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 인디 씬에 등장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여름, [문화과학] 제 58호에 쓴 글이다.

 

레코딩, 커뮤니티 그리고 ‘여성’ 싱어송라이터들

 

0. 인디 씬의 주목할 만한 변화

지난 몇 년 간 한국 대중음악계의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는 인디 씬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던 음악들이 전에 없이 대중적인 관심을 얻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홍대 앞을 근거로 형성된 인디 음악 씬은 지난 10여 년간 나름의 족적을 남기며 꾸준히 성장해온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몇 년 만큼 이 씬에 대한 관심과 성과가 두드러진 경우는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브로콜리 너마저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대중적인 돌파는 그런 일련의 현상들에 대한 상징적인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인디 씬 내부에서 벌어지는 변화들은 주류 매체에 의해 감지되는 것보다 더 활발히 분화하고 있다. 단지 몇몇의 스타들이 등장한다고 인디 씬이 ‘활성화’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이 씬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변화에 대한 몇 가지 예가 있다. 우선 기존에 장르적으로 구획되던 커뮤니티들이 탈-장르화되며 다양한 장르를 실천하는 음악가들이 보다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2009년 초에 발매된 휘루의 <민들레 코러스>는 해금 연주자인 그녀를 중심으로 신선한 사운드를 선보인 앨범이었는데 여기에는 크라잉넛의 기타리스트인 이상면이 참여했다. 2009년 초에 발매된 흐른의 1집 <흐른>에는 로로스와 그림자궁전, 일롭의 멤버들이 참여했다. 그 외에도 롤러코스터의 보컬리스트였던 조원선의 솔로 앨범에는 신윤철이, 어쿠스틱 기타로 노래하는 양양의 싱글에는 임주연이 참여하며 씬의 생산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은 보다 직접적으로, 동시에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디 씬의 현재적인 변화에 대한 두 번째 예도 이런 현상과 밀접하다. 바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여성 음악가들은 최근 몇 년간 활발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인디 씬이 형성되고 분화되던 1996년부터 2002년 사이에 여성 보컬리스트들을 앞세운 밴드들이 대거 등장했고, 그에 따라 인디 씬과 여성(적 감수성)의 관계/역할에 대한 주목도가 상승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혼자 노래하는 여성 음악가들’이 대거 등장한 예는 찾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이런 현상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 음악가들의 등장이 음악 산업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것은 인디 씬 내부의 성숙도와 홍대 앞이라는 공간이 대중들에게 수용되는 방식의 변화와도 밀착되어 있다. 다시 말해 현재 한국 대중음악 환경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등장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수만큼 그들이 차용하거나 재현하는 장르나 스타일도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포크, 록, 팝, 일렉트로닉 등의 장르에서 때론 밴드로, 때론 솔로로 활동하는 그녀들은 비판과 호평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결과에 대한 평가 이전에 그런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 이 글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에 대한 평가보다는 그 현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바람이라면 이 글이 그에 대한 사소하지만 의미심장한 의견이 되는 것이다.

1. 2009년 현재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차이들

글을 이어가기 전에 먼저 ‘여성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용어 자체가 문제적이라는 걸 인정한다. 특히 대중문화 안에서 젠더는 꽤 복잡하고 은밀하게 작동하는 바, 싱어송라이터 앞에 붙은 ‘여성’이란 말이 주체의 정체성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남성 싱어송라이터들과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적 실천 방식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음악적 실천에는 자아와 내면에 대한 시선이 더 강하게 작동했다는 점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용어는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등장과 더불어 개별 음악가들의 차이와 분화에 대한 글을 지향하기 때문에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둔다.

