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히(Sorri)는, 인디 음악을 포함한 한국 대중음악이 ‘국제적 팝/록의 로컬 변종’이라는 일반적 인식보다는 풍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데 한편으론 홍대앞에서 소히가 음악하는 것을 오랫 동안 보아 왔던 사람들에게 그녀는 미스터리이기도 했다. 99와 잠(Zam)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던 얼터너 걸(alternagirl)이 무슨 바람이 들어 브라질 음악에 영혼을 빼앗겼고, 급기야 3년 전 준(準) 메이저 기획사에서 데뷔 음반까지 내게 된 것일까. 이한철의 지휘 하에 올 봄 2집 [Mingle]을 발표하고 활동을 시작한 지 조금의 시간이 지난 7월 초, ‘브라질 음악을 연주하는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화두를 놓고 그녀에게 귀찮은 질문들을 던졌다. 언제나처럼 ‘웨이브다운’ 게으름 때문에 정리가 차일피일 미루어져 이제사 싣는 것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 소히의 노래들은 늦가을에 들어도 좋다는 변명을 덧붙이면서…

일시: 2010년 7월 2일
장소: 카페 <괴르츠>
질문: 신호미 | 사진: <괴르츠> 직원 한 분(감사!)
정리: 신현준

1. 다시 인디 씬으로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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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시간이 지났지만 2집 [Mingle]이 나온 걸 뒤늦게 축하합니다. 솔로 데뷔작이 나온 뒤 시간이 적잖이 지난 것 같은데, 1집 활동 이후에 있었던 변화를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1집은 오현경이라는 분이 제작했고, 2집은 이한철 씨가 제작했는데….
소히: 1집 내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계약을 파기하게 되었어요. 제작자 오현경 씨와 다른 한 분 사장님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같이 일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가요계에 오래 계셨던 분들이다 보니 생각하는 게 많이 다르더라구요. 저는 인디 쪽에서 밴드 활동하고 홍대앞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말예요. 한 번은 쌤(Ssam)에서 공연이 잡혔는데 MR을 틀고 노래하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MR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럴 땐 당황스러웠어요.

[weiv]: 1집을 계약했을 때 어떤 기대감이 있었던 건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소히: 처음에는 홍대앞이라는 지역색을 벗어나 조금 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었고, 오현경 씨가 가요 편곡 분야에 오래 있어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면이 있었거든요. 그 점에서 제가 배울 게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후회되는 게 있다면 당시 나만의 자립성, 독립성을 못 가졌었다는 것이겠죠. 1집 수록곡들 몇몇은 부르기도 싫은 곡도 있었어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고민하기도 했고… 사실 일찍 시작할수록 경험이 많이 쌓이기 마련이니까 좋기도 했을 텐데, 실제론 그렇지 못한 게 조금 후회스럽죠. 하지만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더 많아요. 팝적인 편곡이랄까 가요적인 편곡이랄까…. 사실 가요계는 나이에 민감하잖아요. 저도 나이에 대한 조급증이 있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기회를 얻기 힘들어지는데 그 나이였으니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현경 씨와는 지금도 가끔 연락은 하고 지내고 관계는 좋아요.

[weiv]: 2집 작업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그리고 이한철 씨의 튜브앰프와 어떻게 계약하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소히: 저는 1집이 생각보다 잘 되었다고 생각해서 소문을 듣고 연락이 올 것으로 착각했는데 아무 데서도 연락이 안 오더라구요. (웃음) 그러다가 (이)한철 씨 제의가 들어와서 시작하게 된 거에요. 이한철 씨는 완전히 ‘홍대앞’ 출신은 아니고 여러 군데에 걸쳐 있어서 같이 할 마음이 생겼고, 이런저런 도움을 받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죠. 본격적으로 녹음에 들어 간 건 작년 8월이었지만 그 전에 의견 조율하고 곡 선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꼬박 1년이 걸렸네요.

[weiv]: 이한철 씨가 ‘걸쳐 있다’고 한다면 그게 음반 작업에서도 드러나던가요? 메이저 기획사도 아니고 인디 레이블도 아닌 특징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이었나요?
소히: 음반 제작 작업이나 이후 활동에서 다른 면들이 있어요. 제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게 많은 부분이 사실이죠. 그렇지만 관리라고 해야 하나, 소속사 사장으로서 바람을 말하는 것은 메이저 기획사 사장 못지 않아요. 사실 그건 저 스스로에게 좋은 일인 것 같아요. 홍대 인디 레이블에서는 뮤지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데 튜브앰프에서는 (강요하는 것은 아니고) 가르쳐 주는 게 있어요.

