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방학가을방학 | 선명 | 루오바팩토리, 2013.04.08

 

 
정신줄 놓고 따라가도 좋을 긴 호흡

정바비(정대욱)라는 음악인의 작업을 보노라면 필연적으로 2000년대 초반의 줄리아 하트를 생각하게 된다. 그의 작업 방식을 직접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1집 [가벼운 숨결](2001)의 “문학 선생님”이라든가 “오르골” 등이 철저히 멜로디 선도의 곡이었다면 지금 그의 곡은 원숙한 세션맨 출신 음악인의 것처럼 화성 지향적이다.

화성은 그 스스로가 ‘다음’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뮤지션이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결정했다면, 제시된 키 안에서 하나의 화성 다음에 올 수 있는 화성의 존재는 필연성을 갖는다. 이러한 연결은 필연적으로 곡의 구조를 서사적으로 만든다. 가을방학의 가사들이 마치 1970년대의 가요처럼 완결된 이야기가 담겨 있는 한 장면의 묘사로 보이는 것도 이러한 곡의 구조와 무관치는 않다. 단속적인 종결형 어미들이 대세를 이루는 것이 현재의의 가사쓰기 스타일이라면, 가을방학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背馳)되게 부사와 조건절을 동원해 긴 문장을 만든다. 이는 앞서 말한 바 곡이 길어지는 까닭과도 무관치 않다. 아무래도 부담스럽게 여겨질 부분은 있다.

그럼에도 긴 가사의 부담감을 해결할 방법이 결국 이들 음악의 구성 안에 내재한다는 것은 장점이다. 긴 흐름의 가사로 인해 호흡이 밭아질 수 있는 부분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계피의 절묘한 숨표 활용이다. 거기에 타고난 편안한 음색은 긴 가사가 곡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특히 음절의 끝부분에서 들리는 허스키가 무의미하게 흩어지지 않고 입자감이 살아 있는 상태로 거두어지는 것은 레코딩의 묘라 할 수 있다. 여성 허스키 보컬은 많지만 의외로 이런 디테일한 질감이 살아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운드의 안정성―대개는 보컬의 성량과 연주 파트의 균형―을 위해 컴프레서를 과다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가을방학은 적어도 녹음에서 이러한 문제를 잘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략의 수준이라기보다 음악인의 개인적 재능에 의해 커버되는 행운이라는 인상이 강하지만 이를 뮤지션의 장래에 결코 부정적인 무엇이라 볼 수는 없을 듯하다. 음악에 있어서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긴 시간을 두고 결정적인 키로 작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수많은 명곡들의 사례로도 알 수 있다.

가을방학의 이번 앨범은 K-인디 차트(구 ‘Indie-Go’ 차트)에서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아이돌의 영토가 된 공중파 가요프로그램(SBS <인기가요>)에도 출연했다. 버스커버스커가 앨범 준비로 바쁜 상황에서, 최지선이 지적한 바(2012. 12. 16 한겨레신문 “빌보드 2위를 둘러싼 한국적 현상”)대로 ‘진정성 진열대’의 상품이 빠진 것을 커버하려는 기획 의도로도 볼 순 있지만 이런 서사적 감성을 음악 본연의 재능으로 잘 궁굴려 낸 결과물을 보다 많은 대중이 듣는다는 것도 나쁘게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 한명륜 [email protected]
 
rating: 7/10

 

수록곡
01. 좋은 아침이야, 점심을 먹자
02. 헛것
03. 편애
04. 3월의 마른 모래
05. 언젠가 너로 인해
06. 잘 있지 말아요
07. 더운 피
08. 소금기둥
09. 근황(Album Ver.)
10. 진주
11. 삼아일산(三兒一傘)
12. 가을 겨울 봄 여름(Album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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