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는 6월 4일, 인천에 있는 스쿨뮤직 본사에서 진행되었다. 1987년 제 8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매일 매일 기다려”로 동상을 수상한 밴드 티삼스의 멤버였던 스쿨뮤직 안정모 사장은 현재 인천밴드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인천밴드협회는 1985년 창립된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의 맥을 이어 2011년에 ‘재창립’된 조직이다. 2011년 11월에 창립 콘서트를 열었고 2012년 3월에는 인천광역시 청소년단체협의회와 업무협약(MOU)을 맺어 연 8회의 청소년 음악교육과 공연 등을 맡기로 했으며, 6월 23일에는 인천밴드협회의 정기공연을 [you’re NOT alone]이라는 이름의 ‘자살 예방 캠페인 자선콘서트’로 개최한다. 매년 2회의 정기 공연을 열게 될 협회는 인천 밴드 간의 교류와 사회공헌, 나아가 인천 씬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인터뷰에는 안정모 협회장과 밴드 제3세대의 꿈 멤버로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의 핵심이었던 양범석이 참여했다. / 질문 및 정리 차우진 [email protected]

 

 양범석, 제3세대의 꿈 보컬 (사진제공 인천밴드협회)

 

차우진: 개인적으로는 지역과 인천에 대한 연구를 좀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기록하고 싶단 생각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기회가 상당히 기쁜데(웃음) 아무튼, 1985년의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부터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현재의 인천밴드협회는 그 후신으로 봐야겠죠?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양범석: 그때는 일반인 중에 메탈을 하는 팀이 없었어요. 1983년인가, 84년에 배다리에 있는 ‘롤라장’에서 팀을 꾸렸어요. 그땐 ‘하드 락 그룹’이었지. 배다리에서 한창 연습하는데, 그때 고등학교에 다니던 이 친구들(주: 안정모 외)이 지나가다가 연습실에 들린 게 계기가 된 거죠. 그때부터 알게 되어서 여기까지 온 건데. (웃음) 그때 같이 연습하다가, 1985년에 공연을 해야 되겠다, 연습만 할 순 없으니까. 근데 아는 팀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대학 서클에 갔어요. 서클은 다 록 그룹이었으니까. 인천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데 팀이 없다, 같이 하자 뭐 그렇게 말하면서 돌았어요. 그때 티삼스도 있었고, 플라워도 있었고. 그렇게 인천의 각 대학 서클 그룹이 모여서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갔는데, 정작 안된다고 했어요. 단체 이름으로만 해준다고. 그때 그룹사운드연합회가 생겼죠. 우리 팀(주: 제 3세대의 꿈) 베이시스트의 동생이 시청에 다니다가 그만뒀는데, 그러면 아는 사람이 많잖아요? 소개받고 소개받고 해서 시장 도장까지 받아 그룹사운드연합회를 정식으로 출범시켰죠.

차우진: 장소 섭외도 안 된 상태에서 밴드를 모은 거네요?
양범석: 그렇죠. 그게 1985년이니까, 경찰서에 가서 집회허가서를 받아야했어요. 데모가 워낙 많아서. 경찰 허가가 안 나오면 시민회관에서 못한다고 해서, 경찰서에 갔더니 경찰들도 싫어해. 귀찮잖아요. 대학생들이 막 한꺼번에 모이는 건데. (웃음) 그래서 자기들 귀찮으니까 허가를 안 해주려고 하더라고요. 그때 친구 아버님이 경찰서에 계셨어요. “에이, 그냥 해줘” 그래 가지고 가능했어요. (웃음) 그게 첫 공연. 대학 팀들이랑 일반 팀은 우리 팀 하나. 1985년 10월 18일이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 1회 공연이에요. 그때가 나환자돕기 공연이었는데, 타이틀이, 왜냐면 단체가 비영리단체여서 시청에서 뭐 하나 하라고 하더라고. 불우이웃돕기든 뭐든. 그 다음 해에도 했는데, 그때가 진짜 황금기에요. 이 친구들이 86년에 졸업하면서 실력 좋은 일반인 팀들이 되었어요. 대학팀들은 잘하는 친구가 졸업하면 그대로 ‘아웃’인데 일반팀은 안 그러니까.

