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B-Side 견문록

사진촬영: 최성욱, 사진제공: 옐로우나인

축음기, 라디오, 워크맨, MP3플레이어 등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음악 경험의 개인화를 가져왔다. 음악을 듣는 행위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발품을 판다면 아프리카 어느 부족국가의 민속음악을 침실에 누워서 감상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역설적인 것은 음악을 듣는 행위가 점차 개인적인 무엇으로 대체되어 갈수록 취향이 공유된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시도도 커져만 간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비단 음악과 음악의 소비뿐만 아니라 음악의 경험을 확인, 공유하려는 통로를 구축하는데도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웹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매체를 비롯해 특정 장르의 음악을 선곡해주는 파티, 라운지 바, 힙합클럽 등 하위문화의 매개가 되는 장소에서 다양하고 광범위한 통로를 통해 네트워킹이 이루어진다. 그와 같은 네트워킹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페스티벌은 가장 직접적이고, 원시적이면서, 보편적인 사회적 네트워킹의 장이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관계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한 방법이다. 사회성을 신체적으로 경험하는 장소이다. 음악 페스티벌 속에서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경계가 무너진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과 즉각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배변을 하고, 잠을 자면서 느슨한 연대의식을 갖는다. 우리가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해 준다. 호오(좋고 나쁨)가 비교적 분명하며, 보다 음악에 중점을 두고 관계를 맺는 공간이 공연과 콘서트라면 페스티벌은 공연과 콘서트보다 좀 더 열린 공간을 지향하며, 음악을 매개로 일상에 대해 얘기하는 그리고 일상에서 쉽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스런 무엇에 대해 서로 나누는 공간이다. 그것이 페스티벌의 미덕이다.

고리타분하고 원론적인 얘기로 ‘썰’을 푼 것은 같은 기간 이천과 송도에서 열린 두 페스티벌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다.(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을 비교하며 서론을 끌어내는 것은 가장 쉽고, 무책임하고, 왈가왈부하기 좋은 방식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같은 기간에 비슷한 성격의 록 페스티벌을 진행한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발상이 아니다. 이 말은 공급자의 측면에서 얘기 했을 때에만 설득력을 갖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어차피 분리되어 운영되지 않았다면 하나의 페스티벌로 남았을 것이다.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게 업계의 논리이기 때문에 하나의 축제로 존속된다고 하여 제반 시설과 라인업이 더 좋아질 리 만무하다. 음악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일이다. 겉으론 애석한 표정을 짓고 속으론 쾌재를 부르면 되는 일이다. 대형 록페스티벌을 운영했던 주체가 두 배로 늘었다. 분명 이들은 차기 양질의 축제를 만들어 가는데 훌륭한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소위 몇 사람의 손에 의해 혹은 비전문가인 투자자에 의해 기획이 좌지우지 되는 작금의 실정에서 숙련된 운영 인력이 늘어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양질의 축제가 좀 더 많이 개최되고,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받아 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라인업의 우위를 들어 지산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록 페스티벌에 있어서 라인업의 무게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물론 이쪽 업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친구들은 라인업과 뮤지션의 무게감에 대해 토론을 해가며 여론을 형성해 가지만, 작은 부분 즉 소수의 여론 형성자의 의견이 마치 풍선마냥 부풀려져 전체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정확한 자료야 실증적인 통계수치가 확인해야 알겠지만, 부분이 전체처럼 보이는 것 같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가 좋은 음악곡연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전문적인 음악공연시설을 갖춘 장소가 아니며, 야외에서 펼쳐지는 음악회임을 감안했을 때 좋은 사운드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음악을 매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곳이 페스티벌이라고 했을 때 아티스트의 역할은 축제를 즐기는데 있어서 소수의 역할에 불과할 수 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두 곳 모두에서 대동소이한 방문자를 유치했다고 한다(정확한 입장자 수치를 공개하지 않는 업계의 관행을 고려하더라도). 우려와는 다르게 하나의 파이를 두고 두 업체에서 옥신각신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페스티벌 산업이라는 시장 자체가 좀 더 커질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취향을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좀 더 필요하다는 요구이기도 하다. 무리한 해석을 하자면, 어쩌면, 페스티벌에서 아티스트의 네임밸류가 갖는 중요성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음반 산업은 줄었을지언정 음악 산업은 좀 더 커져가고 있으며, 음악을 듣는 행위가 좀 더 개인화되어 갈수록 개인의 취향을 확인하고, 취향을 토대로 서로 이야기하며, 같이 나누고 싶은욕망은 점차 커져가고 있다.

