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9년 7월 8일 월요일
장소: 합정 무대륙
질문, 정리: 나원영 [email protected], 정구원 [email protected]

그래서,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았을까? 그것을 계속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게 중요하기라도 할까? 애초에 마땅한 답을 찾으려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 가는 과정에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일이 더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과는 또 다르게,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는 멀리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가까이는 바로 지금까지, 각자의 위치를 새겨놓은 밴드와 인물들을 비정기적으로 인터뷰한다. 각기 다른 이 이야기들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심스럽게 다시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 시작해본다.

[우리의 포스트록을 찾아서+]의 첫번째 인터뷰이는 퓨어디지털사일런스다. 정은주, 최준용, 홍철기, 양용준의 네 명으로 이루어진 밴드는 97년 결성되어 데뷔작 [Circumfluence], 피와꽃과의 스플릿 [Barcode For Lunch / 즐거운 한 때 우리는 외계 혹성을 방문했다]를 발표했다. [Circumfluence]는 작년 겨울 커티스 캄부(Curtis Cambou)가 운영하는 레이블 대한 일렉트로닉스(Daehan Electronics)에 의해 LP로 리이슈되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PC 통신이 활발하던 당시의 환경에서 로파이와 노이즈, 기타 루프와 슬로코어 등 다양한 시도들을 했던 정은주, 최준용, 홍철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나원영

 

 

 

 

나원영: 우선 최준용님과 홍철기님이 어떻게 알게 되셨고, 어떻게 활동을 이 당시에 하시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최준용: 내가 얘기할 테니까, 틀리면 (철기) 형이 고쳐 주세요. (웃음) 96년도에 나우누리 동호회 중에 메탈동이라고 있었어요. 홍철기 씨가 그곳에서 음악 감상회를 열었죠. 그 때 철기 씨가 시샵이었던가?
홍철기: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인디 록이나 모던 록 같은 걸 다루는 게시판이 따로 하나 있었어요. 메탈동 안에 장르가 많으니까. 그 게시판 관리 비슷한 걸 했던 거죠. 한 95년, 96년 이 때 하게 되었어요.
최준용: 그 때가 저도 처음 나우누리를 들어갔던 때라서 거길 보다가 음악 감상회를 한다고 했어요. 압구정이었나, 음악 감상회에 가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는데 약간 취향이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구체적인 어떤 계기는 기억 안 나는데, 저 말고 기존에 있던 회원 분들이랑 밴드를 한다고 했어요. 피와꽃 같이 하시던 전영미 씨도 있었는데, ‘많이 먹고 힘내라’라는 밴드를 한다고 해서 (그 모임에) 저는 그냥 한 번 놀러갔어요.
홍철기: 몇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우선 이게 있었고. 96년 여름 때인가 영어 배운다고 영어 회화 학원을 갔는데, 학원 선생님이 미국에서 살다 오신 분이었고 이런 걸 되게 좋아하시는 분이었어요. 그 분이 나중에 PDS 연주도 같이 했는데… 그래서 그 분한테 뭐 스완즈(Swans) 같은 밴드를 이런 게 있다, 들어봐라, 이러면서 소개받고. 그 분이 테이프도 주시고 그랬어요.
슬로(쓰루 더 슬로)를 하는 것을 보러 가기도 하고 그랬는데, 준용이하고 취향이 비슷하구나 싶더라구요. 당시에는 진짜 별 거 다 들을 때인데, 그 중에서도 좀 로파이(Lo-Fi)한, 하여튼 다른 사람들이 좀 안 듣는 로파이한 거나, 아니면 노이즈, 싸이키델릭한 것들. 하여튼 그런 취향이 겹쳤어요. 그런데 준용이가 그 4트랙 멀티 트랙 레코더(Multi Track Recorder, MTR)로 녹음을 하면 된다. 그런 얘기를 해서, 한 번 해보자, 그렇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나원영 :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두 분이서 녹음을 하시게 된 거군요.
홍철기 : 네, 준용이네 집, 부모님 댁에 가서 96년 말, 가을~겨울쯤 되었을 때 녹음을 했어요. 저도 사실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할 때였는데, 대학 가기 전에 기타치고 음악을 해봐야했다고 생각을 해서 장비를 사고 그랬죠. 준용이한테 기타 페달들이 이러이러한 게 있더라, 하면서 배우게 되고 (웃음) 뭐 그래 가지고 한 번 해보자. 그렇게 시작을 했죠.

 

나원영: 그 때 처음으로 녹음을 하셨던 게 아스트로노이즈 때와는 분위기 상으로 어떤 차이가 있나요?
홍철기: 그 때는 아스트로노이즈를 시작하기 전이었어요. 그 때는 온갖 로파이 포크나 소닉 유스(Sonic Youth)나 이런 밴드들의 건반, 드럼 있는 인트로, 혹은 중간에 이상한 노이즈 넣는 그런 것들을 많이 들었어요.

