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퍼 사운드(Tripper Sound)는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는 인디 레이블이다. 폰부스와 바이바이배드맨, 자보아일랜드 등이 속한 레이블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신진 밴드 아홉 번째와 24아워즈(24Hours)가 최근 각각 싱글을 발표하며 정규 앨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으며 국악과 대중음악의 경계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밴드 고래야가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한 트리퍼 사운드를 창립해 운영해온, 또한 그 이전부터 오랜 기간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 엔지니어 및 프로듀서로 활동해온 김은석 대표를 2012년 5월 3일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질문 김영진 & 차우진, 정리 김영진 [email protected]

 

 

엔지니어에서 프로듀서로

웨이브: 우선 대표님의 이력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프로듀서로서 꽤 많은 작업을 해온 걸로 아는데,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김은석: 저 역시 80년대에 록음악을 했던 여느 사람들처럼 고등학교 때 메탈 밴드를 하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대학에 가서는 음악을 할 거라는 의지가 약해졌어요. 그런데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갔다 온 뒤, 아는 형이 자기 집에서 스튜디오를 한다면서 놀러오라고 하더라고요. 마침 제 동기도 거기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일단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가서 봤는데, ‘와,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실제로 해보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았죠.

웨이브: 비교적 우연한 계기로 입문을 하신 거군요? 그때부터 음악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가요?
김은석: 내가 아티스트로 일하는 것보다 스탭으로서 새로운 활동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그 녹음실에 와서 세션으로 연주하던 뮤지션들이 기타리스트 함춘호, 드러머 김희연 등이었어요. 그분들은 그 당시 세션계에선 아주 유명한 분들이었고, 저 연주인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은 했었죠.

웨이브: 처음에 엔지니어로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던 환경이 좋았던 셈이네요.
김은석: 그렇죠. 우선 그 엔지니어 형 어깨 너머로 훔쳐보기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견습도 아닌 견학 식으로 가서 일을 배웠어요. 형석이 형(작곡가 김형석)이 무명이었을 때, 그리고 작곡가 신재홍, 유정연 씨도 모두 그때 거기서 보고 함께 작업할 수 있었죠. 업계쪽 사람들도 많이 만났어요. 도레미레코드나 신촌뮤직 사장님들과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당시 그 스튜디오에 마침 일본에서 온 야마하의 레코딩 엔지니어가 잠시 와 있었는데 그분 밑에서 인턴으로 사사를 받기도 했죠. 그렇게 여러 작업을 같이 했습니다. 결국 운이 좋았던 거죠. 비교적 큰 스튜디오에서 좋은 장비로 실력 있는 분들에게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웨이브: 그럼 언제부터 ‘실전’에 임하기 시작하셨나요?
김은석: 조금씩 연습을 하다가 1991년에 어시스턴트 엔지니어로 처음 시작했죠. 그러다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왔어요. 신해철의 [정글스토리 OST] 앨범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영국의 유명 프로듀서인 믹 글로섭(Mick Glossop, 유에프오, 이언 길런, 스웨이드 등의 앨범을 작업한 인물)을 모셔오게 되었어요. 운 좋게도 한 달간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며 작업할 수 있었죠. 정말 고지식하고 괴팍한 사람이었는데, 한 달 내내 믹싱 작업만 하며 고생도 많았지만 배운 게 정말 많았어요.

