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주류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열정적으로 소개해 왔던 음악 웹진 타이니 믹스 테입스(Tiny Mix Tapes)가 휴간에 들어갔다. 바이스 미디어(Vice Media)는 2019년 2월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벌이며 음악 섹션 노이지(Noisey)에 타격을 입혔고, 같은 해 4월에는 레드불 뮤직 아카데미(Red Bull Music Academy)가 문을 닫았으며, 드라운드 인 사운드(Drowned In Sound)는 이미 2018년에 발간을 멈췄다.

인터넷망 너머의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웹진을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내려앉도록 하는 소식들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질문의 형태로 나에게 다가온다. 적절한 수익 모델을 갖추지 못한 웹진이 존재해야 하는가? 음악에 대한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이 느낄 피로감을 완화해 줄 대책이 우리에게는 존재하는가? 쏟아지는 음악과 정교해지는 알고리즘, 파편화된 취향들 속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이제 어디서 ‘다른’ 음악을 소개해 주는 소스를 찾을 것인가? [weiv]를 맡은 이래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없었던 질문들임에도, 눈으로 확인한 사라짐 앞에서 그 무게는 한층 커다란 상흔을 남긴다.

그렇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면, 음악에 대해서 무언가 모색해 볼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장을 위해서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바뀌어야 할 것을 변혁해 보겠다는 공명심을 결부짓지 않고도 남길 수 있는 종류의 가치다. 어쩌면 그 희미해 보이는 가능성이 이 웹진이 20년이 넘도록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연말결산 역시, 그 가능성을 조금씩 이어 나가기 위한 모색의 일부다. 확신은 없지만, 믿음을 가지고. | 정구원

 

정구원

 

서이다
“지나가는 숲”
(Self-released)

‘넌 말했지 우린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 별다른 이유도 없으면서’란 읊조림이 잘리듯이 끊어진 이후 1분 56초부터 이어지는 인더스트리얼한 노이즈를 가만히 들어 보자. 알레고리로 음악을 읽는 것이 해석의 가능성을 큰 폭으로 제한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지나가는 숲”이 실린 컴필레이션 [섬의 노래]의 성격과 목적을 고려했을 때 이것을 강정 해군기지 공사가 지닌 폭력성으로 읽어내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제국주의와 권위주의, 자본주의와 개발주의가 교차하는 폭력이 강정과 제주를 얼마나 억압했는지, 그리고 아직도 옭아매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 노이즈는 잠시 멈춰서라고 말하는 듯하다.

음악이 폭력을 직접적으로 멈춰 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투쟁적 메시지를 담은 ‘운동가’들에 내가 동조와 회의의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최소한 이런 상상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모든 운동가는 폭력을 마술처럼 멈춰 세우는 대신, 그 노래가 지니고 있는 찰나의 순간으로서 그것을 듣는 이가 지니고 있었던 억압적 세계에 대한 단선적이고 우울한 전망을 멈춰 세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C#-E-E-D-C#-B-C#-D의 높은 음을 따르는 인터내셔널가의 마지막 피날레가, “아침 이슬”의 ‘나 이제 가노라’에서 같은 음을 떨리는 목소리로 풀어내는 양희은의 목소리가,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라는 전환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정태춘과 박은옥의 노랫말이, 음울한 전망을 일순간 정지시킨다.

서이다는 그와 같은 정지의 순간을 만드는 노이즈로부터 가속해 나간다. 어쿠스틱 기타와 거칠지만 맑은 목소리, 쿵짝거리는 비트로 시작된 “지나가는 숲”은 파괴적 노이즈의 정지를 딛고, 백마스킹을 통한 변이를 일으키며, 이상한 댄스를 모색하고, 시위대가 부른 “천지신명께 비나이다”를 결합시킨 다음 다른 종류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상상한다. 아마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전망보다는 상상일 것이다. 전망이라고 윤색된 체념이 정지된 시점에서,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은 비로소 가능해진다. 당신은 멈춰서 본 적이 있는가? 그 기회가 이 노래를 통해 찾아온다면 기쁠 것이다.