 

나원영: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당시 PC통신이나 오프라인 등으로 음악을 듣는 경험이 어땠는지, 음악과 관련된 문화를 즐기는 분위기가 어땠는지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처음 그러한 종류의 음악에 흥미가 생기셨는지, 그것을 듣게 된 경로나 네트워크 등은 어땠는지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려요.
최준용: 나우누리 메탈동, 혹은 하이텔 같은 곳에도 비슷한 게 있어서 그런 데서 정보를 얻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그런 새로운 음악을 찾으시는 분들은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되기 전이니까 잡지를 많이 봤죠. 타워 레코드가 90년대에 생겼는데, 강남역에 굉장히 크게 있었어요. 거기 가면 얼터너티브 프레스(Alternative Press)나 CMJ 같은 잡지들이 있어서, 거기서 잡지를 사서 정보를 얻고. 그리고 상아레코드나 시티비트, 향뮤직 같은 레코드 가게에서 이상한 것들, 자기네들이 알아서 수입한 음반들이 있었는데, 가서 보다가 앨범 자켓 같은 거 보고 막 사기도 했고요.
정은주: 저는 대학 가서 PC통신을 처음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에는 주로 잡지를 통해서 정보를 접했어요.
홍철기: 그 때 처음으로 PC통신을 통해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했어요. 인터넷 접속 처음 됐을 때 했던 게, 그런 음악 관련된 사이트 다 찾고, 알고 있던 밴드들 죄다 검색해 보고 자료 뭐 있나 찾아보고 그랬죠. 생각해 보면 과거에 있던 게시판, 뉴스그룹(newsgroup)을 사용하던 분들이 올리던 자료였던 거 같아요. 텍스트로 되어 있고. 좋아하던 밴드나 이런 자료를 찾아보는 게 굉장히 긴 텍스트를 봐야 하던 시절이었죠. (웃음) 그런 것들을 봤던 게 도움이 되었어요.

 

나원영: 지금은 그냥 인터넷 찾아서 유튜브나 밴드캠프(Bandcamp) 등으로 들으면 되는데, 그 당시에는 PC통신으로 찾아보신 다음 인터넷으로 MP3 파일 같은 걸 받아서 듣는 게 어려웠겠어요.
홍철기: 찾아본 다음에 음반 매장에 가서 앨범을 듣는 거죠. 그리고 리얼오디오(RealAudio)라는 게 있었는데…
최준용: 스트리밍이 조금 있었어요. 진짜 조금밖에 들을 수 없었죠.
홍철기: 진짜 짧고 얼마 안 되는데, 그런 거라도 들어보고서 “아 이게 이런 거구나” 그렇게 약간이나마 느끼는 게 있었어요. 그리고 타워 레코드가 되게 신기했던 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초기에는 미국에 있는 타워 레코드가 파는 거랑 똑같은 레퍼토리를 그대로 가져왔던 모양이에요. 처음에 들어왔던 그 레퍼토리 중에 인기 있는 거 말고, 정말 마이너한 것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게 천천히 팔려 나갔거든요. 제가 매번 타워 레코드 가서 돈은 없으니까, “아 이게 아직도 안 팔리고 있네, 아 이제 아직도 남아있네, 이런” 당시에는 그랬었죠. (웃음)
정은주: 그리고 동호회로 사람들 만나서 서로 막 들려주고, 그런 것도 되게 많았어요. 빌려주고 테이프로 떠 주고. 이 분 처음 만났을 때도 CD를 한 10장을 갖고 와서는 들어보라고 그러고… (웃음)
홍철기: 그리고 당시에는 신용카드가 있는 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있는 분들이 구매대행을 해줬었어요.
정은주: 맞아요, 학생이라서 신용카드가 없으니까.
홍철기: 그런 분들한테 현금을 주면 지금은 아마존에 합병된 CD 나우(CD Now)나 CD 유니버스(CD Universe), 까먹었는데 진짜 희귀한 이상한 CD 파는 사이트 같은 곳에 구매대행을 해 주셨죠.

 

정구원: 정은주님은 어떻게 PDS에 들어오게 되셨나요?
정은주: 철기 씨 고등학교 친구가 밴드를 했어요. 제가 서울 처음 와서 스팽글에 공연을 보러 갔고, 그 분도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었는데 거기에 드러머 구인 광고를 붙여 놨어요. 그걸 제가 봤고, 그 분이랑 연락이 되었는데, 철기 씨랑 친하니까 같이 만나면서 알게 되었어요. 저는 PC통신 그 동호회에 이 분들을 알고 난 뒤에 가입했어요. 그러다가 PDS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죠. 그 때가 97년이었어요.