웨이브: 본격적으로 프로듀서로서 이름을 올리게 된 과정에 대해 얘기해주시겠어요?
김은석: 프로듀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굳힌 건, 신해철과 윤상의 노땐스(NODANCE)의 앨범에 엔지니어로 참여했을 때예요. 그때는 아트 오브 노이즈(Art of Noise)라는 영국 밴드의 멤버이자 프로듀서인 개리 란간(Gary Langan)을 불렀어요. 라디오 프로그램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시그널 음악으로 쓰인 아트 오브 노이즈의 “Moments In Love”를 작곡한 사람이 바로 그 개리 란간이에요. 그렇게 그분과 함께 작업을 하던 와중, 한번은 저한테 계속 이 일을 할 거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뭐,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다고 말했죠. (웃음)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이제 전업 엔지니어만으로는 앞으로 힘들 거다, 모든 레코딩 기기와 기술이 컴퓨터화 되고 각종 소프트웨어가 생겨나면서, 조만간 뮤지션 각자가 알아서 레코팅을 하며 퀄리티를 높여가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니 너도 최종적으로는 음반 전반을 총괄하는 프로듀서가 되는 길을 걸어라.’ 그때가 불과 1996년이었어요. (웃음)

웨이브: 그럼 그때 그 얘기를 듣고 바로 수긍하셨나요?
김은석: 아뇨,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웃음) 당시만 해도 ‘프로듀서’의 개념이 쉽게 말해 ‘음반 만들 때 돈 대주는 사람’이었거든요. 돈 내는 사람의 이름이 앨범 커버의 가장 맨 위에 ‘프로듀서’라고 올라갔으니까요. 그래서 의아해진 제가 그 프로듀서의 의미를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그제야 설명해주더라고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그 ‘프로듀서’의 의미를. 그 후 그 길을 걷게 되었고, 프로듀서로서 제 이름이 올라간 첫 작업물이 1997년에 나왔죠. 스톰프 뮤직에서 앨범 전체를 맡아 프로듀싱 하는 작업이었어요.

웨이브: 그렇다면 시작은 철저히 메이저 음반 작업이었는데, 인디 쪽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김은석: 1990년대 중반, 아직 홍대 클럽 프리버드가 없을 때 프리버드를 만들고자 하는 분을 알고 있었어요. ‘버드’ 형이라고, 지금 프리버드 대표와는 다른 분이고요. 그런데 그분이 홍대 쪽에 라이브 클럽을 낼 거니까 음향 설비를 좀 봐달라고 했어요. 당시는 드럭, 스팽글, 재머스, 롤링스톤즈 정도가 있는, 말 그대로 초기였는데, 그걸 계기로 그때부터 클럽을 다녔어요. 위퍼, 옐로우키친, 노브레인 등의 공연도 많이 보러 다녔죠. 사실 막 태동하던 그 음악들이 예전에 듣던 록음악이어서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래서 점차 매료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보다 보니,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홍대앞 인디 씬의 분위기 자체도 좋았고요.

웨이브: 그렇다면 넥스트나 엄정화 등의 음반 작업을 하다가 어떤 한순간에 특별한 계기로 인디음악 방면으로 넘어오신 건가요? 아니면 한동안은 양쪽을 모두 하셨나요?
김은석: 양쪽을 모두 하다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듯 넘어온 거죠. 언젠가부터 메이저 씬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당시 우리나라 메이저 시장은 그 안에 돈이 엄청나게 많이 돌던 때였고, 그래서 조직이나 건달의 개입이 많았어요. 약간 과장을 보태 말해보자면, IMF가 터지기 전까지는 웬만큼 밀던 가수의 앨범이 10만 장 팔리면 다들 울상일 정도였어요. (웃음) 그 정도로 ‘돈이 되던’ 시장이었죠. 그러니 지금처럼 세계적 네트워크도 잘 갖추어 있지 않던 그때에는 표절도 굉장히 심했고요. 녹음실에 일본 음반을 던져주고서 이대로 해봐라, 하곤 했으니까요. 그러니 저도 그 현장에 있으면서 저 자신이 일종의 공범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또 메이저 뮤지션들과 음악적 조율 문제로 트러블도 종종 있던 터라 피곤하기도 했고요.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죠. 그리고 돈 되는 세션을 찾아다니는 연주자들이 점차 ‘기능인’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면서 또 한 번 비슷한 회의가 들었고요. 어쨌든 그런 환경에 있다가, 이제 막 뭔가가 터져 나오는 듯한 인디 씬을 접하니 무척 신선했어요. 음악 하는 친구들도 순수하고, 색깔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자기 음악을 하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게 너무 좋아 보였어요.