 

똥배 나온 아저씨 록커들, 그들이 부럽기 만할 따름

 

“지미 잇 월드(Jimmy Eat World), ”스타세일러(Starsailor)“, ”휴먼 인스팅트(Human Instinct)“ 등 어느새 아랫배가 볼록해진 아저씨 록커들을 보고 있자니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아 당신도 많이 늙었구려, 당신도 어느새 몸매에 무심해지는 나이가 되었구려.’ 영락없이 천방지축일 것 같은 ”위저(Weezer)“의 보컬리스트 Rivers Cuomo는 정수리 주변이 숭숭 뚤린 알머리 총각이 되었다. 한 세대를 풍미했던 스타 일지라도 나이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한편으론 저 나이 먹고서 까지 저 짓을 하며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부럽기도 하다. 라인업을 보면, 외국의 노장 아티스트들과 ’야자‘ 틀수 있는 뮤지션이 몇 되지 않는다. 아니 김창완 아저씨가 유일하다. 비단 아티스트에 해당되는 것만 아니다, 취재를 나온 음악관련 취재기자도 내 또래의 사람들뿐이다. 그때 그 시절, 열렬하게 록앤롤을 부르짖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왜 멋있는 중년 뮤지션을 키워내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위의 중년 남성들은 시종일관 느슨하게 진행하면서도 필요한 순간 팽팽하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영악했다. 격의 없이 관중과 소통할 줄 아는 친절함이 배어 있다. 음악은 테크닉이나 속도전(戰)과는 무관한 예술임을 보여주었다. 능숙하게 힘을 안배할 줄 아는 멋스러움이 있었다. 특히 위저는 능수능란하게 “오 필승 코리아”를 선창했고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예전 좌충우돌 팝펑크 밴드 시절의 재기발랄함 보다는 조영남 식의 유쾌함과 어우러짐이 돋보였다. 사려 깊은 어른이 되었다. 지미 잇 월드의 검정색 기지바지와 블랙셔츠의 조합은(그래도 명색이 얼터너티브 밴드인데) 안구에 습기 찰 정도였으나, 몸매가 그대로 들어날 정도로 땀에 젖어 열창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한때는 드럼신동이었던 휴먼 인스팅트의 Maurice Greer는 하드록의 속도감에 호흡이 부치는 모습이었으나 끊임없이 징과 드럼 사이를 오고가며 연주에 열중했다. 이들의 때론 진지하면서도, 때론 유머러스하며, 친절하게 객석과 호흡하는 모습은 몇몇 겉멋 든 인디 국내 뮤지션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마치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의 음악에만 몰두하는 뮤지션의 모습, 준비하지 못한 즉흥적인 멘트(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은 그런 말)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 히트송을 부르면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할 수도 있을 터인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만을 고집하는 모습, 사전 목 관리와 악기 조율에 신경을 쓰지 못해 공연중간 사소한 트러블을 일으키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미성숙한 모습이 자랑거리는 아니다. 마치 무대 위에서의 시크함이 멋스러움인 냥 착각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시국이 하수상하니……

 