 


“Oceanview”

 

나원영: 처음 [Circumfluence]를 들었을 때 긴 앰비언트 지향의 곡도 있고, 아니면 기타 피드백 루프를 활용한 경우도 있고, 류한길 님이 데이트리퍼로 참여했던 곡도 있는 등 장르적으로 음반 하나에 되게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앨범을 만드실 때 이런 맥락에서 이거를 해보겠다, 아니면 이런 거를 들려주겠다, 하는 레퍼런스나 추구했던 방향이 있으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최준용: 그런 건 없었던 거 같아요. (웃음) 최소한 회의를 해서 이런 방향으로 하자, 그 정도의 방향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멤버들끼리 서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뭔가 비슷한 걸 추구했던 거 같아요.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도 있었고, 각자 자기가 집에서 녹음한 것도 있었는데, 지금 와서 들어보면 뭔가 잘 맞는 거 같더라고요. 저희도 신기해요. 하나의 앨범으로서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나원영: 그럼 각자가 해 오셨던 걸 어쨌든 모아놓고 보니까 통하는 지점이 있었던 거군요.
최준용: 당시에 앨범 녹음했을 때는 “Oceanview” 밖에 곡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머지는 잼(jam)을 하면서 만들어진 곡도 있고. 근데 어떤 곡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거랑 우리가 집에서 녹음한 거가 너무 질감이 달랐어요. 그래서 4트랙 레코더를 한 번 더 거쳐서 다시 녹음한 것도 있었고… 전체적인 질감 같은 것을 고려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노력을 했었어요.

 

나원영: “Oceanview”가 PDS가 맨 처음 만든 곡으로 알고 있는데, 이 곡을 맨 처음에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앨범의 첫 곡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20분 넘는 대곡을 넣는다는 생각은 잘 안 하니까요.
홍철기: 아스트로노이즈 하다가 곡을 만들게 되어서 그런 거 같아요. 안 끝나고 그냥 쭉… 계속… 하는 그런 기분이 있어서.

 

정구원: 맨 처음에 “Oceanview”라는 곡을 만들었을 때에도 그렇게 긴 곡을 목표로 한다는 구상이 있었던 건가요?
홍철기: 아마 그랬을 거예요. 간단한 코드가 있었고, 그거를 계속 칠 테니까, 거기다 덮고 빼주고 하는 식으로. 공연을 준비하다가 만들었던 것 같은데, 하여튼 그냥 가보자 하는 느낌이었죠. 그 공연 자체가 그렇게 하고, 스페이스맨 3(Spacemen 3) 커버 하나 하고, 끝내자, 이렇게 진행이 되었던 공연이라.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스트로노이즈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던 것 같네요. 아스트로노이즈 신나게 해보고, 신나게 했는데 공연 들어오는 것도 없고 더 이상 안 되니까… 아무래도 타협을 해야겠다, 이런 느낌. (웃음)

 

나원영: 굉장히 비슷한 시기에 두 팀으로 활동을 하셨는데, 제가 느끼기엔 두 분이 추구하셨던 어떤 종류의 노이즈가 아스트로노이즈로 만들어진 게 있고, 그 노이즈가 또 다른 면에서 PDS로 만들어진 것도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여기서 ‘타협’이라고 얘기해 주셨는데, 둘 사이의 관계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홍철기: 그 때는 이것저것 해 보고 싶었으니까요. 물론 ‘타협’이라고 (딱 잘라서) 말하기는 힘든데, 타협이라 볼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있었어요. (아스트로노이즈로는) 공연을 할 수 없었고, 워낙…
정은주: 앰프를 꺼 버리기도 했고요.
홍철기: 앰프 터트리고 시끄럽고 그러니까…
최준용: 그러한 아스트로노이즈 같은 실험도 하고 싶고, PDS 같은 것도 하고 싶고 그래서, 약간 둘 다의 문제였어요. 그렇긴 했는데…
홍철기: 아스트로노이즈는 하기가 힘들었죠. 그래서 그냥 우리 PDS 하자… 이런 식으로.
정은주: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이 분들이 아스트로노이즈 같은 것도 하고 싶었고, 그런데 하다 보니까 밴드 형식으로도 하고 싶었던 게 있는 거 같아요. 저도 그렇고, 준용 씨도 그렇고 양용준 씨도 그렇고 모두 다른 밴드에서 활동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이것저것 하고 싶으니까 다 해봤던 거 같아요.

 


피와꽃 “Savior Song”

 

나원영: [Circumfluence]가 나온 다음 준용 씨가 군생활을 하시고, 이후에 피와꽃과 함께한 스플릿 앨범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PDS의 마지막 음반이기도 하고, 피와꽃 역시 이 이후로 활동한 기록이 없는데, 스플릿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정은주: 멤버들이 서로 다 친했어요. 계속 어울려 다녔고요.
홍철기: 벌룬 앤 니들을 만든다고 다 같이 정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들게 되었던 것 같아요. 벌룬 앤 니들을 만들었을 때 맨 처음 작품이 무엇이 되어야 할까, 생각하다가 어쨌든 다 같이 했으니까 피와꽃하고 PDS로 하자, 이랬던 것 같아요. 초기에 벌룬 앤 니들에서 나왔던 음반들은 대체로 주변 사람들이 했던 거였어요.

