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eboy Sleeps | Riceboy Sleeps | EMI, 2009

살점 뜯긴 시규어 로스

대개 사이드 프로젝트 성격의 앨범은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소개팅 당일 약속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허탈함과 같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다행스럽게도 라이스보이 슬립스(Riceboy Sleeps)의 앨범은 서먹함이 덜하다. 앨범 커버도 음악이 전하는 시각적 심상도 곡을 이루는 소리의 재료도 시규어 로스(Sigur Ros)와 유사하다. 다만 밴드의 음악에서 살점을 제하고 가시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차이를 둘 수 있다. 불명확한 소리를 엮어 단조롭고, 반복적인 선율만 남겨 놓았다. 감상의 호오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시규어 로스의 프런트맨 욘 쏘르 비르기손(Jon Thor Birgisson, 통칭 욘시)과 그의 파트너 알렉스 쏘머스(Alex Somers)가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시규어 로스의 오랜 조력자인 아미나(Amiina)는 유유히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스트링을 통해서 건재함을 과시한다. 사춘기 이전 여린 소년들의 합창 소리도 여전하다. 이밖에 헝클어진 피아노 소리, 신묘하게 울리는 에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Daniel In The Sea”, “Sleeping Giant”), 곤충과 동물들의 울음소리(“Howl”), 바람소리, 바람에 삐거덕 거리는 나무 소리 등이 어지럽게 중첩된다. 다양한 소리가 기하학적으로 겹치고 반복되면서 음의 뼈대를 이룬다. 자칫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리들이 엮여 대위법처럼 조화를 이룬다.

작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음악이 만들어 내는 심상은 시규어 로스의 연장선상에 있다. 빙하로 둘러싸인 차가운 고국의 풍경과 풍경 곳곳에 스며있는 온기, 황폐된 도시의 모습과 그 속에서 움트는 자연의 생명력, 지하의 어둠과 어둠속에서 더듬더듬 빛을 찾는 손길이 공존한다. 폐허 속에서도 어슴푸레 새벽빛이 비추는 풍경, 어슴푸레 떠오르는 옛 기억, 어슴푸레 들리는 소리이다. 소리는 잔물결처럼 일렁이며 반복적으로 흐른다.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다 또다시 상류를 이루는 물의 흐름과도 같다.(그러고보니 앨범 커버도 물가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다)

시규어 로스에서 독창적인 스타일을 이루던 몇몇 살점들은 뜯겨져 나갔다. 비트도, 내러티브도 없다. 욘시의 청아한 목소리도 “Indian Summer”에서만 잠깐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첫 트랙에서 마지막 트랙까지 특별한 방점 없이 단조롭게 흐른다. 시규어 로스의 장점은 모호하고 몽환적인 사운드 스케이프 안에서도 비교적 명징한 곡의 높낮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단아한 피아노와 깔끔한 기타 선율을 노이즈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달콤한 부분은 배제한 체 시종일관 무미건조하게 소리를 잇는다. 이 지점에서 다시 호오가 갈린다.

음악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는 반응도 있을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수면유도용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비아냥거림도 있을 것이다. 무책임하지만 미묘한 차이에 대한 평가는 음악을 듣는 이의 몫으로 남기도록 하겠다. 다만 살점이 뜯긴 자리가 앙상하게 느껴지는 것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 글 최성욱 [email protected]

ratings: 3/5

수록곡
1. Happiness
2. Atlas Song
3. Indian Summer
4. Stokkseyri
5. Boy 1904
6. All The Big Trees
7. Daniell In The Sea
8. Howl

 관련 사이트
라이스보이 슬립스 공식 사이트
http://jonsiandale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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