케이팝의 문법을 벗어나 확장된 세계가 담긴다. 그 안의 여성들은 어디론가 달려가거나, (골프채처럼) 목발을 휘두르는 등 지금까지 이달의 소녀가 내놓은 뮤직비디오 속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행동을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어쩌면 다음과 같은 권유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 더 높이 날아가리라는.

뮤직비디오의 포커스 안에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 권유에 설득력을 더한다. 숱한 경험을 통해 소비자들은 여성과 남성이 화면에 함께 등장하면 둘은 로맨스에 빠진다는 점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만큼 잘 알고 있다. “Butterfly”의 뮤직비디오는 행인을 제외한 남성을 완전히 배제해, 그 속의 여성들이 이성애 서사의 구성요소로 한정되는 결과를 막고 오직 그들이 있는 곳, 그리고 그들이 향한 곳만을 드러나게 한다. 이는 물론 ‘이 뮤비는 그렇게 다양한 여성을 제시하지만 왜 남성이 없느냐’는, 또 다른 볼멘소리를 낳았다.

그도 그럴 것이, “Butterfly”는 가사에서조차 짝사랑, 유혹, 이별 등의 고전적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으며, 오직 새롭게 거듭나려는,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열망은 지극히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나, 퍽 놀랍게도 케이팝 걸그룹의 타이틀곡에 담긴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며 오직 소수의 청자를 앞둔 ‘수록곡’을 통해서만 은밀한 계보를 이어올 수 있었다.

 

“Butterfly”가 제시하는 가사와 이미지들에는 멤버들을 남성을 흉내 내는 것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남성의 시선에 붙잡히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이 일관되게, 그리고 촘촘히 놓여있다. 이처럼 단호한 프로덕션이 필요한 이유는, 그저 인간으로 제시되기 위해 걸그룹에게 필요한 탈출 속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쇼 비즈니스에서, 영화/드라마/연극/뮤지컬 속의 여성 배우들은 운이 좋다면 소비자가 입맛을 다실 만한 매력적인 육체, 혹은 그들이 극 밖에서 해소하지 못한 공격성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에 그치지 않고 극의 서사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긍지를 가지는 인간을 대변할 수 있고, 그마저도 남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기회에 비하면 미미할 뿐이다. 여성 가수에게는 그 알량한 기회마저도 잘 주어지지 않으며, 적어도 한국에서는 손꼽을 만한 숫자의 여성 솔로 가수들만이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연속 히트 신화’ 내지 ‘아티스트 행보’ 따위의) 서사를 시장에서 부여받고서야 스스로를 인간으로, 세계에 해야 할 말이 있는 존재로 내세울 기회를 얻는다. 보이그룹은 그저 생긴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대변하겠다고 나설 수 있고, 육체적 매력은 그들을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끌어올리며, 그런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소비자에 의해 발명된다. 걸그룹의 육체적 매력은 포르노가 되며, 육체적 매력을 선보이지 못한 걸그룹은 도태된다. 몇몇 걸그룹들이 이 질서에 도전해왔고, 다음 행보를 기약 받은 그룹은 도전한 그룹들보다 적었으며, 그들에게조차 가사나 퍼포먼스 등을 통한 (가히 ‘헤테로-베이팅’이라 할) 일말의 타협이 필요했다. 걸그룹의 소비자 중 인간의 노래를 듣고자 했던 이들은 언제나 있었으나, 산업의 큰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당연히도 그 수가 적었다.

탁월하게도, “Butterfly”가 선보이는 가사와 이미지들은 이러한 제약들을 명시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동시에, 소금과 설탕을 오가며 끝없이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는 시장의 물레방아에 (얄궂게도 ‘걸크러쉬’라 불리는)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는 선언으로 스스로를 되려 밀어 넣지 않는다. 다만 그런 제약들이 아예 없다는 듯 그저 더 멀리, 함께 날아가려는 열망을 높은 밀도로 제시할 뿐이다. 마치 애초부터 중력이 없던 것처럼, 나비의 본질은 오직 높이와 속도뿐이라는 듯 말이다.

