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릭과 남메아리의 “늦은 감은 있지만” 공연을 보기 일주일 전, 나는 발리로 여행을 다녀왔다. 대자연의 찬란함도 잠시, 도시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로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비행기가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훗날 내가 이런 감정을 또다시 느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도시로 돌아왔을 땐 미세먼지만큼이나 짙은 우울함이 다시금 나를 반겼다. 내가 살아가는 건지, 살아지는 건지 모른 채 일주일이 흘렀고, 그 주의 끝자락인 5월 17일 금요일 오후 남메아리와 슬릭의 콜라보 콘서트 “늦은 감은 있지만”이 열렸다. 애써 그 공연에 다녀온 것은 그래도 나에게 그날 하루를 또 살아가야 하는 나름의 이유를 부여한 것이었다. 공연장에 입장할 땐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공연은 내게 마치 새로운 여행 같은 감정을 선사했다. 도시인인 내가 여행에서 받은 위로를, 슬릭과 남메아리가 보여준 무대에서 똑같이 발견한 것이다.

 

 

공연은 CJ아지트 광흥창에서 열렸다. 재즈 아티스트 남메아리와 래퍼 슬릭이라는 각각의 인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들이 함께한 새 프로젝트 ‘늦은 감은 있지만’을 실제로 접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공연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궁금했다. 시간이 되자 공연장이 어두워지고 남메아리와 슬릭이 등장했다. 관객들의 기다림과 궁금증에 대해 이들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듯, 별다른 말없이 바로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한 줄기 햇살처럼 보라색 조명이 내리쬐었고 곧바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남메아리가 연주하는 재즈 피아노의 선율과 잔잔한 슬릭의 랩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무대는 남메아리가 작업한 곡에 슬릭이 가사를 쓴, 아직 제목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곡부터 늦은 감은 있지만의 스타일로 재탄생한 슬릭의 노래, 갓 피아노를 배운 슬릭이 직접 피아노를 치며 참여한 곡 등으로 채워졌다. 어둠 속에서 두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며칠 전까지 바다를 헤엄치던 내가 떠올랐다. 공연장 안의 소리는 물속에서 들리는 나의 숨소리처럼 선명했고, 아티스트들의 몸짓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슬릭의 표정과 건반을 치는 남메아리의 손가락이 지난 여행 때의 감정을 연상시킬 정도로 나에게 무대는 공연 이상의 무언가로 다가왔다.

 

 

이들의 무대와 나의 여행을 연관 짓는 것은 내가 도심에서는 받을 수 없던 위로가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서울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지만, ‘고향’이라는 단어에는 그 단어가 지닌 포근함만큼이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 도시를 벗어나고 나서야 스스로 상처를 입히던 질문 공세를 잠시 멈출 수 있었다. 대체로 가족이나 사회, 꿈, 인간관계처럼 관습에 의해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것들이었다. 사실 요새는 나이를 먹으니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나의 존재 자체가 물음표로 여겨지기도 했다. “AIQ” 속 ‘가끔 거울 앞에서 묻곤 해 Am I a question?’라 말하는 슬릭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 흡입력 있게 다가왔다. 초조한 가사가 이어지는 “Liquor”도 거울을 보는 듯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의 제3의 멤버라는 메트로놈이 함께한 남메아리의 피아노 연주는 별다른 가사 없이 선율만으로 마음을 녹였다. 공연은 내가 구태여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귀에 잘 흘러들어왔다. 그간 끊임없이 던졌던 모든 의문은 ‘가끔 엇나가긴 해도 난 나야’라는 가사로 수렴되었다.

 

 

남메아리가 프로젝트 이름을 정하게 된 계기와 함께 언급하기도 했지만, ‘늦은 감은 있지만’이라는 말은 참 마법 같다. 이 한마디와 함께 그전까지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실천 가능한 것으로 바뀌니 말이다. 이 둘의 밴드는 처음부터 장대한 계획하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음악을 ‘배워본’ 적이 없는 슬릭이 늦게라도 음악을 배우고자 남메아리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된 것이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그러던 중 올해 3월, 평소처럼 레슨을 하던 남메아리가 슬릭에게 ‘같이 합주해보실래요?’라고 말을 건네면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가 출발했다. 이들은 합주를 많이 해보지 않았다는 슬릭의 처음 우려를 뒤로 하고 이 공연까지 이르렀다. 공연장에 온 사람 중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 주문을 함께 외우고 있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퇴사 후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사람, 늦은 감은 있지만 꿈을 좇기 시작한 사람, 늦은 감은 있지만 음악을 시작한 사람 등 다양한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 공유했다. 슬릭도 이에 화답하듯 뒤늦게 배운 피아노 실력을 무대에서 직접 선보였다.

그런 맥락에서 이어진 “늦은 감은 있지만” 무대는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앉아서 공연을 진행하던 두 아티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메아리는 숄더 키보드를 집어들었고, 슬릭은 스탠딩 마이크를 잡았다. 이전까지의 분위기가 잔잔한 해변처럼 평온했다면, 쨍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리드하는 “늦은 감은 있지만”은 마치 서퍼들을 위한 파도처럼 생동감 넘쳤다. 자리에 앉아있던 관객들도 이 무대에서는 몸을 흔들고 슬릭의 가사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대로, 늦은 감은 있지만 이대로!’ 나 또한 여행을 다녀온 시간만큼 남들보다 늦은 것은 아닐까, 지금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따라 외쳤다. 늦은 것 같아도 괜찮다는 그 말은 아티스트의 위로에서 공연장에 함께 있었던 우리 모두의 용기로 번졌다.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했느냐이다. 이번 “늦은 감은 있지만” 공연에서 예상치 못하게 감동을 한 이유도 그 자리에 함께한 이들 덕분이었다. 공연장의 조명 아래 느껴지는 아티스트의 생생한 목소리와 표정, 발끝으로 느껴지던 진동, 다 같이 따라 외치는 가사는 새로운 여행지의 설렘과 그곳의 있는 그대로 나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혹시나 늦었다는 이유로 집에서 방콕만 하고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될 이들의 여정을 눈여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올해 안에 늦은 감은 있지만의 1집과 남메아리 밴드의 2집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슬릭은 사람들이 혼자서도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렇게 짙은 교감이 있는 ‘혼자 공연 보기’는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혼자’가 아니라고도 덧붙이고 싶다. | 임유진 [email protected] / 사진: 슬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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