차우진: 공연은 매년 하셨던 건가요?
양범석: 매년 했죠. 봄, 가을로 나눠서. 시민회관에서 계속 했는데 정말 많이 왔어요. 매번 1,000석 이상 가득 채웠어요.

차우진: 언제까지 공연을 한 건가요?
양범석: 그룹사운드연합회로 계속했는데 90년 즈음부터는 다른 이름으로도 계속했어요. 그땐 우리가 안하고, 그때 그룹사운드연합회를 이끌던 사람들이 ‘예인’이라고 기획사 같은 걸 만들면서 빠졌고, 그룹사운드연합회가 아니라 아마추어 동호회라고 해야 하나, 그런 형식으로 공연을 계속했죠. 연합회를 운영하던 사람들은 그 때쯤 군대가고 그랬으니까.

차우진: 그게 1992년, 93년 정도?
양범석: 네, 맞을 거예요. 그 전에는 작은 공연들도 많았고, 송도유원지에도 가서 공연하고.

차우진: ‘예인‘이 기획사였나요?
양범석: 기획사라고 해야 하나… 부활도 부르고 벗님들도 부르고 했는데, 왜냐하면 그룹사운드연합회는 수익이 전혀 없었으니까. 돈이 까지기만 하고. 그래서 시작했는데 그것도 뭐 잘 안 돼서 모두 한 번에 아웃되고. 그러다가 (안)정모가 학원을 하면서 공연을 많이 했죠. 무대에 고등학교 밴드 올라가면 사하라 같은 유명한 팀들이 축하공연도 하고. 언제까지 그랬지?
안정모: 1996년이었나.

차우진: 학원은 언제 처음 하신 거예요?
안정모: 1994년일 거예요.
양범석: 좌우지간 공연이 끊어지진 않았어요. 시민회관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했으니까.

차우진: 제가 고등학교를 91년부터 93년까지 인천에서 다녔거든요. 그때 인천 구장에서 이승철 공연을 했고, 시민회관에서는 B612가 오프닝으로 나왔던 블랙신드롬, 사하라 공연도 봤고요.
양범석: 그 당시에 김세황이 ‘넥스트’ 들어가기 전에, ‘다운타운’에 있을 때도 왔었죠, 서울이랑 가까우니까. 김종서도 내려왔었고, 오태호는 고등학교 때 ‘작은 하늘’이었나, 그 때 있었고. 사실 서울에 대한 열등감? 그런 게 별로 없었죠. 인재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개인으로도 이승환 밴드, 부활에서 드럼 치는 최재민도 티삼스에 있었는데. 도마뱀도 인천 출신이에요. 어렸을 때 다 우리 학교 놀러 와서 기타배우고. 아, 처음 공연할 때는 정말 무식했어요. 낙원상가에 올라가서 300와트 앰프를 들고와서 시민회관에 놨는데(웃음) 그때 모니터가 있어요, 뭐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첫 음 잡으려고 기타 앰프 앞에 서 있고 그랬다니까. 첫 음을 들어야 노래를 하지. (웃음) 뭐, 그만큼 연습량은 많았죠. 모니터 개념이 아예 없었으니까. 공연할 때는 처음에 300와트, 그 다음에 600와트. 킬로와트를 쓴 게 금시조 단독 공연, 그때 처음으로 1.2킬로와트였나. 그런데 부활이 와서 공연을 하는데 모니터라는 걸 쓰는 거라. 그때 모니터를 처음 접한 거지. 소리가 쑥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노래도 안 들리는 상태로 연주하다가, 갑자기 잘 들리니까. (웃음) 소리가 너무 큰지 아닌지 몰랐어요. (맨땅에 헤딩한 거네요) 그래도 그땐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그냥 좋았으니까.

