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Spinal Tap> movie clip – The Stonehenge Fiasco

 

1984년 3월 2일, 영화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This Is Spinal Tap)>가 미국에서 개봉됐다. 영국 헤비메탈 밴드 스파이널 탭이 거행한 북미투어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진짜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했지만, 사실은 배우들이 밴드 멤버들을 연기한 픽션이었다.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는 개봉 당시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었다(물론 평단에서는 상당한 호평이 잇따랐다). 관객들은 이 영화의 화면이 너무 흔들린다고 여겼다. 하지만 컬트영화가 대개 그렇듯, 영화 속 밴드 스파이널 탭은 스스로 생명을 얻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널리 보급됐던 비디오 플레이어 덕분이었다. 서서히 끓어오른 인기 덕분에 스파이널 탭은 허구의 영역에서 뛰쳐나와 실제로 밴드 활동을 개시한, 극히 보기 드문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스파이널 탭은 1992년에 ‘재결성’해 두 번째 음반 [Break Like The Wind]를 발표했고, 이후 공연도 하고 TV 쇼에도 출연하는 등 진짜 록밴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또 지난 2009년에는 3집 [Back from the Dead]를 발매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가짜 다큐멘터리, 이른바 모큐멘터리(mockumentary) 장르에 속한다.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는 영화제작자 마틴 디버기(이 영화를 연출한 롭 라이너(Rob Reiner)가 직접 연기한다)가 자신이 좋아하던 전설의 밴드 스파이널 탭이 1982년 미국 투어에 돌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하며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했다는 코멘트로 시작한다.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관록의 밴드 스파이널 탭은, 그 화려한 명성이 무색하게 내부적으로 곪아 들어가던 상황이었다. 그들은 한물간 그룹 취급을 받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투어에 맞춰 내놓은 음반 [Smell The Glove]는 재킷 디자인이 너무 외설적이라는 논란에 빠졌다. 결국 이 레코드는 ‘블랙 앨범’으로 탈바꿈되었다(이는 비틀스(The Beatles)의 ‘화이트 앨범’에 대한 풍자였다).

스파이널 탭의 북미 투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난의 행군’으로 전개된다. 관객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곳곳에서 공연이 취소된다. 자존심에 금이 가는 형편없는 장소에서 공연해야 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올라도 행운의 여신은 그들 편이 아니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도입한 무대 장치는 기상천외한 말썽을 부리기 일쑤다. 무엇보다 압권은 이른바 ‘스톤헨지(고인돌)’다. 이 장치는 18피트짜리 대형 구조물로 고안되었으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18인치 미니어처로 스테이지에 등장한다. 이처럼 비극적인 상황이 겹치며 스파이널 탭은 극심한 파열로 치닫는다. 헌신적이었던 매니저는 갈등 끝에 그만두고, 급기야 밴드의 핵심 멤버인 나이젤 터프넬마저 공연 도중 기타를 내던지고 뛰쳐나간다. 우여곡절 끝에 투어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 스파이널 탭. 이대로 모든 것이 끝장일 줄만 알았던 그들 앞에 돌연 희망의 빛이 날아든다. 신곡 “Sex Farm”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어, 이를 계기로 순회공연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다시 재결합한 스파이널 탭은 심기일전하여 일본 순회공연에 열정적으로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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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한 내용처럼,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는 록 밴드라면 어느 팀이나 피해가기 힘든 여정, 즉 그룹의 탄생부터 전성기를 거쳐 분열과 재결성에 이르는 과정을 아주 생생하고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답게 이 같은 좌충우돌 상황을 무척 우스꽝스럽게 그린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스파이널 탭이 보여주는 언행이 절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활약상은 전부 록 장르의 클리셰를 충실하게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파이널 탭의 두 중추인 데이비드 세인트 허빈스와 나이젤 터프넬의 관계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를 연상케 한다. 특히 데이비드의 여자 친구는 오노 요코를 명백히 풍자하고 있다. 또한 이 밴드의 드러머는 예외 없이 몽땅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는 내용은, 더 후(The Who)의 키스 문(Keith Moon)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존 본햄(John Bonham)에 대한 은유다.

