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악귀 – 카페 작업 블루스, 뮤직비디오

붕가붕가 레코드의 컴필레이션 [블루스 더, Blues]에는 몇몇을 제외하곤 낯선 이름과 음악들이 담겼다. 강허달림, 로다운30, 조이엄, 림지훈, 깜악귀, 강산에가 그나마 낯익은 이름이라면 김대중, CR태규, 김마스타, 하헌진, 전성기, 김태춘 등은 낯설게 느껴질 만하다. 한편 빅 베이비 드라이버의 데뷔 앨범이나 직접 판매를 고수하는 하헌진의 블루스 앨범들, 혹은 김일두-김대중-김태춘의 [삼김시대]나 깜악귀의 [기타 트윈스] 공연, 혹은 [하헌진x김일두] 스플릿 앨범 등이 인상적이었던 사람에겐 오히려 이 조합이 어색할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이 앨범의 등장 자체다. 이 앨범은 그 전까지 없던 블루스를 갑자기 출현시켜서가 아니라, 수년 동안 ‘한 잔의 룰루랄라’, ‘아메노히’ 같은 카페(물론 더 있을 것이다)에서 공연의 형태로 틈틈이 벌어지던 저변의 흐름을 최초로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때의 키워드는 ‘카페 공연’과 ‘싱어송라이터’다.

[블루스 더, Blues]가 표방하는 것은 ‘지금 여기의 블루스’다. 붕가붕가레코드에서 작성한 보도 자료 일부를 옮겨본다.

“이 앨범에도 장르적 정의에 꼭 들어맞는 블루스가 있는가 하면 ‘감각적으로 블루스’인 경우도 있다. 하헌진, 김태춘, 강산에 등의 뮤지션들은 가장 고전적인, 1930년대 미국 델타 블루스를 선보이고, 김마스타는 산타나와 나훈아 사이 어딘가에 놓인 카바레 풍 블루스를 선보인다. 게이트 플라워즈의 기타리스트 조이엄은 뜨거운 록 블루스 연주를 보이는가 하면 로다운 30는 1950년대 시카고 스타일 블루스를 능청스럽게 연주한다.”

이 대목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건 하헌진과 김대중, 김태춘, 강산에가 충실히 재현하고 있는 ‘델타 블루스’다. 앨범의 정체성을 좌우한다고 여겨질 만큼 다른 수록곡들과 차이가 선명한, 신선하고 낯선 음악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강산에를 제한 세 명의 음악가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델타 블루스를 자신의 음악적 토대로 삼았다. 하헌진의 [지난 여름]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이 블루스는 ‘한국에서 뿌리가 부재한, 에미 애비 없는 천애고아의 블루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음악의 등장에는 유튜브가 중요한 채널이 되었다. 음악의 취향뿐 아니라 무엇보다 테크닉이 우선되는 델타 블루스의 연주를 직접 보면서 훈련하고 연습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애초에 UCC 동영상 컨텐츠를 수집하는 사이트로 시작된 유튜브가 글로벌한 음악 전문 채널의 지위를 얻게 된 맥락은 다른 글(한 시대의 분기점: “강남 스타일”과 유튜브)에서 다루겠지만, 아무튼 앞서 언급한 21세기 한국의 인디 음악가들이 블루스를 접하고 훈련하며 창작곡을 만든 배경에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한 명의 팬이 음악가가 되는 과정’, 요컨대 씬의 질적 변화를 고민할 때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벨로주 시즌1. from [Dark Tranquillity] http://blog.naver.com/esthero

이런 전제를 두고 다시 먼저의 키워드인 ‘카페 공연’과 ‘싱어송라이터’로 돌아가 보자. 지금은 당연히 여기게 되었지만, 사실 홍대앞 카페들에서 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물론 오래 전부터 작은 바(bar)나 카페에서 소규모 공연이 진행된 적은 있지만 ‘붐’이라고 할 만큼 전개된 건 2008년부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카페 ‘벨로주'(시즌1)가 매주 연 정기 공연과 동영상이 나름의 인기를 끌면서, 또한 비슷한 시기에 거리 공연이나 카페 공연을 영상으로 담은 라비아 쇼, 렉 앤 플레이, 오프비트, 팔도 어쿠스틱 등이 등장하면서 홍대앞의 카페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작은 공연을 기획했고, 음악가들도 라이브 클럽이 아닌 곳에서 공연을 실천할 수 있었다.

