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적으로 잉여의 꿈이란 그런 거다. 어디 선선한 데 까라져 있노라면, 공기 중엔 음악이 흐르고 하늘에서 맛난 게 떨어지고 땅에서 거액이 솟아나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는 이도 그러한 심보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 봐서 안다. 한데 어디 세상이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런 걸 누리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비슷한 기분이라면 느낄 수 있다. 꿈결 같은 영국제 싸이키델릭 음악을 들을 때, 바로 그때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선연한 오케스트레이션, 노스탤지어가 생생하게 녹아 있는 가사, 중간 중간 잊힐 만하면 힘으로 밀어붙이는 중후한 연주. 대체로 물 좋은 1960년대산 영국제 싸이키델릭 사조의 음반들은 이런 전형성을 지닌다. 좀비스(The Zombies), 무브(The Move), 허니버스(Honey Bus), 그리고 티렉스(T-rex)의 초기작들이 그렇다.

이렇게 썰을 풀어놓고 저런 거물급의 이름이 아닌 웬 무명의 뮤지션을 소개한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 입장에선 “무슨 짓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건, 이름값은 다소 떨어져도 맛은 지금까지 나열한 썩 좋은 이름들에 비견하여도 꿀리지 않을 만큼 좋다는 것이다.

셔우드 숲(로빈 후드의 본거지였던 그곳)을 배경으로 찍은 신비로운 실루엣의 재킷부터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 앨범은, 영국 노팅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필라모어 링컨(Philamore Lincoln)이 발매한 유일작이다. ‘북풍은 남쪽으로 불었다(The North Wind Blew South)’라는, 어딘지 모르게 하루키풍의 제목부터 장안의 선남선녀들 가슴을 뛰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데, 더욱이 ‘영국풍 싸이키델릭’이라는 점이 타오르기 딱 좋은 세팅으로 여겨지도록 한다.


Philamore Lincoln – The North Wind Blew South

 확실히 영국의 싸이키델릭 사조에는 절제가 있다. 어째서인지 싸이키델릭 음악이란 것은, 남가주 부근에서 머리에 꽃을 꽂은 젊은 남녀가 약이 거나하게 오른 채 파티를 할 때 배경으로 흐르는 컨트리와 블루스 풍의 끝 없는 열여섯 마디가 반복되는 음악 정도로 묘한 클리셰로서 정착했다는 인상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리그가 달라지면 음악도 달라지는 법, 이 앨범의 배경은 극한의 격전지였던 60년대 말의 영국이다. 그것도 메이저 중의 메이저 레이블인 에픽(Epic)을 통해 발매된 앨범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영국의 싸이키델릭 팝을 규정하기 위해선 선연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달콤한 선율의 존재가 필요하다. 물론 훌륭하게 합이 맞는 앙상블도 잊어선 안 되며 나른한 목소리도 더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앨범 중 한 가지가 바로 이 [The North Wind Blew South]다.

앨범의 전반에 배치된 오케스트레이션은 정확히 누가 편곡했는지 적혀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그 완성도만큼은 믹 모스트(Mick Most)라던가 토니 하자드(Tony Hazzard)의 결과물과 비견될 만큼 탄탄하다. 또한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는 콜린 블런스톤(Colin Blunstone)과도 자웅을 겨룰 정도로, 앨범 전반의 멜로디들이 정말 훌륭하다. 게다가 리듬 앤 블루스에 기반하고 있지만 투박하지 않고 세련된 연주를 하는 백밴드의 이름은, 놀라지 마시라, 바로 야드버즈(The Yardbirds)다. 그것도 지미 페이지(Jimmy Page)와 키쓰 렐프(Keith Relf)가 있던 바로 그 시절의 야드버즈다.

풍부한 현악과 몽롱한 리버브로 적셔주는 “The North Wind Blew South”를 필두로, 타블라의 오묘한 그루브가 인상적인 “You’re The One”, 부드러운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해 진행되는 부드러운 포크록 “Early Sherwood”는 영국산 애시드 포크 역사 굴지의 걸작 던칸 브라운(Duncan Brown)의 음악과 합일점을 지니는 노스탤지어를 보인다. 이어지는, 그리고 A면을 닫는 “Rainy Day”의 전반적인 진행이 야드버즈의 명곡 “Tinker, Taylor, Soldier, Sailor”를 연상시키는 것도 잊으면 아쉽다. 여담이지만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가 개봉했을 때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elesias)의 “La Mer”만 인기를 끌어 야드버즈의 팬으로서 조금 섭섭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영화에 삽입된 훌리오 형님의 훵키한 버전은 올랑피아 극장 실황 버전이다.

 

이어지는 B면의 시작은 그 유명한 “Temma Harbour”다. 브리티시 팝의 클래식 중 한 곡인 바로 그 노래다. 메리 홉킨(Mary Hopkin)의 버전으로 흥했지만(UK 6위/US 38위) 원곡은 이 필라모어 링컨의 버전이다. 키쓰 렐프의 블루스 하프와 육중한 기타 솔로가 춤을 추는 “The County Of Delight”의 흥도 좋고 “Temma Harbour”에 필적할 만큼 달콤한 “When You Were Looking My Way” 또한 인상 깊다.

이 앨범은 분명히 싸이키델릭 팝/애시드 포크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이다. 팝적으로 세련되면서도 포크의 단아함과 전통적인 부분의 현대적 재해석 역시 지니고 있다. 노스탤지어와 휴식을 보장하는 이 앨범이라면, 이루기 힘든 잉여의 꿈도 잠시나마 가능할지 모르겠다.

앨범은 영국에서 녹음됐지만 오리지널 프레스는 US Epic에서 나온 것이 오리지널 앨범이고, 몇 해 전 미국에서 LP가 재발매됐는데 여러 정황으로 미뤄보아 부틀렉일 가능성이 높다. 오리지널의 카탈로그 넘버는 ‘26497’이며 CD의 판본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또한 발매 당시 CBS UK에서 7인치 포맷의 싱글 “You’re The One/Country Jail Band”가 발매됐으며, 앨범이 나오기 전인 1968년에는 “Running By The River/You’re The One”을 담은 싱글을 한 장 낸 적이 있는데 이 싱글이 상당한 수집가용 아이템이다.
| 박주혁 [email protected] / Bandiera Music A&R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