 

나원영: 스플릿 앨범에서 나타난 PDS의 음악은 [Circumfluence]와는 다르게 록적인 요소가 줄었고, 이후 두 분께서 노이즈 음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무렵 사이에 과도기적인 특징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방향을 택한 어떤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최준용: 저는 그 당시에 아직 군대에 있었고, 음반에 있는 네 곡 중 두 곡 정도는 제가 휴가 나왔을 때 철기 씨네 집에서 녹음을 진행했어요. 그 외에는 각자 작업했던 것을 모았고요. 뭔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든지, 그런 거라기보다는 그냥 여러 가지 저희가 해 놨던 게 있는데, 그 중에서 몇 개를 골라서 넣었다고 보시면 되죠. 곡이라든지, 코드라든지, 아니면 음악적 아이디어 같은 것들. 근데 그 때도 사실 어떤 방향을 정해 놓고 하진 않았어요.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피와꽃이랑 PDS가 음악적이거나 그런 부분에서 공통점이 크지가 않잖아요. 그래도 그런, 당시의 어떤 상황, 여러 가지 환경들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다 아는 사이고, 친구고, 아직 전 제대도 안 했고, 레이블을 만들었는데 뭔가는 내야 되겠고, 그런데 피와꽃이나 PDS나 독립된 음반으로써, 풀렝스 음반으로 내기는 또 부족하고, 뭐 그런 악조건들 속에서 나왔다고 할까요. (웃음)

 

쓰루 더 슬로 “home”

 

나원영: 쓰루 더 슬로는 준용님께서 아스트로노이즈와 PDS 이전에 활동했던 밴드로 알고 있고, 첫 앨범은 2000년에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언급된 준용님의 활동 중에서도 ‘일반적인’ 록과 가장 닮아있다고 보입니다.
최준용: 일단 시간상으로는 아스트로노이즈보다도 슬로를 먼저 했는데, 같이 하던 베이시스트가 군대를 가서 그 때 아스트로노이즈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PDS까지 하고, 제대 하고 다시 슬로에 참여했고요. 했다가 안 했다가 그랬었죠.
홍철기: 베이시스트가 제 국민학교 동창이었어요. 이걸 나중에 알게 됐는데, 같은 골목에 사는 굉장히 친한 친구였더라구요.

 

나원영: 슬로에서는 1990년대 인디 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슬로코어(Slowcore)나 드림 팝, 슈게이징 등의 특징들이 나타난다고도 보입니다. 1996년 즈음의 슬로가 참고했던 장르나 레퍼런스, 추구했던 방향이 궁금합니다.
최준용: 거슬러 올라가면 너바나(Nirvana)부터 해서 듣게 된 인디 록, 그런 것들로 인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어요. 아스트로노이즈나 PDS는 거기서 점점 노이즈나 이런 걸 추구하면서 한 거고… 최초에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밴드였어요. 너바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들었고. 로우(Low),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 같은 슬로코어 밴드들이나 플라잉 소서 어택(Flying Saucer Attack), 세바도(Sebadoh) 같은 로파이한 밴드들까지 들으면서, 그냥 기타 치면서 곡 만들어서 노래하는 그런 밴드를 하고 싶었던 거죠.
홍철기: 갑자기 떠오르네요. 슬로가 처음 스팽글에서 공연할 때, 옛날에 첫 곡으로 하던 노래가 갑자기 떠올랐는데…
최준용: 그 때 녹음한 거 슬로 밴드캠프에 있긴 있어요.
홍철기: 있어? 새로 녹음해 봐! 밴드로 다시.
최준용: 모르겠어요, 나의 어떤… 마음속에 아직 앙금이 남아있다고 해야 하나. (웃음) 이걸 마무리를 딱 하고 싶어서 녹음도 50% 정도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 못 하고 있어요.
홍철기: 그 때 테이프가 없어서, 캠코더로 찍은 영상에서 오디오만 테이프로 녹음해서 듣고 다녔어요. (웃음) 녹음 장비가 좋은 게 없으니까, 차라리 캠코더로 영상을 찍은 다음에 잭으로 뽑아내서 녹음을 한 거죠. 그걸 따서 테이프에 녹음한 게 훨씬 나았었어요. 그렇게 해서 다른 밴드 음원도 듣고 했는데 지금은 캠코더랑 테이프를 다 잃어버려서…

 

