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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 장기하와 얼굴들 – 붕가붕가 레코드, 2011

 

워프 항법

장기하와 얼굴들의 두 번째 음반은 ‘좋지 않으면 안 되는 음반’이다. 좋기만 해서는 잘해야 본전이다. 데뷔작이 거둔 성공과 그 성공에 대한 냉소도 뛰어넘어야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음반이 맴도는 시공간의 큰 축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한국 록이다. 이는 밴드의 데뷔작뿐 아니라 미미 시스터즈의 데뷔작과도 같은 이미지를 공유한다. ‘[곱창전골]에 앉아 술을 마시며 옛 음악을 듣는 젊은 뮤지션들’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하세가와 요헤이가 장기하와 함께 프로듀서를 맡은 사실 또한 이런 맥락 하에서 고려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사랑과 평화를 끌어들이며 호기롭게 문을 여는 “뭘 그렇게 놀래”나 신중현의 “미인”의 패러디에 가까운 “우리 지금 만나” 같은 곡들은 여전히 밴드가 복고와 키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이 줄타기가 사람들이 그렇게들 좋아했던 밴드의 데뷔작 [별일 없이 산다](2009)를 개인적으로 미심쩍어했던 이유다. 여전히 나는 그 음반이 (이 레이블의 몇몇 결과물이 그렇듯) ‘음악’보다는 ‘스타일’과 ‘말’이 앞선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보가 전작의 한계를 훌쩍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리고 그건 위에 언급한 곡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반가운 일이 아니겠는가? 키보드와 기타, 보컬이 쉴 새 없이 ‘깐죽거리는’ “그렇고 그런 사이”와 훵키하게 내달리는 “깊은 밤 전화번호부”, 변화무쌍한 싸이키델릭 “날 보고 뭐라 그러는 것도 아닌데”에서 밴드는 옛 스타일을 창조적으로 취하는 법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이 과정에서 건반 주자의 활약은 따로 언급할 가치가 충분하다). 음반의 시간축과 공간축도 확장되었다. “TV를 봤네”와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는 둘 다 ‘비틀즈 스타일(beatlesque)’에 속하지만 전자는 그걸 ‘얼터너티브’하게, 후자는 1970년대 아트 록처럼 ‘튜닝’한다. “마냥 걷는다”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행복하게 만난다.

밴드는, 그리고 장기하는, 자신들을 유명하게 만든 키치적인 위트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있다. 물론 장기하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 가수가 노래 대신 얘기를 들려주는 음악 장르)와 노래를 적절히 섞어 가며 리듬 위에서 덩실거린다. 위트와 독설은 줄고 어휘와 내용은 보다 단정하게 다듬어졌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발음이 좋은데 안 들릴 수가 없지 않나?

어떤 이들은 장기하도, 얼굴들도, 이 음반도 어딘지 모르게 ‘성실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음반에서 밴드가 보인 성실함은 잠깐씩 반짝일 뿐인 나태한 재능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장기하와 얼굴들]에 또 다른 ‘시대의 송가’는 없다. 그러나 장기하와 얼굴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멋지게 해냈다는'(“뭘 그렇게 놀래”) 데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건 좋지 않으면 안 되는 음반을 만들어낸 밴드의 당연한 권리다. 20110609|최민우 [email protected]

8/10

수록곡
1. 뭘 그렇게 놀래
2. 그렇고 그런 사이
3. 모질게 말하지 말라며
4. TV를 봤네
5.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6. 깊은 밤 전화번호부
7. 우리 지금 만나
8. 그 때 그 노래
9. 마냥 걷는다
10.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11. TV를 봤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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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장기하와 얼굴들 공식 홈페이지
http://kihafac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