무대 밖 주요이슈는 아마 마이클 잭슨의 사망과 미디어법 소식 이었다. 펑크의 대모 “패티 스미스(Patti Smith)” 여사가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며 “Because The night”을 부르는 대목은 생경하지만 꽤나 훈훈한 장면이었다. 델리 스파이스가 부른 마이클잭슨의 “Beat it” 과 “Black or White”는 편곡자체는 조악했으나 관객을 흥분시키기 좋은 요소였다. 관객석에선 미리준비해온 마이클 잭슨 추모깃발이 나부꼈다. 사후에 재조명 받는 것이 스타의 불운한 인생사이다. MTV의 대리인마냥 격하되기도 했던, 평화를 이용하여 상술을 펼치는 장사치로 평가받기도 했던 마이클잭슨이 록앤롤 옹호자들에게 새롭게 해석되어 호명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했다. 죽음 앞에선 아무 말도 않는 것이 예의이나 ’사후 재조명‘이 트렌드처럼 펼쳐지는 게 요즘의 추세인 듯하다.

과정이야 어떻든 23일자로 미디어법이 통과 되었다. 21일부터 23일까지 펼쳐지는 록페스티벌에서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의 플랫카드와 현 정권을 규탄하는 다양한 디자인의 티셔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타세일러 공연 시에 줄을 이어 미디어법 반대 플랫카드를 양손에 든 처자들을 보고 약간 눈을 찌푸렸었다. 의사표현도 중요하지만 뒤편의 관객 시야까지 막으면서 해야 하는가 의문이다. 현직 대통령과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는 재기발랄한 티셔츠들은 보기 좋았다. 커플 티셔츠로 제작하여 쌍쌍이 입고 다니는 모습은 부럽기만 했다.(아 애인만한 동지가 어디에 있으랴)

여담이지만 이런 것을 두고 비판이네, 정치적이네 하는 것이 진짜 수구다. 심각하게 해석하려하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뮤지션의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을 표현하는 양식이며, 자신의 취향을 알리려는 의사 표시이며, 비슷한 기호를 갖는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몸짓이다.

 

 

록 페스티벌에서 언니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비단 페스티벌만의 문제점은 아니나 여성을 위한 시설물이 턱없이 부족했다. 최근의 공연관람 성비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록페스티벌도 예외는 아니어서 (눈대중으로는) 입장한 남, 녀의 숫자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관람객을 위한 배려는 찾기 힘들다. 여성의 변기가 남성의 그것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함에도 똑같은 크기의 화장실을 할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남자화장실의 출입은 원활한 반면, 여성화장실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한다. 길고 긴 인파의 행렬이다. 여성 화장실 앞에서 순번을 두고 서로 싸우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니들의 불편함을 모두 대변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캠핑장만큼은 여성들을 위한 공간(예를 들면 탈의실, 세면실, 화장실 등등)이 더 할애되어야 할 것이다. 또 이것은 여성관객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도 유의미한 역할을 할 것이다.

라인업도 불만이다. 걸 그룹과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대중음악 판도임을 감안했을 때 더 많은 여성 뮤지션에게 시간이 할당되어야 합당하다. 이번 록 페스티벌에서 여성이 주축이 되는 국내 밴드 혹은 뮤지션은 신참 격인 요조가 유일하다. 인력풀이 충분치 않아 섭외되지 않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패티 스미스와 동격으로 부족하나마 한영애와 이상은, 장필순 등을 고려해도 괜찮은 선택이 되었을 것이다. 요조와 프리실라 안(Priscilla Ahn)을 선택한 주최 측의 계산에는 명백한 의도가 깔린 듯해 찜찜하다. 그렇다고 요조와 프리실리 안의 공연이 나빴다는 얘기가 아니다. 요조는 자신의 역량 안에서 최상의 공연을 펼쳤고, 오랜 기간 공연을 준비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리실라 안이 자신의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라며 기타반주와 함께 “아리랑”을 부르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했던 순간이었다. 다만 좀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여성 뮤지션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힘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군의 계몽주의자들

 