나원영: 그러면 96년도의 슬로가 2000년 즈음에 와서 ‘쓰루 더 슬로’로 바뀐 다음에 변화가 있었나요, 아니면 그 때 했던 거를 다시 잘 녹음한 것에 가깝나요?
최준용: 드러머가 바뀌긴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어요. 다만 중간에 아스트로노이즈도 했고 PDS도 했고… 그런데 이게 딱딱 관계가 정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공연 섭외가 PDS로 오면 PDS 했다가 슬로 오면 슬로 했다가, 이런 식으로. (웃음)
나원영: 그렇게 동시적으로 많은 걸 왔다 갔다 하면서 진행했으니까 뭔가 여기에서 이걸 하고, 저기에서 저걸 해야겠다, 이런 게 있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PDS와 다르게 슬로에서 추구했던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준용: PDS는 그래도 같이 어떤 걸 만들고 그런 ‘과정’이 중요했고, 슬로의 경우 기본적으로 제가 작곡하고, 가사도 만들고 하니까 좀 더 개인적인 측면이 강했죠. 제 감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나원영: 쓰루 더 슬로도 그렇지만,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등장했던 국내의 여러 인디 록들에서는 8~90년대 해외 인디 록의 다양한 조류들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 레퍼런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당대의 여러 해외 록을 국내에 맞춰 끌어오는 것이 199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국내의 인디 록을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다고 느껴지는데, 비사이드 같은 곳에서 깊숙이 음악을 들었던 분들이 당시에 주목하셨던 해외의 인디 록이 있었다면 주로 어떤 류였는지 궁금합니다.
정구원: 그 당시 비사이드 같은 동호회에서 음악을 좋아했던 분들, 그리고 실제로 거기서 음악을 직접 만들었던 분들이 그 당시 해외의 인디 록 조류 중 어떤 부분에 좀 주목을 했었는지가 궁금해요. 그러니까 너바나 같이 누구나 다 듣는 거 말고, 어느 쪽으로 깊게 들어갔나요?
홍철기: 이건 개인적으로 다 달랐던 거 같아요. 그 때는 그런 걸 듣는 사람들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하고는 많이 달랐어요. 그 때는 로우도 듣는 사람만 듣는 음악이었지만 지금이야 안 그렇잖아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안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는 진짜 그냥 그걸 누가 듣느냐, 하면 그 사람이 듣는다, 그런 식의 분위기가 좀 더 강했던 거 같아요. 각자 듣고, 듣다가 내가 듣는 게 더 좋다 (웃음) 당신이 할 소리냐, 넌 그런 거 듣냐 후지게, 막 약간 이런 거 하던 문화였기 때문에. (웃음)
정구원: 그런 걸 가지고 싸웠어요?
홍철기: 어유 엄청났죠. 그 때 그런 문화가 컸기 때문에… 다만 굳이 생각해보자면, 어떤 게 더 비주류고 어떤 게 더 주류였는지, 그런 건 좀 불명확했던 거 같아요.
정은주: 듣고 보니까 그런 거 같아요. 요새는 누가 뭐 좋다 그러면 따라서 듣는 것 같은데, 그 때는 제가 보기에는 서로 더 안 듣는 거 들으려고 하는 느낌이었어요. (웃음)
홍철기: 일단 듣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듣는다는 것 자체가 지분이 되게 큰 거죠, 어떻게 보면. 수 만명이 들으면 한 사람이 듣는다는 게 그렇게 크지 않은데, 당시에는 다 모아봤자 글쎄요… 한 천명이나 되나? 그러니까 한 사람이 듣는 게 컸던 거 같아요. 물론 그 안에서도 유명한 밴드는 없는 건 아니었지만, 하여튼 그런 점이 좀 달랐어요.

 

정구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PDS 등 두 분께서 하시던 활동이 뭔가를 해보자 하는 기합이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냥 약간 이런 걸 해보면 어떨까,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던 느낌입니다. 그 당시에 활동을 하실 때 들었던 기분이나, 아니면 어떤 뭔가를 하고 싶다는 그런 감각에 대해서 조금 질문을 드려 봐도 될까요? 단순히 ‘이런 걸 해보자’라고 해서 나온다기에는 굉장히 극단적인 음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홍철기: 굉장히 복합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까 말했던 PC통신 마인드였다거나. (웃음) 할 말이 있고, 이렇게 들은 다음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저 같은 경우는 좀 게으르다 보니까 악기를 막 연습하고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싫증이 빨리 나는 편이었죠. 그렇게 깊이 들어가는 거는 아닌데, 하고 싶은 건 있고, 그래서 노력을 안 들이고 뭘 많이 할 수 있을까… 그런 거에 PC통신 마인드를 더해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별로, 사실 아예 다르지 않은데, 그러다 보니까 사실은 다 까먹어요. 얼마 전에 공연을 했는데 그 때 만든 곡 지금 까먹었어요. (웃음) 기억을 남긴다 이런 게 없어서. 대신에, 당시에 4트랙 MTR이 정말 유용했던 게, 녹음을 해 놓으면 이걸 가지고 뭐가 되니까, 기록이 남으니까 이걸 가지고 뭔가 할 수 있겠구나, 그런 게 있었어요. 근데 점점 더 게을러져서 노력을 안 하고 결과물이 나오는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다 보니, PDS도 나중에는 밴드 셋이라든지 이게 안 되어 있구나, 그렇게 되어 버렸어요. (웃음)

