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버팔로(Avi Buffalo)는 본인이 뉴욕에서 본 첫 공연의 주인공이었다. 뉴욕에 도착한 다음날, 무작정 공연을 보자 싶어서 그날의 공연 리스트를 뒤졌고,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실은 안 봤을 수도 있다) 아비 버팔로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브루클린에 있는 벨 하우스(Bell House)를 찾아가 공연을 본 것이다.


[아비 버팔로, Live at Bell House]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지만, 이들의 공연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무척이나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가늘지만 감성이 듬뿍 담겨 있는 보컬, 햇살을 가득 머금고 있는 기타… 처음 듣는 노래였음에도 금방 빠져들 수 있는 멜로디 또한 매력이었다. 신인 밴드임이 분명해 보였지만, 아비의 기타 연주는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기타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받쳐주는 멋진 기타 라인들을 멋드러지게 연주해냈다. 그는 “What happened to love?”라고 소리질렀다. 약간의 어두운 기운을 머금은, 그리고 청소년기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비치 보이스(Beach Boys) 같았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공연이 끝나고, 머천다이즈 판매소에서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기타를 맡고 있는 아비그도르 자너-이센베르그(Avigdor Zahner-Isenberg)를 만날 수 있었다.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0일 뒤 본거지인 캘리포니아로 돌아간 아비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그 후 세 달간, 아비 버팔로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들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이 발매되었고, 이 앨범은 NME, 피치포크, 가디언 등 거의 모든 음악매체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들은 환상적인 송라이터들을 배출한 레이블 서브 팝(Sub Pop)의 리딩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 2010년의 플릿 팍시스(Fleet Foxes)라는 말도 나온다. 한마디로, 떴다.

좋은 일만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한 스타덤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는 투어 도중에 아비 버팔로의 주요 멤버였던 키보디스트/보컬 레베카 콜먼(Rebecca Coleman)이 밴드를 떠났다. 이들은 이제 3인조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이 인터뷰는 이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의 일이다. 주요 음악매체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기 전이다. 그러니까 가장 솔직하고 풋풋한 아비 버팔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인터뷰는 이들의 데뷔앨범을 들어본 사람이든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든, 아비 버팔로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로그스(이하 로): 미국 동부 투어는 어땠나?
아비그도르 자너-이센베르그(이하 아): 즐거웠다. 총 다섯 번의 공연을 했는데, 그게 정식 투어로는 거의 처음이었다. 그 전에도 투어를 하긴 했지만, 그건 북서지방에서 그냥 일주일 정도 한 거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미국 동부 지역을 가본 것도 처음이다. 중간에 아파서 좀 고생을 했는데, 공연은 정말 재밌었다. 아무래도 비타민 C를 제대로 섭취하지 않아서 아팠던 것 같다. 투어를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평소와는 많이 다른 생활 패턴을 유지해야 한다.

로: 먼저 밴드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아비 버팔로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멤버들은 어떻게 만났나?
(이 친구, 열정이 넘친다. 보통 밴드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과정 하나하나를 자연스럽게 얘기해나가는 게 보통인데, 한 번 물어보니 주루룩 다 얘기한다. 그것도 자세히.)