2008년과 2009년 상반기 중에 발매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반들 중에서 주목할 만한 앨범들은 요조, 타루, 한희정, 시와, 임주연, 장윤주, 지선, 조원선, 흐른, 루네, 오지은, 양양 등의 앨범들이다. 더불어 허민과 하임, 황보령과 박강수, 박지윤 등은 장르와 스타일에 있어서 언급할 만하다. 이 중에서도 요조의 <Traveller>, 한희정의 <너의 다큐멘트>, 장윤주의 <Dream>, 흐른의 <흐른>, 오지은의 1집과 2집, 황보령의 3집 <Shines In The Dark>과 박지윤의 <꽃, 다시 첫 번째>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요조는 허밍어반스테레오의 보컬리스트로,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객원 보컬로 유명세를 얻으며 인디 씬에 스타덤을 형성시키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만큼 비판과 지지가 양가적으로 작동하는데 주로 ‘지나치게 팬시하다’는 것이 비판의 근거고, ‘일상의 감수성에 충실하다’는 것이 지지의 근거다. 개인적으로는 비판과 지지를 떠나 요조는 인디 씬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건 음악 때문이 아니라(물론 그녀는 초등학교 음악시간에나 쓰던 멜로디언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악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환기시키기도 했지만), 요조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과 홍대 앞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청년문화 혹은 대안문화의 산실로 여겨지던 홍대 앞이 예쁜 카페와 사진 찍기 좋은 골목들이 있는 공간으로 수용되며 그 의미가 변화한 시점이 요조의 스타덤이 형성된 시점과 겹친다는 사실 역시 의미심장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한희정도 인디 씬의 대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여겨진다. 다만 한희정은 요조만큼 팬시하지 않다는 게 차이다. 대신 그녀는 주류 밴드였던 더더의 보컬리스트에서 인디 밴드인 푸른새벽의 멤버로 전환했다는 사실과 그 음악적 성과가 비평적으로도 대중적으로 호의적이었다는 점 때문에 스타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기존의 여성 음악가들이 천착한 내면의 자아를 더 어두운 톤으로 응시한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솔로 1집에서는 다소 밝아진 톤이라는 평을 받았다. 여기서 짚어야할 점은 한희정과 요조가 인디 씬에서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파스텔 뮤직에 소속된 음악가들이란 사실이다. 파스텔 뮤직 역시 상반된 평가를 얻고 있다. 소위 ‘팬시한 음악의 메카’ 정도로 여겨지며 인디 씬의 대중화에 기여하거나 질적 하향평준화를 주도했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파스텔 뮤직을 관통하는 것은 ‘서정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홍대 앞이 ‘팬시한 문화 공간’으로 변화한 것과 적절하게 맞물려 파스텔뮤직과 한희정, 요조의 스타덤을 형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인디 음악가라는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도 있다. 2008년 초에 발매된 오지은의 1집은 모금을 통해 제작된 앨범이다. 그녀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무작정’ 올린 모금계좌로 제작비를 모은 뒤에 제작된 1집은 입소문으로만 판매되다가 각종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성공했다. 그녀 자신의 레이블 사운드니에바를 운영하면서도 2집은 해피로봇에서 발매한 오지은은 1집에서는 어쿠스틱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2집에서는 하드록에 근접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반전을 이뤘다. 오지은의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가사다. 대부분의 싱어송라이터들이 그렇지만 오지은의 경우에 가사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그것이 보다 직접적으로 자의식과 자존감, 취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의 이성, 나의 이론, 나의 존엄, 나의 권위”(‘화’, 1집)를 노래하다가도 “새삼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이대로 좋구나”(‘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1집)라고 노래하는 그녀는 “가끔씩 머리를 쓰다듬어줘, 그러면 난 너의 귀를 파줄게”(‘웨딩송’, 2집)라고 고백하거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마음을 사랑하는 건 아닌지”(‘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2집) 의심하기도 한다. 여기에 “대인배가 되고 싶어”, “새침은 더 이상 떨지 말고”(‘인생론’, 2집) 라는 세계관이 더해져 오지은의 스타일이 드러난다. 그것은 기존의 감수성 예민한 노랫말들과는 다른 지점이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여성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 일상에서 사용되는 ‘21세기적’ 단어들을 통해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로 구성되어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그러나 요조나 한희정, 오지은은 모두 정서적으로는 여성적 감수성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것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이 지칭하는 특정한 스타일과도 같다. 