 

정구원: 준용씨 같은 경우에는 어떠셨나요?
최준용: 전혀 심각하지 않았죠. 음반을 만들 생각도 없었는데 강아지(강아지 문화 예술)에서 하자고 해서 한 거고. 이제 군대도 가야 되고 하니 그냥 뭐 하나 만들고 가야지, 그런 느낌이었어요. 우리가 일반적인 경우였다면, 그러니까 PDS 활동을 굉장히 오랫동안 해서 넷이 자 녹음하자, 해서 녹음실 들어가고 그랬다면 좀 더 심각하고 부담감도 있고 그랬을 텐데, 그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 보니까 아스트로노이즈 하다 PDS 공연 한 번 하고, 바로 그냥 녹음실 들어가서 앨범을 만들게 된 상황이었어요. 예를 들면 류한길 씨가 같이 해보기로 해서 왔는데, 저희가 아무것도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이 새끼들 뭐지, 사람 불러놓고 뭐하는 짓이지 싶었겠죠. (웃음) 밥도 안 사줬고.
홍철기: (웃음) 아직도 밥 안 사줬다고… 그 녹음하러 온 날 밥 더치페이 했다고 지금도 되게 뭐라 그래요.
최준용: 물론, 제가 그 땐 어려서 그런 것도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했던 것 같아요. 만약 지금 한다면 좀 더 고민을 했을 거 같은데,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고민을 안 했기 때문에 그런 게 나왔던 게 아닐까 싶어요.

 

정구원: 은주씨의 경우에는 어떠셨나요?
정은주: 저도 그냥 PDS는 같이 하자 그래서 한 거였어요. 피와꽃이랑 같이 할 때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는데, 벌룬 앤 니들을 처음에 시작했던 분들이 다 이런 마인드였던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그냥 같이 모여서, 취향이 비슷한 부분을 찾아서 할 수 있는 걸 하고 그냥 놀듯이 했던 것 같아요. 나우누리에는 비사이드가 있었고 그거랑 비견할 만한 게 하이텔에 모소모(모던록 소모임)였는데, 모소모 사람들이랑은 태도가 많이 달랐어요. 이 분들은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게 있었고 실제로 프로가 된 경우도 많은데, 우리는 심각하게 한 건 아니었어요.

 


“Almost There”

 

최준용: (PDS [Circumfluence] 재발매 공연에서 상영했던) 다큐멘터리에서 저희 멤버 둘의 갈등을 부각시키려는 게 있었어요. (웃음) 만드는 거에 대해서 되게 많이 고민하고 그런 식으로. 약간 감독이 그렇게 풀어내려고 했던 거 같은데… 만약 지금 앨범을 만들었으면 열심히 모니터링하고 했을 텐데 그 때는 엔지니어 분께 다 맡겨 버렸었죠.
홍철기: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좋아하던 밴드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으면 아마 달랐을 거 같아요. 그게 불만족스러웠어요. 전혀 노하우가 없었고 엔지니어 분들이 그런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다 보니까. 좋아하는 밴드 공연을 하나만 봤었더라면, 실제로 본 적이 있었다면 아무래도 달랐을 거 같긴 해요. 아, 이렇게 소리가 나오는 거구나, 약간 이런 감이 있었을 텐데. 심지어는 그 때는 유명한, 우리가 좋아하는 록밴드 공연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최준용: 제가 엔지니어 분에게 이렇게 해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렇게 안 되어 있더라고요. (웃음) 이걸 얘기해야 하나 하다가 아 모르겠다 하고 넘어가고. 앨범 자켓도 잘못 접혀있고… 그런 것들이 좀 있었죠.
홍철기: 상황이 그랬던 거 같아요. 그 때는 우리가 뭔가 주도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강아지에서 뭐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그러니까 불만족스러웠죠. 불만족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를 잘 몰랐던 거에요. 2015년인가 2016년인가 스완즈를 처음으로 봤었는데, 그 생각이 들었어요. 옛날에 이런 걸 봤더라면 아마 어떤 걸 하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좀 더 구체적이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거라고. 물론 지금도 한국에서 그런 사운드를 들어볼 기회가 많지는 않죠. 페스티벌 가면 되게 시끄럽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그 때는 그런 것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결과물에 대한 구체성이 없었던 거 같아요. 당연히 기술적인 부분이나 기계적인 부분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고, 생각해보면 그 때 엔지니어 같은 분들도 그런 걸 분명히 몰랐을 거에요.

