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여름 | 생각의 여름 |붕가붕가레코드, 2009

혼자 갖는 차(茶) 시간을 위하여

그 흔한 ‘리버브’도 ‘딜레이’ 효과도 없다. 기타 줄의 튕김음과 담담하게 읊조리는 청년의 목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거리의 소음이 사운드 스케이프를 구성하는 전부이다. 올 해 들은 가장 싱거운 음반중 하나이다. 찬이 단출하니 뭐라 왈가왈부하기도 어렵다. ‘개인적 서정’의 음악으로 규정하며 살며시 눈물을 훔치기에는 날카로운 구석이 있으니 걸맞은 자세를 취하기도 어렵다. 애매모호한 감정이 겹겹이 쌓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혼자 갖는 차(茶) 시간을 가졌다.

붕가붕가레코드 곰사장의 소개에 따르면 생각의 여름은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는 박종현의 다른 이름이다. “치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관악 청년 포크 협의회”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도반”이라는 이름으로 홍대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바닥에서는 제법 잔뼈가 굵은 싱어송라이터다.

감성적인 경향으로 흐르는 이쪽 부류의 여타 음악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건조하게 진행된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담담하게 흐른다. 얼핏 시인과 촌장, 조동진 등의 이름이 스쳐지나간다. ’하나음악‘ 초기의 서정적 포크 사운드(전자음악에 관심을 갖기 이전의)와 닮아 있으나 보다 더 진득하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놓은 듯 7~80년대 포크 사운드를 재현한다.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청년의 모습이다. 이전에 비해 혀가 무뎌진 장필순, 오소영의 모습이 아쉽게만 여겨졌던 터, 그의 등장이 가뭄에 단비처럼 반갑다.

무언가를 채우느라 바쁜 시절에 혹은 더 많은 음악적 소스를 담아내느라 급급한 음악판에서 생각의 여름은 비우는 것에 집중한다. 세 문단을 넘기는 법이 없는 노랫말 속에는 소박한 내면 고백과 일상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이 담겨있다. “눈을 떠 보니 싸늘한 겨울이 왔더라 / 나도 내가 아니었더라”(“십이월”), “추스를 틈도 없이 또 다시 바람 / 세차게 바람”(“골목바람”), “꺾인 자리로 다시 빗물이 떨어지네 / 그래서 아물지 못하는 나의 손 끝은”(“덧”) 등 노랫말 곳곳에서 흔들리는 자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나 불안에 떨고 끊임없이 자학하는 유약한 모습이 아니다.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하고 여름을 맞이한 자의 모습이다. 담담하게 지난 계절을 이야기한다. 어디론가 달려만 가는 사람들과 자신의 모습을 네 마리 천원에 파는 붕어빵에 비유하기도 하며(“동병상련”), 바람을 먼 데서 기다렸었던 자신의 모습을 담담히 되돌아보기도 한다.(“그래서”). 허나 고백과 성찰의 말의 마디마저 침묵에 가깝다. 보이지 않는 말줄임표가 문단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섣부른 기대도 희망도 없다. 감상적인 어투로 눈물샘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속내를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드러낸다.

자칫 무겁고 지루하게 흐를 수 있는 흐름이나 명징한 기타 선율이 균형을 잡아준다. 오직 아르페지오와 스트로크 주법의 적당한 조합만을 통해서 소리의 질감과 공간감을 빚어낸다. 앨범 소개글처럼 달콤하지는 않더라도 밋밋하지는 않은 멜로디는 의외로 감각적으로 들린다. 심심함의 여백을 시적인 노랫말과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은 멜로디 라인으로 채운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채 3분이 넘지 않는 짧은 재생시간 때문인지 호흡이 툭 툭 끊어지는 느낌이다. 미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음 곡들로 넘어가 버린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마무리 지으려는 그의 의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자신의 할 말만 잔뜩 늘어놓고 황급하게 사라져 버리는 손님처럼 느껴져 안타깝기만 하다.

‘생각의 여름’은 다소 고전적인 방법을 취한다. 결벽적으로 느껴질 만큼 절제된 모습의 포크음악을 구사한다.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사람들처럼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구태의연한 음악으로 폄하하기는 힘들다. 여전히 유효하고 보편적인 ‘의미’를 담아내고 있으며, 단순한 편성 속에서도 섬세하게 직조된 선율을 통해 ‘의미’를 녹여내고 있다. 나긋나긋하고 달콤하게 포장하지도,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자조적이고 처연하게 진행하는 방법을 취하지도 않는다. 양극으로 각각 치달으며 쉬운 감상을 부추기는 한국 포크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정공법을 택한 ‘생각의 여름’의 노래가 더 세련되게(혹은 덜 촌스럽게) 느껴진다. 이것도 기분 탓인가. | 글 최성욱 [email protected]

덧. 글의 제목은 이병우의 앨범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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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1. 십이월
2. 골목바람
3. 활엽수
4. 덧
5. 동병상련
6. 서울하늘
7. 허구
8. 그래서
9. 말
10. 긴 비가 그치고
11. 다섯 여름이 지나고

관련 사이트
생각의 여름 공식 커뮤니티
http://club.cyworld.com/summerof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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