[weiv]: 음반 제작도 ‘저예산 인디 음반’은 아니었을 것 같네요.
소히: 이번 앨범의 경우엔 꽤 예산이 들어갔어요. 한 예로, 앨범의 믹싱을 플럭서스(Fluxus)에서 해서 비용이 조금 들었어요. 퀄리티의 차이가 큰지 아닌지 사람들이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기는 해요. 그렇지만 저는 퀄리티 있는 음반을 내고 싶고, 그래서 녹음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 음반의 경우 제가 아쉬운 것은 조금 더 ‘브라질 음악처럼’ 들리지 않게 나온 점이에요. 편곡이나 믹싱할 때는 한국에서 통용되는 기본이 있는데 그 기본과 브라질 음악의 기본이 다르니까요. 이건 재정적, 경제적 문제라기보다는 취향이나 생각의 차이가 작용했던 것 같아요.

2. 보싸 노바, 한국으로 여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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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그러면 이제 음악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우선 매체들에서 소히를 ‘보싸 노바 싱어송라이터’로, 소히의 음악을 ‘한국적 보싸 노바’라고 부르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만족하는지요?
소히: ‘한국적’이라는 것을 국악이나 민요 같은 전통음악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1980년대 가요를 들으면 리듬이나 음악은 차용한 것이지만 멜로디에는 어떤 ‘유니크’한 것을 느끼거든요. 그런 의미예요.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어떤 느낌이죠. 사실 ‘브라질적’이라는 것을 전통에서 찾지는 않잖아요. 보싸 노바도 20세기에 나온 음악인데…

[weiv]: 문제는 ‘브라질적인 것’은 음악적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 반면, ‘한국적인 것’은 음악적 용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죠. 하지만 오늘 이런 것으로 논쟁하기는 싫고…. (웃음) 그렇다면, 지금 말씀하신 1980년대 가요들 가운데에서도 보싸 노바를 원용한 곡들이 있었잖아요. 그 이후에도 그렇고… 그런 음악들과 소히의 차이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히: 첫째는, 제 음악은 보싸 노바 리듬만 차용한 게 아니라 브라질에 있는 여러 다양한 장르들을 차용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개별 곡만이 아니라 음반 전체적으로도 그러한 색깔을 내려고 한다는 점이죠.

[weiv]: 그런데 소히의 음악을 누가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듣는 음악은 아닐 텐데…
소히: 그래서 더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디에 아무래도 장르적 규정이 있을 텐데, 거기에 보싸 노바가 있다면 신기하고 희소할 수 있겠죠. 이건 조금 엉뚱한 이야기인데, 인터뷰할 때 마지막에 “꿈이 뭐냐?”고 물으면 저는 “인기가수요.”라고 대답해요. 올림픽 스타디움이 꽉 차 있는 데서 공연하는 꿈이 있어요. (웃음) 이 꿈은 나이가 많이 들은 다음에 이뤄도 되는 꿈이죠. 1집을 그렇게 작업한 것도 그런 꿈이 있으니까 홍대앞 인디에서 들을 수 없는 음악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꿈이 원대하다 보니 가끔은 잘 안 먹혀요. (웃음) 방향성이랄까, 초점을 잃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2집도 대중적인 음반을 내려고 했는데 사실 1집보다 덜 대중적이거든요.

[weiv]: 다시 질문한다면 사실 이 음반의 타겟 청중이 누구인지 저로서는 모호하네요. ‘브라질 음악’을 듣는 사람들일까요, ‘인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일까요?
소히: 한국에서도 재즈를 하는 분이 브라질 음악을 커버해서 앨범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도 의미는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디 씬의 창작의 능력과 보싸 노바의 음악적 베이스를 함께 가져 가고 싶었어요. 인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나 재즈/보싸 노바를 듣는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음반을 낸 거구요.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놓칠 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요. 뼛속까지 대중적이 되려고 한다면, 그것도 제게는 힘든 일이에요.

[weiv]: 그렇다면 ‘정통’ 브라질 음악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겠네요. 아까 ‘한국형 보싸 노바’라는 말은 “강강수월래”나 “비온 뒤” 등의 곡 때문에 붙여진 말 같기도 합니다.
소히: 정통 브라질 음악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에요. 타이틀이 ‘밍글(mingle)’이잖아요? 정통성을 추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제가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죠. 사실 국악이나 민요란 것은 초등학생 때 배운 게 전부예요. 한국에는 어떤 음악을 하려면 ‘연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잖아요?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냥 체화된 대로, 내가 느낀 대로 한 거예요.