웨이브: 그럼 메이저 일을 그만두고 인디 쪽 프로듀싱으로 전향하게 된 건 언제인가요?
김은석: 사실 메이저 일을 그만뒀다고 말할 수 있는 건 2007년쯤이에요. 생계 문제 때문에라도 그때까지 계속 작업을 했어야만 했죠. 2007년에도 박완규와 부활 김태원 등과 작업을 했었거든요. 물론 그전부터, 그러니까 2002년에는 목동 컨텐츠진흥원 녹음실에 들어가 피터팬 콤플렉스 음반 엔지니어링을 하기도 했고, 이후 네스티요나와 윈디 시티의 음반 프로듀싱 작업도 했었어요. 본격적인 행보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메이저 쪽 일을 하면서도 인디 쪽 일을 같이 하니까, 다른 건 딱히 얻은 게 무언지 모르겠지만 일단 인맥이 쌓이더라고요. (웃음)

 

트리퍼 사운드의 시작

웨이브: 레이블을 처음 창립하신 건 언제인가요?
김은석: 2007년이에요. 그전에 프리키라는 밴드의 음반 제작을 공동으로 해봤었는데, 상당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2005년쯤에는 스스로 그만두자고 결심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한동안 안 하다가, 2007년 즈음부터 다시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웃음) 그러다 어찌 해서 자보아일랜드를 만났고, 그때 트리퍼 사운드를 만들었어요. 공교롭게 제 생일에 시작하게 되었죠. [웨이브: 생일이 언제시죠?] 김은석: 10월 23일입니다. 기억해주세요. (웃음)

웨이브: 자, 이제는 레이블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죠. 밴드를 레이블로 영입할 때의 특별한 기준이 있으신가요? 트리퍼 사운드의 소속 팀들을 보면, 색깔이 비교적 다양한 편이거든요.
김은석: 사실 저는 레이블 대표로서 밴드를 바라볼 때에는, 현재 보이는 모습만으로 모든 걸 평가하진 않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즉 가능성에 중점을 두는 편인데요. 그러니까 제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보는 거죠.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의 끼와 자작곡의 완성도를 봐요. 지금 당장 연주는 못해도 돼요. 소위 그러한 기술, 기량이라고 하는 부분은 맘먹고 연습하면 대개는 결국 좋아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창작에 대한 감각이나 일종의 끼 같은 건 단시간에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쪽에 중점을 두고 보면, 소위 비전이라는 게 대강 보여요. 그런 점에서 제가 가장 멀리 하는 밴드는, 커버곡은 그럴 듯하게 잘하다가도 자작곡을 시작하면 분위기가 싸해지는 경우예요. 마치 무슨 동요 경연대회 하듯 갑자기 분위기 싹 바뀌는 그런 경우 말이죠. (웃음)

 

 

웨이브: 트리퍼 사운드로 밴드가 하나둘씩 꾸준히 들어오고 있는데요. 회사로 음악을 보내오는 경우가 많나요, 직접 선별하시는 경우가 많나요?
김은석: 이상하게도 저희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데모를 보내오는 경우는 아직까지 딱히 마음에 들었던 경우가 없어요. 반대로 제가 공연을 보고 접촉을 하는 편이죠. 지금까지는 제가 마음에 들어 러브콜을 보낸 식이었어요. 왜, 연애도 그렇잖아요. 누가 나 좋아한다고 해서 하는 것보다 내가 남 좋아서 시작하는 편이 더 즐겁고 만족스럽죠. (웃음)

웨이브: 그럼 밴드가 들어오게 된 순서는 어떻게 되나요?
김은석: 한음파와 폰부스가 초창기에 함께 했었고, 자보아일랜드가 있었죠. 소울 스테디 록커스라는 팀은 잠깐 있다가 방향 차이가 있어 나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세 팀이 함께하다 이후 한음파가 계약 만료로 나가게 됐고요.