캐릭터뿐 아니라 스파이널 탭의 노래 스타일, 무대 매너, 인터뷰, 음반 제목, 심지어 디자인 또한 록 애호가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다. 이러한 패러디적인 요소는 리얼리즘과 기묘한 조합을 이룬다. 스파이널 탭의 면모가 너무나 생생하고 사실적이라, 이것을 유쾌한 풍자 한마당이라고만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실제로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극중에 등장하는 곡을 직접 연주했다. 실제 존재하는 밴드라 보아도 무방할 만큼 사실적이다. 이런 리얼리티의 요소는 이후 스파이널 탭이 ‘진짜 밴드’로 활동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아울러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가 결정적으로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원래 ‘멋짐’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고안된 록의 다종다양한 클리셰가 코믹한 패러디의 요소로 탈바꿈한 데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풍자는 뮤지션을 조롱의 대상으로 그린다기보다 애정의 시선으로 다룬다는 데 독창성이 있다. 어디를 가나 스타 대접 받고 예술가 연하며 형이상학적인 말이나 늘어놓고 그루피들과 히히덕거리는 쾌락주의자인 줄만 알았던 로커는, 사실은 늘 실수하고 불안한 미래에 떨며 인간관계에 갈등하고 그릇된 결정을 남발하는 평범하고 나약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가 강조한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들은, 영화를 도저히 코미디라고만 여기기 힘들 만큼 생생하게 다가온다. 실제 활동하는 록 뮤지션 다수는 이 영화를 보며 결코 웃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사연을 그대로 옮긴 듯한 섬뜩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따뜻한 리얼리즘’은 스파이널 탭이 픽션의 영역에서 뛰쳐나와 실제로 활동하는 인기밴드로 확장되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실화를 소재로 픽션이 탄생되는 예술 분야의 관행을 뒤집어, 허구를 통해 실재가 파생되는 극히 드문 순간을 이뤘다. 즉 ‘가상현실’ 또는 ‘리얼리티 쇼’의 개념을 다른 시각에서 사유하도록 하는 선구자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를 위대한 영화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결정적 요소다. 아울러 록의 본질이란 화려함과 쇼맨십보다는 진실한 인간애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도록 한다. | 오공훈 [email protected]

note. 2001~2004년 동안 [weiv]의 필자로 활동한 오공훈은 현재 번역가로 《디자인 소사》, 《행복을 꿈꾸는 보수주의자》, 《현실주의자의 심리학 산책》 등을 번역했고, 블로그 [this must be the place!]를 통해 대중음악에 관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영화의 후일담

*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를 탄생시킨 주역들은 이 영화를 출발점으로 삼아 성공을 거두었다. 감독 롭 라이너는 이후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 [프린세스 브라이드(The Princess Bride)],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 [미저리(Misery)], [어 퓨 굿맨(A Few Good Man)],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 등의 히트작을 연출했다.
* 리드 기타리스트 나이젤 터프넬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게스트(Christopher Guest)는 이 영화를 계기로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Jamie Lee Curtis)와 결혼하는 행운을 누렸으며, [베스트 인 쇼(Best In Show)], [어 마이티 윈드(A Mighty Wind)] 등 유사 다큐멘터리 장르의 수작을 연출했다.
* 베이시스트 데릭 스몰스를 연기한 해리 쉬어러(Harry Shearer)는 장수 애니메이션 [심슨네 가족들(The Simpsons)]에서 몽고메리 번즈, 스키너 교장, 네드 플랜더스 등 여러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로 이름을 날린다.
* 또한 스파이널 탭 멤버들은 또 하나의 가상 포크뮤직 트리오 포크스멘(The Folksmen)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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