 

나원영: 우연적이거나 상황적인 게 모이고 모이다 보니까 ‘한 번 해보자’가 발전을 해서 그러한 시도가 나온 걸까요.
홍철기: 사실 처음으로 PDS를 계속 하고 싶었던 느낌이 들었던 건 사실 공연이 좋았었기 때문인데, 그 결과물이 우연히 나온 거였어요. 당시를 생각해보자면 어떻게 음향적으로 그런 결과물이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곡의 구조나 그런 게 없었고, PDS가 그런 게 중요한 밴드는 아니었으니까. 음향적으로 그런 결과물이 어떻게 나왔지? 싶은 기분. 어리니까 경험도 없고, 여러 가지 지식도 없고 그랬을 때였는데, 그렇다고 뭐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다른 분들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60년대 아방가르드 같은 걸 한국에서 처음 하시던 현대미술 작가 분들이 일본 잡지에서 슈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에 대한 기사를 보고 아 이런 걸 해봐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그 분들의 유일한 소스는 일본 잡지 기사인 거예요. 우리는 그 때보다는 상황이 좋은 셈이었죠. 음반을 들었으니까. 근데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 분들이나 우리나 차이가 없지 않나 싶어요. (웃음)

 

나원영: 그래도 어떻게 보면 그런 상태에서 거기까지 갔다는 것도 제가 보기에는 그 이상의 열정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구원: 동시에 굉장히 답답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홍철기: 그것을 몰랐었는데, PDS 이후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죠. 다른 음악, 진짜 노이즈 음악을 하게 되면서, 그리고 노이즈 음악하시는 분들의 공연도 보고 그러면서 직접 경험을 하니까 확실히 다르더라구요.

 

나원영: ‘인디’라는 개념이 막 시작되던 시기를 보면 각기 다른 수많은 밴드들이 ‘인디’라는 이름으로 들어가는데, 당시 막 생겨나던 ‘인디’ 속에서도 좀 더 실험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교류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최준용: 분명히 있었죠. 류한길 씨도 있었고, 옐로우 키친도 있었고, 또 저희가 모르는 다양한 분들이 계셨을 거예요. 우리 같은 관점이 아니라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황신혜 밴드 같은 경우도 있었고요. 근데 그 분들이랑 다 교류는 당연히 못했고, 굉장히 긴밀하게 어떤 관계가 형성된 건 아니었어요. 스팽글에서 공연을 하는 걸 보는 정도.

 

나원영: 그 때 나왔던 컴필레이션 음반 같은 것도 결국에는 다 각자 작업했던 걸 모은 케이스였던 건가요? 그리고 강아지 같은 레이블이나 스팽글이라는 공간이 교류나 네트워크의 장 역할을 수행했던 건가요?
최준용: 인디 붐 같은 게 일어나면서 기획성으로 진행된 게 있었죠. 이런 게 처음이니까 아무나 그냥 한 건데, 그 중에서 저희도 어쩌다 운 좋게 들어가서 PDS 앨범까지 나왔다고 할까요? 스팽글은 약간 그런 역할을 한 게 있는데, 강아지의 경우에는 뭔가 오버로 가기 위한 경로가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그 분들 중 서로 친구인 경우가 있긴 했지만, 저희는 그냥 카탈로그의 하나였지 교류가 있지는 않았네요. 녹음을 하고 난 뒤에는 뭐가 없었어요.

 

나원영: 두 분이 음악을 시작하시던 1990년대 중후반,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2000년대 초중반을 비교했을 때 인디 음악이나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 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태도나 외부의 시선에 차이가 있었나요? 만약 있었다면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홍철기: 일단은 PC통신이 없어졌다는 것, 그것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난 다음에 인터넷이 워낙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정보를 얻고 음악을 찾는 소스가 되었죠. 그것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최준용: 우리는 2000년대 되어서는 인디 씬, 인디 록, 그런 쪽에는 속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인디가 시작된 처음에는 워낙 뭐가 없었으니까 스팽글 같은 곳에서도 가능했던 건데, 2000년대 들어서는… 물론 저희가 하는 음악도 좀 바뀌었긴 하지만, 이제 아예 다른 저희만의, 불가사리 같은 곳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느낌.
홍철기: 그런 것도 있었던 거 같은데, 원래 PC통신 때부터 뭔가를 같이 듣는 공통의 기준이 있기는 있었어요. 그렇지만 따로 듣는 것도 있는데, 따로 듣는 게 또 다 다르다 보니까 점점 달라지게 돼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이제는 음악적으로는 더 이상 공통분모가 없겠다,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런 계기 중 하나가, 빵에서 아스트로노이즈 공연을 하다가 하도 부딪치니까 다시 연락이 안 왔어요. 아 이제는 진짜 끝났구나, 이 쪽하고는 진짜 끝이구나, 진짜 안 좋아하는구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불가사리를 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 쪽으로 가게 된 거죠.