웨이브: 그 후가 바이바이배드맨인가요?
김은석: 네, 이제는 밴드가 추가로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폰부스 친구들이 쌈싸페 숨은고수 예선에 갔는데 다른 팀의 공연을 보다가 연락이 왔어요. 바이바이배드맨이라는 팀을 아느냐고 그러는 거예요. 지산 록페스티벌에서 잠깐 본 적은 있지만 제대로 듣어보진 않은 상태였죠. 그래서 직접 가서 공연을 봤어요. 그리고 바로 계약하자고 했죠. (웃음) 배드맨도 흔쾌히 수락했고요.

웨이브: 그다음 밴드가 아홉 번째인가요?
김은석: 네, CJ 튠업 6기 예선 때 아홉 번째의 무대를 봤어요. 저는 저희 밴드가 공연하지 않을 때에도 종종 공연에 가서 보는 편인데, 그날 눈에 들어오는 팀이 하나 있는 거예요. 지금 당장 큰 임팩트는 없지만, 뭔가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팀이 폰부스와 배드맨을 좋아한다고도 얘기했었고요. (웃음) 결국 계약을 한 뒤에 튠업 결선에 나가게 되었어요.

웨이브: 24아워즈는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요?
김은석: 바이바이배드맨에서 베이스 치는 루리가 자기 친구 중에 괜찮은 밴드 음악을 하는 아이가 있다는 거예요. 가서 공연을 봤어요. 에너지가 상당하더라고요. 그때가 결성된 지 몇 개월 안 된 때였죠.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있었어요. 곡 쓰는 재주도 있어 보였고요. 그런데 무대에서의 액션은 엄청 산만했죠. (웃음)

웨이브: 24아워즈가 그때부터 악틱 멍키스(Arctic Monkeys)의 향취가 충만했나요? (웃음) 저[김영진]는 오히려 그런 점에서 좋기도 했거든요. 개인적으로 트리퍼 사운드에서 가장 기대하는 밴드이기도 하고요.
김은석: 그랬죠. 하지만 ‘오아시스의 악령’이 씌어 있었던 초기 폰부스와는 조금 달랐어요. (웃음) 그런 느낌을 갖고 있는 게 나쁘지 않았어요. 사실 24아워즈는 ‘악틱 멍키스의 악령’이 씌웠다기보다 ‘악틱 멍키스가 수호천사처럼 되어준’ 쪽이었죠. (웃음)

웨이브: 트리퍼 사운드에서는 맨 처음에 모든 밴드가 싱글 내지 EP 앨범을 먼저 하나는 꼭 내더라고요. 일종의 원칙 같은 건가요?
김은석: 네,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정규앨범을 내기 전에 한번 연습하는 식으로 녹음하는 과정은 밴드에게나 제작자인 저에게나 상당히 의미가 있거든요. 연주뿐만 아니라 밴드 각자의 레퍼런스에 따라 톤을 맞추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되고, 밴드 입장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저희 같은 경우 대부분 음반을 제대로 내지 않은 신진 밴드를 영입하는 편이기에, 그런 경험을 하도록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웨이브: 사실 예전만 하더라도 녹음한 뮤지션들 얘길 들어보면, 그때는 데뷔하면서 바로 1집 작업을 들어갔기에 뮤지션 입장에서 (녹음 관련 제반 내용을 몰라) 종종 곤란했다고 하더라고요. 음, 그렇다면 훈련 및 경험 삼아 밴드와 첫 작업을 할 때, 소위 감가상각비라는 것은 고려하시고 하는 건가요? (웃음)
김은석: 그럼요, 물론 생각하죠. 사실 첫 앨범으로 큰 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대개 손익분기점은 넘어요. 어찌 보면 1집에 들어가는 투자비용을 조금 미리 빼서 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웨이브: 그럼 이것도 일종의 트리퍼 사운드만의 작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김은석: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 제가 엔지니어 생활을 하면서 얻은 노하우나 아티스트가 겪은 어려움을 보며 느낀 것들에 바탕을 두고 작업하는 거니까요.