아: 10학년, 그러니까 15살 즈음에 컴퓨터로 음악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컴퓨터에 달려 있는 마이크로 녹음했다. (웃음) 원래는 시끄럽고 정신없는 잼 밴드에 속해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자 내가 좀 더 컨트롤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녹음을 했고 그걸 마이스페이스에 올렸다. 요즘은 많은 밴드들이 마이스페이스에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게 노래를 올리자 몇몇 사람들이 연락이 와서 공연 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래서 주위의 친구들을 모아서 셰이커와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게 했다. 그때만 해도 공연은 했지만 제대로 된 밴드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반응이 있어서 나는 제대로 된 록밴드를 시작하고 싶어졌고, 그때쯤에 동네에서 작은 음악페스티벌이 있었는데 거기에 밴드를 데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멤버들을 모았고, 지금 드러머인 셔리단 라일리(Sheridan Riley)와 키보드와 보컬을 맡고 있는 레베카 콜먼, 베이스를 치던 앤드류 셀릭, 기타리스트 조엘 제스퍼와 함께 5인조 밴드를 결성했다. 그렇게 꽤 많은 공연을 했다. 우리는 모두 LA 남쪽의 롱비치에 살고 있었는데, 한 번은 LA에서 공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LA에서 한 번 공연을 하자 많은 기회가 생겼다. LA에는 좀 더 큰 음악씬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장도 많고, 밴드도 많고. 그때부터 왔다갔다 하면서 LA에서 공연을 많이 했다. 그때 너무 많이 왔다갔다 했던지, 앤드류와 조엘이 밴드를 그만두었다. 앤드류는 전기기술자가 되었고 ―그는 솜씨가 좋다― 조엘은 롱비치의 다른 밴드에 들어갔다. 그래서 우린 당시 롱비치에서 공연을 같이 하곤 했던 애린 파지오(Arin Fazio)에게 베이스를 쳐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우리는 4인조 밴드가 되었다.
그렇게 한 6개월 정도 지났을까, 애런 엠브리라는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정말 멋진 피아노 연주자로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나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과 함께 연주했었다. 그는 정말 천재다. 그가 우리 음악을 좋아해줬고 우리도 그의 음악이 마음에 들어서 그냥 재미로 같이 녹음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우리가 서로 정말 잘 맞는다는 걸 느꼈고 어쩌다 보니 앨범을 녹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서브 팝의 AR을 맡고 있는 사람이 애런과 잘 알았는데, 애런이 뭘 하고 지내는지 얘기하다가 우리 음악을 듣게 되었고, 나에게 연락해서 서브 팝에서 앨범을 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웃음) 우리는 우리 음악이 그렇게 퍼질 줄은 정말로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두 달 동안은 계속 그렇게 믿기지 않는 상태였다. 갑자기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웃음) 그때 애런이 애가 생기는 바람에 잠깐 쉬었는데, 그 시간을 유용히 써서 앨범 작업을 마쳤다. 서브 팝과 계약을 하고 난 후에 온갖 미친 일들이 이어졌다. 부킹 에이전시를 만났고… 등등. 그렇게 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앨범 아트웍 작업을 마무리 하고 있고, 여기까지가 아비 버팔로의 역사다. (웃음)

로: 와우. 진짜 자세하고 길게 말해줬다. 이젠 물어볼 게 없는데. (웃음)
아: 그런가. 그게 거의 전부 말한거다. (웃음)

로: 근데 내가 인터넷에서 다른 인터뷰를 보니까 키보드를 치는 레베카를 짝사랑한 이야기가 있던데 그 얘기는 왜 안 하나.
쪽팔려서? 풋.

아: 음… 내가 처음으로 녹음해서 마이스페이스에 올렸던 곡이 내가 한창 레베카에게 빠져 있을 때 썼던 노래다.

로: 정말 로맨틱 하네. (웃음)
아: 그런가? 원래 그런 게 강한 영감을 주는 거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레베카가 밴드에 정말 잘 맞는 사람임이 밝혀졌다. 그래서 로맨틱한 밴드 스토리라는 얘기가 있던데… 뭐, 사실 좀 부끄러운 얘기이기는 하다. (웃음) 하지만 그런 짝사랑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때 그 노래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초반에 쓴 3, 4곡 정도의 이야기고, 앨범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곡은 레베카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다른 여자들에 대한 노래다. (웃음) 확실히 평범하지 않은 과정이었다.

로: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다. (웃음) 그거 가지고 소설이라도 써라.
아: 아, 언젠가는. (웃음)

