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of.march.500

 

2011년, 일 때문에 강남으로 자주 다녔다. 강서구 변두리에서 논현동 한 복판으로 오가는 일은 집 붙박이인 내겐 꽤 고단한 일이었는데, 그 중에 며칠은 새벽 서너 시에나 일이 끝나곤 했다. 피로했지만 마감이 끝난 홀가분함을 안고 집을 향해 달리던 새벽의 올림픽대로는 나름 괜찮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새벽에는 오직 마음에 드는 곡들로만 플레이리스트를 짜서 크게 틀어놓곤 했는데 가을방학의 데뷔 싱글도 그 중 하나였다.

가을방학의 정규 앨범이 나오기 거의 1년 전, 디지털 싱글로 발표한 두 곡 “가을방학”과 “3월의 마른 모래” 중에서 특히 “3월의 마른 모래”를 좋아했다. 브로콜리 너마저가 아닌 곳에서 다른 사람과 노래하는 계피의 목소리가 좋았고, 이 노래가 그려내는 이미지가 좋았다. ‘더플코트’, ‘바다’, ‘강아지’ 같은 단어가 짚어내는 감수성도 좋았다. 무엇보다 데모 곡처럼 어딘지 허술하지만 풋풋한 매력이 담긴 곡 자체가 좋았다. 최근 발매된 2집에는 훨씬 깔끔하게 다듬어진 버전이 실렸는데 개인적으로는 2010년의 이 버전이 더 마음에 든다. 아마도 새벽 4시의 올림픽대로의 나른함과 개운함이 곡과 함께 새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3월의 마른 모래”는 낭만적이면서도 어딘지 쓸쓸한 노래다. 이 곡이 처음 나왔을 때 공개된 공식 소개 글을 옮기면 “<3월의 마른 모래>는 의미를 부여해 가까스로 밀어내자마자 다시금 거칠게 파도 쳐 오는 무의미의 망망대해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온기를 찾아 떠도는 모습을 담담히 묘사한 곡이다. 항상 꼭 필요한 음과 가사보다 20% 정도를 더 써넣는 정바비의 작법과 전형적인 ‘가수’들보다는 20% 정도 힘과 감정을 빼서 부르는 계피의 창법이 이루는 미묘한 조화에 귀 기울여 들으면 더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다. 말이 좀 꼬였지만 가만 더듬어보면 이 노래에서 중요한 건 내용보다 분위기란 생각이 든다. 이 곡에서 처음 떠오른 이미지는 몇몇 일본 영화들에 등장한 바다였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하나와 앨리스],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 [허니와 클로버] 같은 영화들에서 본 ‘바다’의 잔상이 강하게 떠올라 에워싸는데, 그래서인지 막막하고 쌉쌀하고 설레는 마음이 동시에 일어난다. 게다가 애매하게 시작되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두려움, 연애의 마음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인이 아니었던 사람과 내년 3월에도 함께 있기를 바라는,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 떨리지만 정작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는 그 마음. 2010년의 버전에는 이런 ‘도키도키’한 감정이 연습곡 같은 분위기에 실려 흔들린다.

그 안에서 낭만과 쓸쓸함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누군가를 잡고 싶은, 이 허약한 관계가 언제까지나 지속되길 바라는, 간절하고도 따뜻한 순간의 마음이 짧은 여행의 추억과 뒤섞인다. 그 감각이 일종의 아련함이라면 거기엔 이 노래의 헐렁한 공간감과 덜 다듬어진 보컬이 제 몫을 해내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 점에서 2010년 10월의 버전과 2013년 4월의 버전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이때 중요한 건 노래든 추억이든 무려 감정도, 결국엔 어느 방향으로 변하기 마련이란 사실이다.  돌아보면 2010년 이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가을방학은 훨씬 높은 관심 속에 2집을 발표했다. 여러분도 뭔가 계속 변했고 앞으로 또 변할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다만 좋은 쪽으로 흐르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마침내, 좋은 쪽으로. 요컨대 “내년 3월에도 곁에 있어줘, 바다로 가서 주머니 속의 마른 모래를 털고 싶어”의 바로 그것. | 차우진 [email protected]

note. 노랫말에 대해 쓰는 [차우진의 워드비트]는 홍대 앞 소식지 [스트리트H]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weiv]에는 분량상 생략되거나 미흡했던 부분이 수정되어 실립니다.

 


가을방학 – 3월의 마른 모래 (2010.03)

너에게 더플코트를 빌려 집을 나섰지 주머니 속엔 마른 모래, 3월의 기차표
거리는 이제 가을의 문턱 코트 차림은 나 밖에 없지 뭐 어때 난 추운 게 싫은 것 뿐
도시는 온통 새 옷을 권해, 난 눈길도 주지 않지
방금 전까지 안고 있었던 사람 품 속에 있으니
봄의 바닷가 코트 차림의 네가 떠올라 웃고 말았어 뭐 어때 넌 추운 게 싫은 것 뿐

그때 모래톱을 걷던 네 곁에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에 찬 바닷바람이 맘 속 깊이 불어와 코트론 막지 못해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 달란 눈빛으로 잠에서 깨는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
내년 3월에 함께 있어줘 바다로 가서 주머니 속의 마른 모래 털고 싶어


가을방학 – 3월의 마른 모래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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