웨이브: 녹음 방식은 어떠한가요?
김은석: 데모 녹음은 총 3차까지 해요. 1차는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곡들을 녹음해보자’라고 해서 작업한 뒤, 그걸 다 들어보고 그중에 골라서 다시 2차로 녹음을 해요. 그러고 나서 최종 3차 녹음까지 하고 정식 녹음에 들어가면 가닥을 잡는 데 상당히 수월하죠.

웨이브: 바이바이배드맨이나 아홉 번째, 24아워즈의 앨범을 보면 특히 커버 디자인이 눈에 띄는데, 혹시 전담 디자이너가 있나요? 각 밴드마다 예쁜 로고도 한 개씩 있던데요.
김은석: 바이바이배드맨 음반 커버 같은 경우는 멤버들과 아는 사이의 디자이너가 해준 거고요, 아홉 번째와 24아워즈 커버는 저희 회사 내부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앞으로 전담해서 맡게 될 디자이너예요. 사실 로고의 경우도, 저는 예전부터 외국 밴드들의 로고들 보며 많이 부러웠어요. 공식적으로 나갈 때 늘 하나의 로고로 나가듯이, 그게 꼭 있었으면 했거든요. 그 예전에도 벤 헤일런이나 메탈리카 등의 팀들을 떠올려보세요. 사람들의 눈을 확 잡아끄는 로고가 있잖아요.

웨이브: 이 질문에 관해선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부분만 해주세요. (웃음) 수익은 어떻게 되나요?
김은석: 이것만 말씀드릴게요. 저희는 현재 인디 레이블 중 ‘중상(中上)’은 수준은 될 거예요. 하지만 그럼에도 회사는 ‘유지’ 수준이에요. 대부분이 공연 수익인데, 이 바닥이 아직도 힘들다는 방증이죠.

 

앞으로의 행보

웨이브: 지금 현재, 가장 최근 밴드인 고래야까지 포함해 여섯 팀이고 이제 곧 일곱 팀까지 늘어날 텐데, 앞으로 레이블 규모는 어느 정도까지 가져가고 싶으신가요? 굳이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본다면, 규모와 네임 밸류를 좀 더 키워서 매출을 올리는 방향 그리고 철저히 아티스트 중심의 음악성을 추구하며 내실 키우기에 집중하는 방향 정도로 말할 수 있겠는데요.
김은석: 굳이 고르라면 후자인 것 같아요. 일단 현재 시스템 상으론 그 두 방향이 양립할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본다면 지금과 같은 방향성을 갖고 계속해서 가져가는 게 맞는 거죠.

웨이브: 밴드 운영에 있어 트리퍼 사운드만의 철학이나 원칙이 있나요?
김은석: 제가 욕심이 많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레이블은 ‘아티스트 콜렉터’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실, 밴드 한 팀이 더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신경 쓰이고 에너지가 많이 들거든요. 제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는데, 저는 하는 일이 딱 두 가지예요. 밖에서 비즈니스적으로 얘기하거나 녹음실에서 작업하는 것 둘 중 하나인데, 그래서 만약 내가 지금 당장 쓰러진다면 길바닥에서 죽든지 믹서에 머리 박고 죽든지 둘 중 하나라고 말하곤 하죠. (웃음)

