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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진-찰라의 기초-루오바팩토리, 2011

 

 

체념의 카타르시스

실험적, 새로움,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들로 대략 설명되는 백현진 음악의 골자는, 카타르시스다. 아름다움이라는 형용사 앞에서 보란 듯 일그러지는 그로테스크하고 정제되지 못한 목소리, 그리고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에서 뱉어 낸 것만 같은 미화되지 않은 가사가 담긴 그의 음악은 불편하다. 듣기 좋게 다듬어지지 않은 원초적 성격을 띤 그의 작업은, 그래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백현진의 음악에는 불편함과 동시에 끝내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치부가 드러났을 때에 밀려오는, ‘체념’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눌러 왔던 감정의 봉인이 풀리는 순간의 자유로움이다. 수려한 음악적 기교가 주는 ‘감동’ 코드와는 또 다른, ‘끌림’이라는 감정이기도 하다. 치장과는 거리가 있는 그의 음악이 그나마 걸치고 있던 마지막 가운을 벗었다. 백현진 최초의 라이브 음반 [찰라의 기초](2011)다.

2010년 11월 4일, 음악 공연장 웰콤씨어터에 기타리스트 방준석과 피아니스트 계수정이 백현진의 단독 공연을 위해 모였다. 그리고 그날 음향 담당 엔지니어가 우연히 녹음한 80분간의 기록이 한 장의 음반으로 남았다. 솔로음반 [반성의 시간](2008)의 수록곡을 중심으로 신곡 “여기까지”와 “봄의 풍경” 외에 백현진이 즐겨 부르던 다른 가수들의 노래가 그의 거친 음색으로 담겼다.

“여기까지”와 “봄의 풍경”, 그리고 오는 6월 발매 예정인 어어부 프로젝트 4집 [탐정명(名) 나그네의 기록]에 담길 “한순간”을 포함한 신곡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기성곡이라는 점에서 음반의 큰 특징을 찾긴 어렵다. 대신 라이브 음반으로서 [찰라의 기초]가 주는 백미는, 스튜디오 녹음이라는 장치를 거치지 않은 백현진의 목소리다. 간간히 피아노와 기타 연주가 섞이긴 하지만 목소리의 무게가 너무 육중해 멜로디의 존재를 자주 놓치게 된다. 거름종이에 걸러지지 못한 질료의 거친 입자처럼 백현진의 목소리는 날 것 그대로 전달된다. 특히 그의 목소리가 하나의 새로운 사운드 메이커처럼 사용되어 재탄생한 커버들이 흥미롭다.

기타와 쟁글거리는 건반 그리고 코러스가 깔린 송창식의 “선운사”는 원곡보다 느슨한 템포로, 쓸쓸한 질감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선운사 동백에 대한 애절한 이미지를 노래한다. 많은 가수들이 다양한 장르로 리메이크했던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과 이병우 작사‧작곡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 역시 백현진의 거친 목소리가 공허함을 극대화한다. 그렇게 과잉된 감정으로 노래하는 직접적인 표현 방식은, 듣는 이가 각자 품고 있는 쓰라린 경험과 추억을 적극적으로 끌어내려는 듯하다.

백현진의 팬이든 팬이 아니든, 이 음반은 취하기 쉬운 형태는 아니다. 노래보다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맑은 정신으로 온전히 듣고 있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백현진의 처절한 목소리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성이 있다. 괴성이라 치부될 수 있는 것조차 백현진의 입을 통하면 음악이라는 이름에 알맞은 것이 된다. 백현진은 소위 ‘전방위 예술가’라는 선상에 위치한다. 스스로를 어떤 특별한 계층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모종의 증명서로 예술가라는 명함을 이용하는 일부도 있지만, 그에게 달린 예술가라는 라벨은 지적 허영심과 자의식 따위로 엉겨 응고된 덩어리와는 그 성분이 달라 보인다. 카타르시스라는 찰라의 기초는 다름 아닌 백현진이다. 20110308 | 우해미 staycrazynow@hotmail.com

7/10

수록곡
1. 선운사
2. 무릎베게
3. 목구멍
4. 어떤 냄새
5.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6. 학수고대했던 날
7. 여기까지
8. 한순간
9. 여름바람
10. 오후만 있던 일요일
11. 눈물 닦은 눈물
12. 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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