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M 엔터테인먼트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니 / 나는 여기 있는데”

 

‘나쁜 날은 아니야 그냥 괜찮아’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바로 다음 소절에서 ‘꽤나 지긋지긋한 건 사실이야’라고 돌변하는 가사(“고블린”). 오르골처럼 반복되는 멜로디로 ‘이젠 계속되고 싶어 / 나의 Happy girl / 너의 Happy girl'(“온더문”)이라고 노래하는 목소리. 6월 29일 발표되었던 [고블린 (Goblin)]을 처음 들었을 당시, 나는 설리가 그 때까지 받아왔던 무수히 많은 공격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한 아이돌 가수 중 가장 격심한 악의를 견뎌내야만 했던 설리라는 아티스트의 음악 외적인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그가 [고블린]에서 들려주던 목소리가 정말 ‘지친’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타일로서의 우울함이나 멜랑콜리함과는 달리, ‘지친’ 목소리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걱정을 우선적으로 불러일으킨다. 비슷한 종류의 감각을, 나는 암으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아내에 대한 송가로 앨범 전체를 채운 마운트 이어리(Mount Eerie)의 [A Crow Looked at Me]에서 들어 본 적이 있다. K-Pop 특유의 깔끔한 사운드와 또렷한 멜로디로도, 그 지친 목소리를 덮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새하얀 살굿빛 / Just wanna tell you hi’라는 상큼한 노랫말도, 그 뒤에 깔려 있는 피로감을 지울 수는 없었다.

 


“고블린”

 

설리 정도의 커리어를 지닌 아티스트라면 곡을 녹음하는 데 있어서 그러한 피로를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블린]에서 자신의 지친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그럼으로써 깨끗한 팝 사운드와의 충돌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거나(“고블린”, “온더문”) 몽환적인 사운드스케이프 속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그며 다른 아이돌 아티스트에게서 접하기 힘든 확장된 세계관을 그려냈다(“도로시”).

그것은 K-Pop의 전형적인 범주로 쉽게 묶을 수 없는 혼란을 가져온다. 질투, 사랑, 화려, 진리, 코코맛, 비겁, 사막, 빙산, 감기, 맛있음, 이 모든 것이 죄다 들어 있는 광경은 언뜻 (감미로운 피아노 멜로디에서 정글 비트가 별안간 튀어나오는 “도로시”의 구조만큼이나, 그리고 세 가지의 전혀 다른 콘셉트가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고블린” 뮤직비디오의 비주얼 콘셉트만큼이나) 위태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리는 그 모든 의미들을 “도로시”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수렴시키면서 그 모습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의미는 없어도 희망을 품으며. 낙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깊은 물 속에서 미래를 위한 기도를 올리며.

 


“도로시”

 

설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토머스 J. 왓슨(Thomas J. Watson)의 경구, “’별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는 것보다 순종이라는 오명에 무릎을 꿇는 것을 더 두려워하십시오.”라는 말은 [고블린]에서 직접적이지 않은, 그러나 확연히 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재탄생한다. 파편적으로 비산하는 가사들은 당장 알아보기는 어려운 의미를 어지러이 흩뿌리고, 그 혼란을 정제되어 있거나 명확한 메시지로 통합시키길 거부한다. 하지만 그 방식을 그대로 밀고 나감으로써, 설리는 ‘별난’ 그 방식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가 그저 ‘안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걸, 지친 목소리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설리에게 논란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했던 여러 사건들이 정말이지 ‘사건’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조차 아까운 아무것도 아닌 사건들이었다. 여전히 일상화된 여성혐오로 가득 차 있는 언론이 그 아무것도 아닌 사건을 ‘논란’으로 만들기 위해 집요한 악의를 동원했다. 그것을 별다른 비판 의식 없이 악플로 소비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단순히 ‘악플’이라는 가장 말단적인 공격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이 공허한 건, 여성 아티스트가 행하는 모든 언행을 깎아내리는 시선으로 대하는 여성혐오와 그러한 일거수일투족을 뉴스(의 탈을 쓴 트래픽 성과)로 부각시키려는 상품화라는 두 가지 불의가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순환은 K-Pop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아티스트들을 옥죄는 가장 저열한 구조를 형성한다.

죽음의 이유는 다른 이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2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또 다른 부고문을 작성하면서 이 구조의 폐해를 실감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화가 난다.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설리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에 들어 있는, 지치고 혼란스럽게 받아들여질지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려고 하는 한 개인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고블린]에는 의지가 있었다. 설리를 아꼈던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의지가 아직도 여기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 정구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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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3. 29 – 2019.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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