 

 

코스모스 슈퍼스타
“Ruby”
(Ghost Production)

음악에는 얼마만큼의 슬픔이 필요한 걸까? 나도 이게 이상한 질문이란 걸 알고 있지만, 2019년 9월 21일 <Various Artists와 함께 떠나는 음악여행>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출연 아티스트 모두가 무대 위로 올라와 부른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를 들으면서 이 질문을 떠올렸다. 공중캠프가 구성원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뒤 해산되기 전 열린 마지막 공연 중 하나였다. 슬픔을 자신의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삼았던 2007년의 노래는 어느새 한국 인디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앤섬(anthem)의 위치에 올랐고, 과거에 열심히 들렸고 지금은 거의 가지 않지만 그래도 근처를 지나갈 때면 항상 간판을 보면서 살포시 반가워했던 공간은 사라져간다.

레코딩의 영속성은 그 음악을 담고 있는 매체에 의해 물적으로 보장된다. 하지만 매체를 쥐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영속을 곧바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거나 변하고 있음에도 레코딩은 동일한 음악을 계속해서 재생할 것이라는 사실, 레코딩의 영속이 피부로 체감되는 건 바로 그런 대비, 혹은 낙차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사라지는 순간을 노래하는, 자신의 영속성을 소멸되는 것을 그려내는 데 온전히 투입한 음악들이 유독 강력한 슬픔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정말 많은 것이 짧은 시간 동안만 유지되는 인디 씬에서는 더더욱.

그렇지만 그 슬픔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나는 레코딩의 영속성이 가져오는 슬픔을 앞에 두고 자서전과 회고록이 기억과 망각, 시간과 맺는 관계에 대해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Marc Augé)가 쓴 바를 떠올린다. “분명 글쓰기는 이미 흘러갔고 흘러가는 중인 삶, 다시 말해 나이에 대해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즉 재탄생이나 재발견 등 시간의 재개와 관련한 감정을 참가자들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의례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1 음악 역시 비슷한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슬픔이라는 강렬한 감정의 형태로 나타날지언정, 우리는 순간을 그리는 영원한 음악을 매개로 하여 시간의 풍화 속에서 사라진 순간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돌이킨다. 그건 때로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닌, 다른 이와의 연결을 수반하는 현상이 되기도 한다.

은하수에서 길어온 듯한 신시사이저의 멜로디가 끊어지지 않을 듯한 곡선을 그리는 “Ruby”의 바다 속에서, 코스모스 슈퍼스타는 전자음의 베일이 드리워진 선명한 목소리로 ‘네가 어울리지 않는 춤을 추길 / 기대하고 또 기다렸었’다고 노래한다. 소중한 이, 혹은 소중한 기억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 곡의 태도를 느끼며, 누구에게도 해당되지 않을 테지만 누구에게든 추억을 약동시킬 법한 사운드의 파노라마 속에서, 영원히 동일한 소리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퍼져 나가다가도 연기처럼 순간을 스치고 사그라드는 신시사이저의 명멸을 들으며, 나는 이 노래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전달하기를 바라게 된다. 어쩌면 그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 춤을 출 수도 있을 것이다.

 

+
넷 갈라(NET GALA) “Quarrel”
민수 “커다란”
백예린 “야간비행 (魔女の花)”
보수동쿨러 “목화”
설리 “고블린”
센티노 펠리(Centinno Feli) “We See”
수민 (SUMIN) “MEOW”
이달의 소녀 “Butterfly”
있지(ITZY) “달라달라”
제이클레프(Jclef) “mama, see”
조월 “식목일”
조율 “운행”
트와이스 “Feel Special”
황진아 “Ground”
휘(HWI) “mígōng”

 

 

김세철

 

베이쥬 (Beijo)
“매우 쌈바”
(레이블임)

한국인이 부른 브라질 음악이란 이유로 무작정 좋아할 생각은 아니었다. 브라질 음악이 우리에게 있어 생경한 것도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도 음악으로는 한국과 가까운 편이니까. 보사 리듬은 가요에 달착지근한 맛을 더하는 재료로 오랫동안 함께였고, 개중에는 더 깊은 브라질의 맛을 길어내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매우 쌈바”는 7년 전 이해완이 솔로로 먼저 낸 노래였다. 듀엣의 데뷔곡치곤 힘을 많이 뺀 선택 같았다.

