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31025357-arip2010

이아립 – 공기로 만든 노래 – 열두폭병풍, 2010

 

 

바람과 함께 노래하다

이아립의 [공기로 만든 노래]는 자신의 레이블 ‘열두폭병풍’의 이름으로 발표한 세 번째 음반이다. 더불어 개인 레이블을 통해 소량으로 제작하고 소규모로 유통하는 시도 자체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태도가 어떤 음악과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또한 밴드의 프론트우먼에서 솔로로 전업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몇몇 사례들과 이아립의 경우가 얼마나 같고 어떻게 다른지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보면 이제 그녀에 대해 스웨터 출신이라는 설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아립의 첫 번째 솔로 작품 [반도의 끝](2005)이 말하자면 고백적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로파이 버전이었다면, 이와는 다소 상반되게 두 번째 음반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2007)은 음악 매체에 여러 이미지들이 연합되는 ‘복합 예술’의 시도쯤 될 것이다. 그러니까 아트워크로 비교해보면, 세 번째 음반 [공기로 만든 노래]는 첫 번째 음반과 두 번째 시도 사이에 있다고나 할까(전자는 단촐하게 까만 종이봉투에 담겼고, 후자는 자신의 전시회와 연결되어 만들어진, 사진엽서, 수첩, 포스터 등이 포함된 다매체적 시도의 산물이었다). 하얀 종이에 가사만 간략히 적힌 부클릿, 평범한 주얼케이스 포장이 이전과 달리 ‘친절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여기서 나의 관심은 작년부터 ‘어쿠스틱 테이블’이라는 이름으로 이아립이 진행하고 있는 (다른 뮤지션들이 자주 애용하는 공연장보다는 ‘카페’를 중심으로 한) 공연에 있다. 이 음반은 자신이 공연하는 무대처럼 만들려는, 그러면서도 너무 날 것의 분위기를 내지 않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있다. 마치 버스킹 뮤지션의 공연처럼 꾸며지고 유년을 연상시키는 멜로디언과 아이폰의 피아노 ‘어플’이 동원된다. 간결한 연주와 노래 사이로, 일상의 잡음과 소음(발자국 소리, 카페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사과 깎는 소리 등)도 함께 (역시 아이폰을 이용해) 채집된다.

첫 곡 “흘러가길”은 아예 악기 반주가 아닌 바람결에 실린 발자국 소리만이 담겼고, 마지막 곡 “패턴놀이”는 잡음과 대화 소리들이 있는 카페 라이브를 재현한다. 생생하게 또는 자연스럽게 들리게 하기 위해 세심히 고안되고 채집된 일상의 소리들은 이아립의 노래를 위한 진정한 ‘반주’가 된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이아립의 음악은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왜 공기/바람인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이 자연물은 수많은 뮤지션과 시인들이 너무도 숱하게 노래했던 클리셰이다. (이아립의 두 번째 음반에서 호명했던 물처럼) 바람의 속성은 ‘흐르는 것’이다. 돌아보고 곱씹는 회한의 화자는 때때로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도록 ‘흘러가길’ 바라고(“흘러가길”), 지나버린 사랑을 벌써 까맣게 잊고 살았냐고 씁쓸해한다(“벌써 잊었나”). 그러므로 공기 또는 바람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자연이면서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일상이다. 우리의 일상은 일종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패턴놀이’이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그 바람은 위로를 안겨주기도 한다. 쓸쓸하고 슬픈 정서는 곧 청명하고 포근한 목소리로 교차하면서 “바람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권유한다(“바람의 왈츠”, “꿈의 발란스”).

정갈한 한국어 가사, 혼자만의 독백과도 같은 담백한 노래들은 새로운 트렌드나 혁신적 실험과도 거리가 멀고, 단조롭다는 인상이 들 수도 있으며 대중적 소통이 아닌 고립을 자초하는 듯도 보이지만, 음반은 작지만 큰 위로와 울림을 전해준다. 내면적이고 성찰적인, 때로는 이러한 자연(소재로서의 자연, 그리고 녹음과 연주의 자연스러움)을 불러오는 싱어송라이터의 전형적 버전은 이렇게 복제되고 돌파된다. 20101229 | 최지선 [email protected]

7/10

* 이 리뷰는 웹진 ‘백비트’에 게재되었습니다.

수록곡
1. 흘러가길
2. 이름없는 거리 이름없는 우리
3. 가장 듣고 싶은 말
4. 바람의 왈츠
5. 벌써 잊었나
6. 신세계
7. One More Night
8. 사과
9. 꿈의 발란스
10. 벌써 잊었나(acoustic guitar ver.)
11. 패턴놀이(live ver.)

관련 글
스웨터 [Staccato Green] 리뷰 – vol.4/no.18 [20020916]
스웨터(Sweater)와의 인터뷰: 일상잡기(日常雜記)의 우울…그리고 화사한 나들이 – vol.4/no.18 [20020916]
에세이 [그립다, 그녀들의 목소리] – vol.4/no.19 [20021001]
호미 언니의 가요만담: 프론트우먼들의 족보 – vol.4/no.19 [20021001]

관련 사이트
이아립과 열두폭병풍 사이트
http://www.sugarpap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