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열정이 무더위와 폭우를 밀어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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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어느덧 3년째를 맞은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예년과는 달리 땡볕이 강하게 내리 쬐는 무더위와 쉴 새 없이 쏟아 내린 거센 소나기의 연속으로 개최 이래 날씨 탓에 좀 애를 먹은 페스티벌이었다. 하지만 오락가락했던 날씨와 달리 관객들의 흥분과 설렘은 3일 연속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아타리 틴에이지 라이엇(Atari Teenage Riot)의 폭발적인 샤우팅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기도 했고, 악틱 멍키스의 인디 록 그루브에 정신없이 온 몸을 털기도 했으며, 스웨이드의 가슴을 후벼 파는 아련한 노랫가락에 취하기도 했다. 다음은 올해도 어김없이 [weiv] 필자들이 사적으로 고른 올해의 공연들이다. 20110816|김민영 [email protected]

* 첫째 날 – 7월 29일 금요일

[7월 29일: 쿠루리(Quru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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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쿠루리(Quruli): 16:20 ~ 17:00
쿠루리가 지산에서 보여준 공연의 키워드를 표현해 본다면 아마 ‘정겨움’, ‘친근함’ 등의 단어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친근한 옆집아저씨’ 혹은 ‘삼촌’? 뭐 그런 편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보컬 시게루 키시다(Shigeru Kishida)가 쉴 새 없이 쏟아낸 한국말 멘트는, 제1회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위저(Weezer)의 리버스 쿠오모(Rivers Cuomo)가 들려준 것 다음으로 능숙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어쿠스틱 기타와 나긋나긋한 보컬의 음색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마치 ‘지산에 와서 편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의 여유 같은 것이었다. 그래, 바로 이 맛이다. 이러한 멋스러운 여유 때문에 우리는 매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손꼽아 기다려 왔던 건 아니었을까.

[7월 29일: 디제이 디오씨(DJ. DOC) Live Set with 세렝게티(Sereng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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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디제이 디오씨(DJ. DOC) Live Set with 세렝게티(Serengeti): 19:30 ~ 20:20
이번 디제이 디오씨의 공연은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밴드 중심에서 대중가수로 저변이 넓어졌음을 시사하는 대표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의 공연이 ‘급조’에 가까웠다는 느낌은 쉽게 지울 수 없었다. CJ에서 준비하는 뮤지컬 [스트릿 라이프]의 홍보 차, 급하게 출연하게 된 탓인지 공연 내내 연습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백밴드인 세렝게티와의 부조화는 물론, 페스티벌의 맥락에 맞지 않았던 바지를 내리는 퍼포먼스는 보는 관객들의 반응을 차갑게 만드는 이유들 중에 하나였다. 결국, ‘저변 확장’이라는 점에서 라인업에 대하여 관객들이 기대했던 부분을 부셔버린 건 아닌가 싶다. ‘혹시나 염려했는데, 역시나 그랬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 안타까운 공연이었다. 차라리 공중파 TV의 ‘음악중심’이나 ‘뮤직뱅크’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무대를 보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7월 29일: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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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21:30 ~ 23:00
숨 막히는 비트 음악, 쉴 새 없이 귀를 파고드는 전자 음악, 눈이 부실 새라 쏘아대는 레이저와 휙휙 지나가는 빠른 스크린 등의 시각효과! 지난 2007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인 바 있는 이들의 공연은 관객들의 마음속에 ‘불타는 지산의 첫날 밤’을 선사해 줄 흑기사와 같은 공연이 될 것이라 모두들 기대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예상외로 관객들은 그리 열광적으로 공연을 즐기진 못했다. 장시간 반복되는 음악 패턴과 좀 따라 부르려고만 하면 곧장 다음 트랙으로 잽싸게 넘어가 버리는 리믹스 트랙들의 구성 때문에 ‘열광할 포인트’를 쉽게 잡아내기가 어려웠던 것이 이유. 매 곡이 끝나기가 무섭게 ‘완전 죽이는 공연이었어’ 등의 감탄사를 연신 뱉어내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화학형제와는 다르게 관중 분위기는 다소 스산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 공연에서 가장 즐겁고 신났던 사람은 바로 본인들, 화학 형제였던 것 같다.

