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 폴(Lucid Fall) | Les Miserables | CJ 뮤직, 2009

어느 서정적 계몽주의자의 일기

먼저 ‘뮤지션’ 조윤석(‘루시드 폴’의 다른 이름)의 팬임을 밝힌다. 지난 3집 앨범 [국경의 밤]의 “사람이었네”에서 그가 미선이 시절의 날카로운 면모를 되찾아가고 있음에 쌍수를 들고 환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이 더욱 기다려졌는지도 모르겠다. 기다림이 과하면 실망도 큰 법일까. 다듬고 어루만지기를 반복하여 매끄러워진 사운드는 어느 카페의 푹신한 소파에 앉은 것처럼 아늑하다. 그러나 한 겨울 따뜻한 아랫목에 퍼질러 누워있을 때의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지막이 읊조리는 사내의 목소리는 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할 말은 많아 보이나, 끊임없이 에두르고 뭉뚱그리기를 반복하는 탓에 그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 몇 번이고 가사집을 뒤적여야 의미가 전달된다. 음악 감상에서 ‘리스닝’으로, ‘리스닝’에서 ‘리딩’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혹자는 앨범의 제목이기도 한 “레 미제라블”에서 ‘광주’를 연상하기도, “평범한 사람”에서 ‘용산’을 떠올리기도 한다. 루시드 폴은 단도직입적으로 꼬집어 말하기를 거부한 채 조용히 변죽을 울린다. 변죽만 울리다 말아버린다. 처연해야 할 부분에선 서정성이, 정당한 분노가 앞서야할 부분에선 눈물이 앞선다. 더 큰 문제는 형식과 내용의 삐걱거림이다. 금관악기와 현악기 세션으로 말끔하게 포장된 사운드는 자기 고백적이며 사회비판적인 어투와 불협화음을 이룬다. 고급 벨벳 재킷으로 말쑥하게 차려 입은 루저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그것은 루시드 폴이 읽은 [레 미제라블]과 우리가 읽은 [장발장] 사이의 간극이기도 하며, 루시드 폴의 “고등어”와 노라조의 “고등어” 사이의 간극이기도 하다.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이었네”를 어느 한적한 카페에 앉아 케냐산 커피를 음미하면서 듣게 되는 것과 같다. 아이러니이다.

루시드 폴 음악의 백미라면 나일론 기타로 구현하는 아르페지오 패턴과 그 패턴이 반복/변화하면서 이루어내는 단순하지만 달콤한 멜로디 그리고 향토적이면서 심미적인 글로 가득한 가사가 서로 겉돌지 않고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 풍경이 고스란히 듣는 이의 심상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조화에 너무나 공을 들인 탓인지 혹은 욕심이 앞섰던 탓인지 멜로디는 죽어 있으며, 노랫말은 너무나 익숙해진 상처들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핥고 지나간다.

모 웹사이트의 앨범 평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있다. ‘근데 요즘 고등어 비싸요 ㅋㅋㅋ’. 압권이다. 루시드 폴의 시계는 그가 먼 유학길을 떠나기 전의 시간에서 멈춰져 있다. 전업가수를 선언한 그이다. 이제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타인의 시선을 거두고 온전히 고향의 품에 안기기를 바란다. 루시드 폴이 그려냈던 고즈넉하면서도 서슬 퍼런 풍경이 그립기만 하다. | 글 최성욱 [email protected]

ratings: 2.5/5

수록곡
1. 평범한 사람
2. 걸어가자
3. 레미제라블 Part 1
4. 레미제라블 Part 2
5. 벼꽃
6. 고등어
7. 그대 슬픔이 보일 때면
8. 외톨이
9. 그대는 나즈막히
10. 알고 있어요
11. 문수의 비밀
12. 유리정원
13. 봄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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