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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tlers – Hospice – Frenchkiss Records, 2009

 

 

단 한 번의 시선

단 한 번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음악이 있다. 창작의 배경, 그 결과물, 그것이 전해주는 감흥과 여운까지, 모두가 유일무이할 것 같은 음악. 마치 물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처럼 눈에 확 띄지만 같은 장면을 다시 보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은 음악. 해당 뮤지션의 최고 걸작이자 마지막 걸작이 될 것 같은 음악. 나는 아무래도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3인조 인디 록 밴드 앤틀러스(The Antlers)의 이 음반에 담긴 것이 그런 음악처럼 들린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앤틀러스는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인 피터 실버맨(Peter Silberman)의 원맨 프로젝트로 출발한 밴드다. 실버맨은 앤틀러스의 이름으로 두 장의 음반을 발매했지만, 적어도 나는 이 음반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여러분도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상황이 바뀐 것은 올해 3월, 밴드 편성을 갖춘 뒤 자체 발매로 나온 이 세 번째 음반 [Hospice]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당시부터 입소문이 돌던 이 음반은 패션 핏(Passion Pit), 홀드 스테디(The Hold Steady), 르 사비 패브(Les Savy Fav) 등이 소속된 뉴욕의 인디 레이블 프렌치키스 레코드(Frenchkiss Records)에서 8월에 재발매되었고, 이때를 즈음하여 ‘올해의 음반’ 운운하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Hospice]는 사랑, 죽음, 회한, 추억, 그리고 병원에 대한 컨셉트 음반이다. 뉴욕의 암 전문 병원직원인 한 남자가 골수암(bone cancer)에 걸린 환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녀의 죽음을 곁에서 끝까지 지켜본다는 줄거리다. 아마 이런 설정의 음반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일스(Eels)의 [Electro-Shock Blues](1998)일 것이다. 일스와 마찬가지로 극도로 울적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음반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뮤지션은 헤어나기 어려운 멜랑콜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것이 그들의 애도 방식이겠지만.

그러나 앤틀러스의 사운드는, 당연하게도 동시대의 인디 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를테면 벤조와 아코디언, 트럼펫, 하프 등의 악기가 동원되어 다채로운 색깔을 과시하는 것은 아케이드 파이어(The Arcade Fire)와 베이루트(Beirut)라는 걸출한 재능의 소유자들이 잘 닦아놓은 길이다. 감상적이면서도 강렬한 ‘극적’인 창법에서 안토니 앤 더 존슨스(Antony & The Johnsons)의 영향을 느낄 수 없다면 거짓말이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포크 풍의 멜로디를 감싸는 뿌연 앰비언트 사운드와 파괴적인 기타 노이즈 역시 포스트 록 이후의 세대를 위한 사운드 장치다.

[Hospice]에서는 이 모든 것이 비상할 정도의 집중력과 압도적인 추진력을 통해 조화롭게 울려 퍼진다. 별다른 장치 없이도 조금씩 청자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Kettering”는 격렬하게 파열하는 “Sylvia”에서 한 정점을 찍고, 포스트 록 스타일이 가장 두드러지는 곡이자 음반에서 가장 탐미적인 곡일 “Atrophy”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음반의 흐름은 정말로 부드러워서 전체가 마치 한 곡 같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것이 가사를 잘 몰라도 컨셉트 음반임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근거다. 음반에서 가장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를 갖고 있는 “Bear”를 거치면서 사운드는 보다 풍부해지고 더불어 음반의 정서적인 몰입도도 강렬해진다. “Epilogue”에서 “Bear”의 테마를 반복하면서 마무리를 짓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Hospice]를 올해의 가장 독창적인 음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음반이 올해에 가장 충격적인 정서적 경험을 전달하는 음반 중 하나라는 것은, 그리고 그 충격이라는 것이 사실상 유일무이한 것에 가깝다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정교하게 짜여 있다는 것도.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나는 앤틀러스가 다시 이런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아케이드 파이어가 [Funeral](2004)을 발표했을 때도 그런 식으로 말했다. 밴드는 그 뒤 [Neon Bible](2007)이라는 걸작을 냈다. 그렇다면 일단 걱정은 미뤄두기로 하자. 우선은 이 유일무이한 음악적 멜랑콜리를 라이선스 음반의 형태로 보길 바란다는 바람만 가지는 게 어떨는지. 20091227 | 최민우 [email protected]

9/10

덧. 글의 제목은 할란 코벤의 소설에서 따 왔다.

수록곡
1. Prologue
2. Kettering
3. Sylvia
4. Atrophy
5. Bear
6. Thirteen
7. Two
8. Shiva
9. Wake
10. Epilogue

관련 사이트
[Hospice]의 공식 사이트. 몇 곡의 무료 스트리밍과 MP3 다운이 가능하다.
http://www.theantlers-hospice.com/
앤틀러스의 마이스페이스 홈페이지
http://www.myspace.com/theantlers