* 둘째 날 – 7월 30일 토요일

[7월 30일: 악틱 멍키스(Arctic Monke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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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틱 멍키스(Arctic Monkeys): 21:30 ~ 23:00
푹푹 찌는 한 여름 밤, 떡하니 가죽 자켓 차림으로 등장한 알렉스 터너(Alex Turner)의 숨 막히는 복장에서 느낄 수 있었듯이 악틱 멍키스의 첫 등장은 시작부터 뭔가 좀 달랐다. 역시나 공연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시작된 “Library Pictures”와 “Brainstrom”등 매서운 인디 록 음악은 순식간에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마치 레코드를 틀고 있는 듯 빈틈없는 연주 덕에 기대 이상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악틱 멍키스가 전혀 거품 없는 ‘실력파 밴드’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값진 공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빼어난 외모만큼 섹시한 터너의 목소리를 이어폰이 아닌 두 귀로 직접 들으니 반갑기도 하면서 설렜다. 가끔 의도치 않은 터너의 음 이탈도 귀엽게 들릴 정도였으니, 다시 한 번 이들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7월 30일: 유브이(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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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브이(UV): 23:10 ~ 23:50
스페셜 스테이지로 기획된 이들의 공연은 올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중 가장 스페셜한 공연으로 기억될 것 같다. 웬만한 해외 록 스타 헤드 라이너들의 공연들과도 나란히 어깨를 견줄 정도로 이들의 공연 분위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특별한 분위기 유도가 없어도 이들은 자신들의 히트곡 “이태원 프리덤”, “집행유예”를 비롯하여, 누구나 알 만한 쉽고 유명한 곡들을 메들리 형식으로 구성하여 공연을 이끌었다. 관객들은 배를 잡고 깔깔대면서도 그들의 노래에 뜨거운 호응과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관객이 공연에서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 점을 100퍼센트 활용한 유브이의 공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유브이야말로 올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첫째 날의 감동을 제대로 각인시켜준 히어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 셋째 날 – 7월 31일 일요일

[7월 31일: 아마두 앤 마리암(Amadou & Mari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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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두 앤 마리암(Amadou & Mariam): 15:30 ~ 16:20
아마두 앤 마리암은 오프닝 “Welcome To Mali”로 공연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분 만에 그린 스테이지 주변을 아프리카 음악 특유의 그루브 넘치는 사운드로 감쌌다. 이들의 공연은 여유가 넘치면서도 정신없이 바쁜 무대였다. 맨발로 뛰어 다니면서도 휘황찬란한 백댄서들의 춤사위, 몇 옥타브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아마두의 긴장감 넘치는 클린 기타 솔로, 아프로 블루스(Afro Blues)의 필이 충만한 마리암의 음색, 엇박자의 통쾌한 드럼 비트 등은 매혹 그 자체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유유히 흐르는 월드비트에 몸을 움직이며 함께한 공연은 매섭게 내리는 폭우의 기운을 달래는 지우제(止雨際)처럼 느껴졌다.

2. 씨에스에스(CSS): 18:30 ~ 19:15
‘섹시해지는 건 피곤하다’고 한 밴드명 그대로 이들은 공연 중에도 너무 섹시해서 탈이었다. 공연 관람 내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온 것은 보컬인 러브폭스(Lovefoxx)의 거칠지만 매혹적인 음악 퍼포먼스였다. “Music is My Hot Hot Sex”를 비롯하여, “Hits Me Like A Rock”, “Let’s Make Love and Listen to Death from Above” 등 제목만 들어도 아찔한 느낌의 곡들을 들으며, ‘제대로 뭔가 보여주고 가겠다’는 씨에스에스의 새빨간 열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들의 파워풀한 일렉트로닉 록 음악은 지칠 줄 모르는 폭우에 홀딱 젖어버린 관객들의 진을 홀라당 뺏어가기에 충분했다.

[7월 31일: 인큐버스(Incu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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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큐버스(Incubus): 19:20 ~ 20:20
이쯤해서 폭우는 절정에 달했지만, 비바람에 굴하지 않고 빅탑 스테이지로 모여든 사람들을 반긴 것은 “Megalomaniac”으로 시작해 “Wish You Were Here”, “Pardon Me”, “Anna Molly”, “Love Hurts”로 연달아 이어지는 히트곡 퍼레이드였다. 전직 미청년에서 현역 미중년으로의 테크트리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보컬 브랜든 보이드(Brandon Boyd) 역시 (최소한 50% 가량의 관객에게 있어) 훌륭한 보답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에너제틱한 곡들을 전반부에 몰아넣고 후반부 절반을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진 신보 수록곡을 포함해) 비교적 느린 템포의 곡에 할애한 세트리스트는 빗줄기와 함께 관객의 흥분을 천천히 가라앉히기에 참으로 적절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멤버들의 연주나 “Drive”의 열광적 떼창도 분위기를 완전히 구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곡 순서만 조금 바꾸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Nice To Know You”로 마무리.
임승균|editor

[7월 31일: 스웨이드(Sue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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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스웨이드(Suede): 21:30~23:00
꽃 같던 외모를 자랑하던 멤버의 ‘역변’이라든지, 형편없는 라이브 실력이라든지, 밴드의 그런 모습을 목격하게 되면 눈물을 머금고 그 밴드는 추억의 저편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허나 스웨이드(Suede)는 이번 공연으로 ‘평생 현역’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무대 구석구석을 연신 뛰어다니며 노래했던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은 ‘미(美)중년’이라는 단어의 현신이었다. “Trash”는 활기찼고 “Film Star”, “We are the Pigs”, “So Yonug”은 고혹적이었다. 하이라이트였던 “Beautiful Ones”에 관객들은 ‘떼창’으로 화답해주었다. “She’s In Fashion”과 “Saturday Night”으로 마무리 된 지산의 마지막 밤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재훈|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