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고민하고 [weiv] 멤버들과 공유하는 얘기는 ‘음악 글 팔아 먹고 얼마나 살 수 있을까’다. 이걸 생계적 문제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이 가리키는 건 음악 비평(가)의 역할과 한계다. 이 걱정이 단지 ‘음악 글 팔아 빚 안지고 살고 싶다’는 데 국한되지 않는 이유는 지금 하고 있는 걸 어쨌든 더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건 경제적인 걸 넘어서는 문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음악 비평(가)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이 고민하고 있다(‘지나치다’는 건 여러가지 이유인데 여기서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2005년 6월, 그러니까 이미 4년 전에 최민우 편집장은 에디터스 노트에서 [비평의 위기와 비평적 위기]에 대해 썼다. 그 글의 테마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위기가 기회’란 말이 될 것이다. 인상적인 건 “…비평에서 벌어지는 위기는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다른 위기를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계기…”란 부분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비평은 독자와의 긴장이 아니라 비평하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토대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혹은 나는 독자들에게 글을 쓰지만 동시에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 개인 블로그나 이메일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사실 지금 나는 ‘동업자’들과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동의나 수긍보다는 반론과 재반론의 과정을 거치리라고 생각한다. 비평을 다듬는 건 그런 긴장이다.

최근 대중음악 웹진 IZM에는 ‘오토매틱으로 음악계를 병들게 할 그대는 오토튠’이란 제목의 특집기사가 실렸다. “시작은 미미한 조력자였으나 지금은 창대해진 병균을 보는 듯하다”는 본문은 이 기사가 오토튠의 빈번한 사용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는 핵심을 드러낸다. 일단 [weiv]가 그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걸 밝힌다. 이걸 굳이 여기에서, 개인이 아닌 공식적인 입장으로 밝히는 이유는 앞서의 언급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IZM에 실린 저 글을 필자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맥락 상 IZM의 공식적인 의견으로 본다는 것도 굳이 밝힌다. 이것 역시 비평적 긴장을 위한 것이다. [weiv]는 지금 우리(여러분과 [weiv]가 아니라 비평가와 비평가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에게 필요한 건 비평적 긴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이, 그리고 이번에 업데이트되는 글들이 그 긴장을 형성하고 유지하기를 바란다. 이를테면 이 글은 이제까지 암묵적으로 이해되던 [weiv]와 다른 음악 저널의 ‘차이’를 명확히 하려는 목표를 가진다. 그런 긴장이 사라질 때 비평은 허세와 말 잔치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삼 [weiv]의 창간과 함께 작성된 ‘about [weiv]’를 상기한다.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글이기도 하다(그런 점에서 우리도 참 엉망이다, 어쨌든). 거기엔 “[weiv]가 다루는 대중음악의 범위는 특별히 한정되지 않습니다. [weiv]는 ‘대상’보다 ‘관점’을 중시합니다. 이른바 ‘모던 록’이건, 힙합이건, 한국의 대중음악이건, ‘월드 뮤직’이건, 현재 [weiv] 편집진의 능력에서 다룰 수 있거나 다룰 만하다고 판단하는 음악은 무엇이든지 대상으로 삼습니다. 굳이 한정하자면 [weiv]의 관심 범위는 ‘동시대의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있다. 그러니까 [weiv]의 비평적 근거는 ‘동시대성’이다. ‘작가주의’도 아니고 ‘진정성’도 아니다. 지금 여기의 음악, 혹은 현재 소비되는 대중음악의 동시대성에 대한 [weiv]의 관심은 이제까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쨌든 이 관점을 꾸준히 지키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시대성에 대한 중요성과 필연성을 간과할 때 대중음악 비평은 힘을 잃는다. 물론 이건 관점의 차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이런 관점이 의미를 얻는다. 다시 한 번 명확히 하자면, 대중음악과 동시대성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weiv]의 다양한 글을 하나로 엮는 관점이자 태도다. 개인적으로는 무엇이 더 가치있는 음악인가를 논하기 전에 왜 저 음악이 동시대에 대중성을 획득하느냐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나로서는 그게 바로 지금 비평가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가 전통적인 비평가의 역할-검열과 선전-대신 다른 역할-해석과 번역-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평가는 가치중립적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편견과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옹호해야할 지 모른다. 문제는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다. 여기에 대해서 [weiv]는 언제나 고민할 것이다. 그게 잘 안되고 종종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동시대성과 대중음악에 대한 (개인적) 고민과 (비평적) 실천을 멈추지 않겠다.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다. | 글 차우진 200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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