그런데도 새삼 좋았다. 혼자도 여럿도 아닌 2인분의 쌈바였기 때문이다. 번갈아 부르거나 제창하는 쌈바의 문법 사이에서, “매우 쌈바”의 두 목소리는 간주 이후 잠깐 화음으로 함께한다. 한쪽의 음계가 상승할 때 다른 한쪽은 하강하며 교차한다. 춤추듯 멀어지고 또 가까워진다. 마침내 두 움직임이 유니즌으로 포개어지는 순간, ‘나의 쌈바(Meu Samba)’의 뜻은 ‘우리의 쌈바’로 넓어진다.

물론 노랫말에는 남의 말 대신 나의 쌈바를 찾겠다는 다짐만 담겨있다. 하지만 쌈바의 전통엔 언제나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우리가 있었다. 생업이 끝나면 찾아갈 쌈바 스쿨이 있었다. 일상은 피할 수 없고 다른 삶은 너무 멀게 느껴질 때, 이 노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다리처럼 놓는다. 일상을 초과하는 용기는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듯이.

출퇴근길 지하철 역사를 오르내리면서 이 노래가 준 위안을 생각한다. 가창과 플룻을 따라 오르내릴 때만큼은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기분이었다. 나의 일터에서 우리의 쌈바로. 그런 꿈을 까먹지 않게 하는 노래였다.

 

+
강권순 “길군악”
구원찬 “필요해”
권진아 “오늘 뭐 했는지 말해봐”
동방신기 “Truth”
레이디스 코드 “SET ME FREE”
미유, 윤종신 “내 타입”
백현진 “빛”
새소년 “집에”
설리 “고블린”
수민(SUMIN) “SHAKER”
신노이(SINNOI) “Unity (feat. 이준)”
신유미 “그대와 나 OH”
에몬 “네가 없는 세상이 단 하루도 없었으면 해”
온앤오프(ONF) “사랑하게 될 거야 (We Must Love)”
요조, 생각의 여름 “낙원으로 둘이서”
욘욘(YonYon), 히토미토이(Hitomitoi) “Overflow (變身)”
위키미키(Weki Meki) “Picky Picky”
이승환 “나는 다 너야”
정승환 “우주선”
죠지 “바라봐줘요”
천용성 “동물원”
첸 “우리 어떻게 할까요”
클래지콰이 “What if (feat. 김수영)”
하비누아주 “사랑”
SAAY “ZGZG”
Swimming Sheep, 홍효진 “Make Me Feel”

 

 

전대한

 

비비 (BIBI)
“비누 (BINU)”
(필굿뮤직)

이상하게도 2019년에는 내게 재밌는 음악이 별로 없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원 사재기 논란과 오디션 프로그램 결과 조작이라는 산업의 병폐와 더불어,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검정치마와 잔나비와 쏜애플의 앨범을 노미네이트 하는 (고루하고 또 노쇠한) 기성 비평의 유해함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관련하여 꽤 큰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음악 그 자체보다는 음악들을 둘러싼 사태들이 주는 피로감이었지만.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재밌는’ 음악들을 들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나 언어적인 측면에서나 재미있는 음악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곡은 비비(BIBI)의 트랙 “비누”였다. “비누”가 주는 재미는 꽤 다층적인데, 제일 두드러지는 것은 곡의 가사이다. ‘비누 / 비누 / Let’s be New’라는 가사로 이루어진 훅은 아기자기해서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난다. 단순하면서도 적당히 통통 튀는 비트도 재치 있는 언어로 이루어진 비비의 보컬과 랩을 무던히 뒷받침해주어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나를 가장 크게 웃게 만든 것은 라이브 클립이었다. “비누”라는 소재와 ‘다 씻어내자.’는 가사에 맞게 거울을 계속 해서 비누와 물로 닦아내는 비비(BIBI)의 모습은, 가사를 너무 노골적으로 시각화하고 있어서 익살스럽다는 느낌까지 든다.

그렇다 보니 비비의 음악에 대해 그저 웃고 넘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 이 다층적인 재미는 드문 것이다. “비누”로 깨끗이 씻어낸 후엔 어떤 새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더 궁금해진다.

