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 먼저 희정 씨의 음악인으로서의 삶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은 부당한 불이익 같은 게 있었나요? 
한희정:
선입견. 그런 부분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만일 제가 남자였다면, 제 이미지는 많이 달랐겠죠. 

 

네이버 뮤직에서는 4월 첫째 주 ‘이주의 발견’으로 야광토끼의 1집 [Seoulight]를 선정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과 네티즌 선정위원 각 1명이 이에 대한 선정평을 남겼는데, 재밌는 건 글은 둘이지만 논지는 하나라는 점이다. 두 논지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최근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음악, 하면 어떤 정형이 형성됐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일상’, ‘감성’, ‘치유’ 등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결합해서 음악의 여러 축 중 서정과 달콤함의 좌표에 방점을 찍는다. 야광토끼는 이런 흐름과는 차별화된 음악을, 모범적으로 들려준다.” (선정평A) 
“야광토끼가 데뷔 앨범으로 이 영광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보여준 신선한 음악이 지금까지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좀처럼 가지 않았던 길이기 때문이다.” (선정평 B) 

 

여기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프레임이다. 두 필자가 서로 먼저 얘기라도 나눴다면 오히려 똑같은 논지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두 글은 ‘전형적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프레임이 음악을 수용하는 데 있어 얼마나 보편적으로 작동하는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를테면 야광토끼가 이러한 전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신선하며 모범적이라는 것인데, 이 주장에서 의심스러운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존재한다고 보는 전제가 과연 타당한가, 그리고 그러한 수사를 사용하는 방식과 맥락이 적절한가의 문제다.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폭발적인 등장이 하나의 현상으로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황보령, 오소영, 이아립, 한희정, 오지은, 시와, 흐른, 요조, 루네, 소히, 사비나앤드론즈, 니케아, 그리고 야광토끼에 이르기까지, 특히 2009년을 위시해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흐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웨이브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에 주목하고 장기 기획으로 인터뷰를 시작한 것도 2009년 무렵이었다. 왜 밴드를 구성하기보다는 혼자 음악 작업을 진행하고 크레딧을 가져가는 방식을 택하는지,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음악적 실천 방식에 영향을 주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 또한 이들 사이에서 스펙트럼의 분화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등에 관한 기획이었다. 생산과 유통 방식, 그리고 각각의 음악가가 산업 시스템과 맺는 관계 같은 것들이 주된 관심사였다.

그중에서 특히 중요했던 건 시와와 나눈 인터뷰다. 시와는 앨범을 내면서 아예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뭐가 나빠”라는 의제를 들고 나왔다. 그녀는 대개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두고 은근히 평가절하하는 듯한 뉘앙스로 쓰이는 그 말을,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으로 끌어안았다.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과연 뭔지에 대해서부터 물어야 되는 거라고 본다. 누군가 우리나라에 정말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존재했는지 반문하는 걸 들었다. 사실 그건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 아닌가? 나와 (앨범의 프로듀서인) 오지은은 오히려 거기서 찌르고 들어간 셈”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어쿠스틱 사운드와 일상, 감성, 치유 등의 키워드”로 특징되는 카테고리에 부합되는 음악가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러한 성향은 과연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분류되는 집단에서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걸까? 이런 물음을 놓고 하나씩 답을 구해보면 사실 ‘전형적인 여성싱어송라이터’라는 수사의 허구성은 금세 드러난다. 우선, 오히려 소년소녀 감성을 드러내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그것을 자신의 전략적인 포지션으로 가져가는 쪽은 줄리아하트, 노리플라이, 짙은, 네온스, 재주소년 등의 남성 음악가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인디씬 초기의 델리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마이앤트메리, 위퍼, 루시드폴까지 소급된다. 감수성과 서정성을 기반으로 한 모던록, 혹은 포크록의 전형이 이때 형성되었고 그것들이 지금까지 씬에서 상당 부분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점유해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근래의 ‘안타까운’ 음악 트렌드로서 ‘인디 음악의 연성화’와 ‘여성 취향 음악’의 성행을 결부시켜 제시하는 일련의 주장 역시, 이런 맥락에서 허구적이다. 감성적인 모던록은 인디씬에서 비주류였던 적이 결코 없었다. “태도와 장르성을 중시하는 음악들이 (이런 음악에 밀려) 약세를 보였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신, 차라리 이 장르가 어떻게 분화 및 발전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생산적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동력이 작용하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는데, 첫 번째는 산업적 시스템의 확장, 그리고 두 번째는 삶의 방식의 전반적인 변화다. 파스텔, 해피로봇 등의 레이블 그리고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은 서정적인 모던록과 어쿠스틱 음악의 시장성에 주목하고 이의 산업적 기반을 확고하게 만들어 온 대표적인 플랫폼이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분리배출에 신경을 쓰고, 반려견 돌보기에 열중하며 음악을 BGM으로서 소비하는 삶의 방식이 보편화된 것 역시 이런 현상과 결부된다. 저가 항공사 진에어(Jin Air)가 2011년 초 [SAVe tHE AiR]라는 타이틀로 기획·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은, 그 두 가지 맥락을 하나로 압축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음악 혹은 휴식처럼 환경운동을 즐길 수는 없을까라는 기획 의도 하에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는 착한 소비, 감성, 기업의 마케팅, 음악, 패션 등의 요소가 위화감 없이 녹아 들어 있다. 이는 감성적 음악의 영향력 확장이 성별화된 현상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전반적 변화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변화가 긍정적이냐 아니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를 젠더의 틀을 통해 자꾸만 바라보는 시도는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뿐더러 분석의 폭을 불필요하게 좁혀버린다.

무언가를 현상으로서 인식하고 이름을 붙이고 분석하는 것과, 현상의 면면을 살피기도 전에 선입견부터 작동시키고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범주의 이야기다. 분석틀이나 구분 자체가 의미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경험과 정체성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선입견의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야광토끼의 음악을 얘기하면서 ‘전형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 프레임이 먼저 등장한다는 것은, 그러한 끈질긴 편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다들 ‘심각한 문제’라고 말하곤 하는 이른바 ‘홍대앞 여신’ 현상과 관련해 정말로 문제적인 것은, 오히려 (예쁜) 여성을 대하는 이 사회의 전형적인 방식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지적하지 않은 채 단순히 수사에 잡아먹혀 버린 평론은, 결국 ‘여신’, ‘전형적 여성 싱어송라이터’ 같은 말들을 문제의식 없이 재생산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시와의 지적이 가지는 함축적 의의는 묻혀진 채로 문제적 수사만 아직도 남겨져 돌아다닌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이다. | 글 이수연 [email protected]  201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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