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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랭, 홀리 조지-워런
[우드스탁 센세이션] 장호연 역, 뮤진트리, 2010

그야말로 우드스탁 붐이다. 게이 컬처를 전면으로 다루는 [테이킹 우드스탁]은 심지어 한국철도공사 8월의 책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으며, 동명의 영화는 10여 개 상영관에서 소규모로 개봉했음에도 3주 만에 1만 관객을 유치했다. 돌이켜보면 얼마 전에는 ‘우드스탁 코리아’ 개최 소식으로 잠시 들썩이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드스탁 붐 속에서도, 우드스탁에 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알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바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드스탁은 일종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 일어났던 구체적인 사건으로서보다는, 그 이름이 상징으로서 기억되고 그 상징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드스탁은 유명하지만, ‘러브 앤 피스를 외치던 3일간의 히피 록 페스티벌’이라는 강렬한 이미지 뒤에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지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50만이 모이는 록 페스티벌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60년대 말 미국에서 히피 문화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는지가 궁금하다면, 혹은 부모님으로부터 100만 달러의 자산을 물려받아 이걸 어떻게 불릴까를 고민하는 샌님과 장발의 히피가 힘을 합한 ‘우드스탁 벤처스’라는 이름도 수상한 기획사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같은 데 흥미가 동한다면, 아마 [우드스탁 센세이션]이 훌륭한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드스탁 센세이션]은 우드스탁 기획자인 마이클 랭과 홀리 조지워런이 쓴 회고록이다. 신뢰할 만한 레퍼런스라는 평가는 비단 마이클 랭이 우드스탁을 기획한 바로 ‘그 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일을 주관했던 사람으로서의 전지전능한 1인칭 시점이 강조된다기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기억과 코멘트들이 책을 가득 메우고 있는 덕분이다. 스탭, 뮤지션, 매니저, 지나가던 관람객, 지역 주민들의 인터뷰가 페이지마다 떠들썩하다. 우드스탁 야영지를 메웠던 형형색색의 천을 이어 붙여 만든 텐트들처럼, 이 책은 하나의 단일한 서사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증언들로 짜인 패치워크 같은 느낌을 준다. 덕분에 처음에 읽을 때는 다소 산만하다는 인상일 수 있지만, 다 읽고 나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되면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지는 종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드스탁이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은 음악과 ‘태도’가 동등하게 중요했던 페스티벌이었기 때문이다. 우드스탁의 모든 홍보물에는 뮤지션들의 이름이 같은 크기에 알파벳 순으로 배열되었다. 단순히 특정 아티스트의 티켓 파워를 극대화하는 음악 페스티벌이 아니라, 문화가 중심이 되어 문화만으로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사가 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고 마이클 랭은 적고 있다. 예술과 상업이 공존하는 곳, 반대되는 이념들이 공존하는 곳, 인간에 대한 사랑이 최우선이고 서로간의 차이는 그저 개성일 뿐인 곳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모든 걸 품겠다는 이런 말이 다소 안일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50만 명이 식량과 화장실 부족에 교통난과 주차난을 겪었던 아수라장 속에서 단 한 건의 폭력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이 이런 이상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일 수 있을 것이다.

우드스탁 첫 날, 미국 보건국에서는 공무원을 보내 행사장을 돌며 모든 것을 조사하게 했다고 한다. 그의 보고 내용에 따라 까딱하면 페스티벌이 중지될 수도 있었다. 그는 딸을 데리고 왔는데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그는 주말 내내 딸을 찾느라 보고서는 쓰지도 못했다는 아련한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책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세트리스트를 찾아 들으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보건국 공무원의 딸처럼, 어느 주말 방에 앉은 당신도 우드스탁을 (간접적일지라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20100901 | 이수연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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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페스티벌 (2) 우드스탁 페스티벌 – vol.1/no.2 [1999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