이런 붐에는 몇 가지 맥락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외적 변화, 홍대앞이 카페들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 변화, 밴드만큼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점이다. 홍대앞에 카페가 늘어난 외적변화에는 ‘된장녀’라는 말이 등장한 2005년을 전후로 커피 붐이 일어난 맥락이 존재한다. 홍대뿐 아니라 전국구에서 프렌차이즈 커피점을 비롯해 중소 규모의 카페들이 대거 늘었지만(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5년 사이(2006-2011) 국내 커피 수입액은 3배나 늘었고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성인 1명당 338잔이라고 한다) 홍대앞의 카페들은 공급자나 수요자 모두 ‘남다른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욕망’과 결합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음악과 미술, 전시와 만화 등 전방위의 문화 공간으로서 홍대 앞이 갖는 상징과 커피 붐이 결합한 결과인 셈이다. 마침 고건 전전 서울 시장이 추진하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실행에 옮긴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개발 계획이 공항철도와 맞물려 서울시 최대 규모의 재개발 공사로 확정된 2002년 이후, 홍대앞은 문화 공간으로서의 특이성과 잠재적 초대형 상권이 결합해 부동산 붐에 휘말리기도 했다(이것은 홍대앞의 질적 변화를 전반적으로 촉발시켰다). 한편 싱어송라이터가 늘어난 내적변화에는 음악을 시작하는 데 있어 공동체적 갈등을 감수해야 하는 밴드보다 1인 체제의 음악을 실현하도록 도운 기술 발전(컴퓨터 하드웨어와 레코딩 프로그램의 가격인하, 악기 커뮤니티의 활성화 등)과 단체 활동보다는 개인적 감수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세대의 정서 변화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여기에 대해서는 2009년에 쓴 “레코딩, 커뮤니티,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을 참조할 수 있다). 최근 5년간 개인의 앨범 발매가 늘었고, 밴드 멤버들의 솔로 활동도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이와 연관해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강산에 – 트위터 블루스, [블루스 더, blues] 공연 @한잔의룰루랄라

이때 ‘델타 블루스 음악가들’이 싱어송라이터의 맥락에 포함된다는 걸 떠올릴 필요가 있다. 종종 ‘홍대앞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은 ‘통기타 포크’와 같은 뜻으로 여겨지는데, 그만큼 포크 기타를 사용하는 솔로 음악가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슈퍼스타 K] 시즌2에 출연한 장재인이 스스로를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한(그만큼 싱어송라이터가 보편화되었다는 점에서) 2010년 정도엔 이미 ‘포화’ 상태로 생각될 정도였는데, 카페 ‘비하인드’가 스노우캣과 함께 인기를 얻은 2004년 이후 꾸준히 늘어난 카페들이 공연을 시작한 시점과도 엇비슷하게 겹쳐진다. 김대중의 경우는 앨범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하헌진보다 먼저 델타 블루스를 시작했다고 알려졌고 김태춘도 마찬가지라고 했을 때, 델타 블루스 음악가들의 등장은 싱어송라이터들의 포화 상태와 연관해 생각할 수 있다. 요컨대 정형화된 음악이 대거 재생산되는 상황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무의식적, 혹은 전략적으로 ‘다른 음악’을 선택하도록 자극받았다면, 그때 음악가 자신이 호기심을 느끼고 감각을 환기하는 과정에서 ‘테크닉’이나 ‘감수성’에서 차별적인 델타 블루스가 포착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카페 벨로주의 박정용 대표나 블루스 연주자/작곡가인 박형(김대중의 “300에 30″을 만들었다)과 몇 차례 나눈 대화에서도 재차 확인한 것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블루스 더, Blues]가 지목한 ’21세기 한국의 블루스’란 흐름은 ‘홍대앞의 싱어송라이터와 카페 공연 붐’이란 맥락에서 이해될 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맥락에서 이 점은 빅 베이비 드라이버(Big Baby Driver)의 [Big Baby Driver]와 하헌진의 [개], [지난 여름]처럼 델타 블루스를 표방한 앨범들이 2011년에 동시적으로 등장한 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전제기도 하다. 여기에는 공간과 시장, 그리고 악기와 감수성, 공동체가 모두 작동한다. 이른바 ‘씬’의 내부에서 발생한 흐름이 안팎으로 여러 요소들과 결합하거나 충돌하며 어떤 방식으로 진화, 발전할지 기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록 음악의 뿌리’라는 점에서 블루스에 주목하는 이런 경향은 음악의 주체들: 음악가나 레이블을 비롯해 수용자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동할 것 같다. 적어도 그게 무엇이든, 꽤 흥미로운 순간들을 목격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 차우진 [email protected]

 

덧붙임: 기타의 역사와 블루스

흔히 블루스는 ‘길 위의 음악’으로 불린다. 애초에 노예에서 소작농으로 지위만 바뀌었을 뿐 고된 삶에는 큰 변화가 없던 미국 흑인들의 음악으로 시작된 블루스는 그만큼 삶의 음영과 질곡을 담아온 장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블루스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두가 즐기는 음악이 되긴 했지만 거기에 ‘인생’이 담긴다는 점에선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이 ‘길 위의 음악’은 또한 말 그대로의 뜻이기도 했다. 기타의 역사를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유럽에서 발명된 기타는 그 탁월한 표현력과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음량 부족이란 이유로 오케스트라 편성에 들지 못했다. 귀족적 음악양식에서 소외된 기타는 편리한 휴대성 때문에 중세 유럽의 천민들과 집시 공동체의 악기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가난한 자들의 악기가 되었다. 미국에 도착한 기타는 원래 양 창자를 꼬아 만든 기타 줄을 쇠줄로 바꾸고 네크를 좁게 만들어 화음 연주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개량되었다. 통칭 통기타, 혹은 포크 기타로 불리는 이 웨스턴 스타일의 쇠줄 기타는 금속성 소리를 기반으로 보다 다양한 표현의 피킹 주법뿐 아니라 장거리 이동도 더 수월해졌다. 재즈, 블루스, 록으로 이어지는 현대 대중음악의 역사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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