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발매 8개월 만에 “Just Dance”를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려놓으면서 자신의 괴상한 취향으로 지구를 정복하려는 과업에 서서히 시동을 걸고 있던 레이디가가는,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장된 패션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굳히는 일련의 작업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때, 졸지에 새파란 ‘갑툭튀’ 신예와 비교당하게 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레이디가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겠다고 응수했다. 아마 이 한마디 비아냥으로 아길레라는 레이디가가에게 굴욕적인 한 방을 날렸다며 내심 쾌재를 불렀겠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아길레라가 트렌드의 선지자가 되기에는 감각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순간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모호함은 새로운 디바의 핵심 역량을 증거하는 한 가지 지표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경계’를 조롱하고 횡단하는 능력이다.

2010년, 팝씬을 긴장케 한 디바가 있다면 그건 단연코 자넬 모네(Janelle Monáe)와 로빈(Robyn)일 것이다. 각각 [The ArchAndroid]라는 컨셉트 앨범과 [Body Talk] 연작을 들고 등장한 이들은, 음악적 완성도뿐 아니라 이슈 메이킹, 포지셔닝, 앨범 릴리즈 방식 등 전략적 측면에서도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며 평단과 시장 양측으로부터 상찬을 받았다. 특히 이 둘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보여주는 몇 가지 공통점이 꽤나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스타일과 움직임이다. 자넬모네는 “Tightrope” 뮤직비디오에서 제임스 브라운을 연상케 하는 안무를 선보였다. 그녀가 체화한 아프리칸-아메리칸의 문화적 자산, 그리고 그녀가 가진 리듬감과 표현력의 폭발적인 부피를 유감없이 내보이는 자넬 모네의 춤은 또한 젠더의 금기로 걸러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질감을 자유롭게 드러낸다. 반면 로빈이 “Dancing on My Own”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것은 파워 그리고 자기에의 집중이다. 힘을 너무 준 나머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과 팔은 디지털 신호처럼 분절된 쇼트에 실린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건 소녀에게 부과되는 여성성의 의무를 수행해 온 흔적이 이 둘의 몸에 배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뻐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나 여자애에게 기대됨직한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거기서 진정 자유로워 보인다는 것은 눈을 떼기 힘든 일종의 스펙터클이다. 마돈나로 대표되는 전통적 디바들이 정체성의 가면을 가지고 놀았다면, 자넬 모네와 로빈은 아예 젠더 구분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면서 이를 가볍게 뛰어 넘는다.

이런 경계로부터의 일탈, 이분법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강화하는 상징은 바로 자넬 모네와 로빈이 공통적으로 차용한 소재인 ‘사이보그’다. 오토튠을 비롯해 기계음으로 가득 찬 사운드가 유행하면서 팝계를 점령한 퓨처리즘 덕에 사이보그 이미지를 내세운 작업들이 근래 유독 많이 등장했지만, 자넬 모네와 로빈은 사이보그를 인간의 힘을 강화시켜줄 미래적 낙관의 상징으로 보지 않고 경계를 파괴하는 상징으로 썼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여기서 참조할 수 있는 것은 1985년 ‘사이보그 선언문’을 발표했던 다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일 것이다. 그녀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우리 모두 사이보그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기계와 유기체가 혼합된 키메라로서의 사이보그는 경계 전쟁을 촉발한다고 주장한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동물, 유기체와 기계, 상상과 물질, 남성과 여성, 주체와 타자 등의 구분을 허무는 존재론이며 정치학이라는 것이다.

자넬 모네에게 있어 안드로이드는 여성, 아프리칸-아메리칸이라는 이중 소외를 극복하는 상징적 도구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SF를 아프리칸-아메리칸 경험의 알레고리로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삶의 순간 순간에 자신이 바로 타자라는 걸 느꼈다는 그녀는, 안드로이드가 바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이며 타자의 새로운 형태라고 말한다. 그녀는 음악 그 자체로 경계가 무화된 세계를 구축한다. 훵키, 소울, 힙합, 일렉트로니카, 소울, 블루스, 아트록 등 음악 스타일의 가공할만한 융합과 폭발을 보여주는 자넬 모네의 앨범은 음악적 장르, 시대, 젠더, 인종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반면 로빈이 주목하는 것은 ‘Body Talk’라는 앨범명에서도 드러나듯, 몸의 감각과 경험이다. 그녀의 곡에는 끊임없이 춤을 추는 여자들, 댄스음악의 쾌락을 긍정하면서 몸의 감각을 내맡기는 여자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는 것은 사실 자기 혼자 힘으로 서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I keep dancing on my own’). 그들은 자기 자신의 몸의 감각에 고도로 집중한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기계적으로 루핑되는 비트와 전자음이다. 감정과 기계음의 시너지는 댄스뮤직의 아이러니인 동시에 본질이다. 로빈은 여자, 로봇, 기술, 감정 같은 이질적 요소를 ‘여자로봇도 감정을 갖고 있지(fembots have feelings too)’라는 한 줄의 가사에 축약한다.

불경을 벌하고 싶어하면서도 그 이미지에 이끌리는 사람들의 심리 위에 불안하게 자리했던 전통적 디바와는 달리, 자넬 모네와 로빈의 표정은 한결같이 초연하다. 이 둘은, 권력은 몰라도 권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단하다.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녀들에게 있어서 경험에 근거한 정체성이 한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런 거침없음에는 그저 넋을 놓고 열광할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다. | 글 이수연 [email protected]  20101220

 

관련 영상


Robyn – Dancing on My Own

 


Janelle Monáe – TightRope (feat. Big B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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