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ika – Toki no Kioku(compossed by Kanno Yoko) | Please Save My Earth

 

누군가에게 ‘과거와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의미를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충실하다는 말과,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의 차이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기억을 미화-즉 추억으로 가공하는 건 보존보다는 단절의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과거를 향해 ‘너는 죽었으니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고 선언하는 일종의 사망선고 같은.

“인간의 뇌는 찰흙과 같아서 누르면 형태가 그대로 굳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럼 한 번 뇌에 각인이 되어버린 인간은 그걸 대체 어떻게 극복한다고 생각해요? 위에다 계속해서 다른 정보를 쌓아놓아, 무지막지 뒤섞어버리면 되는 거예요. 무서운 일도 괴로운 일도 그런 식으로 사라지는 거죠. 사실은 결코 지울 수 없지만 그렇게 해서 지층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거예요.” 나루시마 유리의 만화 [소년마법사]에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걸까요?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하자면 사망선고를 한다고 과거가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오로지 인생 초반의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은 인생 전부를 쓰기도 하는 사람이 세상에 없을까요. 심지어 그런 건 드문 삶도 아닐 텐데요.

달에서 혼자 9년을 산 남자가 있었습니다. 달기지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질투에 눈이 먼 동료가 남자에게만 백신을 주사했기 때문이죠. 그 덕분에 혼자 살아남은 그는 6구의 시체에 둘러싸여 9년을 보냈습니다. “자살하면 환생할 수 없다”는 연인의 유언 때문에 죽을 수조차 없었죠. 그의 앞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미래로 나아가라’ 따위의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요. 그의 기억에 미화의 여지란 게 과연 있을까요. 어둠 속에서 간신히 희미한 빛을 찾은 사람이, 갑자기 빛 외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 내던져졌다고 상상해봅니다. 아침에 눈 뜨면 다시 생지옥이 시작되는 9년의 나날과, 그의 몸에 새겨진 절대적인 고독과 공포와 증오를 떠올려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과거와 현재는 연장선상에 놓여야 하는 것인가요. 모르겠습니다. 하기 나름이라는 대답도 납득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의지에 따른 선택의 영역이 아닙니다. 무의식의 프로세스가 어느 쪽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할애하는가 하는,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히와타리 사키의 [나의 지구를 지켜줘]를 15년 만에 정독했고, 그 덕분에 강력한 멘붕에 빠졌습니다.(그래서 원고 늦었다고 변명해봅니다. 반쯤은 사실이고.) 몇 달 전 차우진 씨가 “놀면 뭐해! 웨이브에 글 써!”라고 말하자마자 만화 & 음악 이야기를 떠올렸던 건, 사실 처음부터 이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멘붕으로 고생한 것에 비해, 오랜만에 들어본 스위트피의 노래는 너무 참해서 당황스럽군요. 단지 제3자의 노래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는 시온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환생한 시온은 달기지에서 미쳐버린 이후를 거의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 전생의 꿈속에서 목련꽃에 파묻힌 그의 얼굴에 평화가 충만해있었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궁금해지는군요. 9년의 지옥 속에서 그는 잠시라도, 단 몇 분이라도 행복을 느꼈던 걸까요. 스위트피의 노래는 그 순간을 위한 걸까요. 그렇게 믿어야죠. 악몽에서 깨어난 아침은 언제나처럼 좋았다고 믿어야, 잠들 수 있을 테니.

과거에 사망선고를 하는 건 쓰레기통에 꽃장식이 달린 뚜껑을 덮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 쏟아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는 겁니다. 삶에 익숙해졌다는 말은 뚜껑을 능숙하게 덮을 수 있게 됐다는 말과 같습니다. 삶이란 게 단계적으로 나아지는 걸까요. 오히려 잘게 찢어서 섞어놓은 모자이크에 가깝지 않을까요. 멋있는 사람은 오래된 상처자국도 폼 난다더군요. 그러나 어떤 상처는 조금만 부주의하면 벌어져서, 그날의 고통이 되돌아오곤 합니다. 생생하고도 황량하게. | 최승우_월간 [PAPER] 에디터. 음악과 영화, 스포츠 등에 관해 이런저런 글을 쓰는 중 [email protected] / http://twitter.com/thethawing

ps. 히와타리 사키는 단 한 편의 작품으로 소진되어버렸다. 물론 한참 커리어가 진행 중인 작가에게 이런 단언은 미안하지만, 그녀가 지난 20년 동안 얼마나 기대치에 도달했는지를 돌이켜보면 부정적이다. 네이버에서 각각 ‘히와타리 사키’와 ‘나의 지구를 지켜줘’로 검색해보면 그 차이를 체감할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나의 지구를 지켜줘]가 그만큼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전생 이야기로 유명해진 작가가 정작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엮는 건 감상적인 억지일까. 그렇지만 그녀가 몇 년 전부터 [우연이 남긴 것], [나를 감싸는 달빛]처럼 [나의 지구를 지켜줘]와 혈연관계가 있는 작품에 손을 대고 있는 걸 보면, 그런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스위트피 “달에서의 9년”

아주 먼 옛날 이 땅 위에 살고 있었던 공룡들이
6천 5백만 년 전 갑자기 모두 다 사라지고
쌓여만 가는 바벨탑과 시간들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지켜낼 수 있을지
당신이 대기로 숨 쉬고 있는 곳을
알 수는 없는지
언제 다시 나도 갈 수 있는지

이젠 또 다시 지나간 일들의 반복들
여기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들이라곤
그저 조용히 누워 지구로 향하는 유성들을 바라볼 뿐
내게 시간은 더디 오고

지켜낼 수 있을지
당신이 대기로 숨 쉬고 있는 곳을
알 수는 없는지
언제 다시 나도 갈 수 있는지

 

* 유튜브에 없네요. “달에서의 9년”은 스위트피 1집 [Neverendingstories(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에 실렸습니다. 꼭 들어보세요.

* 이런 곡도 있습니다.  “나의 지구가 죽어간대, 나도 월세 땜에 죽겠는데…”


갤럭시 익스프레스 – 나의 지구를 지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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