그런 점에서 흐른의 데뷔 앨범은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그런 틀을 벗어날 때 창작자로서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녀는 다른 가수들처럼 자기 체험을 노래하지만 그 형식이나 방식은 꽤 다르다. 솔로 음악가보다는 밴드 구성의 음악 스타일, 어쿠스틱보다는 전자음과 록 음악이 결합된 사운드, 그리고 개인의 내면보다는 경험의 확장에 주목하는 노랫말이 그렇다. 영국으로 떠난 어학연수의 경험에 기반한 ‘어학연수’가 어쿠스틱한 감수성에 기대어 있다면 뿅뿅거리는 신스팝에 이식된 관계의 근원적 질문은 ‘누가 내 빵을 뜯었나’와 ‘Global Citizen’에 이식되었다. 특히 ‘Global Citizen’은 “국제뉴스 면에선 온통 만물이 죽어가, 나는 대한민국에서 케냐산 커피를 마셔”라는 가사로 취향의 정치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흐른은 기존의 여성적 감수성에 편입되지 않는 노랫말과 사운드로 다른 경험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와 비슷하게 황보령이 거둔 성과도 만만치 않다. 그녀는 2009년에 세 번째 앨범 <Shines In The Dark>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2003년에 발매된 2집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밴드의 멤버로 만든 앨범이다. 90년대 말, 인디 씬에서 김윤아, 남상아와 자주 거론되던 황보령은 사실 그녀들과는 별개의 정체성을 가진 음악가였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던 정체성과 음악보다는 미술에 근접한 정체성이 그녀를 쉽게 해석할 수 없는 창작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3집 앨범은 그 복잡함이 제법 선명하게 정리된 앨범이기도 하다. 인상으로만 보면 1집보다 일관되고 2집보다 세련되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총체적으로 ‘도시적’이다.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황보령의 노래에서는 ‘도시를 횡단하는 낙타’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도시’와 ‘낙타’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충돌하는 순간이 그 음악에는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황보령의 음악은 한국(을 비롯한 변방)의 대중음악을 해석할 때 으레 언급되는 영국식, 미국식, 혹은 한국형 발라드/록 같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흐른과 황보령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저지르는 비평적 한계에 대해서 새삼 환기시킨다. 그것만으로도 이 둘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앞서 언급한 음악가들과는 별개로 주류 음악계와 음악 커뮤니티에서도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등장이 있었다. 특히 2009년에 그런 시도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주류 매체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 전성시대’같은 카피를 뽑아내기 좋은 환경이었던 게 사실이다. 패션모델로 활동하는 장윤주의 데뷔앨범 <Dream>과 박지윤의 통산 7집 <꽃, 다시 첫 번째>는 상징적이다. 장윤주의 앨범은 한국보다는 뉴욕의 인디 씬에 더 근접하다. 홍대 앞보다는 청담동 가로수길(물론 그 둘의 경제적/취향적 차이는 사실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공간적 차이는 여기서 중요하다)을 근거로 하는 장윤주는 홍대 앞의 인디 커뮤니티 내부에서 생산된 여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반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지지만, 그녀가 재현하는 음악적 취향이나 성과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장윤주의 앨범은 흐른이나 황보령, 오지은의 앨범보다 더 소박하고 더 어쿠스틱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것이 음악가로서 장윤주를 이해하는데 주요하게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장윤주의 데뷔 앨범은 잘 다듬어진 사운드와 일상적인 노랫말로 가득하고, 비평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앨범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게 그녀가 음악을 하고자 마음먹고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녀가 패션과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는 에스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도 시사적이다. 장윤주의 앨범의 등장과 성공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시장을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박지윤의 복귀 앨범도 마찬가지다. 전 곡을 그녀 혼자 작업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앨범을 홍보하는 문구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첫 걸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2009년의 한국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여성 음악가’의 아우라가 시장성을 형성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간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들의 등장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그 시장을 통해 상업적 이윤이 발생하고 산업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다.

