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코베인 – Murder´s High – 붕가붕가레코드, 2011

 

서정적 칼날

내 친구 하나가 언젠가 어떤 사람과 어색하게 마주 앉아서 침묵을 깰 말들을 필사적으로 고르고 있었는데, BGM으로 갑자기 눈뜨고코베인의 “어색한 관계”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우리는 어색한 관계’라는 가사가 12번 반복되는 바람에 모든 것을 그냥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눈뜨고코베인은 그렇게 덮어버리고 싶은 것들을 보란 듯이 집요하게 헤쳐 놓거나, 모종의 상황을 던져 놓는 이야기 방식에 특출한 밴드다. 데뷔 EP [파는 물건]이 나왔을 때부터 그랬다. 냉소와 장난기가 고르게 배합된 가사는 소개팅했던 그 자식, 날 버리고 영국으로 유학 가는 샘이, 냉장고 같은 그대를 까발렸다. 정형화된 음악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한 발성과 연주였지만 핵심을 찌르는 데가 있었다. 솜씨는 설지만 의뭉스러운 푸줏간 알바생이 고기의 흰 뼈만 툭 발라서 꺼내놓고는 히죽 웃고있는 걸 보는 듯한 야릇한 느낌 같은 느낌이랄까.

노래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나 표현 방식이 주목할 만큼 달라진 것은 2집을 발매한 시점에서다. [Tales]는 앨범명에서 드러나듯, 아빠가 벽장 안에 갇혀 있다고 확신하는 아이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3년이 지났는데도 고속도로 위에 살아있는 원숭이, 가족 납골묘 등의 온갖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로 들어찬 앨범이었다. 죽음, 아버지, 금붕어, 우주 같은 상징들이 나열되었다. 망상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은 현실이 파열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사실 오히려 현실의 속살과 더 맞닿아 있기도 했다. 다만 눈뜨고코베인은 헤집어 놓은 그 속살을 관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감정에 발을 담그기를 거부하거나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 3집 앨범은 서정적이다. 가사에서든 음악에서든 냉소와 위악의 가면이 엷어졌다. “저는 먼저 집에 들어가 봐야 될 것 같아요, 피곤해서”라고 말하는 대신, 이제 눈뜨고코베인은 “뭐뭐뭐뭐 뭐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너의 얘기를 조용히 듣는다. 음악 역시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언어를 통해 말을 걸고 있다. “네가 없다”의 뭉개진 보컬과 코러스에서 단계적으로 고조되는 음은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그 배는 내일 침몰할 거예요”에서는 애수와 비극의 정서를 표현하는 코드로 2박자 리듬과 아코디언 선율이 사용되고 있다. 어떤 음악적 표현이 어떤 감정을 이끌어내는지를 잘 아는데다, 그 지식을 노련하게 사용할 맘을 먹은 눈뜨고코베인의 이번 앨범은 잘 벼른 나이프처럼 감정을 헤집는다. 그들의 장점인 ‘이야기’가 가진 파괴력이 배가되는 건 이 지점에서다. 당신 발밑에 있을지 모를, 어젯밤에 죽은 내 여자 친구를 찾느라 ‘제발 그 발 좀 들어달라’고 애원해보지만 “왼발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 드는 동안 그녀는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다만 계속 파괴되거나 짓이겨질 뿐. 이런 무력감과 비극적 상황을 전달하는 건 보도자료 말마따나 “그간 그들이 만들어 왔던 음악에 비해 유례없이 아름다운 멜로디”다.

물론 이 모든 게 갑자기 나온 결과물은 아니다. 눈뜨고코베인이 쌓아온 “10년의 근육”이 주효했을 터다. 다만, 연리목의 건반, 목말라의 기타, 슬프니의 베이스가 가진 설득력은 이번 앨범에서 비로소 빛을 본 듯하다. 2집까지는 악기 소리들이 적절히 믹싱되지 못하고 서로를 간섭하는 사례가 있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각각의 악기가 공간 속에 제대로 자리하고 있다. 또 하나의 걸출한 중견 밴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 이수연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알리바이
2. 네가 없다
3. 당신 발 밑
4. 성형수술을 할래
5. 그 배는 내일 침몰할 거에요
6. 나 혼자 먹어야지
7. 하나 둘 셋 넷
8. 아침이 오면
9. 뭐뭐뭐뭐
10. 일렉트릭 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