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와 ‘인간 존재의 고찰’이라는 테마는 이제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진부하기 짝이 없는 레퍼토리다. 그만큼 크고 깊은 화두라서 줄곧 되풀이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포장지와 제목만 바꾼 채 줄을 서 있다. 빈약한 상상력만 탓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그날이 오기 전에 죽을 것이고, 그 질문에는 철학자도 과학자도 성직자도 쓸 만한 답을 내준 적이 없다. 답 안 나오는 질문에 끝없이 천착하다가 나중에는 질문하는 행위 자체가 스타일이 되어버리는 건, 글쎄, 중2병 증세와 꽤나 흡사한 구석이 있다(그런 뜻에서 ‘좋은 게 좋은 거’ 라고 말하는 사회적으로 완성된 어른들은 얼마나 슬기로운지).

[총몽]이 2012년에 나왔더라면 이런 소리 듣기에 알맞았을 것이다. 앞서 말한 작품 군에서 [총몽]이 독보적인 흔적을 남겼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일단 작품으로서 허점이 많다. 솔직히 이 이야기가 달랑 9권에 때려 넣을 스케일이던가. 최소한 15권에서 20권 즈음에서 마무리가 됐더라면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깔끔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성의 있는 작화와 괜찮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연출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총몽]을 읽다보면 숨이 넘어갈 듯한 기분이 되곤 하는데, 씬과 씬 사이의 연결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업 템포’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리듬이 망가지고 캐릭터의 매력도 죽어버린다. 나쁘게 말하면 갈리는 그냥 전형적인 미소녀 액션 히로인이고, 노바 박사는 전형적인 미친 천재 악당이며, 다른 캐릭터들은 아예 평면적이다. 유키토 키시로가 연재를 시작할 당시 20대 초반에 불과했고, [총몽]이 장편 데뷔작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듯. [총몽]은 일본 만화계의 관례적 표현으로 ‘왕도'(한마디로 잘 팔리는 주류 만화란 뜻이다)와 ‘사도'(왕도와는 정반대의 개념이다)의 경계에서 갈팡질팡한다. 젊은 작가는 편집부에서 원하는 소년물스러운 SF 배틀 코믹과 자신이 그리고 싶은 고딕 다크 판타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22년 전에 연재됐다는 걸 감안하면, [블레이드 러너] 이후의 세대에서 여러 가지로 교과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겠다. 특히 흥미로운 건 선택받은 우성인종이 통치하는 ‘자렘’과 다양한 인종이 복작대는 ‘고철도시’의 설정이다. 고철도시는 폐기물 처리와 재생산을 산업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자렘’ 입장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특별 관리대상이다. 일종의 교역통로 및 쓰레기 매립지로서 쓸모가 많기 때문이다. 자렘과 고철도시의 관계는 종속적이지만, 자렘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고철도시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런 체제는 몇 백 년에 걸쳐 굳어져서 구성원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또한 고철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으며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유흥이 도박성 격투 스포츠이며, 그 배후가 자렘이라는 것은 더 볼 것도 없이 파시즘식 우민정책이다.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모습만 달리한 채 이어지고 있는 착취-피착취 사기극의 토착화 과정과 구조를, [총몽]은 간단한 도식으로 보여준다. 결국 기생에서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점이 그거다. 숙주를 가능한 오래도록 신선한 상태로 살려두는 것.

자렘인들은 성인이 되면 뇌를 들어내고 머릿속에 작은 칩을 삽입하는 성인식을 치른다. 이는 단순히 하드웨어적인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공각기동대]의 TV판에서 등장하는 기억의 공유, 인간의 ‘병렬화’와 같은 맥락이다. [공각기동대]에서 등장하는 ‘Stand Alone Complex(병렬화가 된 사람들이 점차 하나의 개체로 존재하는 걸 두려워하는 현상)’는 이런 테마가 한걸음 더 확장된 표현형이다. 다만 그런 현상의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단지 통제하기 쉬워서라든가, 미친 천재의 터무니없는 계획이라든가 하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게 너무 많다. 어쩌면 인간이 만드는 모든 시스템의 목적은 개체를 부정하는, 합리적이고 단순한 획일화로 흐를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병렬화’와 ‘Stand Alone Complex’는 굳이 전뇌화나 칩 이식이 아니더라도 이미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고, 한국이라는 땅은 그 속도에 있어서는 거의 F1 수준이다. 나와 당신이 살고 있는 이 땅-특히 온라인-에서 정보의 기형적 공유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라. 이해가 쉬울 것이다.

 

뻔하지만 진짜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 하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와 똑같아지는 게 과연 가능할까. 나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인간의 감정이 학습에 따른 조건반응이 아니라는 근거가 없다면, 결국 핵심은 경우의 수에 따른 선택으로 좁혀진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는 이 질문에 대해 ’60억 개의 인격과 감정을 시뮬레이션하고 나면 완벽한 인공지능이 탄생한다’는 요긴한 일화를 알려준다. [총몽]에도 비슷한 장면이 잠깐 등장한다. 노바 박사가 사이코매트리 능력을 지닌 아들 케이어스에게 온갖 인간의 기억을 강제로 ‘먹이는’ 장면이다. 어쩌면 체스 세계 챔피언이 컴퓨터에게 처음으로 진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상징적인 사건인지도 모르겠다.


Yes – Big Generator (Live in Houston 1988)

[총몽]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사람 머리를 전구 소켓 모양으로 만들어서 싸울 때만 전투용 바디에 끼워 내보내는 ‘소켓 병사’의 모습이었다. 처음 본 게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어린 눈에 그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쇼킹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으로 임팩트가 강했던 건 갈리가 모터볼을 그만두고 갑자기 뮤지션으로 변신, 바에서 건반을 치며 노래하는 장면이다(이 만화에서 몇 안 되는 평화로운 씬이 아닌가 싶다). 10년쯤 지나서 [총몽]을 다시 펼쳤을 때 그 노래가 예스(YES)의 87년 곡 “Big Generator”라는 걸 알고 살짝 전율을 느꼈다. 로킹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루브를 타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사람을 묘하게 긁는 불협화음이 작품 전체와 퍽 어울렸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 장면은 유독 잊히지 않는 한 컷으로 머릿속에 남았다. | 최승우_월간 [PAPER] 에디터  [email protected] / http://twitter.com/thethawing

ps. 참고로 <총몽>에는 이 곡 외에도 음악이 꽤 많이 등장한다. 미처 모르고 지나친 분들은 다시 찾아보시고, 음악도 들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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