로: 그래도 밴드에 뭔가 실제의 러브 스토리가 개입되면 사람들이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스웰 시즌(The Swell Season) 같은 경우도 비록 지금은 연인 사이가 아니지만, 처음에는 그들이 연인 관계라는 것 때문에도 주목을 받지 않았나. 좀 부끄럽기는 해도 도움이 되는 거다. (웃음)
아: 맞다. 그 얘기랑 우리가 모두 매우 젊다는 두 가지 사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 같다. 그게 꼭 음악과 관련 있는 건 아니지만, 관심에는 도움이 된다. (웃음) 그래서 인터뷰를 하든 리뷰를 하든 간에 항상 사람들이 ‘짝사랑의 슬픔을 담고 있는 밴드 아비 버팔로! 아비와 레베카의 로맨틱한 사랑!’이라고 소개를 한다. (웃음) 난 그런 글을 보면 울면서 “대체 왜!”라고 소리를 지르곤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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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의 짝사랑, 레베카. 이제는 좀 슬퍼져 버렸다. 결국은 새드엔딩인가.]
로: 이제 음악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해보자. 밴드를 하거나 노래를 만들 때 어떤 음악이나 밴드에서 영향을 받았나?
아: 난 어려서부터 항상 음악을 듣고 자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 뮤지션 아니면 엄청난 리스너들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자궁에 있을 때부터 폴 사이먼(Paul Simon)이나 비틀즈(The Beatles)의 음악을 들려주셨다. (웃음) 그런 것 때문에 처음부터 기타에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사람들이 보통 13, 14살 때 들은 음악이 감성적으로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말하더라. 그 때 사춘기니까 호르몬도 많이 나오고 하니까. (웃음) 처음에는 기타를 치니까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나 레드 제플린(Led Zepplin) 같은 로큰롤 밴드를 듣다가, 윌코(Wilco)를 듣게 되었다. 나는 [Yankee Hotel Foxtrot]과 [Ghost Is Born] 앨범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게 일종의 내 터닝포인트였다. 윌코는 나에게 새로운 음악이었고, 나를 흥분시켰다. 그들은 멋진 멜로디를 써내면서도 비틀즈나 레드 제플린을 연상시키는 뮤지션쉽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노이즈나 드론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멋진 곡을 만들었고, 사운드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윌코를 기점으로 그런 음악을 많이 듣게 되었지만, 확실히 윌코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Ghost Is Born]은 내 삶의 한 부분을 규정하고 있는 앨범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음악에도 그런 느낌과 영혼이 들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작년 즈음에는 비치 보이스를 처음으로 듣고 완전히 빠지게 되었다. 물론 그 전부터 이름을 들어보긴 했지만 음악은 제대로 들어보지 않았었는데, [Pet Sound]를 듣고 완전히 빠지게 되었고, 그 또한 많은 영감을 주었다. 리스트를 대자면 끝도 없다.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도 마찬가지고.

로: 기타도 기타지만 내가 벨하우스에서 당신의 공연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건 당신의 노래 스타일이 정말로 특이하다는 거였다. 그건 어디서 영향을 받은건가?
아: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가 내 목소리를 발견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고, 지금도 여전히 찾는 중이다. 처음 녹음을 할 때 난 항상 부드럽게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컴퓨터 마이크로 노래를 해야 했으니까. (웃음) 또 부모님이 다른 방에 계시는데, 녹음 할 때 내가 노래하는 걸 듣는 게 싫어서… (웃음) 그 뿐만 아니라 부드럽게 노래할 때의 색깔과 느낌이 좋았다. 그러다가 라이브를 할 때, 어쿠스틱으로 할 때는 상관없는데, 일렉트릭 밴드와 공연을 하자 목소리가 잘 안들렸다. 그래서 어떻게든 목소리를 들리게 해야겠다 싶어 소리지르는 느낌을 더했다. 사람들은 “What’s In It For?”에서 내가 노래하는 스타일이 특이하다고 하는데, 그런 목소리를 더해서 노래의 느낌을 살리는 게 쉽지는 않았다. 보컬 측면에서는 플레이밍 립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웨인 코인(Wayne Coyne)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메세지와 느낌을 확실히 전달한다. 하지만 노래와 가사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노래를 할 때 그 느낌에 대해 많이 고민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노래마다 목소리가 좀 달라지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시끄러운 목소리와 조용한 목소리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로: 혼자 그렇게 녹음을 하다가 갑자기 서브 팝에 들어가고 모든 일들이 빨리 진행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아: 맞다. 정말 무서운 한 해였다. 난 한 번도 내가 이렇게 되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다. (웃음) 난 한동안 세션 기타리스트가 되길 원했다. 난 기본적으로 기타리스트다. 8, 9학년 때 제대로 기타를 치기 전부터 음악학교에 들어가 멋진 기타연주자가 되어 투어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밴드를 만들어서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투어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건 정말로 재미있지만, 내가 처음에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밴드에 속해서 오랫동안 연주하는 것과 여러 밴드에서 연주를 해보는 건 완전히 다르다. 항상 다른 사람들과 연주하면 계속 배우고 성장한다. 그래서 한동안 ‘이러다가 다른 밴드들과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난 한때 가스펠 밴드에서 연주를 했었고, 밴드에서 내가 유일한 백인 연주자였다. 그 과정에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음악적으로 내 머릿 속에 있는 많은 것들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밴드를 하게 된 건 놀랄 만한 일이다.