2. 가시적인 변화들: 음악 환경과 커뮤니티 공간

이즈음에서 궁금한 것은 ‘왜 하필 지금?’이라는 질문이다. 다소 선정적이지만 필연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무엇이 그녀들로 하여금 음악을 하도록 만들었냐는 질문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다. 앞서 언급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은 모두 70년대 후반, 80년대 이후 출생한 음악가들이다. 그녀들은 9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내며 IMF를 겪었다. 이해찬의 교육정책의 직접적인 당사자였고 초고속 광통신이 개통되었을 때 20대에 진입했다. 보통의 음악가들이 20대에 음악 생산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mp3가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고 마이스페이스닷컴이 한국에 진출한 최근의 음악 환경의 변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이런 체험의 차이가 앞서 언급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을 90년대의 여성 음악가들, 이상은이나 김윤아, 장필순, 임현정, 혹은 박기영 등과 동일한 선에서 비교할 수 없게 만든다.

이들의 차이는 명백하게 환경의 변화로부터 발생한다. 90년대의 음악가들이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던 길이 기획사에 편입되거나 게토화된 언더그라운드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되는 것 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보다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졌다. 오지은을 비롯해 양양, 시와 등의 여성 음악가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직접 음반을 제작하고 공연과 인터넷을 병행하며 자신의 음악을 알린다. 무엇보다 이들이 직접 음악을 만들고 배급하는 인디 시스템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레코딩 방식의 변화다. 90년대 말부터 소개된 홈 레코딩은 하드웨어의 가격 하락과 소프트웨어의 발빠른 배급(혹은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한 p2p의 확산)으로 약간의 지식과 노하우로도 음반 제작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었다. 이런 환경적 변화는 특히 음악을 하려고 마음먹은 여성들에게 좋은 기회로 작동한다. 기존의 홍대 앞 인디 씬이 밴드 중심의 커뮤니티였고, 그러므로 여성들이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밴드의 멤버를 선택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밴드의 구성원이 되었을 때 감수해야할 악조건-심야에나 가능한 귀가와 잦은 술자리, 경우에 따른 합숙과 혼숙, 가족(혹은 남자친구)의 반대-등은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대안적으로 고려할 만한 여성 밴드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저렴하고 간단한 레코딩 방식의 등장은 그런 상황을 굳이 감수하지 않아도 충분히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그런 방식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가능성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홈 레코딩의 기술적인 발전은 21세기에 활동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지속가능성을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요인이 된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성장한 온라인 음원 시장과 블로그, 미니홈피를 기반으로 하는 사이버 상의 소셜네트워크가 기존과 전혀 다른 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앨범이 아니라 음원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메이저 환경의 배급력이 없어도 입소문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수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대중적 감수성, 혹은 공감이다. 대중음악(혹은 문화) 시장의 실수요자들이 20~30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등장과 성공은 살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마이스페이스닷컴과 같은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한 배급 환경’은 일반적인 음악가들을 비롯해 마이너한 장르나 스타일을 재현하는 음악가들에게도 대안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여성 음악가들에게 거의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글로벌한 시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여성이 진입하기 어려운 시장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게 할 수 있다. 해외로 진출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환경적 변화 때문에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은 본격적으로, 활발하게,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활동할 수 있다. 그녀들의 등장이 음악 산업의 변화와 함께 필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역시 마찬가지다.

제작 환경의 변화만큼 공간의 변화도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이들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은 홍대 앞이다. 홍대 앞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 커뮤니티는 그 동안 다양하게 분화하며 10년 전과는 달리 장르나 스타일, 혹은 다른 여러 가지 근거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특화된 레이블과 소속과 상관없이 구성되는 네트워크가 여전히 홍대 앞을 근거로 공유된다. 여기에 현재 한국에서 홍대 앞이 청년문화와 카페문화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홍대 앞이 유명해지면서 이 공간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의미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홍대 앞=인디 씬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의미가 분화된 셈이다. 누군가에게 홍대 앞은 예쁜 카페가 있는 곳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춤추러 가는 곳일 수도 있다. 주로 여성들에 의해 소비되는 홍대 앞의 문화 공간과 유무형의 경험들은 이곳을 근거로 활동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존재를 더 직접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은 주로 여성들에 의해 소비되는데 그들에게 홍대 앞과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은 거의 동일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지속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단지 레코딩을 비롯한 음악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홍대 앞의 변화와 여성 수용자들의 높은 점유율 같은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변화와 같은 맥락에 있다는 얘기다.

3. 여성, 싱어송라이터: 자기 목소리 갖기

현재 한국에서 다수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 뿐 아니라 대중문화 산업의 전반적인 변화에 의한 결과다. 그래서 지금 그녀들을 살펴보는 것은 기존의 여성 음악가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또한 여성주의적 관점이 지배적일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가 되어서도 곤란하다. 싱어송라이터는 자신의 노래를 자신이 만들어 부른다는 점에서 개인의 경험을 창작의 근원으로 삼는다. 따라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에게 몸을 통한 경험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몸을 통해 경험될 수밖에 없는 문제고 그런 점에서 여성이라는 자각은 어떤 방식으로든 노랫말과 사운드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것을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을 해석하는 전통적인 관점이라고 보자면, 앞서 언급한 음악가들은 그 틀을 깨야할 때가 왔음을 시사한다. 혹은 적어도 그들을 해석하기 위한 방법이 그것 뿐만은 아니라는 것을 환기시킨다. 이 글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이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굉장히 다른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녀들에게 세계는 이제 몸이 아니라 몸의 확장을 통해 수용되는 환경이다. 90년대부터 지속되어온 한국 대중문화의 변화, 지난 10여 년간 축적된 인디 씬의 변화, 또한 한국 경제의 몰락을 통해 개인이 경험한 정신적, 육체적 변화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감각과 경험의 확장 등이 그녀들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근거다. 이렇게 말하는 게 섣부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의미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그녀들의 노래가 그것을 증명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여성 음악가들을 기존의 여성 음악가들을 이해하던 틀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어김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거듭해서 그녀들을 오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비로소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은 재고되어야한다. 앞으로 그들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고, 그때마다 다른 감수성으로 혹은 다른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노래할 것이다. 천천히 그러나 명확하게 이뤄지는 변화들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일은 본인들만큼 재미있진 않겠지만(어떤 비평도 창작보다 재미있을 리 없다) 좋은 일은 될 것이다. 더 많은 여자들이 기타든 뭐든 악기든 뭐든 가지고 자기 노래를 함부로 부르는 때야말로 좋은 세상이라고 믿어도 좋다. | 차우진 [email protected]

note: 2009 여름. [문화과학] 58호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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