차우진: 1985년 전에는 밴드 공연이 없었던 거죠?
양범석: 한 번도 못 봤어요. 인천에는 없었지. 인하대학교 축제 때 누구 공연! 이러면 그거 보는 게 전부였어요. 그러니까, 그때 대학팀들도 시민회관에서 하자해서 오케이한 게, 시민회관이 좋잖아요. 무대가 넓고 크고. 음악 하는 사람들은 그런 데서 공연 한 번 해보고 싶으니까.

차우진: 그때 시작하지 않았다면 저 같은 인간도 없었겠죠. 그걸 보려고 애들이랑 학교 담 넘고 그랬는데. (웃음)
양범석: 그때는 클럽도 없었고, 공연할 데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밴드들이 유지하기가 굉장히 힘들죠. 지금처럼 뭐 클럽이 있어서 매주 공연하고 지명도가 있으면 생활도 좀 되고 그러면 계속 해나갔을 텐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힘들죠. 그렇다고 앨범 내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고. 판 내준다고 하면 정말 판만 내주는 게 다였죠. 그러다 잘 안되면 나이트 같은 데로 다 빠지고… 생활은 해야하니까. 배운 게 음악 질이라고 나이트 갔다가 좀 지나면 다시 밴드로 왔다가. 그렇게 반복이 되죠. 그러다 타성에 젖고,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 싶고.

 

안정모 인천밴드협회장 (사진제공 스쿨뮤직)

 

차우진: 안정모 사장님은 사업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언제였습니까?
안정모: 티삼스 깨지고 1990년도에 개인 사업을 시작했어요. 팀은 1989년 말에 깨졌고. 방송이랑 녹음도 하다가 동네에 스튜디오라고 하나 차렸는데, 아는 게 없었어요. 티삼스 공백 기간에 스튜디오 시작한 게 23살, 24살. 왕준기라고 옛날에 [9시 뉴스] 음악 했던 편곡자를 만나 사무실에 출근해서 작업하다가 1990년에 녹음실을 차린 거죠. 어쩌다가 돈은 방송, 영화음악 같은 걸로 벌었는데 그것도 잘 안 되서 나중에 또 이것저것 하고. 음악에는 별로 재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스쿨뮤직은 2002년, 그 전에는 계속 음악 쪽에 있었고. 학원도 했으니 가르치는 거를 해볼까, 해서 컨텐츠 사업을 하다가 또 잘 안되서 이번엔 뭐라도 팔아야겠는데 악기를 팔까…
양범석: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인천고등학교 상과 가서 음악만 하다가, 막판에 한 달 공부해서 인천대학교 들어갔는데, 입학하자마자 바로 음악 한다고 학교를 때려치웠어요. 제일 파란만장해. 그런데 누가 봐도 음악성이 딸렸거든 처음에는. 그런데 나중에 음악성이 따라오더라고. 워낙 노력파니까. 진짜 파란만장했어요. 강원도 묵포 나이트클럽에 가서 새벽 4시까지 일하는 것도 하고. 그러다가 6개월 방위 받고 겨우 벗어났다가 다시 음악 하고. 티삼스 들어갔는데 티삼스가 안 풀렸잖아. 3년 동안 거기 묶여가지고 자장면 배달도 하고. 참 힘들고 대단하게 여기까지 온 거예요.

차우진: 티삼스가 묶여 있었던 건 뭐에요? 계약 얘긴가요?
안정모: 티삼스는 아세아레코드랑 전속 계약을 했어요. 전속계약을 3년 한 것 같은데. 그동안에 앨범도 내고 활동을 해야 하는데 1집 내고 쫄딱 망했잖아요. 그때는 매니지먼트 시스템도 잘 안되어 있었고, 우리가 활동한다고 회사에서 뭘 더 해주는 것도 아니라서…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였으니까. 근데 마냥 좋아서 할 땐 괜찮았는데, 조금씩이나마 수입이 생기고, 그걸로 먹고 살지는 못해도 돈이 들어오니까… 결국은 잘 되지도 않고 깨지는 거죠. 놀면서 할 땐 좋았는데 진짜, 작게나마 돈 벌면서 하니까 깨지더라고.