로: 너무 어린 나이에 투어를 할 때 불편한 점은 없나?
아: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어려서 더 좋다는 말을 한다. 한 번은 30대 중반의 밴드 멤버를 만났는데, (목소리를 흉내내며) “너네는 어려서 좋겠다. 투어를 그냥 막해도 되고. 우린 몸무게도 신경써야 되고, 마약도 못하고, 술도 많이 못 마시고 그래.”라고 하더라. (웃음) 우리가 마약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건 아니지만, 어리기 때문에 부담이 없고 투어를 할 때도 신나게 아무 생각 없이 나갈 수 있다는 건 좋은 것 같다. 우리의 첫 인상이 어떨지 등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좋긴 하겠지만. 사실 앨범에서도 내가 고쳤으면 하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젊든 늙었든 간에 이런 기회를 얻게 된 밴드들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난 어려서 좋은 것 같다. 안 그래도 얼마전에 소프트 팩(The Soft Pack)이 라는 밴드와 투어를 했는데, 같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몇 살이냐고 물어봤더니 28살이라는 거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가 19살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어우, 졸라 젊네.”라면서 나보다 더 깜짝 놀랐다. (웃음) 그들이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중년은 아니지만, 대충 중년에 가깝지 않나. (웃음)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감사하게 느끼게 되었다. 설령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해도 우리는 아직 18, 19살인데 몇 년 해보고 나서 결정해도 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아주 좋은 기회를 얻었다.

10대 후반에 이러한 기회를 얻는다는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뒤따라 줘야 한다. 그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부럽다.

로: 이제 데뷔 앨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타이틀이 ‘Settled Tigertail’이라던데?
아: 아니다. 셀프 타이틀 앨범이다. 원래는 ‘Settled Tigertail’이라고 하려 했는데, 결국 별 이유 없이 셀프 타이틀로 결정했다.

로: 그럼 그냥 ‘Avi Buffalo’가 되는 건가? 그럼 원래는 “Settled Tigertail”이라는 노래가 있었나?
아: 앨범에 실려있는 “Where’s Your Dirty Mind?”의 원래 제목이 “Settled Tigertail”이었다. 그러다가 노래 가사 첫 줄을 바꾸면서 노래 제목도 바꾸게 되었다. 그 곡은 앨범의 마지막 노래다. 그 곡은 이 앨범에서 홈레코딩으로 녹음한 유일한 노래다. 나머지는 모두 스튜디오에서 프로툴로 작업했다. 그 노래는 컴퓨터 마이크로 작업했다. (웃음) 그런데 결과가 잘 나왔다.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컴퓨터 마이크는 정말 멋지다. 아날로그 느낌이 나고, 어떤 사람들은 테이프의 느낌이 난다고도 한다. 좀 좋은 느낌으로 사운드 질이 안 좋달까.

로: 앨범은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인가? 지금까지 공개되었던 곡들과 다른가?
아: 많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정말 비싼 마이크로 녹음했기 때문에 소리가 깨끗하다. 컴퓨터 마이크는 소리가 따뜻하지만 아무래도 디스토션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사실 난 그런 느낌을 좋아해서 다음 앨범에는 좀 더 많이 컴퓨터 마이크로 녹음할 예정이다. (웃음) 앨범은 전체적으로 밝고 많은 소리의 층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런 소리들이 명확하게 잘 들린다. 우리는 그 점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프로툴을 사용하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층을 만들고 이리저리 붙일 수 있어서 좋았다. 전체적으로는 노란색과 빨간색 느낌의 매우 밝은 앨범이다. 이전에 공개했던 곡들은 좀 더 어둡고 파란색의 느낌이었다. 확실히 앨런과 같이 작업한 게 많은 영향을 줬다. 예전에 녹음했던 곡들은 나 혼자 한 거였고, 앨범은 그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밝은 느낌의 사람이고, 난 평소에는 밝지만 음악적으로는 어두운 느낌으로 간다.