웨이브: 그럼 최다 몇 팀까지 영입하실 예정인가요?
김은석: 열 팀은 넘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리 직원을 써도,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것 같아요. 지금만 해도 밴드들 일정이 안 겹치도록 조율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웨이브: 가장 최근에 트리퍼 사운드로 들어온 밴드 고래야는 어떤 팀인가요? [얼마 전 <탑밴드 2>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사실 인지도 면에선 많이 부족한 편인데, 이 역시 ‘될 성 부른 나무를 떡잎부터 알아보고’ 영입한 케이스인가요?
김은석: 사실 고래야는 기본적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팀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떡잎을 어떻게 키워 만들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흙 속에 파묻힌 보석을 어떻게 세상에 알릴 것인가를 좀 더 고민해야 할 밴드라는 거죠. 더불어 고래야 같은 경우는 음악적 뿌리를 국악으로 하고 있고, 넓게 보면 월드뮤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저희 레이블에 다양성을 불어넣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웨이브: 다양성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면 또 다른 장르, 예컨대 힙합 쪽은 생각이 없으신가요?
김은석: 힙합 분야도 예전에 피타입(P-Type)이나 MC 스나이퍼 같은 뮤지션들의 작업을 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경우에 밴드 음악과는 여러모로 장비나 운영 방식에 있어 달라지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게 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웨이브: 그럼 혹시, 소위 ‘요즘 대세’라 할 수 있는 부류의 포크 쪽은 어떤가요?
김은석: 그쪽은 그다지 생각이 없어요. 오히려 저는 현재 저희 레이블에 없는 분야인 메탈에 관심이 있어요. 그것도 데쓰 쪽이요. 그런데 아직 마땅한 팀을 못 찾았네요. 괜찮다고 생각한 몇 팀은 다른 곳으로 갔고요.

웨이브: 이제 마무리로 가볼게요. 올 가을이면 레이블이 5주년을 맞는데요, 이 정도 해보니 어떤가요? 레이블 운영하는 게 재미있으신가요?
김은석: 네, 재미있어요. 저는 재미를 느껴야 움직이는 타입이거든요. 앞으로도 레이블을 운영하면서 제가 재미없어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만약 재미가 없어진다면 그때는 관두겠죠. 하기 싫은데 그냥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레이블이라는 게, 제 입장에서는 일종의 학교라고 생각해요. 신입생이 들어와서 이곳에 있는 동안 무언가를 배우고, 그 속에서 자기 능력을 키우고, 그렇게 해서 졸업하는 친구도 있을 거고 아니면 학교에 계속 교직원으로 남아 있는 이도 있을 것이고요. 언젠가 어떤 팀은 이곳에서 나갈 일도 분명 있을 텐데, 그때까지는 말하자면, 학교에서 졸업할 때까지 많은 걸 제대로 가르치고 또 배우면서 제대로 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편이에요.

웨이브: 그럼 트리퍼 사운드가 다른 레이블과의 차별성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은석: 우선은 사람들에게 트리퍼 사운드의 팀이라면 괜찮다, 라고 믿게 해줄 만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또한 좋은 아티스트가 좋은 레코딩과 좋은 공연을 보여줄 수 있도록 프로듀싱을 잘하는 것, 결국 그러한 기본적인 부분에 충실해지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자체만으로도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거든요.

웨이브: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국 음악 씬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관찰해오신 입장에서, 앞으로 한국 인디씬에 대한 전망은 어떤가요?
김은석: 우선 수도 많아졌을 뿐더러 기량 면에서도 좋아졌고, 공연이나 음반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작자들의 마인드가 확실히 예전, 그러니까 1990년대는 물론이고 2000년대와 비교해서도 상당히 달라진 것 같아요. 시스템도 이제는 웬만큼 갖춰졌고요. 그래서 이런 물적 토대가 어느 정도 세워졌기에, 앞으로는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할 거라는 기대가 있어요. 사실 2007년 정도만 해도 일본 클럽에 가보면 ‘와, 우리는 언제 저렇게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불과 5년 정도가 지난 지금엔 이제 일본에 가도 ‘야, 저 정도는 밟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요. (웃음)

웨이브: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눈에 띄는 행보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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