 

인천밴드협회 1회 공연 단체사진 (사진제공 인천밴드협회)

 

차우진: 이제 다시 인천그룹사운드연합회 얘기로 가보죠. 1997년 정도부터 활동이 뜸해지다가 유야무야 해산됐다고 들었는데요.
양범석: 해산은 좀 그렇고… 어느 지점에서 스윽 자연스럽게 내려갔어요. 누가 회장을 맡은 것도 아니라서. 원래 회장 맡았던 분들이 못했으니까. 그래도 시민회관 대관할 때에는 연합회 이름으로 했어요.

차우진: 다른 단체들이랑 엮였던 적은 없었나요?
양범석: 없었어요. 연예인협회하고도 아무 관계도 없이. 완전히 깨끗하게 ‘락 밴드’만. 그러니까 아마추어였죠.

차우진: 연주자들 단체 같은 것도 없었나요?
안정모: 그거는 나중에 생겼어요. 옛날에는 학원 중심이었으니까.
양범석: 그때는 음악학원이 많았잖아요. 거기 다니는 친구들한테 공연할 기회를 줘야 재미도 느끼고 계속 하고. 선배들은 축하공연처럼 하고 그랬죠.

차우진: 학교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고, 다니는 학원도 달랐을 텐데 그룹사운드연합회가 있으니까 거기서 선후배도 생기고 그랬던 거네요.
양범석: 그래서 인천은 그게 세요. 선후배 관계. 모여라 그러면 다 모이고. 다들 부럽다고 해요. 서울은 그런 게 없다니까. 그런데 우리는 항상 보잖아. 무슨 일 있으면 또 모이고, 그래서 이번에 밴드협회라고 다시 모인 것도 그냥 우연하게 된 거죠. 후배들한테 뭔가 해줘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차우진: 어쨌든 그룹사운드연합회의 주요활동은 공연이었는데요, 지금 밴드협회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공연 외에도 다른 기획들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밴드협회로 다시 모이면서 그룹사운드연합회에서 계승할 것들, 혹은 그때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안정모: 옛날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아무 것도 몰랐어요. 사랑과평화 선배들이 인천에 연고를 두면서 선후배관계를 유지하고 지도해주고 그러면서 시민회관에서 공연하고 그랬다면 그때 있던 밴드들 상당수가 인정받을 계기가 더 생기지 않았을까, 란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그게 전혀 없었으니까 오히려 내가 1세대가 된 거죠. 애들이 뭐만하면 상담오고.
양범석: 가장 중요한 건, 인천의 밴드 문화가 죽어버리니까 음악 하던 애들이 전부 서울로 가버린 거예요. 여기엔 클럽 하나 없잖아요. 이진우란 친구가 차려놓은 글래스톤베리, 그거 하난데. 다시 한 번 모으는 계기를 만들자,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몸이 안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정기 공연이 동네잔치에 머물다가 없어질까 봐, 그런 두려움 같은 게 있어요. 인천에서도 좋은 밴드가 나와야 하는데. 홍대 쪽에서는 항상 나오니까. [탑 밴드] 보면 다 잘하더라고. 글래스톤베리에 오는 팀들도 다 잘하고.
안정모: 사실 우리도 지역에 있으니까 지역사회에서 뭔가 해야 하는데. 사실 인천밴드협회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안하는 것보다는 모여서 뭔가 하다 보면, 일단은 시작은 해놓으면 현재 활동하는 애들이 의견도 내고, 그러면 선배들이 힘이 닿는 데까지 서포트해주는 거고. 혼자 할 때보다 같이 하면 어 이 새끼 잘 하는구나, 저기 좋은 팀 있으면 소개도 해주고. 그런 것들이 어쨌든, 밴드가 평생 음악을 해도 정작 영역이 좁아서 인맥이 많진 않아요. 그래도 일단 어쨌든 같이 모여서 트렌드 같은 것도 고민하면 협회에서도 고민하고. 그러다보면 조금 더 조직화될 수 있다고 봐요. 인천에서 잘 되면 다른 지방에서도 이런 조직이 생길 수 있고. 그러면 또 전국단위로 모여서 전국밴드연합, 뭐 이런 걸로 공연을 할 수도 있잖아요.
양범석: 나는 아이돌처럼 밴드도 어릴 때부터 훈련하면 더 좋아질거라고 생각해. 춤 배우듯이 초등학교 때부터 악기를 하면 금방 늘고 그래요. 그럼 그 재능도 키워주고. 사실 빅뱅 같은 애들 멋있잖아요. 멋있어요, 딱 보면 잘 하고. 자기들이 곡도 다 쓰고. 밴드도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안정모: 어쨌든 밴드협회의 본질은 인천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얼굴도 익히고 일도 만들어서 서로 얘기하는 거예요. 대외적으로 위상도 갖추려면, 사단법인도 아니니까 비영리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사례도 필요해요.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것도 있어야하고요. 생색내기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갖추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깜짝 놀란 게, 시에서 예산을, 무슨 청소년 문화행사에 1년 예산이 3억이에요. 학교 밴드, 고등학생 애들 여덟 번 정도 공연시켜주고, 밴드한테 백만 원 씩 줘요. 동아리 활동하면서 필요한 것도 사고 밥도 사먹으라고. 아예 밴드 공연지원이라고 잡혀 있어요. 아니 무슨 애들한테 백 만 원을… 대학에도 갈 수 있어요. 경기도 교육감상, 인천시 교육감상 받으면 수시 특채로 가요. 그러니까 학부모들이 돈 줘서 편곡하고 음악선생님이 대회에 쫓아오고. 그런데 처음엔 얼렁뚱땅 했던 게 지금은 많이 성장했거든요. 그런 시행착오들을 인천밴드협회가 줄일 수 있는 거죠. 인천시에도 문화나 컨텐츠를 고민하는 팀이 있으니까. 협회의 성과가 누적되면 [펜타포트] 같은 지역 기반의 음악 페스티벌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봐요.