 

+
92914 “still”
그림자 공동체 “동요”
기리보이 “호랑이소굴(Feat. Jvcki Wai)”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And So It”
디디 한(DIDI HAN) “Your Mind(Feat. JADE)”
딘(DEAN) “Howlin’ 404”
민수 “민수는 혼란스럽다”
백예린 “Datoom”
새소년 “집에”
서울문(Seoulmoon) “우리는 여기에 있을게”
선미 “누아르(Noir)”
신세하(Xin Xeha) “Crystal (Feat. NTsKi)”
썸머 소울(Summer Soul) “Salty People”
아침(achime) “Moratorium”
은도희 “녹”
제이클레프(Jclef) “mama, see”
청하 “벌써 12시”
케이티(KATIE) “Thinkin Bout You”
코스모스 슈퍼스타 “Teenager”

 

 

 

김태윤

 

정우
“나에게서 당신에게”
(씨티알사운드)

[제비다방 컴필레이션 2019/2020]에 수록된 음악가들을 특집처럼 소개한 유튜브 영상에서 정우는 “연가”를 첫 곡으로 불렀다. ‘무장 해제’ 당했다고 해야할까.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는 셔플 리듬 위에 나긋하게 부르는 노래는, 멜로디와 리듬 위에 시를 얹어 놓은 것 같았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 아니래도, 나 멋대로 실망하지 않아요’의 가사처럼 듣는 이도 억지로 즐거워하지 않아도 됐고, 들으며 지루해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이었다. 정우는 노래를 하고 있다기보다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멜로디와 리듬은 그에게 화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듯 했다. 1절을 마치며 박자를 길게 늘어뜨렸다가 2절에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며 보인 완급조절은 곡 구성이 원래 그렇다고 해도 대화의 분위기를 더하는 드라마틱한 요소였다.

그 자체로는 그다지 새롭지 않아도 낡게 느껴지지 않는 동시대적인 음악들이 간혹 등장한다. 아마도 동시대성이란 새로운 장르나 소리의 등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생각해보면 더욱 세련된 코드와 진행, 주법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들이 꾸준히 있어 왔고 보컬의 경우도 가사를 뭉개거나, 단순 반복하거나, 아예 빼버리는 등 여러 실험이 있어 왔다. 하지만 정우의 음악은 애써 최신화하지 않고, 애써 강조하지 않음으로써 편안하게 다가온다. 셔플 리듬, 컨트리 리듬 등이 뼈대를 이루어 ‘과하게 트렌디한’ 어쿠스틱 음악보다는 ‘포크 음악’에 가깝게 들리면서도, 보컬은 가사를 옮겨내는 동안 비음과 스타카토가 적절히 섞여 깊이를 더한다. 완급조절과 변주를 통한 리듬의 유연한 변화 그리고 아쉬운듯 하면서도 소탈한 가사까지, 그야말로 따라 부르고 싶어지는 노래들이다.

이러한 특징은 정규 앨범 [여섯 번째 토요일]의 타이틀곡 “나에게서 당신에게”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컨트리 리듬과 가사에 드러난 ‘달’, ‘별’, ‘강’, ‘바다’ 등 장소감이 강조되어 마치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김광석이 조금 더 의지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라면 정우는 ‘아픈 것은 아픈 대로 / 예쁜 것은 예쁜 대로’ 놓아 두는 소탈한 태도가 돋보인다. 앞서 소개한 “연가”가 조금 더 자전적인 고백이었던 데에 비해 “나에게서 당신에게”에서 간주와 후반부의 백보컬, 후반으로 갈수록 더해지는 컨트리 리듬은 ‘나’와 ‘당신’의 관계가 일대일의 정적인 관계가 아닌 여러 능동적 관계로 느껴지게끔 곡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이때 백보컬도 화음으로 멜로디 라인을 더하는 방식이 아닌 메인 멜로디를 따라가거나, 리드 보컬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쌓여서 과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며 리듬감을 유지한다. 음악의 의미가 화려한 기예가 아닌 공감대의 확장으로 다가온다.

동시대성이란 과거의 것들을 적재적소에 재배치하여 가능한 것이 아닐까? 예컨대 최근 디제이와 전자 음악가들이 과거의 녹음된 음악의 파편들로부터 새로운 매력을 발굴하듯, 포크 음악가 또한 과거 어쿠스틱 음악의 요소들을 당대의 미감에도 부합하게 재조직하는 이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필자에게 “나에게서 당신에게”는 포크의 고전으로부터, 홍대 앞에서 시작해, 트렌디함의 판도 속에서도 유유히 존재감을 빛내는 2019년의 포크로 들린다.