3. 멀티플 밍글

[weiv]: 그런데 타이틀곡인 “그럼 그렇지”는 사실 제게는 낯설더군요. 보싸 노바 스타일의 기타가 있다고는 하지만 ‘가요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가사는 일탈적이고…
소히: 우선 보싸 노바 리듬이 아니죠. 그런데 이 곡의 가사 일부가 문제가 되어서 KBS에서 심의할 때 가사를 조금 바꿔서 다시 불렀어요. 심의에서 문제되지는 않았지만 술이나 담배 이야기가 가사에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weiv]: “거짓말”이나 “Boa Tarde”가 가장 정성을 기울인 트랙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Boa Tarde”에서의 ‘광고를 보면서 소비주의를 성찰한’ 가사가 재밌었네요. 그런데 음악적으로는 ‘보싸 노바’ 이상인 것 같습니다. 설명해 주시겠어요?
소히: 일부 평론가들이 앨범에 통일성이 적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거짓말”의 경우 카니발에 어울리는 삼바고, “Boa Tarde”는 어떤 평론가가 MPB(Musica Popular Brasileira)의 전형이라고 했는데, 다소 MPB적인 느낌이 있다고 생각해요. 흑인음악의 느낌이 깃든 MPB, 예를 들면 마리나 리마(Marina Lima)나 자반(Djavan)를 들어보면 이런 느낌이 전해지거든요. 가사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병원에서 TV를 보다가 느낀 거에요. 케이블 TV의 광고는, 조금 미친 것 같아요.

[weiv]: 마지막 곡 “나나나”는 아프로쿠반 음악도 도입했다고 하던데요. 이렇게 라틴 음악을 한국에서 즐길 만한 공간들이 있는 건가요?
소히: 쿠바 음악을 듣고 있으면 왠지 몸이 들썩여져서 좋아하기는 하는데, 집중해서 깊게 파고 들어간 적은 없고 유명 뮤지션들이 누군지도 잘 몰라요. 가끔 살사 바에 가서 들은 정도고, 그 곡과 관련해서 언급된 아프로쿠반 음악이란 살사를 말한 거예요. 살사나 탱고 등 라틴 댄스를 배우는 공간들은 여기저기 있어요.

[weiv]: “그럼 그렇지”의 뮤직 비디오를 보니까 까포헤이라를 하는 곳도 있는 것 같던데…
소히: 그 비디오는 진짜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찍었어요. 산울림 소극장 근처에 ‘에스꼴라 알레그리아’라는 이름의 삼바 에스꼴라(스쿨)가 있어요. 에스꼴라 형태를 한국으로 가지고 와서 조그맣게 운영하는 곳이죠. 뮤직 비디오에서 까포헤이라를 배우는 곳도 거기고, 제 밴드에서 퍼커션 치는 경이도 거기서 퍼커션을 배웠어요.

[weiv]: 그렇다면 소히의 음반이 그렇게 브라질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음악이 되면 좋을 텐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그 사람들이 소히의 음악을 듣는 저변이 되고 있는 건가요?
소히: 에스꼴라 알레그리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삼바와 보싸노바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는데, 제가 연주할 때 호응이 좋았어요. 얼마 전 브라질 사람들 앞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좋았고…

[weiv]: 그런 공간을 매개로 함께 음악하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었나요? 제가 그쪽 세계를 잘 모르는데, 세션해 주는 뮤지션들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나요?
소히: 아까 말했지만 편곡이나 믹싱이 힘들었지 세션 연주해 주는 친구들을 구하기는 힘들지 않았어요. 1집 활동 정리하고 만난 친구들이니 꽤 오랫 동안 함께 연주해 온 셈이죠. 퍼커션 하는 친구는 브라질 음악 매니아로 출발해 전문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게 되었고, 정중엽(장기하와 얼굴들의 베이스 연주자) 등과 보싸 노바 팀을 만들어서 연주하기도 해요. 물론 스트링이나 플루트처럼 부분적인 악기를 연주한 분들은 같이 오래했던 분들은 아니에요. 그 파트들에서 브라질 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어요. 그런 게 아쉽긴 하죠.

4. 여성 뮤지션의 예술적 노동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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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얼마 전부터 홍대앞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 가운데 ‘여성’의 비중이나 표상이 증가하는 것 같네요. 오랫동안 활동해 온 입장에서 소회가 남다를 것도 같은데…
소히: 예전에는 남성 뮤지션 위주였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닐까요? 그 동안은 여성들이 독립적으로 무언가 맡아서 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역할들이 주어져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건 시스템 상의 문제라고만 말하기는 힘들고, 오랜 시간 묵혀 있었던 여성성의 문제이기도 하죠. 또 외부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것, 실력보다도 보여지는 모습으로 좌우되는 것들이 있어 왔어요. 그런 점들이 조금 힘들었어요. 사실 지금까지도 제가 여성으로서 음악을 할 때 어떻게 보면 남성들의 도움을 받으며 앨범을 내 왔잖아요. 그런데 최근 몇몇 여성 뮤지션들은 스스로 편곡하고 프로듀싱도 하잖아요. 저도 그런 걸 지켜보면서 앞으로는 음반도 셀프 프로듀스하고 다른 뮤지션들의 음악도 프로듀스하고 싶어요. 지금도 몇몇 뮤지션들은 이미 하고 있지만 저는 조금 다이내믹하게 여러 시도들을 하고 싶어요.