차우진: 일단 6월 23일 공연 이후에는 또 어떤 계획들이 잡혀 있습니까?
안정모: 공연은 1년에 두 번, 상반기와 하반기에 하고, 올해는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할 겁니다. 그 다음에 협회가 공식적으로 활동하겠죠. 만들어놓고 방치하다가,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거지, 그렇게 끝내진 않을 겁니다.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적당하게, 너무 ‘오버’하지 않으면서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밴드의 권리라던가 주장을 펼 수 있는 채널로 자리 잡으면 좋겠어요. 영화협회는 잘 뭉치는데… (웃음) 밴드, 특히 아마추어 밴드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창구가 전혀 없어요. 그 정도 역할만 해도 좋아요. 인천밴드협회는 어쨌든 인천 친구들한테 기회를 많이 주기 위한 단체죠.

차우진: 올해 공연의 특징은 뭔가요. 작년에는 예전 팀들이 많이 나왔던 걸로 아는데요.
양범석: 작년에는 기념공연이어서 그랬고, 올해는 사하라 빼고 다 젊은 친구들이에요. 앨범을 준비하는 밴드들이 몇 팀 있고, 홍대에서 활동하는 밴드도 있고, 대학 밴드와 직장인 밴드도 있어요.
안정모: 여덟 팀인데 사하라, 투패밀리, 재뺀, 보름달늑대, 락앤허니, 락스네이크, 일곱색깔무지개, 코이드윅 같은 팀이 나옵니다. 어떤 공연인지, 얼마나 잘하는지 한 번 보러 오셔도 좋을 겁니다. (웃음)

 

3 Responses

  1. 박민호

    기사 잘 봤습니다. 지금은 체계를 잡아가고,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인천밴드협회 공식카페(http://cafe.daum.net/ibanda)에 가시면 더 많은 자료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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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스쿨뮤직

    안정모 인천밴드협회장/ 인천 밴드씬의 부활을 노린다…

    스쿨뮤직에서 진행된 ‘자살 예방 캠페인 자선콘서트’에 대한 인터뷰와 인천 밴드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 기사는 뮤직 웹진 위브에서 트랙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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