 

+
두억시니(DUOXINI) “Unknown Field”
버둥 “낙수”
봉천동(The Bongcheondong) “Naraka”
소닉픽션 “我们一起游荡在黑夜中然后被烈火舌噬”
오대리 “싸이버그 드림”
우자앤쉐인(UZA&SHANE) “X you”
윤숭 “여름날의 나를”
이날치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장명선 “Daphne”
파제(Pa.je) “입춘”
플랫폼 스테레오(Platform Stereo) “Whale”
피에타(PIETA) “Off”

 

 

나원영

 

조월
“퇴로”
(클럽비단뱀 / 만선)

식민지기의 유행가로 출발해 100년 정도 동안 끊임없이 당대의 다른 ‘유행가’들에 맞춰 변화해 왔고, 올해엔 기어이 새로운 강조점을 ‘찍어’버린 트로트의 역사와 “퇴로”를 연결짓기로 한다면, 조월이 그런 트로트의 (느슨하고 헐거워진) 문법을 그가 만들어온 세계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세 부분으로 나뉜 곡의 첫 부분에서 특유의 꿋꿋한 두 박자와 단조 계통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트로트에 알맞은 목소리 없이도 강하게 드러난 트로트적인 효과는, 조월이 바로 그 장르적 특징들을 변주할 때에 서서히 무너져내려가 6분 정도의 시간 속에서 다른 종류의 효과로 변화해 포섭된다.

기존의 트로트적인 단조의 멜로디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뒤틀려갈 때나, 갑작스러운 두 번째 부분에서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며, 특유의 건반 소리가 뒤쪽으로 밀려나갈 때, 또 왜인지 익숙한 신스음이 세 번째 부분의 초입에서 들려올 때, 트로트의 기본 요소들은 하나하나씩 새로이 만들어진 맥락 속에서 미끄러지고 대신 조월만의 목소리나 전기 기타 사운드, 신스음 속에서 전유된다. 우선 조월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었던 트로트가 “퇴로”로 실현되었다면, “퇴로” 자체는 트로트에서 우리가 예상할 법한 전개를 깔끔히 배반하며 조월이 설정한 새 구조 속에서 다시 재구성된다. 그렇기에 기존의 멜로디나 속도, 사운드 등이 돌아온 세 번째 부분에서는 처음과는 전혀 달라진 바탕 속에서 각각 장르와 진행에 대한 예상과 기대를 뒤집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단순히 조월이 트로트를 만들었다거나 부른다고만 하기에는, “퇴로”는 스스로를 쉽게 정의하지 못하도록, 장르적 관습과 곡 자체의 형식, 익숙하거나 그렇지 않은 소리 등을 총동원해 모든 예상 가능한 경로를 막아놓는다. “다시, 퇴로”가 제한된 미디 음들로 곡을 더욱 ‘뽕짝’에 충실하고 유머러스하게 ‘번역’한 것 또한, “퇴로” 그 자체가 트로트와 조월이 각자 오랜 시간 만들어놓은 특유의 관습들을 기민하게 충돌시켜 새로이 쌓아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조월은 늘 그런 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왔고, 트로트라는 예상 못했던 경유지를 “퇴로”를 타고 능숙히 통과해, 여전히 궁금해지는 다음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바밍 타이거(Balming Tiger)
“Armadillo (Feat. Omega Sapien, Byung Un) ”
(Balming Tiger)

