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GPS2011 조직위원회

_MG_8653

겨울의 매서운 한파가 물러나고 나면 으레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여름까지 기다리기엔 화창한 봄이 너무 아깝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닌가 보다. 5월 둘째 주에 개최되는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말이다. 작년부터 시작해 올해 2회째인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은 봄과 자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음악 축제이다. 우리나라의 음악 페스티벌이 여름과 가을에 몰려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봄비 같은 페스티벌이 아닐 수 없다.

‘그린플러그드’란 ‘자연(Green)’과 ‘뒤덮였다(Plug)’라는 뜻의 단어가 결합된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생각과 작은 실천’이라는 ‘착한’ 주제를 내세운다. 물론 단순히 모토만 착한 것이 아니다. 착한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유도한다. 출입구 앞에서부터 쓰레기봉투를 나누어 주어 환경 보호를 실천하게 하는가 하면, 곳곳에 배치된 쓰레기통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수 없게 만든다. 개인 텀블러를 가져오면 맥주를 공짜로 나누어 주는 행사를 통해 종이컵 사용을 줄이는 행동도 이끌어낸다. 가격 역시 다른 페스티벌에 비해 착한 편이다. 특히 학기 초에 교재 값으로 많은 지출을 한 학생들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가격이 착하다고 해서 공연장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넓은 공연장에 편리한 교통편, 잘 설치되어 있는 편의시설(특히 여자화장실은 기다리지 않아도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외에 공연 스케줄에서도 착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데, 공연 스케줄은 귀가 시간을 고려한 건지 10시 전에 끝난다. 앵콜곡까지 즐기더라도 막차가 있을 법한 시간이다. 공연 후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들어갈 수 있다. 가족이 함께 오더라도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올해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은 한강 난지지구에서 진행되었다. 페스티벌에 참가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직면하는 것이 공연장까지의 교통문제이다. 페스티벌의 첫인상쯤 되는 셈인데, 참가자 입장에서 교통 문제는 페스티벌에서 꽤 중요한 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의 첫인상은 아주 좋았다.

20110709025428-GPS2011_ (10)

공연장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려면 지하철 마포구청역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정류장으로 가야한다. 가는 중간에 편의점이나 마트가 있어 필요하다면 물건을 사가는 일도 쉬웠다. 셔틀버스는 40인승 대형버스로 넓었고, 10분마다 출발했다. 둘째 날에는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서 가는 것은 체념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날은 버스들이 맞은편에 대기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숫자에 따라 융통성 있게 운행되었다. 전날 사람이 적을 때처럼 편히 갈 수 있었다. 예전에 한강 난지지구에서 하는 다른 페스티벌 입구까지 가는 데 고생한 나로서는 ‘이거 너무 편한데 제대로 탄 것 맞나’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웬만하면 차로 가는 것보다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을 더 추천해본다.

셔틀버스는 공연장 맞은편에 선다. 육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선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었다. 육교를 올라가는 순간부터 공연장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선물도 포장을 뜯을 때 가장 신나는 법, 저 멀리 공연장을 본 뒤 신나서 육교에서 걸어갔는지 뛰어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손에 표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주변에 탁 트인 시야와 아래로 깔린 넓은 잔디밭, 그리고 그 앞에 두 개의 스테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입장할 때 나누어준 타임테이블에 스테이지 안내가 나와 있었는데, 공연장에 설치된 스테이지는 총 5개였다. 선(Sun), 어스(Earth)와 문(Moon), 스카이(Sky)가 각각 한 세트씩 구성되어 있고, 윈드(Wind)는 단독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두 개의 스테이지가 짝을 이루는 이유는 공연 방식 때문이었다. 다섯 개의 스테이지에서(하지만 공연은 세 개의 스테이지에서만 진행된다) 110팀의 공연을 10시까지 끝낸다는 건 벅찬 일이다. 그래서 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동안 옆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공연이 끝나고 무대 장비를 설치하는 자투리 시간도 활용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쓴 것 같다.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 장점 했지만, 기다리는 시간 동안 쉬면서 일행과 하는 잡담이 그립기도 했다. 전 공연을 음미할 시간조차 없이 바로 다음 공연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아쉬웠다.