 

나원영: 그 당시에 안 맞다는 걸 느꼈을 시점이, 어떻게 보면 인디 록이라고 하는 게 조금씩 주목을 받고 있었던 시점이 아닐까 싶어요.
홍철기: 꽤 주목받고 있었죠. 그 때 인디는.
최준용: 우리가 생각한 방향성이랑 클럽, 밴드 등 주위가 생각하는 방향성 같은 게 달라진 거죠.
홍철기: 그 쪽에서 보면 우리는 무슨 해프닝(happening) 같은 걸 하는 느낌이었을 거예요. 공연이 아니라… (웃음)

 

나원영: 스스로도 음악을 듣고 자료를 찾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포스트록’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 시기에는 그렇게 많이 쓰이거나 가시화되지 않았고, 음악을 하시는 분들께서도 스스로의 음악을 ‘포스트록’으로 정체화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에 PDS와 쓰루 더 슬로의 음악을 들을 때에도 드론 록이나 슬로코어로써 생각했지, 2000년대 초중반에 고착된 장르로서의 ‘포스트록’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고요. 두 분께서는 ‘포스트록’의 단어/개념/장르 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최준용: 일단 PDS를 할 무렵에 포스트록이라는 장르가…
홍철기: 그때쯤 막 나오기 시작했나?
최준용: 막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별로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어요. 저도 포스트록, 혹은 록, 그 쪽으로 굉장히 관심 있게 듣고 그랬는데… 포스트록 하면 그냥 모과이(Mogwai)가 떠오르거든요.
홍철기: 모과이가 포스트록이야? 모과이 그냥 록 아니야? (웃음)
최준용: (웃음) 그냥 록인데, 노래도 가끔 하지…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렇게 인식하고 있어요. 지금 와서 뭐 포스트록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거든요. 듣는 사람이 PDS를 포스트록이라 해도 크게 거부감은 없어요.

 

나원영: 혹시 그 당시에 뭔가 포스트록이라는 이름들이 붙으면서 설명이 되고 유통이 된 경우가 있었나요?
최준용: 그 때는 그냥 외국에서 그런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 때인 거 같아요.
홍철기: 사실 그 때도, 사람들이 그 때부터 많이 쓰던 말이었던 것 같긴 해요. 인상적인 단어긴 한데, 지금 생각해봐도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정은주: 그냥 긴 거? 길고 노래 없는 거? 그런 거 아니에요? (웃음)
홍철기: 길고 노래 없는 거, 맞아. (웃음)

 

나원영: 작년 말 [Circumfluence]가 LP로 복각되었고, 이를 기념하는 공연이 진행되었으며 당시의 연주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데, [Circumfluence]의 복각 이후로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최준용: 공연 섭외는 몇 번 들어왔어요. 그런데 저희가 계속할 수가 없어서, 그 재발매 공연 이후에는 안 했죠. 막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음악이 그래도 꽤 팔렸다고는 하더라고요. 근데 이제 저희가 계속 후속작을 내거나, 그렇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나원영: 두 분께서는 1990년대의 활동을 뒤로 하고 200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노이즈 음악인으로써의 활동이나 닻올림, 벌룬 앤 니들 등 같이 레이블이나 라이브 공연장, 연주회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활동을 현재까지도 이어가고 계십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20년 정도 지난 지금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PDS 등을 둘러싼 이 당시의 활동이 지금으로써는 어떻게 느껴지시는지가 궁금합니다. 더불어서 반대로 혹시 이 당시에는 2019년과 같은 미래를 상상해 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최준용: 일단 지금과 같은 미래는 전혀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웃음)
홍철기: ‘PC통신 마인드’나 그 비슷한 감성이 되게 싫었어요, 오랫동안. 제 경우에는 그것이 음악과 결부되는 느낌이 많이 들었거든요. 노이즈 음악, 즉흥 음악을 하게 되면서 그 때 경험에 대해 굉장히 안 좋게 생각했었죠. 전반적인 문화와 거기에 그렇게 빠져 있던 체험이 별로 좋지 않았고요. 그래서 굉장히 오랫동안 싫었는데, 정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요즘은 그냥 그랬었나 보다, 싶어요. 독특한 시기였던 거 같기는 해요. 굉장히 소수의 사람들끼리 그런 걸 듣고, 공유하고 했던 시기니까.
최준용: 만약에 지금 PDS나 아스트로노이즈 같은 걸 시작했다면, 뭔가 인디 록 씬에 기생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할 것 같아요. (웃음) 당시에는 그런 경험이 없었죠. 예를 들면 모소모 페스티벌에서 PDS가 공연을 하면 뒤풀이 가서 왜 그딴 음악 하냐 소리 듣고 그랬었거든요. (웃음)
정은주: (웃음) 그랬었어?
최준용: 집에서 하지 왜 이런 걸 굳이 나와서 공연을 하냐, 그런 거죠. 거기 기획자가 저희가 좋아서 부른 거지만, 같이 공연했던 밴드들은 대부분 얘네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반응인 거에요. 그러한 상반된 반응을 처음 아스트로노이즈 할 때부터 계속 접했던 거 같은데… 물론 그런 공연 말고 저희들끼리 합주하고, 녹음하고, CD 만들고, 벌룬 앤 니들 같은 걸 하는 건 즐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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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인터뷰는 서울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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