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002014_b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 – 자기만의 방 – Pastel Music, 2011

 

나 혼자인데도

 

심규선은 2005년 아스코(Asco)라는 밴드의 보컬로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소속사의 홍보 자료에 따르면 당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3000여 관객을 압도시켜 이미 이 시대의 새로운 디바 탄생을 예고’했다는데 그렇다면 아스코 시절과 지금의 창법은 많이 달랐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심규선은 이후 두 장의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고 뮤지컬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아마 그녀의 이름이 널리 기억된 것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유실물 보관소](2010)에 게스트 보컬로 참여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고, 따라서 심규선의 솔로 정규작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with’라는 전치사를 달고 이름을 올린 에피톤 프로젝트 때문이라고 해서 너무 매정하다 생각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크레딧에 따르면 그녀는 이 음반에서 네 곡의 작사와 작곡을 담당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반에 더 가깝게 들린다는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and’나 ‘feat.’가 아니라 ‘with’를 사용한 것은 이것이 ‘콜라보레이션’과 ‘유능한 프로듀서 + 기능적 여성 보컬’ 사이의 중간에 있는 음반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음반은 크게 두 스타일로 나뉜다. 발라드와 재즈다. 정확히 말하면 발라드와 재즈 풍 발라드라고 해도 좋겠다. 마지막 곡 “자기만의 방”이 ‘본격 재즈’의 향취를 드러내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발라드는 달달하고 재즈 풍 발라드도 달달하다. 후자의 경우 깐깐한 취향의 청자라면 ‘superficial’ 같은 형용사를 쓰려 할지도 모르겠고 스캣으로 7분을 채우는 “자기만의 방”이 좀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전자는 후자에 비해서는 만족스럽지만 오레오 쿠키 위에 슈크림을 얹은 듯한 “부디” 정도를 제하면 [유실물 보관소]를 인상 깊게 만들었던 정감어린 멜로디와 무드가 잘 살아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 매력이 사라지자 ’21세기 인디 씬의 토이’라는 소리도 듣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이 단조롭고 안이한 편곡과 프로듀싱에 안주하려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좀 든다. “부디”나 “안녕, 안녕”, “어떤 날도 어떤 말도” 등 이 음반에서 그가 연출하는 현악 세션은 안 좋은 뜻의 ‘주류 가요’처럼 들린다. 다른 곡들은 어떨까. 꼼꼼히 듣지 않을 때도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좀 있다. 이를테면 레즈비언 역사 소설 [핑거스미스]의 드라마 버전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Sue”의 후렴구를 책임지는 ‘소박한’ 영어 가사는 좀 난감하다. “I don’t understand you/I can’t live without you” 외에는 대안이 정말 없었던 걸까?

[자기만의 방]의 수록곡들을 연결하는 것은 형식적 유사성보다는 내적 정서다. 흔히 ‘팬시’와 ‘감상’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계피와 레몬에 달콤한 설탕은 적당히 / 붉은 그리움에 끓여 이제 한 모금 마시자”(“어른이 되는 레시피”) 같은 가사에서 드러나는 정서들 말이다. 그러니 외관상으로는 따로 노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셈이다. 이 자체를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효과적으로 움직이는가는 또 다른 문제인데, 사실 그것들은 효과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편에 속한다. 파스텔은 인디와 메이저의 중간의 중간에 있는 틈새를 잘 파고드는 레이블이고, 그런 면에서라면 이 음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유실물 보관소]가 갖고 있는 설득력이 이 음반에는 없다. | 최민우 [email protected]

덧. 리뷰의 제목은 다이기의 하이쿠에서 따 왔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반딧불이 반짝이며 날아가자/’저길 봐’ 하며 소리칠 뻔 했다/나 혼자인데도”

수록곡
1. 첫번째, 방
2.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
3. 부디(Album ver.)
4. 고양이왈츠
5. 안녕, 안녕
6. Sue (Inspired by ‘Fingersmith’)
7. 두번째, 방
8. 어떤 날도, 어떤 말도
9. 버라이어티
10. 고양이왈츠 (Acoustic)
11. 어른이 되는 레시피
12. 웃음
13.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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