“Armadillo”를 포함해 페나키(Pennacky)가 작업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바밍 타이거의 곡을 들으면, 등장하는 풍경과 그 국적이 대체 어딘지가 궁금해지곤 했다. (“POP THE TAG”의 슈퍼마켓은 미국 한인 타운과 서울 외곽 동네에 동시에 존재할 것만 같다!) 이것은 단순히 한국 출신의 오메가 사피엔과 장석훈이 해외에서 오랫동안 거주했기 때문만도, 물론 88라이징(88rising)의 샤웃아웃(shoutout)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렇다고 바밍 타이거의 모습이 흔히 써먹는 표현인 ‘경계에 걸쳐있다’거나 ‘씬의 바깥’ 등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10년대를 통과하며 이전과 다른 형상이 돼버린 국힙 ‘씬’의 생태 속에서 더 콰이엇이나 콜드의 곡에 피처링을 하며 넉살이나 우원재를 리믹스로 끌어들이고, 그와는 별개로 자급자족 혹은 자립하듯 자신들의 위치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그린 고질라, 혹은 그만큼의 씬 스틸러를 자처하는 훅을 포함한 랩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한국말’은 그마저도 일본어를 음차한 장석훈의 ‘카라’와 함께 별다르지 않은 ‘간지’뿐이고, 칸지(한자)와 카이지가 라임으로 능청맞게 뒤따라온 직후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과 엮인 ‘Astro(world)’와 ‘Kylie (Jenner)’가 튀어나오며, 한편 오메가 사피엔은 나다(nada)와 함께 바베이도스와 바하마를 외친다. 마지막 벌스의 끝부분에 따라붙는 또 다른 ‘공간’인 구글과 유튜브는 중국이자 대만, 홍콩이고 또 일본, 오키나와이며 한국 같아 보이기도 하는 뮤직비디오 속 부두나 식당, 스카이라인이 보여주듯 “Armadillo”의 배경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려준다. 트렁크에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카타나 끝에 달린 카메라가 정신없이 돌아갈 때 능청맞고 미니멀한 베이스 음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곡에서 가장 세련된 신스 음이 처음으로 나오는 것은 “Armadillo”를 포함한 바밍 타이거의 작업의, 무국적이나 다국적과는 조금 다르게 일종의 ‘국적-상관없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지역성을 가장 잘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아시아 어디인지는 알겠지만, 정확히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도 상관도 없는 세계.

한국어와 특정 언어의 혼용이나 씬 내부에 구축된 생태계, 아님 특정한 지역 정체성을 주어진 조건들에 맞추기보다는 그 수많은 영역에 걸친 다양한 특징을 전부 끌어온 후 정확히 정의내리기 애매한, 다른 영역을 만들어내면서 “Armadillo”는 바밍 타이거의 아머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들려준다. 거기서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배경이나 들려오는 언어가 정확히 어디 쪽인지는 아무래도 별 소용이 없고, 다만 확실하게 보이고 들리는 것은 빛나는 카타나를 들고 어정쩡해도 나름 멋진 동작을 취하고 있는 씬 스틸러들의 모습과 빠르게 오가는 그들의 높고 낮은 목소리, 그리고 노 아이덴티티와 언씽커블이 만든 편하게 리듬타기 딱 좋게 깔끔한 비트뿐이다.

 

+
(여자)아이들((G)I-DLE) “LION”
굴갱 “민낯”
권나무 “Love In Campus”
그림자 공동체 “동요 / 할시온의 관”
기나이직(Guinneissik) “Busa”
김사월 “Sabbath”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And So It”
놀이도감 “환각 (Feat. 사뮈)”
데카당 “링구”
로만티카 “Oceanside and lost in thought (when the tide comes up)”
루시드 폴 “산책 갈까? (Feat. Ludvig Cimbrelius)”
루츠리딤 “구름과 바람의 노래”
림킴(Lim Kim) “민족요 (Entrance)”
매드맨즈 에스프리(Madmans Esprit) “씨발”
박혜진 “I DON’T CARE”
백예린 “Square (2017)”
백현진 “빛”
새소년 “집에”
서이다 “사람목숨”
선미 “Noir”
설리 “Dorothy”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 “부작용”
신승은 “잘못된 걸 잘못됐다”
오도마(O’Domar) “장미밭”
오메가 사피엔(Omega Sapien) “POP THE TAG”
옷옷 “Start Me Up”
우한량 “팔중원희”
유키카(YUKIKA) “NEON”
있지(ITZY) “달라달라”
잠비나이 “Sawtooth”
장명선 “다프네”
장석훈 “장석훈”
전진희 “내가 싫어”
제이클레프(jclef) “mama, see”
최가은 “Hallucination”
키라라 “Pulling Off the Stars”
키스 에이프(Keith Ape) “LOVE SONG (Feat. AFOURTEEN & LIL DARKIE)”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Flash Flood Darlings) “We’ll Dance On”
한희정 “두 개의 나”
허클베리 피 “변경 (Rise of the Rebels) (Feat. 화나)”
황재호 “Sad Relationship, Nami”
휘(HWI) “Malling with You”GongGongGoo009 “정릉”
NCT 127 “Superhuman”
Oo!aA “Elephant no Cry”
OYKNI “웃다리”
SAAY “ZGZG”
So!YoON! “A/DC= (Feat. 공중도둑)”

 

*헤더 이미지: British Library

 

 

  1. 마르크 오제, 정현목 역, 『나이 없는 시간』 p. 63, 플레이타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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