음악을 통해 다른 얘기를 끌어내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음악에 방해가 되는 요소라면 안 하느니 못하다. 윈디 시티(Windy City)의 자연친화적, 친(親) 농촌적 발언은 듣는 내내 거슬렸다. 시대착오적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고 발언 했을 때는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아이돌 그룹의 재단된 멘트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다음 순서였던 김창완 아저씨의 공연과 비교되어 더욱 그러했다. 초반에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의 곡들을 선보이며 덧말을 줄였고, 후반부에서는 대중적이고, 강렬한 곡들로 음악에 집중한 ’김창완 밴드‘의 공연이 그래서 더 담백했을지도 모르겠다. 보습학원 선생님에게 인성교육을 기대하며 학원비를 지급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뮤지션들의 인생론을 듣기위해 거금의 페스티벌 티켓을 구입하지 않았다. 그러니 웬만하면 하고 싶은 말은 음악 속에 녹였으면 좋겠다.

관객은 가장 의외의 수확으로 김창완 밴드와 패티 스미스를 꼽는 분위기다. 패티 스미스의 경우 전반부에는 감상을 위한 음악을 선보임으로써 미덥지 않은 페스티벌 선곡센스를 보여주다가 후반부 “Rock n’ Roll Nigger”에서 관객을 헤집어 놓았다. 중간 중간 침을 뱉어가며, 통신업계의 절대강자인 S통신사에서 판촉물로 배포한 띠를 머리에 두르고 사랑과 반전과 평화를 울부짖는 모습은 왠지 묘했다.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사운드를 줄이고 또박또박 말을 읊는 모습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어느 노모의 이야기보다 교훈적이었으나, 고리타분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기타뿐이다 라는 그녀의 발언은 달콤했으나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다.

 

 

지갑을 닫게 하는 마케팅

돈을 쓸 수 있게 하는 장치를 충분히 마련해 놓지 않았음에도 페스티벌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변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지에서 유흥을 즐기기 위해서는 현금을 쿠폰으로 바꾸어 사용해야 했다. 문제는 쿠폰을 구매하는 곳이 두 곳 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 설치된 두 곳조차 외진 곳에 설치되었고, 쿠폰을 왜 구매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문구가 없어 현금을 제시하다 되돌아가는 관객도 종종 보였다. 음식을 먹기 위해서, 술을 사기 위해서, 옷을 사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몇 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지난한 기다림과 귀찮음에 지갑을 닫게 만드는 마케팅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행사니 만큼, 또 쉽게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모인만큼 좀 더 세심한 기획이 필요하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가장 적은 자본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낸 곳은 S통신사이다. 외진 곳에 부스를 설치했음에도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을 보여주었다. 모기를 퇴치하는 ‘생각대로 T’ 스티커, 목에 두르는 쿨링팩, 짐을 담을 수 있는 비닐 백팩은 꽤 요긴한 판촉물이었다. 쓸데없이 무료 샘플 CD와 홍보책자를 나눠주는 음반사들보다 보기 좋았다.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전에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의도치 않게 패티 스미스여사께서는 쿨링팩을 머리에 동여매고 무대에 나와 주었으니 영상을 통해 홍보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마치 이산가족 찾기를 방불케 할 만큼 타국인 관객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문제는 페스티벌 가이드용 소책자부터 상점까지 외국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실했다는 점이다. 타국인 관객이 적지 않음을 감안했을 때, 또 대다수가 돈을 쓰는데 인색하지 않은 계층임을 감안했을 때 좀 더 세심한 부분까지 감안하여 운영했으면 좋겠다.

 

 

록 페스티벌에서 반드시 록앤롤 스타만이 등장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어쩌면 관객들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식의 여러 장르가 짬뽕된 라인업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2009 Summer Sonic의 헤드라이너는 심지어 비욘세(Beyonce)이다. 우리도 비슷한 방식의 벤치마킹이 가능할 듯하다. 좀 더 대중적이고, ‘떼창’을 가능케 하는 가수들 혹은 소녀시대, 빅뱅과 같은 아이돌 그룹들의 섭외가 가능하다면 이벤트 성격으로 라인업에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을 듯하다. 좀 더 놀기 좋은 판이 만들어질 것이고, 티켓판매에도 혁혁한 공을 세울 것이다. | 글 최성욱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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