 

그 이후에 남는 것은 오직 기어이 다시 펼쳐진 지평선 앞에서 나오는 탄성 뿐이다. 후렴에서 반복해서 가성으로 터져 나오는 ‘Fly like a butterfly’라는 구절은 굳이 보이그룹의 기름지고 꺼칠한 가창을 따라 할 필요가 없다는 듯, 혹은 당신이 어두운 술집에서 흥얼거릴 멜로디를 제시할 이유가 없다는 듯, 가녀린 듯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통상적인 타이틀곡보다 조금 더 긴 시간(3분 57초)를 필요로 할 만큼 몇 번이고 탄성을 반복하는 곡의 후반부에서는 차라리 가장 빠른 속도, 가장 높은 위치에 다다랐을 때 터져 나오는 비명이나 함성처럼 들린다.

탁월함은 성별의 임의적인 구분을 우습게 만든다. 제작자와 실연자의 구분, 즉 분업을 통해 고도화되며 실연자와 소비자 간의 경계를 흐리는 기제, 즉 동일시로 동력을 얻는 산업의 산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주체성’ 같은 단어를 동원해 이를 게으르게 상찬했을 때(개인적으로는 이를 ‘주체사상’이라 부르고 싶다.) 뒤따를 낡고 소모적이며 지리멸렬한 공회전을 굳이 일으킬 생각은 없다. 하지만 “Butterfly”가 제시하는 정서가 높은 자존과 긍지를 담고 있으며, 그를 위해 취하는 방법이 정교하다고는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호한 프로덕션과 강한 몰입을 선보이는 실연을 통해 걸그룹도 세계 속 자신, 그리고 자신 앞의 세계에 대해 노래할 수 있다는 찰나의 해방감을 일부의 소비자에게 선사하는 이런 순간은, 지금까지 이달의 소녀가 어떤 행보를 밟아왔고 앞으로 어떤 행보를 밟을지와 무관하게 몇몇의 기억에 오랫동안 끈질기게 남는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너무 오래 살아버린 이들 중 한 명으로서, 나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발표되었던 한 노래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노래에서 키치를 초과하는 부분만을 걷어내려 했던 많은 시도들을 떠올린다. “Butterfly”는 과감히, 가뿐히 그 선을 돌파하고 있다. | 하세용 gorehead. [email protected]

 

  1.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안무 외의 모습을 담은 버전의 뮤직비디오

3 Responses

  1. 즈엔더 감수성

    앨범 리뷰를 하세요 제발. 같잖은 여혐 젠더감수성 드립 적당히 치시구.
    . 걸그룹의 육체적 매력은 포르노가 되며, 육체적 매력을 선보이지 못한 걸그룹은 도태된다.
    니들이 izm 깔자격은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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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는

      감수성이란 것은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것이죠. 누군가와의 공감대와 그 누군가를 부드럽게 포괄하는 이해력의 원동력이니까요. 물론 일반화의 오류는 피해야겠지만, 이달의 소녀의 “Butterfly”라는 작품에 대한 맥락으로써 충분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잖은 젠더 감수성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걸그룹들이 성적 대상화라는 컨셉을 거쳐 갔지 않나요? 물론 지금 가요계는 발전 중이며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더이상 (적어도 오버그라운드에서는) 대놓고 섹시 코드 같은 것을 들이밀지 않는 것 같아서요.
      이 리뷰는 그것마저도 단지 시장의 물레방아 같은 것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저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보이네요. 적어도 스텔라의 마리오네트 같은 노골적인 (준) 포르노(성을 단지 소비하기 위해 사용하는 매체)는 없어져야 하니까요 (그것도 5년밖에 안 됐네요). 물론 보이그룹도 성적 대상화가 될 수는 있지만, 걸그룹에 비례해 그 강도와 빈도의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Butterfly”는 그 발전 노선 위, 또 앞에 묵직하게 위치하며, 그렇기 때문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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