[weiv]: 여성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네요. 그걸 의식적으로 음악에 표현하려는 생각이 강한 편인가요?
소히: 그렇죠. 표현하고 있어요. “좋아” 같은 경우도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이고…

[weiv]: 그렇다면 ‘옛날 이야기’도 조금 들어볼까요? 잠(Zam)이나 99에서 활동했을 때는 그 ‘성 역할’이 어땠나요? 소희 씨의 모습을 표현할 기회가 적었나요? 이런 이야기를 포함해서 그 시절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을까요?
소히: 잠(Zam)을 처음 만든 건 1997년이에요. 그때 드럭(Drug)에서 갈매기라는 밴드를 하고있던 친구랑 그의 친구인 기타 치는 친구와 함께 팀을 만든 거예요. 저는 그때 기타도 칠 줄 모르고 베이스도 친 적 없었는데, 그때는 옐로 키친(Yellow Kitchen)을 좋아해서 시작한 거였죠. 한 6년간 활동한 것 같네요. 저와 기타 치는 친구 둘이 리드했으니까 제 의견도 많이 수렴되기는 했어요. 그런데 제가 곡을 쓴 건 한두 곡이 전부였고, 그때는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저는 그때 항상 일을 했어요.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직장 다니고, 밤에는 음악 연주하고.

[weiv]: 그때 어떤 경로로 ‘슈게이징 걸’이 되었던 건가요? 지금도 그때 했던 음악을 가끔 듣나요?
소히: 고3 때 저를 드럭에 데리고 간 사람은 제 사촌언니에요. 그때가 [Our Nation Vol.1]이 나왔을 때였어요. 그때 드럭에 뭔가 중독적인 게 있었잖아요? 아, 저를 강아지 레이블에 소개해서 99와 만나게 해 준 것도 그 언니였어요. 그때는 슈게이징 음악이 진짜 멋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듣지 않아요. 사실 그 전에 저는 흑인음악을 좋아했어요. SWV(Sisters With Voices)같은 R&B를 좋아했어요. 오히려 지금 그때 들은 음악이랑 연결 지점을 찾은 거 같아요.

[weiv]: 이제 그때 이야기도 ‘역사’가 되어 가고 있네요. 10년이 훨씬 넘게 음악 활동을 해 왔는데, 그동안 자신이 음악에 투여한 ‘노동’에 대한 보상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나요? 예술가를 ‘창의적 노동자(creative worker)’라고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소히: 자기 자신이 예술가(아티스트)이고, 예술적 노동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 같아요.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에 대한 거부감도 약간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심각하게 뛰어들지 않으려는 면들도 있어요. 지레짐작해서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면도 있고요. 저도 그런 케이스죠.

[weiv]: 그래도 외부에서 지켜보는 저 같은 입장에서는 예전(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비하면 페스티벌이나 공연 등 인디 음악인들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조금 많아진 것 같이 보이기도 하는데…
소히: 그때는 공연해서 돈 벌 일이 없었고 행사 같은 것도 적었죠. 조금 나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덜 대중적인 밴드들은 그대로 아닐까요? 예를 들어 싸이키델릭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은 그대로일 거에요. 혹은 페스티벌이나 공연을 한다고 해도 밴드로 연주할 경우 1인당 돌아가는 몫은 많지 않아요. 아티스트별로 천차만별이기도 하구요. 어떤 삶을 살기로 결정하는 것도 다들 달라요. 저 같은 경우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대로 살자’는 주의가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고요.

[weiv]: 마지막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소히의 계획을 알려주시겠어요?
소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다 욕구가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받았다면 쌓여진 자양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나오겠지만, 스무 살이 된 다음에 하고 싶은 걸 찾은 것이고 지금도 음악적 소양을 쌓는 중이죠. 꿈이요? 언젠가는 브라질에 여행가서 녹음을 해오고 싶은 꿈이 있죠.

[weiv]: 그 꿈이 곧 이루어지기 바래요. 오랜 시간 인터뷰 고마와요.
소히: 예, 그런데 인터뷰가 어렵네요.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요? 어쨌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인터뷰였습니다. 20101028 | 신호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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