로: “What’s In It For?” 같은 노래의 기타톤은 캘리포니아의 햇살 같은 느낌을 준다.
아: 내가 그 노래를 쓸 즈음에 비치우드 스파크스(Beachwood Sparks)라는 밴드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잘 알고 음악도 멋진 밴드다. 그들은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사운드로 60년대의 클래식한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다. 우리 음악을 들어봤으니 좀 놀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난 60년대 음악의 팬은 아니다. 그러나 이 밴드는 뭔가 쿨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치 보이스도 많이 듣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사운드와 감성을 가진 노래를 쓰려고 이리저리 기타를 쳐봤고 거기에서 “What’s In It For?”가 나왔다. 또한 실제로 그 곡을 썼을 때 해변에 있었다. 그래서 그 노래는 특히나 캘리포니아스러운 느낌을 많이 담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때려죽여도 캘리포니아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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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버팔로]
로: 뉴욕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해봤는데, 캘리포니아 지역과의 차이점을 느꼈나? 관객들이나 분위기 같은 측면에서.
아: 공연하는 것 자체는 똑같다. 하지만 뉴욕의 관객은 캘리포니아와 매우 다르다. LA도 좋지만, 거기에는 쓰레기 같은 음악산업이 자리잡고 있고, (웃음)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우들, 락스타 들도 많고. 그런 곳에서 공연을 하면 어떨 때는 분위기가 좋기도 하지만 다른 때는 젠체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전에 LA에 있는 에코(Echo)라는 곳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공연을 잡아 새로운 밴드를 소개하곤 한다. 사람들이 새로 등장하는 밴드를 체크해보는 공연인 셈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좋아했는데 막상 그곳에 가니까 사람들이 다들 명함을 주려고만 하고 (웃음) 공연을 할 때 모든 사람들이 수다를 떤다. 조용한 노래는 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망할 곳에서는 공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동부지역은 여전히 음악적으로 멋진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서부보다 음악적으로 훨씬 더 멋진 장소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많은 밴드들이 동부 출신이다. 내 생각에는 사람들의 태도가 그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뉴욕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음악을 한다.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서로 교류하고 뭔가 가족적인 느낌이 있다. 처음 공연한 곳이 피아노스(Pianos)라는 곳이었는데, 같이 공연한 밴드들끼리 다 친해졌고, 앰프도 공유하고 그랬다. 훨씬 더 개방적이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LA 지역에서 활동한 그의 말을 통해 LA씬과 뉴욕씬의 차이점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LA와 뉴욕을 다른 관점에서 비교한 다른 아티스트와의 인터뷰도 있다. 기대하시라.

로: 얼마 전에 조금 덜 유명한 인디밴드들도 만나봤는데, 그들은 뉴욕씬이 너무 넓고 밴드가 많아서 어렵다는 말도 하더라. 그러고 보면 대도시에서 밴드를 하는 것에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는 것 같다. 아비 버팔로는 그런 어려움 없이 쉽게 대중들에게 다가섰다.
아: 그런 측면도 있다. 음악을 만들거나 예술을 할 때는 고립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도 LA가 아니라 롱비치에서 밴드를 시작한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 LA에서 했으면 그렇게 집중해서 못했을 거다. 대도시 출신 밴드들을 만나봤는데,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음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 사실 난 에코에서 공연을 한 이후 이상한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걸 버렸지만, 그때 LA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잃어서 이 망할 도시에는 도저히 좋은 음악이 나올 수가 없다고 확신했다. 모든 LA 음악이 구리다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도 LA에 가까우니까 거기에 나도 포함되었고, 결국 우리도 쓰레기 같은 음악이라고 생각했었다. (웃음) 그 이후에 다시 기타를 치면서 그런 생각을 버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01026 | 김종윤 [email protected]

관련 사이트
아비 버팔로 마이스페이스
http://www.myspace.com/avibuffa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