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5, 2012. Gasworks Park, Seattle.

July 25, 2012. Gasworks Park, Seattle.

 

“뭐? 지금 어디라고? 미쳤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윤하, 소리 지르지 말고 전화 이리 줘봐. 어디래?”
“넌 가만 있어. 마야, 똑바로 말해. 어디야? 뭐? 어딘지 몰라? 야!”
“이리 줘. 마야, 눈앞에 뭐 보이는 거 있어? 메이시(Macy’s)? 다운타운이야? 알았어. 더 가지 말고 거기 서 있어. 우리가 데리러 갈 테니까.”
“야, 데리러 가긴 뭘 데리러 가. 전화기 내놔. 야! 마야! 너 홈리스한테 공격당하든 길바닥에서 얼어 죽든 우린 상관 안 해! 내가 문단속 잘하고 조용히 자랬지!”
“취한 애한테 너무 그러지 마. 이리 줘. 마야. 메이시 근처면 바로 그 앞에 스타벅스 보이지? 아니, 거기 사거리 홈리스 많은 데 말고 거기 가기 직전에. 응. 거기 앞에 잠깐 있어. 나랑 윤하랑 갈게.”

나는 택시 안에서도 내내 씩씩거렸다. 카밀로 말대로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지만, 사실 그간 마야의 제멋대로의 행동들에 좀 질려 있는 상태였다. 나보다 세 달 늦게 시애틀 땅을 밟은 마야는, 타지 생활 석 달차에 접어들며 향수병이 심해지고 있었다. 마야 말에 따르면, 제대로 된 클럽 하나 없고 친구라고는 술 한 방울 못 마시는 데다 만나기만 하면 혼전순결 얘기만 하는 지루하고 여우같은 여자애들 밖에 없으며 관광지에서 소매치기에게 가방 잘못 사수했다간 손목이 잘려 나간다는 그녀의 고향이었지만, 어쨌든 그리운 건 그리운 거였다. 매일같이 멍청한 파티가 있었고, 매사에 명랑한 그녀를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었다. 처음엔 술이 늘었고, 다음엔 취하면 바에서건 집에서건 아무에게나 엉기는 일이 늘었고, 결국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 지갑도 열쇠도 없이 혼자 집을 뛰쳐나오는 단계까지 다다른 게 그날이었다. 시간은 새벽 2시. 가뜩이나 위험 분자들이 많은 금요일 밤인 데다 집 근처에서 며칠 전 총기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까지 들은 직후였다.

체구도 작고 취하면 아무한테나 웃음을 팔아대는 이 멍청이가 납치라도 당하면 어쩌나, 택시를 타고 가는 짧은 시간 안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10분쯤 뒤 도착한 스타벅스 앞에, 마야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새벽 2시면 주류 판매도 금지되는 재미없는 이 도시의 다운타운은 이미 깨질 듯 고요했다. 죽은 듯 잠든 덩치 커다란 콘크리트 더미 사이, 쪼그라든 마야는 평소보다 훨씬 더 작아 보였다. 우리는 택시 아저씨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한 뒤 마야에게 다가갔다. 카밀로가 마야를 부축했다.

“마야, 괜찮아? 일어나 봐. 아무 일 없었지?”
“없으니까 이러고 있지. 내가 정말 너 땜에 못살아. 정말 한번 죽어볼래?”
“……웠어.”
“뭐라고? 카밀로, 이 주정뱅이가 지금 뭐라는 거야?”
“마야, 다시 말해봐. 뭐라고?”
“…… 외로웠다구.”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당연히 고맙다거나 무서웠다거나 뭐 그런 류의 얘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이 인도네시안 주정뱅이 입에서 나온 단어는, 놀랍게도 ‘외롭다’였다. 나와 카밀로는 기가 막혀서 마야를 가운데 두고 부축한 채로 눈을 마주치며 ‘What?’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모두가 모여 떠들썩한 파티를 연 뒤, 모두가 막차 시간에 맞춰 떠났다. 5분 전까지만 해도 자진방아를 돌리던 미치광이 소음의 소용돌이를 뚫고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지만, 나는 행복하기는커녕 커다란 쇼핑몰 안에서 엄마 손을 놓쳐버린 꼬마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한데 뒤엉켜 뒹굴거리던 마룻바닥에 혼자 멍하니 널브러져 유튜브를 검색했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길버트 오 설리반(Gilbert O’Sulivan), 토드 룬드그렌(Todd Rundgren), 뭐 이런 류의 형들 노래 가운데 감성 돋는 찔찔이 노래만 계속 검색해 들었던 것 같다. 눈꼬리에 눈물 한 방울이 맺힐락 말락 하는 찰나,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으하하하, 윤하! 문 열어! 우리 다 막차 놓쳤어! 눈앞에서! 집에 못 간다고! 너희 집에서 자야 된다고! 아하하하!” 그때 마룻바닥에 철썩 붙은 채로 들었던 수십 가지 감정들을 다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반가움? 안도감? 위안? 행복? 사랑? 우주 평화?

집이 반대 방향인 카밀로는 나와 마야를 택시에 태우고 차 번호를 확인한 뒤 길을 건넜다. 택시엔 ‘외로워서’ 새벽 2시에 휴대폰만 들고 자기 집을 뛰쳐나간 ‘술꾼 from 인도네시아’ 하나와, 그런 말도 안 되는 술꼬장을 말도 안 되게 공감하고 있는 ‘단지 집만 안 나갔을 뿐 from 사우스코리아’ 하나가 타고 있었다. 차는 마야의 집이 있는 캐피톨 힐(Capital Hill)로 향하고 있었다.

“아, 정말 싫어. 이 주정뱅이.”
“윤하, 미안해. 근데, 나 오늘 진짜…….”
“나 오늘 너희 집에서 자고 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
“…… 정말? 그래 줄 거야?”
“너 좋으라고 그러는 거 아니거든. 나 집에 갈 택시비 없어. 오늘 택시비로 이번 주 용돈 다 썼다고!”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야야, 붙지 마, 징그러. 그리고 나 돈 없으니까 이번 주 점심 핫도그 네가 다 사! 저녁도 너희 집 냉장고에서 마음대로 털어 먹을 거야! 그런 줄 알아!”
“얼마든지 먹어! 내가 라면도 끓여 줄게! 사랑해!”
“야! 붙지 마! 아, 붙지 말라고!”

그렇게 시애틀 넘버원 주정뱅이와 넘버원 츤데레의 늦여름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김윤하 [email protected] / @romanflare
 
note. [김윤하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음악 칼럼리스트이자 라디오 PD인 김윤하가 2012년, 시애틀에서 보낸 일상을 사진 한 장과 음악 한 곡으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Gilbert O’Sulivan – Alone Again (Natura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