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른 | 레저 러브 (2011)


엄기호가 학생들과 함께 쓴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는 불확실성 속에서 힘겹게 연애하는 세대들이 등장한다. 학벌주의가 고착된 사회구조와 장기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자존감을 위협받는 세대들의 연애가 수월할 리 없다. 그래서 ‘타인과의 소통을 갈구하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압축되는 이전 세대의 연애론에는 공감도, 동의도 어렵다. 물론 누군가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만큼 정신적으로 피로하고, 몇 년 전 유행한 광고 카피대로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연애를 포기할까. 문제는 ‘어떻게’다. 연애가 힘든 건 본질적으로 위태로운 관계라서다. 1대1의 이성애적 독점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와 자금)를 쏟는다. 그러다 까딱 잘못하면 관계는 끝장나고, 한 줌 되지도 않는 평판마저 아작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연애는 피로하다. 흐른의 “레저 러브”가 고양이 발톱마냥 콱 박히는 건 그 때문이다.

우린 레저 같은 사랑을 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돼요
사랑마저 힘들 필욘 없어요

우리 인생은 그대로 두고
여행처럼 사랑을 할래요
8월 여름보다 더욱 뜨겁게

우린 레저 같은 사랑을 해요
지나치게 몰두하지 말아요

그딴 사랑이 여기 있어요
사랑마저 힘들 필욘 없어요
레자 잠바보다 더욱 멋있게

우린 레저 같은 사랑을 해요
우린 레저 같은
연기 같은 러브
물리 같은 러브
양파 같은 러브
말이 없는 러브
괴리 있는 러브
무리 없는 러브
우린 레자 같은

“우린 레저 같은 사랑을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돼요 / 사랑마저 힘들 필욘 없어요”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몽글몽글하면서도 날카로운, 스웨터 틈에 낀 바늘 같은 비트가 틈틈이 들어차 있다. 특히 팻샵보이스(Pet Shop Boys)가 연상되는 인트로를 지나 점점 감각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구성이 인상적인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템포에 맞춰 곡에 집중하게 된다. 이 겹겹이 복잡한 비트는 당신의 혼을 쏙 빼놓겠다고 달려드는데 이 작정한 비트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하여간 ‘러브도 레저처럼’ 하자는 노래에 걸맞게 쾌락적이란 얘기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랑이 아닐 텐가.

사담을 말하자면, 앨범 발매 전에 제작자로부터 대략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타이틀을 “레저 러브”로 잡아왔는데 사실 참 난감하다”는 요지의 걱정을 했다. 시장의 반응을 우려했다기보다는 ‘이런 사랑 노래도 괜찮을까’에 가까운 도덕적 딜레마였던 것 같다. 얼마 후 음악을 들어본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하지 않아도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러브송이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지 않은 사랑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도 배웠다. 하룻밤 쾌락은 나쁜 일이고 한 사람과 오래 연애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라 알고 있다. 연애를 하면 결혼하는 게 당연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하다고도 배웠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어떤 사랑은 쓸데없이 무겁고 어떤 연애는 한없이 가볍다. 그것들을 가리키며 이것은 사랑이고, 저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폭력이 개입하고 당사자의 신상이 위험할 정도로 파괴적이지 않는 한, 모든 관계는 오로지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찌질하든 복잡하든 남의 연애를 비웃지 말 것.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도 함부로 말하지 말 것. 그런 사랑이 어디에 있냐고? “레저 러브”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나치게 몰두하지 말아요 / 그딴 사랑이 여기 있어요 / 사랑마저 힘들 필욘 없어요 / 레자 잠바보다 더욱 멋있게” | 차우진 [email protected]

note. [차우진의 워드비트]는 홍대앞 소식지 [스트리트H]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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