스테이지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개인적으로 다섯 개의 스테이지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스테이지는 윈드 스테이지였다. 윈드 스테이지는 플로팅아일랜드 위에 설치되어 있어 강을 배경으로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사운드도 가장 좋았을 뿐더러 시간마다 바뀌는 배경에 백스크린이 없어도 그럴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첫째 날의 마무리는 디어클라우드의 공연으로 하기 위해 윈드스테이지로 입장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윈드 스테이지에게 ‘반했다’. 스테이지에게 반했다는 표현이 좀 웃기긴 하지만, 진짜다! 봄이라 밤에는 다소 쌀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앉아 있고 싶은 곳이었다. 한강의 야경을 배경으로, 100석 남짓한 작은 규모의 객석에 절반 정도 차 있는 관객들과 무대가 하나 된 모습이 참 좋았다. 디어클라우드의 보컬 나인은 중간 중간에 관객과 소통하며 소소한 웃음을 자아냈다.

입장하고 나서 가장 처음 본 것은 선 스테이지에서 공연하고 있는 바닐라 유니티(Vanilla Unity)였다. 밴드는 가장 최근 곡인 “Hey Monster”를 시작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마지막으로 가장 잘 알려진 “내가 널 어떻게 잊어”로 마무리하고 있을 쯤에는 처음 관객의 반도 안 되는 숫자가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중간에 나간 관객들은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스테이지에서 진행하는 유브이(UV)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였다. 다른 곳에 설치되어 있는 스테이지로 이동하려면 5분 넘게 걸어야 했음으로 유브이의 공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공연을 포기한 것이다.

나 역시 얼마 후 스카이 스테이지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는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표지판에는 다음 스테이지에 도착하면 몇 칼로리가 소비된다고 적혀 있었다. 다이어트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이라면 더욱 주목할 만한 문구였다. 나 또한 정말 열심히 걸었다. 표지판 외에도 스테이지 이동 루트에서 노래하던 사람들이 있어 걷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스테이지마다 딱히 주제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고 시간 맞는 순서에 따라 나뉜 듯해 한 장르를 즐기고 싶어도 여러 번 이동해야 했다.

20110709025428-GPS2011_ (22)

이번 페스티벌의 주인공은 유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들의 무대는 빛났다. 자석이 철가루를 끌어당기듯 등장 전부터 많은 관객을 스테이지 앞으로 끌어들였다. 앞뒤 공연들이 ‘올킬’ 당할 만큼 강력한 자석이었다. 심지어 뒤에서 돗자리 깔고 여유롭게 보던 관객들 대부분도 벌떡 일어났다. 이 정도면 입장부터 어땠을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레게머리와 죄수복을 입은 뮤지와 유세윤의 입장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첫 곡 “인천대공원”이 시작할 때부터 공연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관객들은 모든 곡을 떼창했다. 공연 중간 중간 유세윤의 시원한 입담은 관객들을 빵빵 터뜨려주었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를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가자 사람들은 아쉬워하며 앵콜을 외치기 시작했다. 유브이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실 오늘 602곡 정도 준비했어요. 문제는 지금 약속한 가격대로 다 불러버려서…”라는 멘트와 함께 다시 무대에 올랐다. 농구를 하며 “마지막 승부”를 불렀다.

유브이의 공연 이후 공연장을 빠져나가고 있던 관객들의 귀를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사로잡았다. 반복되는 신시사이저의 멜로디는 지루하지 않고 신선했다. 바로 글렌체크(Glen Check)의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아직 정규 앨범조차 나오지 않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린플러그드에 초대되었을 정도로 실력 있는 밴드이다. 3월에 EP가 나왔으니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관객들은 곱상한 외모를 가진 세 명의 청년들이 뱉어내는 곡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EP에 실려 있는 네 곡 외에도 신곡들을 들을 수 있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공연을 즐기던 사람들의 다수가 글렌체크를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었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반한 1人이다.) 주목할 만한 팀인 것은 확실했다.

이번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아직은 더 보완해야 할 부분도 남아 있었다. 스테이지 진행이나 교통편 같은 세세한 요소들은 잘 준비되어 있었으나 공연의 큰 그림은 미완성 단계였다. 110팀이라는 국내 최다 팀을 내세웠지만 페스티벌의 컨셉트는 불명확했다. 그러다 보니 활동하는 팀들 중 일정이 되는 110팀을 중구난방으로 모아놓은 모습으로 비춰졌다.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이나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처럼 록이나 재즈 등 특화된 장르로 승부하거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처럼 음악뿐 아니라 ‘체험’에도 비중을 두어 승부할 것인가 등에 대한 고민과 결단이 필요할 듯싶다. 이것만 해결하면 관객들의 불만이었던 숨 가쁜 공연 일정이나 공연장 이동의 문제도 동시에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음악 중심의 페스티벌을 진행하게 되면 컨셉트에 맞는 팀만 섭외해 여유로운 공연 진행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많은 스테이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혹은 체험을 중심으로 한 페스티벌을 기획하면 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이동하며 거리가 멀어 투덜거리던 관객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20110706 | 김정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